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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주인공이다
<전장의 학살자> 팀내의 보이스 채팅.
두 번째 세트를 앞두고 작전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와서 팀 내부 의견 조율이 필요할 만큼 하루 이틀 굴러 먹은 팀은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자존심 문제다.
-야, 강진아.파사딘 밴해도 돼..?
첫 번째 세트에서 패배를 맞이했다.
<딸기맛 치킨>이라는 웃기는 팀명을 쓰는 상대에게.
그것도 고작 파프리카에서 방송이나 하는 BJ들한테 치욕스런 1패를 내줬다.
심지어 게임을 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파사딘을 대체 왜 키워 왜.'
파사딘이라는 챔프가 성장기대치가 높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안 쓰이는 이유까지도.
비슷한 예로 미드 AP꼬그모가 후반이 좋은데도 쓰이지 못한다.
성장만 하면 엄청나게 좋지만, 그 성장을 하는 게 불가능에 한없이 가깝다.
마스터 점수대 게임만 들어가도 쓸래야 쓸 수가 없는 픽들.
그런데.
'장난까? 솔로킬을 왜 당해 솔킬을.'
내가 선택한 배인도 성장을 하기 힘들다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다.
솔로랭크에서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수준.
더욱이 그 성장에 안정성을 더하기 하기 위해 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았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해냈는데 미드가 말썽이다.
코리아나로 파사딘에게 어떻게 솔킬을 당한단 말인가?
실력차.
올마스터의 실력이 만만찮다는 건 어느정도 인정하는 바다.
상대팀에 대한 면밀한 조사는 기본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코리아나로 파사딘에게 솔킬은 아니다.
"밴해라. 그리고 다음 판은 안정적으로 파밍만 해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드라이너 덕영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징징대는 놈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주장해온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지도 지가 솔킬을 왜 당했는지 잘 모르는 눈치지만 라인전이 앵간치 힘들긴 했나 보다.
서로 플레이 방식이 안 좋게 맞물렸을 지도 모를 일이고, 일단 밴 이상의 대응법은 나오지 않는다.
-나 뭐할까? 솔직히 모르피나해서 파밍하고 싶은데, 예선전에서 올마스터 하는 거 보니까 제임스로 모르피나를 탈탈 털더라고.
라인전 안정적으로 가기에 모르피나만한 픽이 없다.
그런데 그 모르피나를 상대로 압도적인 솔킬을 따낸 게 올마스터다.
제임스라는 픽.
새로 나온 챔피언 치고 안 좋다는 편이 많은데 올마스터라는 상대 미드라이너는 상당히 잘 다룬다.
그리고 예선전 경기를 본 결과 확실하게 모르피나의 카운터가 맞다.
올마스터를 상대 못해서 징징거리는 팀의 미드라이너 덕영이가 마땅짢긴 하지만.
모르피나의 카운터를 상대가 쓸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실수하는 멍청한 짓을 하게 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귀환 밴카드를 제임스따위의 밴에 낭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럼 덕영이 니가 후픽해라. 내가 먼저 배인 가져갈 테니."
우리팀은 기본적으로 봇라인을 후픽한다.
후픽을 하는 라인이 가지게 되는 이점.
적 조합에 좋은 챔프를 가져갈 수 있으니까.
특히나 우리팀은 바로 나, 최강진의 원딜캐리를 믿고 구성되는 조합이기에, 내가 한타에서 얼마나 프리딜각을 잡을 수 있냐가 더없이 중요하다.
아까 내가 가져간 배인이라는 마지막으로 가져간 데도 이유가 있다.
들어오는데 특화된 적팀의 챔프들.
특히나 우콩을 상대하기 쉬운 챔프가 바로 배인이기에 골랐다.
우콩이라는 챔프는 돌진기가 하나밖에 없어 밀어내기만 하면 카이팅으로 잡아내기 편하니까.
때문에 원딜후픽을 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투자지만.
'게임 진행이 안될 거 같아.'
예선전 때부터 기상천외한 픽들을 가져가던 올마스터다.
상대가 어떤 챔프를 꺼낼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는 것.
까다로운 상황이지만 다른 대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게 아니다.
라인전에서 대처하기 힘들다면 조합을 보고 카운터치면 된다.
가장 합리적인 대처.
"이제 곧 2세트 시작하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첫 판은 괜찮으니까 두 번째 게임은 실수하지 말자."
팀의 주장으로서 아군의 멘탈을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라인전에 코리아나를 들고 파사딘에게 솔킬을 당한 걸 밉게만 봐서는 다음 게임이 진행이 안된다.
다전제 승부의 첫 판.
괜히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3판 2선승제의 토너먼트전에서 첫 판을 패배한 팀이 두 번째 게임을 허무하게 지는 경우는 상당히 잦다.
이는 경험이 많은 프로팀들도 해당된다.
주장인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팀의 사기도 와르르 무너진다.
"계획대로 간다. 파사딘 밴하고 가능한 그거 살려봐."
그 챔프를 살릴 수만 있다면 파사딘을 내줘도 상관없다.
물론 내가 적이라면 절대 살리지 않을 픽이지만 밴픽승부를 잘 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두 번째 세트는 우리 <전장의 학살자>팀이 선픽.
더군다나 상대 <딸기맛 치킨>팀은 이번 LCL이 첫 번째 참가일 터다.
분명 익숙하지 않다.
대회무대의 경험이 적은 만큼 노련하게 밴픽싸움을 유도한다면.
'게임을 확실하게 가져갈 수 있다.'
그만한 확신이 있는 픽이다.
설사 아까 판처럼 아군 미드가 파사딘에게 솔킬을 내준다 해도 괜찮다.
원딜주제에 딜탱이 다 되는데 미친 폭딜까지 나온다.
앞으로 슬라이딩해서 면전에 스킬딜만 박아도 웬만한 물몸챔프는 사라져버릴 정도.
그리고 그 폭딜이 무려 광역으로 퍼진다.
내가 괜히 캐리할 수 있다고 단언한 게 아니다.
배인이 기동성을 살려 적들을 하나하나 카이팅 쳐 녹인다면.
내가 원하고 있는 챔프는 아예 화끈한 스킬샷으로 정면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모조리 분쇄해 버린다.
거기에 더해 패시브로 인해 몸이 단단하기까지 하다.
물론 기동성이 탁월한 배인보다 카이팅하기에 약간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그랜드 마스터에서도 손꼽히는 내 실력이 어디 가지 않는 법.
적 미드의 누킹에 어이없이 반피가 나가지 않는 한 캐리해낼 자신이 있다.
-야 살렸어!
터져나온 환호성.
비단 밴픽싸움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영이만의 기쁨이 아니다.
내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썩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이 하도 사악하게 보인다는 지인의 말때문에 자제하려고는 하지만 버릇이라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분 좋은 상황이니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챔프를 잡게 됐다는 사실은.
크레이브즈를 살리다니.
그 오만함,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주마.
.
.
.
* * *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딸기맛 치킨> 대 <전장의 학살자> 두 번째 세트가 시작했습니다."
잠시 간의 휴식시간을 가지고 태세를 정비한 캐스터와 해설자.
첫 경기에서도 다소 당황했지만 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는다.
"두 번째 세트도 양 팀의 픽들이 흥미로운데요.. 먼저 <전장의 학살자>가 가져간 원딜러를 보시죠."
해설자는 담담히 챔프들의 특징부터 늘여 놓기로 했다.
전판처럼 저 챔프는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한 번 더 돌발적인 상황이 나왔다간 체면이 영 말이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설명을 붙이는 정도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양 팀의 가져 간 챔프들은 입을 근질근질하게 만들었다.
해설자로서가 아닌, 로드 오브 로드 유저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관심이 갈 수밖에.
"크레이브즈, 솔랭은 물론 대회에서도 악명이 자자해요. 크레이브를 푼 것은 상당히 큰 실수로 작용할 수 있어요."
시즌2의 크레이브즈.
원딜 오브 로드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원딜캐리가 중시되는 시즌2에서도 이단아.
너무나도 엄청난 스펙 탓에 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솔랭에서 1픽이 크레이브즈를 살려버리고 상대팀이 가져가는 일이 생기게 되면, 아군들이 차례차례 1픽 부모님 백년해로 하시냐고 안부 인사를 물어 올 정도.
그 정도로 챔프 자체의 스펙도 어마어마한데 진짜 문제는.
"솔로랭크에서 그랜드 마스터를 언제나 유지하는 최강진 선수가 크레이브즈를 잡았으니, 이거 게임이 힘들게 됐습니다."
캐스터의 발언.
말을 아끼려고 했음에도 절로 튀어나온다.
크레이브즈라는 픽은 필승의 상징.
더욱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크레이브즈의 위용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딸기맛 치킨>팀이 가져간 챔프들.
봇라인은 이전판과 마찬가지로 고로키와 광우스타를 가져갔다.
나쁜 픽은 아니라지만 손색이 있다.
저렇게 <전장의 학살자>팀의 에이스가 사기챔프를 가져가면.
<딸기맛 치킨>팀의 에이스이자, 전판을 하드캐리로 마감한 올마스터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상하다.
"이거 참 뭐라 해야 할지.. 특이한 조합이네요."
캐스터는 물론 게임지식이 해박한 해설자조차 뭐라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기상천외한 픽을 가져가는 올마스터가 또 유별난 픽을 가져간 거면 그러려니 한다.
전판의 파사딘 처럼 좋은 플레이가 예상된다.
솔랭에서의 상식을 빌려 임기응변을 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번엔 탑까지 난리부르스다.
<딸기맛 치킨>팀으니 씨지맥이라는 선수.
북미 시절부터 비주류 챔프 장인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해설자도 알고 있다.
게임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양팀 선수들에 대한 조사는 당연한 것이기에.
그러나 저 챔프는.
"제임스는 올마스터 선수가 예선전에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예, 뭐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조합이 말이죠…."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안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기대가 일 정도.
대체 어떻게 게임을 풀어나갈지.
그리고 한타에 들어가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게임에 대한 지식이 높은 해설자 자신이기에 상상할 수 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한타의 풍경.
미드와 탑, 두 라인이 던져대는 일방적인 포킹.
그리고 그를 뒷받침 해주는 아군.
누가 짰는지는 몰라도 이론상으로는 완벽한 조합이다.
"라인전을 무난하게 가져간다는 전제하에 저는 <딸기맛 치킨>팀이 우세를 조심스레 점해 봅니다."
크레이브즈라는 사기챔프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전장의 학살자>팀의 손을 들어준 캐스터.
조합의 완성도를 따졌을 때 <딸기맛 치킨>팀이 기대된다는 해설자.
첫 번째 세트와 달리 두 진행자의 의견이 갈렸다.
과연 어느 쪽의 말이 맞게 될지.
이제 막 미니언이 출발하기 시작한 소환자의 전장.
그 고요가 태풍이 되어 휘몰아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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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위해서 원고료 보내주신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