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83화 (8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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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치는 망신살

캐스터와 해설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첫 세트 밴픽에서 말을 아끼길 정말 다행인 노릇이었기에.

설마 타이온이라는 픽이 그렇게 작용할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그냥 지금까지 올마스터가 한 이력이 있으니, 이번에도 뭔가 터트려주지 않을까.

지레짐작 해봤을 뿐인데 우연히 잘 얻어 걸렸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겨버렸다.

"첫 세트가 압도적임을 넘어서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프로리그에서는 어지간히 불리한 상황이라도 서렌없이 마지막까지 가는 게 기본자세다.

하지만 LCL은 아마추어 리그이기에 서렌이 나오는 상황은 오히려 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아마추어들이 끈기가 있고 없고를 따질 일도 아니다.

프로가 아닌 그들이 답도 없을 게임을 이어가며 멘탈을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현재까지 치뤄진 LCL에서 20분 서렌은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드라인이 살아있는데 서렌을 친 건 다소 아쉬운 태도가 아니지 않을까요.. <내가 대망신이다>팀이 2세트에서 색다른 준비를 해왔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회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얼척이 없는 일이다.

해설자 자신도 로드 오브 로드를 플레이하는 만큼 알고 있는 사실.

타이온이라는 챔프가 안 쓰이는 이유는 강력한 라인전과 로밍으로 게임을 잘 비벼놔도 한타에 가서 힘을 못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탑봇이 손도 못써볼 정도로 터진 만큼 솔직히 승산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조합을 생각해보면 아예 없다고까지는 말 못할 수준인데.

나이 약간 먹었다고 할 생각은 아니여도 <내가 대망신이다>팀은 정말 끈기가 없다.

"예, 그 과감한 결단이 2세트에서 빛을 발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니다.

방송 경력이 하루 이틀이 아닌 캐스터임에도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정도로 첫 세트의 게임엔 내용이 없었다.

타이온이 전라인을 뻥뻥! 터트리고 다녔을 때야 재밌었지만, 정작 당하는 상대팀이 인형같은 반응.

상대 르풀랑이 어떻게 타이온을 막으려고 한다 거나, 위기스런 상황연출정도 나와줘야 진행할 말이 생기는 법인데.

타이온이 로밍다니는데로 킬을 쭉쭉 만드는 동안 르풀랑은 될데로 돼라 미드에서 파밍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20분이 넘어가면.

AP타이온의 2코어가 완성되고 양팀이 한타에 접어들면 재미가 붙겠구나.

LCL 8강 첫 세트부터 꿀잼각이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시점에서 허무하게 서렌이 나와버렸다.

덕분에 방송 흐름이 말도 안되게 끊어졌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건 중계진.

어떻게든 해셜자와 말을 주고 받으며 2세트의 밴픽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려 하고 있지만 여간 녹록지 않은 게 아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2세트 밴픽 시작되었습니다!"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혀가며 하던 고생도 이제는 끝이다.

그 올마스터가!

밴픽창부터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 줄테니까.

이쯤 되면 슬슬 기발한 챔프픽을 컨셉으로 인정해줄 때다.

이번 LCL 서머시즌의 메이킹 스타로 밀어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오프게임넷 관계자들끼리 이야기가 오고 간 사항이고 오늘 8강을 올마스터가 캐리한다면 확정사항이 된다.

그런데.

"허어…. 이번 세트는 양팀이 컨셉을 무난하게 잡았습니다?"

항상 예상치 못한 챔프를 연이어 보여주던 올마스터가 모르피나를 픽했다.

모르피나는 현재 코리아나와 카서트와 함께 대표적인 파밍형 미드라이너고, 솔랭에서도 대회에서도 픽률이 상당히 높다.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픽이지만 그 올마스터가 모르피나를 가져가다니.

두근두근하는 기대감에 밴픽을 지켜보던 중계진도, 시청자들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저거 혹시 서폿 모르피나 아님?

-ㄴㄴ 서폿으로 이미 조아라 가져갔는데?

-르풀랑 상대로 좋긴 해도.. 에이, 실망이다 올마스터!

파프리카 TV로 전송되는 LCL 8강의 채팅창.

확실히 모르피나는 대 르풀랑전의 대표적인 카운터다.

아니, AP챔프들을 상대로는 라인전은 안전하고 쉽게 가져갈 수 있다.

라인푸쉬는 타이온 이상일 정도고 마법데미지를 막아내는 다크 실드까지 있다.

하지만 모르피나는 스킬 구성이 지나치게 수비적이라 먼저 딜교환을 시도하기 힘들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더욱이 기동성이 재빠른 르풀랑이 모르피나의 Q스킬, 속박탄을 맞아줄리도 만무.

결국 라인을 먼저 밀어도 할 게 없다.

간간히 더티파밍이나 하며 한타를 바라보는 게 모르피나라는 픽이다.

AP타이온이었으면 로밍이라도 갔겠지만 스킬구성이 수비적인데다 기동성까지 느린 모르피나의 로밍력은 처참하다.

안정적인 대신 라인전에서 변수를 만들기 힘든 챔피언.

그만큼 한타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한타를 보는 거였으면 차라리 다시 개서스를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는 생각이 듭니다."

중계진이 선수가 재미없는 픽을 꺼냈다고 왈가왈부해서는 안되는 노릇이다.

대회 픽률이 50%가 넘어가는 노잼톤같이 연속해서 나와도 흥미진지한 분위기를 위해 애써야 하는 입장.

그렇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더욱이 파프리카등의 중계매체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채팅들.

투덜투덜 거리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은은하게 달래주는 게 바로 중계진의 일 중 하나이기에.

"그래도 올마스터라면 색다른 모습을 기대해볼만 한데요. 경기에서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

.

.

* * *

-오, 망신이형 집중하니까 엄청 잘하네.

-탑 오질나게 팠는데 이번 판 이기면 형캐리 인정!

듣기 좋은 팀원들의 칭찬.

내색하지 않고 화답해준다.

"첫 세트는 솔직히 타이온이 그렇게 오면 어쩔 수 없지. 게임 제대로만 가면 내 실력 알잖아?"

적 정글과 미드.

심지어 서포터까지.

맛집 탐방하듯 계속해서 기어 온다.

내가 어지간히 우스웠던 모양.

하지만 단 한 번도 당해주지 않았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하는 법이다.'

조금 더러운 수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로드 오브 로드가 아닌 '혼돈' 에서 중요한 경기때 사용한 적이 있다.

당연히 걸리지 않았고 승리로 마감한 그 경기는 지금의 내 명성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걸리지 않을까 두근두근 떨렸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지금도 넘기고 보면 다 한 때의 일이 될 거다.

미래를 위한 조그만 도박.

그것도 승산이 한 없이 높은 투자에 가깝다.

-야, 대망신. 용시야 먹을 테니 탑스플릿 하던 대로만 해라.

도진기 자식.

내 실력을 보여주니 이제서야 말투가 평이해진다.

첫 번째 세트를 녀석때문에 넘겨주고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 내 캐리로 마감한다.

마지막 세트까지 활약해주면 이제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할 테지.

그 정도야 부가적인 이득이고 진짜는.

'올마스터 자식의 완벽한 몰락.'

파프리카 TV에 발도 못 붙이게 한다.

대리논란에 버그논란까지 났던 놈을 실력까지 미달이라는 꼬리표를 붙여버린다.

녀석이 인기몰이를 하고자 특이한 픽을 했던 것이 역효과로 작용한다.

모르피나라는 안정적인 픽을 하자마자 이렇게 무너지다니.

변명따위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번 경기를 이기게 된다면 더욱 큰 목표를 볼 수 있다.

내가 올마스터 자식을 무너뜨리고자 홧김에 LCL에 참가했긴 했지만 이쯤 되면 생각해볼만 하다.

이대로 기세를 몰아 LCL을 정복해버리는 것을.

프로이상의 기량을 가진 파프리카 BJ라는 간판.

이 LCL에서 우승한다면 꿈이 아니다.

우승 후, 롤챔스 참가권 따위 쿨하게 반납하면서.

─저는 저를 좋아해주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프로의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누가 봐도 전설로 남게 될 행적.

내 앞의 미래에 창창대로가 열린다.

올마스터 자식따윈 그 발판에 불과하다.

.

.

.

* * *

'역시나 깔끔하게 물러날 녀석이 아니란 말이지.'

내가 미드 모르피나를 픽한 이유.

타이온이 밴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더 크다.

이번 판은 안정적인 컨셉으로 한타를 보고자 팀원들과 말을 맞췄기에.

무협지에서 보면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강호에서 살아 남고 싶으면 힘의 3할을 숨겨라!

비장의 수라는 건 그만큼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놓아야 한다.

유리한 입장에 있는 내가 굳이 수를 노출할 이유가 없으니까.

본디 대망신팀은 라인전 이후의 운영이라는 명백한 약점때문에 16강에서 탈락할 거라 단정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약점은 오더하는 사람이 미드라이너로 바뀌면서 극복했을 터.

더욱이 다른 놈은 몰라도 대망신 자식은 절대 서렌만은 치기 싫다며 발버둥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20분이 되자마자 깔끔하게 서렌을 했다면 분명 의도가 있다.

믿는 구석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로.

-올마스터님 적탑 혹시 대리 아닐까요?

인간조아라님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

대리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뇨, 실력은 딱히 변하지 않았는데 잘 사린달까 굳이 따지면 방플느낌인데요?

대망신과 맞라인전을 서고 있는 씨지맥이 정확히 짚었다.

대리였다면 라인전 실력이 확연하게 늘어났을 테니까.

허구헌날 로밍에 당해주던 녀석이 갑자기 갱을 칼같이 잘 피하고 있다면 방플일 확률이 높다.

오프게임넷의 방송을 보고 우리팀의 상황을 시시각각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방플에 미숙하면 방송 화면에 신경쓰다가 원하던 플레이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녀석은 잘 적응하고 있다.

'무언가 수를 썼구나.'

도움을 주는 이가 있을 수도 있고, 애초에 방플이라는 행위에 익숙할지도 모를 일이다.

'혼돈' 이라는 게임에서도 대망신의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다고 하니까.

오히려 퀘퀘한 소문이 많다는 말은 익히 들어봤다.

'믿고 있던 구석이 방플이었단 말이지….'

사실 방플에 대해서는 염두를 해두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LCL이 온라인 대회에서 오프라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몇몇 선수들의 부정행위가 계기였다.

실제로 시즌 3에 들어서 사건이 터졌었으니까.

그래도 아직 시즌2인데.

롤 유저들이 비교적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 시점에서 벌써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혼돈' 에서 닳고 닳은 대망신 녀석이 사건을 터트렸다.

녀석의 노림수는 제대로 먹혀 2세트는 넘겨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팀의 구멍인 탑라인을 파는 것이 우리팀의 주된 전략.

덕분에 아군 정글의 초반 갱킹루트부터 간간히 내가 시도하던 로밍까지.

기회비용을 만만찮게 흩뿌렸고 이러한 찬스를 그랜드 마스터에 달하는 적팀이 놓아줄 리가 없다.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이번 판은 멘탈을 유지하는 선에서 끝까지 해봅시다. 다음 세트가 남아있으니까요.

-그냥 중지하고 오프게임넷에 알리는 건 어떻습니까? 이거 누가 봐도 방플인데.

아니다.

모든 라인이 동참했으면 모르되 방플의 기미를 보이는 건 탑뿐이다.

연대책임.

물론 좋은 말이지만 그만큼 밝혀내기가 힘들다.

시즌2을 방플 사실을 솎아내는 방법에 대해서 체계화된 방법도 있지 않을 테니까.

결정적으로.

'정면에서 쳐부순다.'

승산이 낮은 도전.

쓸데없는 정의감.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우스울 뿐이다.

'나쁜 짓을 할 거면 화끈하게 해야지. 찌질하게 하면 죽도 밥도 안되는 법이야.'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는다.

마지막까지 숨겨놓은 비장의 카드.

내 기량까지 더해진다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절대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으스러뜨려 준다.

============================ 작품 후기 ============================

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위해서 원고료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현실은 픽션보다 더 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러 게임들 아마추어 대회에서 행해진 실화 기반입니다..

심지어 작년 돌겜대회에서도 나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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