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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치는 망신살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사건이 터져버린 후.
날마다 속으로 100번 이상 되풀이하는 투정.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투덜거릴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일이 바쁘니까.
"어이, 망신이 학생! 농땡이 부리면 봉사 시간 못 받아요?"
"네, 네에. 갑니다, 가요!"
양로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시중을 들고 있다.
노인네들 뒤치닥 거리를 앞으로 96시간이나 더 해야 한다.
내가 LCL에서 저질렀던 부정행위.
하필이면 삽치, 그 덜떨어진 아재가 배신을 때리다니.
당연히 입 가벼운 삽치에겐 부정행위에 대해서 얘기를 꺼낸 적이 없지만 정보통이 있는 모양이다.
그 정보통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분명 도진기 자식이겠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증거가 어디 있단 말인가, 확실한 물증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할 일 드럽게 없는 잉벤 녀석들이 여느 때처럼 나서긴 했다.
지들 말로는 이 상황에서 절대로 갱을 피할 수가 없다며 이러쿵저러쿵.
나는 곧바로 방송을 켜서 해명했다.
순전 마스터 티어의 직감으로 피했다고.
이 정도 점수대에 오면 감이라는 게 빠릿하게 서서 맵에 보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다고 말이다.
내가 내 실력으로 갱을 피하고 오더를 했다는데 다이아 티어도 안되는 잉벤러들주제에 어떻게 반박을 한단 말인가.
팬클럽 가입도 안한 시청자들이 내 방송에 찾아와 뭐라뭐라 떠들긴 했지만 그러면 뭣하나.
채팅창을 팬클럽 채팅전용으로 얼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혼돈' 에서부터 이어져 온 팬들은 언제나 내 편이다.
그렇게 유야무야 마무리가 돼야 했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터져버렸다.
절대 관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오프게임넷, 그리고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에서까지.
이런 확실하지도 않은 그저 심증만 가지고 대체, 왜?
아무리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어도 그대로 잡아뗐으면 욕먹는 선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멍청한 팀원 녀석 하나가 그만 유도심문에 걸려버렸다는 사실.
이미 다른 팀원들은 자백을 했다는 말에 멍청하게 속아넘어 가서 털어놓았다.
내가 주도적으로 나서 적팀의 위치를 알려줬다면서.
그러고서 나한테 전화해 하는 말이.
<아니, 형. 솔직히 이건 아니잖아. 우리 자수해서 광명찾자 응?>
화가 나서 핸드폰을 던져버렸지만 이미 엎질러져 버린 물.
그 녀석을 기점으로 다른 팀원들도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넘어가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던져버린 핸드폰만 애꿎게 부서져 버렸다.
방송을 통해 게임의 내용을 훔쳐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인해야 했다.
당연히 혼자 빠져 죽을 수는 없기에.
그리고 죗값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공범을 밝혔다.
"나까지 엿먹이면 어떡하냐고! 난 너랑 달리 벌어놓은 돈도 없단 말이야."
"닥쳐. 벌금은 대신 내주겠다고 했지."
나와 그마카림은 오프게임넷과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에서 벌금과 더불어 또 하나의 제재를 받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1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
사실 받아들이지 않았어도 되는 일이다.
대회측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사항을 확실하게 명시한 것도 아니고.
E-스포츠다 뭐다 해도 겨우 게임판에서 법적인 조치따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미지라는 게 있다.
그리고 파프리카TV에서조차 나를 지탄해왔다.
사회적 이슈를 벌인 책임으로 방송을 정지시켜 놓겠다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래도 금방이다.
이렇게 분골쇄신, 나라를 위해 사회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미지따위야 금방 회복될 테니까.
깽판을 친 연예이들도 어느새보면 방송복귀를 하는 데다가.
갤럭시 크래프트에서 돈까지 받고 승패를 조작한 마주작도 파프리카TV에서 방송하고 난리가 났던데.
내 문제도 분명 시간이 해결해줄 거다.
하나 짜증나는 게 있다면.
'제길, 학교다닐 때 했던 건 쉬엄쉬엄 꿀빨았던 거 같은데.'
때문에 수락한 면도 있다.
별 것 아니겠지 하고.
옛날에 초중학교 때는 몇 시간 이것저것 시키는 일 해주면 금방 보내줬다.
이 정도 했으면 됐다면서 서류에 도장까지 찍어줬는데.
내가 명령받은 건 그런 어설픈 사회봉사가 아니었다.
단 1초도 봐주지 않고 뭐가 이리 빡세단 말인가.
양로원 다 치우고 노인네들 말상대해주고.
할 거 다했으면 보내줘야지.
상팔년도 군대처럼 없는 일 만들어서 시키는 것 같다
이 짓을 무려 96시간이나 더 해야 한다.
'하다 못해 하는 보람이라도 있었으면 몰라.'
휴식시간마다 틈틈히 확인한다.
로드 오브 로드의 커뮤니티들.
나에 대한 떡밥이 슬슬 묻히지 않았을까 하고.
묻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떡밥이 터진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렇게나 장시간 지속되면 이미지 회복이 갈수록 어려워질 텐데.
결국 나는 하루 8시간에 달하는 봉사시간을 빠짐없이 마치고 귀가해야 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한두 시간 서비스로 넣어줘도 되는 것 아닌가?
인정도 없이 정확히 8시간만 도장을 찍어줬다.
그러고서 내일 또 오랜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 시점에선 별 다른 해결책이.
"망신아, 앞에 사람있어."
내 성난 걸음을 제지하는 그마카림의 목소리.
나와 그마카림은 양로원에서의 힘든 봉사를 끝내고 소주 한 잔 하기 위해서 술집을 찾고 있었다.
우리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던 음식점 골목길에 서있는 한 명의 남자.
된통 분한 마음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날이 깜깜하니까.
지금의 내 심정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유난히 구름이 많이 낀 탓에 아직 저녁시간대임에도 그림자가 질 정도로 어둡다.
"자네들을 찾고 있었네. 대망신.. 그리고 그마카림이던가?"
골목길에 서있던 남자가 느닷없이 우리를 향해 입을 열어왔다.
주위가 어두컴컴한 탓에 확인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내의 목소리뿐.
어눌한 한국어.
우리나라 사람은 분명 아니다.
서양권에서 온 듯한 발음.
사람이 많은 자리도 아니고 피하는 게 상책이다.
혹시나 인신매매단같은 위험한 조직이면 어떡한단 말인가.
바로 자리를 뜨려던 찰나.
사내는 갑자기 우리 쪽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어 건넸다.
"좋은 기회가 될 걸세."
지가 뭐라고.
나와 그마카림에 대해 아는 것을 보면 수상쩍기 짝이 없다.
옛날 같았으면 파프리카TV의 경쟁업체같은 데서 스카웃 제의를 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나와 그마카림은 사정이 많이 좋지 않다.
"자네들의 사정은 다 알고 있네. 알고서 온 거야. 어째서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오른팔을 쭉 뻗어 건넨 종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사내.
평소라면 받아들 생각따위 절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뭐 아쉬운 게 있다고.
딱 봐도 떳떳지 못할 것 같은 제안을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내 상태는 말이 아니다.
피곤한 몸도, 심지어 정신까지도.
"야, 망신아!"
나를 붙잡는 그마카림의 목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가간다.
지금 내가 잡을 수 있는 동앗줄은 없다시피 하니까.
사실은 알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게임으로 밥먹고 사는 건 힘들어졌다는 것을.
그런 내 사정을 알고도 해오는 권유.
조건만 괜찮다면 고려해봐도.
"이것은…."
"자네 친구 쿨통통도 아주 흡족해하고 있네. 후회되는 선택은 아닐 거야."
쿨통통 녀석.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계약서를 확인하니 납득이 간다.
쿨통통은 분명 이 사내와 계약을 하고 건너간 것일 테지.
"저와 그마카림 둘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야, 야! 나는 왜!"
쭉 한 번 살펴본 계약서.
매혹적이다.
조건도 훌륭하다.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내 재능이면 이곳에서도 분명..!'
성공한다.
대성한다.
보란 듯이 재기해주마.
사내가 건네준 펜으로 단숨에 사인했다.
아직까지도 어물쩡거리고 있는 그마카림 녀석의 몫까지.
지긋지긋한 사회봉사와도 안녕이다.
사인을 마친 계약서를 다시 건네받은 사내.
나와 그마카림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클클, 시공의 폭풍은 언제나 자네들을 환영한다네."
.
.
.
* * *
"캬, 이 놈들도 사라지네."
잠에 들기 직전, 뒹굴거리며 침대 위에서 이불을 부석거리고 있던 나.
스마트폰으로 잉벤을 끄적거리던 도중 눈이 휘둥그레질 정보를 확인했다.
이미지 쇄신을 하겠다며 사회봉사를 하던 대망신과 그마카림이 도주했다고 한다.
고작 하루 고생하고 내빼버렸다고.
당연히 연락처를 수소문을 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완전히 감췄다.
단순히 잠수를 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러니한데.'
쿨통통이 사라졌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게임하는 친구들 현실 게이트 타서 소식 끊어지는 일이야 하루이틀도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이상하다.
대망신과 그마카림.
마땅히 받아야 할 사회봉사명령까지 거부한다면 로드 오브 로드 뿐만 아니라 파프리카 방송도 못하게 될 텐데.
'그러고 보면 대망신 이 녀석도 참 지독해.'
그마카림 놈까지 연루돼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멍청한 대망신 놈이 물귀신처럼 끌어당겼기에 발각됐다.
두 녀석의 파프리카TV 방송국은 현재 정지된 상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명목이다.
이 방송국 정지 처분을 풀기 위해서라도 두 녀석은 반드시 사회봉사명령을 이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납득이 안된다.
목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놈들이 제대로 빠지고 동강 부서지기까지 하니 고것 참 쌤통인 노릇이지만.
아예 사라져버리니 기분이 묘하다.
'나 청부업한다고 소문나는 거 아니야?'
별 어처구니 없는 생각까지 들 정도.
나와 문제가 있었던 놈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내가 뒤로 손을 썼다고 소문이 나도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게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단 건 아니다.
내 눈 앞에서 걸리적 거리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이렇게 한 건이 시원하게 풀렸으니 다음 날 있을 준결승전 무대에 마음놓고 집중할 수 있다.
'이제 잠만 들면 완벽한데.'
눈이 말똥말똥.
침대에 누운지 1시간이 다 돼가는데 정신이 멀쩡하다.
원래 이 시간이면 진작 자도 이상하지 않은데
아무래도 테이커와의 경기.
심지어 맞라인전을 치룬다고 생각을 하니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때 소풍가기 전날 밤같은 기분이다.
'반드시 이긴다.'
만약 테이커가 미드리픈을 꺼낸다면.
상대할 픽은 정해놨다.
남자의 승부를 보여준다.
서로 짜잘하게 딜교환하고 간보고.
보는 입장에서도, 하는 입장에서도 속터져 죽을만한 게임은 안한다.
확실한 정면승부.
제대로 재미난 경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시청자들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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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ㅠㅠ
부족한 작가를 위해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악당 재활용 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