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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95화 (9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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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미드라인에서의 격전.

르풀랑은 슬금슬금 QR견제의 각을 보고, 나는 금빛검기를 맞히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내가 금빛 검기를 던지면 르풀랑은 이동스킬을 사용해 도주하는 눈치싸움.

그러나 너프되기 전인 시즌2의 해이애나는 금빛 검기의 속도뿐만 아니라 사거리 또한 우월하다.

수 차례의 실패를 딛고 드디어 금빛 검기가 르풀랑에게 명중했고, 나는 침묵이 걸리기 전에 궁극기로 돌진했다.

파앙!

내 해이애나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르풀랑에게 돌진한 결과.

당연히 르풀랑은 W스킬 날조를 사용해 거리를 벌리려 하지만.

우지끈!

주위의 공간을 왜곡해 잡아당기는 해이애나의 E스킬.

르풀랑의 날조가 도중에 끊겨버렸다.

그럼에도 르풀랑은 한 번 더 궁극기를 사용해 도주하지만.

파앙!

해이애나의 Q스킬, 금빛 검기의 효과.

궁극기인 일광 돌격을 한 번 더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르풀랑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쏘아졌다.

펑!

르풀랑의 체력이 깎이자 패시브가 터진다.

그 효과에 의해 본체와 분신, 두명으로 갈라졌다.

숙련자라면 분신까지 동시에 컨트롤해내기에 어느 쪽이 진짜인지 구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리고 테이커라면 손쉽게 해냄이 당연하다.

바보같이 물약이라도 빨면 모를까.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양 플레이어의 눈치싸움이다.

그러나.

챠앗!

망설임없이 선택한다.

내가 본체라고 단정지은 쪽으로 점멸을 사용해 과감히 평타를 날렸다.

해이애나의 Q스킬, 금빛 검기에 있는 다른 한 가지 효과를 믿고서.

'표식.'

똑같은 형상을 한 두 명의 르풀랑 중 어느 한 쪽만은 노랗게 빛나고 있다.

금빛 검기를 맞게 되면 적 챔피언은 3초간 자신의 시야를 노출하게 되기에.

내가 돌진한 쪽은 명명백백 금빛 검기를 맞은 본체라는 것을 확신한다.

세차게 후려 갈긴 단 한방의 평타에 얼마 남지 않았던 르풀랑의 체력이 쭈욱 깎인다.

이미 미니언을 때려 2스택을 쌓아 놨기 때문에.

단 한 대 치는 것만으로 3타 패시브가 발동해 추가데미지를 가할 수 있었다.

동시에.

화륵!

본체가 어느 녀석인지 맞춘 순간, 르풀랑의 목숨은 없다.

점멸과 발화, 모든 스펠을 다 쓰게 된 꼴이지만 그 만큼 마무리는 확실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미드라인전에서 테이커를 솔킬따냈다.

이전 판처럼 러브샷을 한 것도 아닌 확실한 솔킬.

딱히 감흥같은 건 없다.

치사한 짓을 해버렸으니까.

출시 직후의 미드 해이애나는 우주초월급의 OP챔프였다.

솔직히 말해서 서로가 동실력이라면 라인전을 이기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카운터조차 존재하지 않는 악질이다.

라인전 세기로 악명높은 AP타이온마저 한 수 접어줄 정도의 강력함.

지금 나는 위아래위위아래 동네 오락실에서 슈퍼영웅을 고른 듯한 기분이다.

물론 꿀챔프들을 꺼낼 때마다 고심을 하는 나다.

섣부르게 꺼냈다간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크게 개변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해이애나는 괜찮다.

어차피 1달이 안되어 그 사기성이 대두되고 너프 찜질을 먹기 시작한다.

모든 스킬의 데미지가 자잘하게 깎임은 물론이고 결정적인 너프가 2가지.

주위의 적을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는 E스킬이 대폭 하향된다.

코리아나의 궁극기 뺨칠 정도의 범위가 너프 후에는 끄는 건지 마는 건지 감질날 정도로 격하된다.

그것 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Q스킬과 궁극기의 사거리 너프는 정말 치명적으로 작용해 시즌3 중반기 보기가 힘들 지경이 된다.

그렇지만 현재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해이애나는 앞서 말한 모든 것을 갖춘 우주초월급의 사기챔프다.

더군다나 미드 해이애나는 제대로 분석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니.

실력차가 아니라 챔프빨로 이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1세트는 정정당당 맞붙었지만 2세트는 내가 봐도 야비하다.

그럼에도 해이애나를 픽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나 올마스터가 새로운 해가 된다.'

휘황찬란한게 떠올라 로드 오브 로드 계를 비추는 태양이 되고 싶다.

챔피언은 프로게이머의 또 다른 얼굴이니까.

나를 대표할 챔피언 중 하나로 해이애나를 반드시 꼽고 싶었다.

나온지 1주일이 채 안된 신규 챔피언 해이애나.

결승전과 준결승전, 과연 언제 꺼내는 게 알맞을지 고심했지만 결국 오늘로 결정했다.

어차피 너프를 먹게 될 해이애나라면 바로 내가 너프의 계기가 된다.

나로 인해 너프되는 챔피언 시리즈의 최초로 만든다.

미드 해이애나를 처음으로 플레이한 자는 올마스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다.

.

.

.

* * *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지만 균형이 이루어지던 미드에서 솔킬이 났다.

더군다나 탑봇은 내가 리심으로 직접 터트렸으니 게임의 승패는 기울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로 라면 결승전 진출이 확정지어지는 상황.

'차라리 졌으면 싶었는데.'

속시원하게 졌으면 고민할 일도 없었을 거다.

사실 참가하고자 마음먹었을 땐 결승전은 커녕, 본선에나 올라갈까 시큰둥했지만 막상 올라오니 막막하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와의 이별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그작!

입 안에서 데굴데굴 굴리던 딸기맛 막대사탕의 절반을 아그작 씹었다.

심란한 기분.

현재의 상황을 타파할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멍청한 찌질이.'

녀석은 내가 리뮤라는 걸 넌지시 눈치챌 만큼 알려줬음에도 전혀 모르는 둔탱이다.

난 현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버렸는데.

너무나도 정직하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그 녀석처럼 짜증났다.

사내새끼가 쭈뼛쭈뼛.

자신감도 없는 말투로 헤헤 거린다.

말을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하지 말지.

살짝 깠더니 불쌍한 표정이나 짓고.

동네 똥강아지마냥 시무룩해대는 게 딱 그 녀석을 보는 듯 했다.

내가 성격이 쪼오금.

예민하긴 해도 아무한테나 대판 막말을 하진 않는데.

그 녀석과 겹쳐 보이는 바람에 초면임에도 짜증이 밀려와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았었다.

솔직히 미안하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고 할 마음도 없다.

진짜 짜증났었으니까.

생판 남에게 그런 말까지 들었으면 지도 한 소리 해야지.

시무룩해서 돌아가고.

다음 날에 또 만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건다.

어쩌라는 건지.

살갑게 말을 건네는 건 성격에 안 맞는데 확 갈구지도 못하겠다.

결국 그 녀석과 똑같이 대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녀석일 줄이야.

확신할 수 있었던 건 그 녀석이 멍청한 표정으로 건넨 연락처 때문이다.

받을 생각따위 눈곱 만큼도 나지 않는 바보같은 헌팅.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한 찌질이의 까톡 프로필은 역시나 그 녀석의 이름이었다.

김시현.

'올실버가 올마스터가 돼도 발전이 없단 말이야.'

까드득!

부서진 나머지 반 쪽.

막대사탕을 어금니로 아그작아그작 씹어 꿀꺽 삼켰다.

달콤한 사탕을 깨부숴 먹으면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린다.

그럼에도.

'답답해.'

그 녀석이야 언제나 한심한 꼴이니 이젠 더 바보같다는 기분도 들지 않는다.

마음이 불편한 건 내 문제.

갑자기 바껴버린 LCL의 결승전 무대 때문이다.

온라인이었던 대회가 오프라인으로 전환됐다.

지금이라도 나가지 않겠다고 말을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아, 진짜! 바둑이같은 자식.'

또 시무룩한 표정으로 매일 저녁 6시면 탄천대로를 헥헥대며 뛰어다닐 녀석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다.

정이 들어버린 것일까.

떼어내기가 곤란하다.

확 남장을 해버려 참가하는 방법도 있긴 있다.

진지하게 고려해볼 가치가 약간은 있으려나.

하지만 그것은 최후의 최후다.

게임에서야 짧게 짧게 떠드니 눈치 느린 겜돌이들은 그냥 목소리 톤이 높다고 생각한다.

음성변조는 특기축에 들 정도니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현실에서까지 얼굴에 철판깔고 내가 왜 남장을.

그런 수모는 겪고 싶지 않다.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한다면.

'으윽.'

생각도 하기 싫다.

짜증이 밀어올라 정글몹에게 던진 음파도 빗맞혀 버렸다.

나는 이미 다 씹어 먹어 단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막대사탕의 자루 부분을 질겅질겅 깨물며 생각했다.

사실 들키더라도, 잠깐의 수모를 겪더라도 마지막은 마무리 해주고 싶다.

나에게 남은 시간을 얼마 되지 않으니까.

'될 지, 어떨지.'

나에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냥저냥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찌질이 녀석이 최근 주제 넘게 점수를 올리는 바람에, 나도 학교에서 돌아와 남은 시간을 전부 게임에 쏟은 게 화근의 시초였다.

그래도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니다.

벼락치기를 한다면 어찌어찌 해결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여유를 부려버렸다.

그런데 그  찌질이 자식이 이번엔 나에게 LCL에 꼭 참가해달란다.

매몰차게 거절했어야 했다.

그 전날 탄천로에서 찌질이를 만난 탓에 바보처럼 마음이 흔들렸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신의 꿈을 허황되게 떠벌리던 녀석을 보니 내가 잠시 미쳤나 보다.

꼴에 프로라니.

고작 몇 개월 전까지 실버였던 주제에.

요즘 조금 잘 나간다고 목에 힘주고 떠벌떠벌,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그래도 왜인지.

한심할지 언정, 미워할 수는 없는 녀석이니까.

한 순간 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탓에 LCL 참가를 받아들이고.

연습이니 뭐니 시간을 허비한 끝에 결국 얼마 전 본 시험을 망치게 됐다.

이렇게 되면 꼼짝도 없이 부모님이 하란 대로 해야 한다.

내 본가는 서울에 있다.

그리고 대학도 서울에 있지만 난 분당에서 자취하고 있다.

나를 꽁꽁 억압하던 집구석에서 떨어지고 싶어 일부러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취방을 구했다.

자유를 얻고 싶다는 하나의 소원을 위해 나는 죽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한 번 만큼은 부모님이 하란 대로 넙죽 따라줘야 한다.

자식욕심이 어찌나 많으신지.

어학연수따위 가지 않아도 영어정도야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

시험을 망친 터라 대꾸도 못한다.

다음 학기를 휴학한 후 미국에 가야 한다.

정해진 어학연수는 어쩔 수 없고, 남은 문제는 LCL 결승을 치룰 수 있나 하는 건데.

'아슬아슬하네.'

비행기 시간과 결승전의 날짜가 같다.

그래도 비행기 시간은 야간이니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택시를 잡는다면 늦진 않을 거다.

녀석 앞에서 내 정체가 밝혀질 수 있다는 게 골때리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안 들키면 그만이지.'

조금만 분장해도 멍청한 찌질이는 못 알아볼 거다.

뭐, 알아본다고 해도.

그때 쯤이면 난 이미 한국에 없을 테니까.

고작 반년이다.

반년 한국을 떠날 뿐이다.

다시 돌아오면 연락이 닿을지 안 닿을지조차 모를 녀석이다.

알고 있음에도.

'왜일까..?'

녀석과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이상하게 아쉽다.

조금 집착이 있다고 할 수 있는 내 성격.

지금 씹고 있는 막대사탕의 자루처럼 잘근잘근 까다 보니 정이 들은 걸지도 모르겠다.

============================ 작품 후기 ============================

추천 꼭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작가를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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