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신성(新星)
테이블 옆 의자에 단정치 못하게 앉은 남자가 커피를 홀짝 거리며 노트북을 보고 있다.
여기는 미국.
시즌2의 로드 오브 로드를 주름잡는 프로게임단, 팀 CLC의 숙소다.
커피를 마시던 남자는 다름아닌 핫숏디디.
현재 롤을 플레이를 하고 있는 유저라면 모를 리가 없는 유명스타다.
그가 노트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멀고 먼 동방의 나라.
로드 오브 로드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열린 고작 2부 리그의 경기에 불과하다.
챌린저스 리그라고 하던가.
1부 리그인 챔피언스 리그에 비한다면 손색이 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라 손꼽히는 자신이 굳이 찾아볼 만한 대회가 아님에도.
"원더풀..!"
같은 동영상을 벌써 스무 번이 넘게 되풀이해 봤다.
동영상에 흘러 나오는 박진감 플레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진짜는 다른데 있다.
영상 속의 플레이어는 무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둔다.
예를 들어볼까.
'재미있어.'
그 플레이어는 로밍력이 좋은 챔프를 잘 다룬다.
하지만 프로무대에서 로밍이라는 선택지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상대팀의 맞라이너라고 놀고만 있는 게 아니니까.
때문에 그는 무빙만으로 상대를 위협한다.
시야가 밝혀지지 않은 상대팀의 초점에서 본다면 대체 언제, 어느 타이밍에 남자가 로밍을 갈지 좀 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상대의 긴장이 풀린 그 타이밍을 정확히 노려 킬을 만들어 낸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모든 것이 노린 대로.
고난이도의 심리싸움을 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하수들은 영상을 집중해서 봐도 알 수가 없을 정도의 묘수.
"레오, 그에 대한 건은 어떻게 됐지?"
핫숏디디, 그는 자신의 테이블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자에게 말을 걸었다.
REA RO라는 닉네임을 쓰는 CLC 2군팀의 원딜러를 맡고 있는 남자에게.
"노프라블럼!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
로드 오브 로드가 세상에 나온지 고작 3년.
한국에 서비스가 시작된 건 이제 2년도 안됐다.
그런데도 벌써 핫숏 자신이 눈을 뗄 수 없는 게이머가 나오다니.
'갤럭시 크래프트때도 그랬지만, 범상치가 않은 나라야.'
항상 시작은 늦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게임이 만들어지는 종주국은 자신의 조국인 미국이니까.
머나 먼 한국까지 전파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세계대회에 참가해도 들러리 수준일까.
그렇게.
눈치챌 시간조차 주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어느 순간 고개를 돌리면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종주국인 자신들을 추월해 버린다.
게임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인종이라도 되는 건지.
아니면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저 연습시간의 차이일 뿐이야.'
적어도 핫숏 자신은 그렇게 단정짓고 있다.
갤럭시 크래프트가 그랬고 전쟁 크래프트 또한 그랬다.
숙소를 꾸려서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게임에 몰두한다.
자신을 포함한 서양인들에게는 없는 개념.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 만큼은 넘겨줄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CLC팀에서는 갤럭시 크래프트 때의 과오를 바로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로드 오브 로드 최강자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핫숏 자신.
그렇다고 이 컨디션이 계속해서 유지될 거란 보장은 없다.
갤럭시 크래프트의 황제 임요한이 그랬듯, 언젠가 자신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하고 말 거다.
자신 이외의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면 또 다시,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하는 것인가.
한국에 E-스포츠의 주도권을 넘겨줘야 되는 것일까.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끝났다.
'새로운 CLC의 구단주.'
다름아닌 핫숏 자신이 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CLC팀은 비단 세계 최고의 팀만으로 남지 않는다.
프로게이머 양성.
그 기반을 확립해 조국인 미국을 로드 오브 로드 최강자로 굳힌다.
'올마스터는 반드시 필요해.'
테이블 위의 노트북으로 수십 번이나 돌려본 영상.
올마스터의 것이다.
그가 LCL에 참가해 보여준 놀라운 피지컬.
그리고 라인전 능력과 운영.
솔직하게 탐이 난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기에 조금 비겁하긴 해도 수를 써놨다.
한국의 프로게임단들은 절대 꿈도 꿀 수 없는 금액.
채 자리를 잡지 못한 한국팀과 자신들 CLC는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의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 정도라면 우리 CLC에 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겠지."
테이블 마주편에 앚아 있는 레오의 말.
자신도 그렇지만 CLC 2군팀의 원딜러인 그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
어째서.
올마스터는 CLC 2군팀에 소속될 예정이니까.
고작 아마추어팀인 <딸기맛 치킨>의 스크림 경기를 받아준 까닭.
그리고 자신이 CLC의 2군팀을 대동했던 이유.
직접 손속을 나눠보란 의미였다.
역시나일까.
그는 자신의 예상대로 인정을 받았다.
그가 들어오게 된다면, 2군팀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게 된다는 사실을 팀에 속한 모두가 깨달았다.
어찌나 마음에 들었는지.
2군팀 소속인 레오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주고 있을 정도.
사실 알고 있다.
핫숏 자신이 CLC의 구단주가 되어도 계획을 실현시키는 게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뒷받침 할 만한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 이상으로 빛나는 스타가 될 인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럴 가망이 보이는 사람을 찾는 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이미 완성된 사람을 스카웃하는 방법도 물론 있지만.
그래서는 아니된다.
스타가 되는 자는 갈구해야 하니까.
자신이 올라갈 목적.
빛나야 하는 이유를.
올마스터가 마음에 쏙 드는 이유는 고작 게임센스가 있어서 뿐만이 아니다.
게임을 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타국의 인재를 포용할 정도로 CLC는 부족한 팀이 아니다.
그럼에도 올마스터가 탐이 나는 이유.
참을 수 없는 갈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마스터와 맞라인전을 정확히 4번 해봤다.
처음 만난 건 솔랭에서 탑미달리를 했을 때였다.
라인전을 졌지만 기분은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관심이 갔다.
어째서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 이유를 정확히 느껴보고자 스크림 경기를 허락했다.
그렇게 세 번 더 겨루자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목이 마르다.
한 뼘이라도 더 올라가기를 원한다.
키운다면 기대 이상의 보답을 해낼 인재.
그리고 자신과 같이 로드 오브 로드의 외길을 걸어갈 사람.
스타가 될 운명을 타고난 자라는 사실을.
.
.
.
* * *
언제나 6시가 되면 잊지 않고 해내는 조깅.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하고 저녁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기로 한 마지막 날.
결승전까지는 무려 일주일이나 남았기에 이틀정도는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합의를 봤었다.
이틀간 쌓여왔던 피로를 꽤나 풀 수 있었기에 의미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조깅으로 땀을 흠뻑 흘린 탓에 조금은 무겁게 느껴지는 몸.
이대로 숙면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 전에 한 번 즐겨도 괜찮을 터다.
나는 칼폭풍 협곡을 한 판 시원하게 때리기 위해서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까만 화면에 불이 들어 오자마자 보이는 건 로드 오브 로드의 메인 화면.
그런데.
난데가 없어도 이렇게 막무가내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제정신이야?"
내가 자리비움한 동안 보내진 메세지.
실질적인 양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겁나 길다.
리뮤- 야
야
야
야
야!
.
.
.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미친놈 알아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지."
역시 내 얼마 안되는 친구답게 제대로 미친 녀석이다.
미치기만 했으면 다행이었을까.
보내온 내용도 얼토당토 않았다.
아니, 왜 갑자기.
-나 결승전 참가 못함.
그렇게 됐다. ㅂㅂ
"되긴 뭘 돼! 야, 이 미ㅊ….!"
갑자기 LCL을 못 나가겠단다.
이유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 욕지거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마지막 말이 이어지지 않은 이유.
'미안하다니.'
처음 듣는 말이다.
수 년.
녀석과 지내오면서 처음 보는 말.
비단 나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사과를 한다는 개념자체가 없는 녀석이다.
말 그대로 개념이 없는 녀석.
그런 녀석이 빙 돌려서도 아닌, 직설적으로 나에게 사과를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사람 사정이라는 게 종종 중요한 일을 눈앞에 두고 터지는 경우가 있다.
사정이 배배 꼬여 어떻게 풀기가 힘든 상황.
리뮤 녀석이 급하게 나를 찾다가 사과 메세지까지 남길 정도라면 두 가지 중 하나다.
해킹을 당했거나, 정말로 급박한 사정이 있거나.
만약 후자라고 한다면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그래도 조금.
'섭섭한데.'
절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온라인 상에서 만났다곤 하지만 그래도.
이 녀석만큼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 못할 비밀정도야 있을 수 있는 법이지만, 살짝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짤막하게나마 설명이라도 해주면 좋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긴 하네.'
직전에 알려줬다면 사정이고 나발이고 간에 연 끊었을 거다.
결승전까지 남은 시간이 꽤 되니 대처할 방도가 없진 않다.
게다가 사실 염두해두고 있었다.
리뮤 녀석은 전부터 무언가 느낌이 안 좋았으니까.
본선에 올라온 후부터 연습을 할 때, 심지어 경기가 치뤄지는 당일에 지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고려해 예비멤버를 준비해뒀다.
팀의 연장자이자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인간조아라님과도 이미 상의를 해놓은 부분이다.
원래 잘 나가다가 말도 안되는 것에 고꾸러지는 일이 생기는 게 인생이란 거니까.
LCL 스프링시즌에서 아웃섹이 그러했듯 나라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미리미리 혹시 몰라 대비해둔 것이 도움이 됐다.
'리뮤 녀석을 대체할만한 수준일진 모르겠지만 일단 당장은.'
나머지 팀원들에게 어찌 설명을 해야 할 지다.
리뮤 녀석이 다른 팀원들에게 하나하나 사과를 했을 만큼 개념찬 아이는 아니니까.
분명 안 했을 게 뻔하고 내가 뒤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도 엎질러진 물.
주장인 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바로 내일부터.
팀원이 납득해줄만한 설명을 하고.
새로운 정글러와 함께 연습에 임해야 한다.
'남은 시간은 5일인가.'
결승전 당일을 포함한 시간이다.
출발하기 직전까지 빠듯이 연습해야 한다.
물론 아웃셋마냥 지각하는 건 말도 안된다.
가는 시간까지 고려해 최소 5시에 출발해 서울 마포구에 있는 E-스포츠 경기장에 도착할 것이다.
갤럭시 크래프트 때부터 사용돼 오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의 무대.
이제는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인가.
그 유명한 롤챔스가 진행되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챌린저스 리그, LCL의 결승전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내가 바라던 무대.
꿈의 종착지.
이전 생에서 단 한 번도 서보지 못했던 그 E-스포츠 게이머들을 위한 경기장에 드디어.
'발을 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우승을 해야 한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아웃섹과 다대기.
그리고 그에 준하는 팀원들을 보유한 상대팀을 꺾어야만 가능한 일.
심지어 상황도 웃어주지 않는다.
결승전에 올라올 때까지 발을 맞추던 리뮤 녀석이 갑작스레 사라졌으니까.
그럼에도.
"반드시."
극복하고 해낸다.
프로게이머의 길.
고된 길이 될 거라는 사실은 당연 알고 시작했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시련이다.
모두가 포기하고 있을 때.
불리한 상황에도 희망을 품게 하는 존재.
나 자신이 올라가기 위해, 슈퍼스타가 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 작품 후기 ============================
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ㅠㅠ
부족한 작가를 위해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96화의 소제목이 신성(新星)으로 수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