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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05화 (10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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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新星)

결승전까지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갔다.

3일이라는 날짜가 고작 찰나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스크림 경기를 돌렸을 뿐인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대회 당일 날조차 빠듯이 연습했다.

오후 4시까지.

집밖을 나가기 고작 1시간 전 까지 부단히 의견을 주고 받았다.

부산에 사는 흐난님은 그보다 먼저 케이티엑스를 타고 출발했기에.

나를 포함해 팀원들은 4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꼭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었다.

세 자루의 창.

첫 번째 창이라 할 수 있는 극돌진 조합에 더해 나머지 2개의 조합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보완할 점이 없을까 토론을 이루었다.

세 가지의 창 모두 발상도 좋았고 연습도 마쳤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했다.

창의 날을 날카롭게 가다듬을 시간이.

아쉬운 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무난하게 흘러갈 수 있을지 정도는 결론을 맺었다.

예를 들자면 이미 구성했던 극돌진조합에서는 봇라인을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물론.

말카림을 키워 적 원딜부터 없에자는 발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말카림이 충분히 성장을 한다고 해도 혼자서 적 원딜을 죽이기에 역부족이다.

스크림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부쉬의 침략자>의 서포터가 풀리츠크랭커였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팀의 서폿이 한나나 소리커처럼 수비적인 서포터라면.

혹은 중요한 순간에 탈력이 걸려버리고 만다면.

두 가지 중 하나의 상황만 나와도 말카림 혼자 적 원딜을 녹여버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솔랭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결승전인 만큼 적팀의 방심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주력딜러인 치비르를 키우는 게 안정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콩머스와 말카림이 쌍두마차로 적진을 헤집고.

내 미드랄라와 모르피나가 보조하는 치비르가 달려나가 적팀을 갈아 부순다.

이것이 완성된 첫 번째 창의 모습.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창까지의 토론을 마쳤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회에 지각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급할 수록 탁한 실수가 묻어 나오는 법이니까.

때문에 조금은 이르게 출발했다.

오후 5시에 분당에서 버스를 탄 나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E-스포츠 경기장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핸드폰을 보니 현재 시간은 오후 6시 반.

대회 시간은 8시이니 만큼 아직 여유가 있다.

남은 시간 동안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웅성웅성.

아직 경기장 안에 들어가지 않은 바깥임에도 주위는 떠들썩 하다.

하도 시끄러워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리지 않을 정도.

그러나 그들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으로 공통되어 있다.

바로 내 앞에 있는 건물.

우두커니, 고고하게 서 있는 상암 E-스포츠 경기장.

갤럭시 크래프트 때부터 사용돼 오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의 격전지다.

이제는 E-스포츠의 바톤을 이어 받은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가 주로 방송된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 될 챌린저스 리그, LCL의 결승전이 진행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이 세워진 방향만으로 큰 물결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 갈수록 높아지는 밀도.

사람들과 근접할 수록 시끄러운 와중임에도 간간히 알아 들을 수 있는 소리도 들린다.

"… 결승전 대박이야!"

"올마스터가…."

"역시 아웃섹의 리심은…."

어수선한 바람에 단락적으로 밖에 들리지 않지만 확실하다.

얼핏 세어봐도 수백 은 돼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도착한 사람까지 따지면 수천은 될 관중들이 내 경기를 보러 왔다는 사실이.

사실 나는 이렇게 북적이는 인파를 거칠 것 없이, 경기장 뒤쪽에 있는 선수 대기실로 빙 둘러가도 된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복잡한 경기장 정문으로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 들뜬 분위기를 관객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느껴보고 싶었기에!

'후후, 아무도 모를 테지.'

잔뜩 기분이 업된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올려 썼다.

시야를 넓혀 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경기를 보기 위해 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은 섣부른 실수였다.

"올마스터다!"

"어디, 어디?"

아차 싶었다.

너무 들뜬 나머지 잊고 말았다.

나는 이래 봬도 얼굴이 꽤나 팔린 사람인데.

최근에 개인방송을 안 해서 그렇지.

그리고 개인방송을 할 때는 그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기에 체감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동네가 아니다.

이렇게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만이 모인 공간에서 맨 얼굴로 다니면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하다.

바로 내가 올마스터라는 사실을..!

"진짜 올마스터 맞아요?"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사인 한 장만요!"

"오늘 챔프 뭐 쓸 거에요?"

한두 명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 전부가 나를 바라보는 있는 듯 하다.

숨이 막힌다.

유명인이 됐다는 사실이 이리도 무겁게 나를 짓누를 줄이야.

괜한 행동을 했다는 기분이 든다.

당황스럽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일단 인사를 해야하나?

아지면 해달라는 대로 사인을?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이곳을 돌파해서 경기장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을까.

혹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수많은 인파에 먹혀서 깔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상상이상의 부담이 나를 죄어온다.

한 마디로 공황상태다.

"올마스터 맞냐구요!"

"대답 좀 해봐 대답!"

"저 사람이 오늘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냐고!?"

회귀하기 전의 나는 현실팬이 있었던 적이 없다.

나름 천상계 짬밥을 오래 먹은 만큼,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 본 적은 처음이다.

처음인데, 수가 너무 많으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팬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부담이 될 줄은 몰랐다.

은근 슬쩍 나를 만지는 손길.

강제로 내 몸을 잡아 흔드는 사람들까지 있다.

아니, 이젠 내 손까지.

끊어질 듯이 잡아당기고 난리가 났다.

"따라와!"

내 오른 손을 잡아당기던 사람에게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말로만 듣던 여성팬이라는 걸까.

그런데 뭔가 싸가지가 없게도 느껴지는 게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잠깐, 팔 끊어지겠다!"

게다가 힘도 무척이나 세다.

어찌할 바 몰라 멍때리고 있던 나를 억척같이 잡아 당겼다.

무슨 여자애가 힘이 이토록 세단 말인지.

손톱까지 내 손등에 깊이 박혀 아프게 느껴진다

나는 그녀로 인해 반강제로 인파속을 벗어나 끌려나갔다.

따라가는 게 최선이다 싶어 내 의지로 간 부분도 있다.

사람 힘이 아무리 세도 수많은 군중 속에서 성인남자인 나를 강제로 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한 법이니까.

그렇게 쭉쭉 끌려 나간 나는 비교적 사람들이 없는 빈 공간에 안착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내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꾹 눌러 고쳐 썼다.

'혹시.'

내가 벗어나는 것을 보고 따라온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인파들.

오히려 그들끼리도 족쇄로 작용하여 나를 추적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종국에는 내가 어디로 갔는지조차 놓쳐버리고 두리번두리번 하다 각자 제 갈길로 흩어져 버렸다.

"하아, 하아. 이 멍청이가…."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준 여자.

누구 일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이 오는 중간에 알아 챘다.

'와줬구나..!'

역시 맞았다.

메로나를 유독 좋아하는 싸가지녀, 예은이다.

하지만 굉장한 노릇이다.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성의 체격으로 나를 잡아당기다니.

천하장사가 따로 없다!

"결승전이나 와가지고 찌질하게!"

독설을 늘여놓으려다 숨을 다시 꿀꺽 삼키는 그녀.

무서운 기세였다.

한 대 맞을까도 싶었지만 다행히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늘 쓰고 있던 후드티마저 벗겨진 그녀는 허리를 굽힌 채 다시 숨을 몰아 쉬었다.

긴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보이는 성난 얼굴.

자칫 건드려서는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녀가 왜 여기 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녀를 결승전에 초청한 건 다름아닌 나니까.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지만, 일단 숨을 고를 때까지 기다린 후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파악!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까를 고민하던 와중에.

싸가지녀가 내 정강이를 걷어 차버렸다.

"아니, 왜 다짜고짜..!"

방금 전 인파 속에서 나를 끌어 당겼던 괴력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상당히 아프다.

다리가 저릴 정도.

태권도라도 검은띠 수준은 되지 않을까 싶은 노련한 발차기다.

뼈가 제대로 맞았는지 갈수록 아프다.

최대한 아프게 하기 위해서 노리고 찬 듯한 악의가 느껴질 정도.

너무 아픈 나머지 꼴사납게도 정강이를 부둥켜 안아 버렸다.

그렇게 정강이의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는 와중에, 다시 후두티를 주섬주섬 쓰는 싸가지녀.

그리고 도망가 버렸다?

"자, 잠깐!"

인파 속에 섞여 한 순간에 사라진 싸가지녀.

따라가고 싶어도 정강이가 아파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그걸 노리고 다리를 차버린 것일 지도.

그런데, 대체 왜?

결승전에 와달라고 한 것도 나고, 방금 전 도움을 받은 것도 난데.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설마..?'

부끄러운 걸지도 모른다.

답장은 못하겠고, 그래도 신경은 쓰이고.

그래서 몰래 몰래 왔다가 나한테 딱 걸린 셈이니.

'아니, 그래도 도망갈 정도인가?'

의문이 든다.

곰곰히 생각해 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여심이라는 것이 복잡하다고는 해도, 이렇게 앞뒤가 안 맞을 정도라니.

어차피 싸가지녀도 정상적인 여자는 아닌 만큼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기에.

나는 아픈 정강이도 식힐 겸 근처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핸드폰을 열어 보니 현재 시간은 6시 50분.

조금만 쉬었다가 선수 대기실에 가야지.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화면이 밝아졌다.

까톡!

싸가지녀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그녀.

혹시 입으로는 말하기 껄끄로웠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던져왔다.

'정강이를 발로 찬 것이?'

미안하다면 미안한 일이다.

그 후로 아무 말도 안하고 휙 사라진 것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도움받은 것이 더 컸을 텐데.

그대로 팬들이라는 인파에게 깔려 죽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을 정도로 위험천만했던 상황에서 날 구출해준 셈인 그녀다.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면 아쉽다는 생각에 나는 답장을 보냈다.

-괜찮습니다^^ 8시에 결승전 시작하는데 꼭 보러 와주세요!

한 번 더 말하지 않으면 확 돌아가 버릴 수도 있다.

이미 돌아가는 중일지도 모르고.

과연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해올까.

어쩌면 또 읽씹일지도 모르지만.

예은의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째서?'

무엇이 그리 나에게 미안하다는 것일까.

한 번 더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왔다.

앞뒤 문맥이 맞지 않는다.

정강이를 찬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라도, 두 번이나 사과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눈치채지 못한 부분이 있나.'

혹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복싱 선수들 보면 주먹으로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 거나 그런 불문율이 있는 걸로 안다.

정강이가 아직도 아픈 걸로 미루어봐 이건 일이 년 단련해서는 나오지 않을 아픔이다.

무술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가 확김에 나를 차버리고 사과하는 것일지도.

'그건 당연히 말도 안되고.'

그 이유가 웬지 떠오를 것도 같은데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착잡해진다.

떠올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시계바늘을 척척 움직여 벌써 오후 7시 10분.

못 다한 일이 있다고 해도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왔다.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

지금까지 달려왔던 모든 것을 결착지을 때다.

바로 결승전의 무대에서.

벤치에서 일어난 내가 향하는 장소.

끝없는 인파들로 북적이는 사방에서 유일하게 인적이 드문 곳이다.

"이쪽으로 오시죠."

두 명의 시큐리티, 경비원이 마중해왔다.

그들은 일반 관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경계함과 동시에 검문한다.

들어오는 이들이 과연 선수가 맞는지 아닌지.

하지만 내 생각이상으로 얼굴이 팔린 모양이다.

원래라면 신분증을 건네주는 둥 절차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내가 올마스터임을 곧바로 알아보고 안으로 안내해줬다.

내가 향하는 곳은 어쩌면 미래의 스타들이 모여있을지 모를 장소.

LCL 결승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위한 대기실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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