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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네 자루의 창
파아앙!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한타.
굴러간 술통이 그대로 트페에게 들이 박혔다.
어비셜과 무효화의 장막.
마법저항력 아이템을 두 개나 둘렀음에도 묵직하게 깎이는 체력바.
한 번 더 술통이 박히면 트페의 목숨은 끝장이다.
살아남으려는 필사적인 움직임.
트페는 무작위로 뽑히는 세 개의 카드에서 황금색을 놀라울 정도의 반응속도로 뽑아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카드가 뜻한 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술통을 맞은 대상은 공격속도 둔화가 걸린다.
깔끔하기만 했던 트페의 평타모션이 평소와는 다르게 굼뜨기 짝이 없다.
잠깐 고개를 돌려 던지는 것으로는 마음먹은 것처럼 평타가 날아가지 않는다.
급한 마음이 걸림돌이 되어 결국 평타를 한 번 캔슬까지 시켜 버린 다대기.
한 템포 늦게 날리게 된 황금카드는 내가 다시 술통을 굴릴 시간을 허용했다.
파아앙!
-적을 처치했습니다.
적 미드라이너, 트페를 깔끔하게 처치했다.
그럼에도 한타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적팀의 진짜 주력은 트페가 아닌 이즈레알.
미드라인전에서 밀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트페는, 황금카드를 던져 이즈레알이 프리딜을 넣을 상황을 만들어주는 보조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즈레알을 원콤에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하지만 불가능한 현실이다.
원딜러를 철벽같이 지키고 있는 쏘냐.
AP누커를 카운터 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둘둘 둘렀다.
'이건 힘들겠는데.'
적팀의 마법저항력 아이템이 무지막지하다.
룬방패에 더불어 무효화의 장막, 청동의 톨라리 펜던트까지.
이렇게 되면 내가 어떻게 딜을 꾸겨 넣어 한타를 뒤집는 건 힘들다.
아군의 AD딜을 맡고 있는 원딜러가 힘을 써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런데 그 흐난님이 제 상태가 아니지.'
더군다나.
하필이면 한타의 시작에서 씨지맥이 물려버렸다.
아웃섹의 리심.
와드 방로에 더불어 점멸까지 사용하며 예측하지 힘든 궤도로 날아와 제임스를 까버렸다.
곧바로 점멸을 써 도망가려고는 했지만, 기다셨다는 듯이 날아온 쏘냐의 점멸센도와 잭트의 점멸 도약 스턴까지.
혹시 몰라 구입한 수호 악마조차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면 도움이 안된다.
결국 다시 살아나서까지 곧바로 마무리 당했다.
그렇게 불리하게 시작했음에도 적 미드라이넌 트페를 내가 처리하긴 했지만.
마법저항력 아이템을 둘둘 두른 이즈레알과 잭트를 막지 못했다.
포탑 철거에는 일가견이 있는 두 챔프.
넥서스를 내주는 것밖에 방도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네.'
시간이 끌릴 수록 불리하다는 사실은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팀이 천천히 타워를 내주며 시간을 질질 끌자 승기가 넘어갔다.
확실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결정타의 부족.
원딜러의 화력이 뒷받침되지 못해 3세트를 연이어 내줘야 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번 휴식 타임에 결정을 내야 해요."
LCL 준결승전까지는 3전 2선승제의 3세트가 기본이지만, 결승전에서는 5전 3선승제다.
때문에 3세트와 4세트 사이에는 비교적 긴 휴식 시간이 존재한다.
그 시간이 대략 30분 정도.
나는 흐난님을 포함해 아군 팀원들을 빙둘러 보며 말했다.
앞선 세트 사이와 비교하자면 상당히 여유롭다고 할만한 시간이기에, 이 시간동안 무엇 하나는 결론을 내야 한다.
흐난님의 대회울렁증이 해결되든, 아니면 그것을 전제로 작전을 짜든.
"슬슬 적응이 돼갑니다예."
본인은 저렇게 얘기하지만, 게임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 번 더 경기를 내주게 되면 그대로 끝.
이러한 상황에서는 도박수를 두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조합을 꺼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기에 꺼낸다.
세 자루의 창 중 하나.
랄라가 밴이 되면 쓸 수도 없는 극돌진 조합이 아니다.
유일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다른 성향의 조합.
원딜러의 딜링이 다소 부족해도 광역딜만 잘 박으면 한타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장판조합이다.
팀원들의 주챔프, 아모모와 조아라를 필두로 한 장판조합으로 4세트를 노린다.
.
.
.
* * *
첫 세트를 패배했지만, 연이어 승리를 가져가며 역전승을 도모하고 있는 <역대급 노력파 게이머>의 부스 안.
장장 30분의 휴식 타임을 알뜰살뜰 활용해 연습을 하고 있다.
"적응은 됐냐?"
-야, 구리가스 진짜 쩐다. 궁극기가 아웃섹 네 리심이랑 상성이 어마어마한데?
나도 롤 잉벤에서 스킬 한 번 쭈욱 봤지만 스킬구조는 괜찮다.
근접챔프라는 단점.
초반 파밍이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이전 판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다대기가 하는 트페는 궁극기가 이동기라 그렇지, 6렙 전까지의 라인전은 약하다고 볼 수 없으니까.
오히려 근접챔프들한텐 상당히 까다로운 편.
황금카드라는 확정 CC기를 동반한 평타 짤짤이는 상대를 끈덕지게 괴롭힌다.
그런 트페를 상대로 오히려 라인전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구리가스, 높게 평가할 만 하다.
포킹도 포킹이지만 패시브와 W스킬의 상호작용이 기가 막히다.
스킬을 쓰면 체력을 회복하는데 W스킬은 코스트도 없이 마나를 들이 마신다.
체력과 마나를 동시에 회복.
이게 무슨 해괴한 스킬구조인지,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은근히 숨겨진 꿀챔프가 많단 말이야.'
올마스터에 대한 평가가 한층 올라갔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꿀챔을 보는 능력.
탁월하다.
미드 노텀과 미드 구리가스, 어느 쪽도 생각지 못한 픽이었다.
물론 그러한 수준의 카드를 이번 결승전에서 또 하나 준비해왔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여긴 발판뿐만이 아니니까.'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 LCL은 아마추어 대회다.
결승전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프로리그인 롤챔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발판.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하나 더.
오히려 주목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유능한 인재를 솎아내기 위한 채다.
결국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이게 개인이 유능해도 팀이 받혀주지 못하면 우승할 수 없으니까.
프로게임단들은 경기를 보며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체크하고 스카웃한다.
그리고 그 채에 올마스터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현재 뿐만이 아니라 향후의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종합적인 능력치를 놓고 봤을 때 올마스터는 반드시 초빙해야 할 인재다.
이렇게 중요한 결승전 무대에서 적팀의 상정 외인 카드 한두 개만 준비할 수 있어도 그 값어치는 헤아릴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든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
나와 다데기가 속하게 될 삼선 MVP 레드.
결승전이 끝나자마자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던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더욱 자극적인 제안으로 그를 영입하라고.
나를 스카웃한 삼선에서는 남는 게 돈이라고 했으니까.
자신들을 스카웃할 때도 밀어넣었던 조항이다.
그렇기에 들어간 거고.
내가 적극추천할 정도로 유능한 선수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다.
결정적으로.
'사실 가장 욕심나는 건 나지.'
나와 다대기는 명실상부 가장 잘 나가는 아마추어지만, 약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챔프폭.
리심과 나이즈등을 극단적으로 잘 다루는데 반해, 그에 상응할만큼 숙련도가 높은 챔프가 적다.
만약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줄 사람이 있다면 혹할 만 하다.
'삼선과 계약을 맺은 이유기도 하지만.'
그 유명한 삼선 슬리퍼를 기반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을 틀어 잡을 정도 성장한 굴지의 대기업 삼선.
그들의 발휘하는 돈의 힘은 가히 폭력적이다.
그렇기에 가장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대기업 삼선이 후원하는 프로팀과 계약을 맺었다.
현재는 실적이 없을 지라도 돈의 힘이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법이니까.
그래도 지금은 경기에 집중할 때.
꼬리 내린 개가 되어 부르짖는 것보단 승자의 위치에서 매혹적인 제안을 던져야, 올마스터 쪽에서도 받아들이고 싶을 거다.
남은 휴식 시간은 5분.
슬슬 연습을 마치고 경기 전의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
"다대기야 곧 시작한다."
-아, 아.
내 연습이 아닌 다대기의 챔피언 연습.
구리가스를 4세트에 꺼내보기로 팀차원에서 결정했다.
이유는 2가지.
나이즈와 트페 이후로, 다대기가 이 정도로 마음에 들어하는 챔피언이 없었다.
물론 그 뿐만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상대의 픽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게 크다.
구리가스를 뺏어가게 되면 상대는 미드 노텀과 구리가스 둘 다 사용하기 힘들다.
CC기도, 생존기도 부족한 트페에 비해 구리가스는 호락호락 노텀에게 당해줄 픽이 아니니까.
상대가 꺼낸 두 가지 히든 카드를 모두 억제하는 게 가능.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도.
"진짜 익숙해진 거 맞지?"
혹시 몰라 한 번 더 확인해 본다.
챔프가 좋은 건 인정하지만, 선수 자신의 숙련도가 부족하다면 죽도 밥도 안될 수도 있다.
-정말로 느낌 괜찮아. 그냥 잘 커서 술통만 던져도 1인분인데 이거 근접싸움도 되게 좋다.
리심으로 직접 상대해 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단단한데다 기본 공격력 또한 높다.
W스킬, 술마시기의 효과였나.
정말 좋은 챔피언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고, 친구 다대기의 실력과 센스 또한 믿는다.
그렇기에 꺼내볼만한 픽이라는 사실은 이성적으로 옳은 판단이지만.
'왜 이렇게 불안하지?'
까닭을 모르겠다.
불안해 할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다대기가 구리가스를 안 했으면 싶은 마음.
어째선지 알 수가 없다.
.
.
.
* * *
타악!
던졌던 아이스크림 막대기가 쓰레기통의 가장자리에 맞고 튕겨져 나왔다.
'어쩔 수 없네.'
확 무시하고 갈만한 성격도 아니고.
무엇보다 여기는 공항이다.
주섬주섬.
허리를 숙여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넣은 예은은 생각했다.
'하나 더, 먹을까.'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출입국심사를 대기하던 중.
어쩌면 미국에서는 한동안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항내 편의점에서 메로나를 사먹었다.
마지막 한 입을 먹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막대기가 들어가지 않아서 일까.
왜인지 아쉬운 마음.
하나 더 사먹으면 답답한 마음이 풀릴까 생각한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속이 꺼림칙한 이유.
비단 처음으로 외국을 가기 때문은 아니다.
자신이 도착해 생활할 그곳에도 한인 타운은 있다고 하니까.
메로나처럼 유명한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은 물론, 입맛때문에 불편할 일은 없다고 들었다.
외딴 나라도 아니고 미국.
더구다나 자신을 애틋하게 사랑하시는 부모님이 시설에 신경쓰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 사랑이 불편해 자취를 택했던 거기도 하지만.
'그 녀석들, 잘 하고 있으려나.'
자신때문에 결승전의 준비가 바빠지게 된 팀원들.
연락 자체를 안 하고 있기에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승전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알지만 어떻게 볼 용기가 안난다.
지기라도 한다면 순전 자신의 탓이 되니까.
'꼭 이겼으면 좋겠지만.'
그것을 바랄 권리마저 자신에겐 없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결국 자신은 팀을 떠난 셈이다.
그저 잘 되기를 바랄 수밖에.
닿지 않을 응원.
남 몰래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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