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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네 자루의 창
'블라인드 픽, 이거 골치 아프네.'
2승 2패의 상황.
파이널 세트가 블라인드 픽으로 진행되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긴 싫었다.
정면승부가 된다면 불리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이쪽이니까.
우리팀의 주력은 나고 내 장점을 십분 활용하려면 카운터 픽을 내세우는 것이 가장 좋으니까.
사실.
상대가 어떤 조합을 꺼내올지는 뻔하다.
그런데도 마땅히 받아치기가 힘들다.
'나이즈를 카운터 칠 챔프는 딱히 없지.'
나이즈는 사실 별 거 없다.
뚜벅이 챔프들이 으레 그렇듯, 갱오면 된다.
그런데 그 정글싸움이 밀리는 와중이니 기대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적 정글러의 기량이 확연히 높으면 갱킹에 약한 픽은 꺼내기 힘들게 된다.
예를 들어 해이애나.
틀림없이 현존 최고의 OP지만 생존기가 없는 근접챔피언이다.
그 아웃섹의 리심이 갱각을 못 잡을 리가 없다.
안타깝지만 결승전의 승패를 결정하는 마지막 판인 만큼 혹시나를 기대하기보단 안정적으로 가는 게 타당하다.
물론 아군 정글러인 타임끝의 기량을 탓하는 건 아니다.
상대편의 정글러가 어마어마하게 막강할 뿐이지.
아웃섹의 리심을 상대로 크게 말린 판이 없다는 것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정글싸움이 밀리는 건 엄연한 현실.
이렇게 되면 우리팀이 꺼낼만한 조합은 하나로 좁혀진다.
"가장 많이 연습했던 조합으로 가보죠."
말카림과 콩머스를 필두로 상대를 찌르는 극돌진조합.
뾰족한 창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의 조합은 나이즈를 중심으로 하는 단단한 방패.
창과 방패의 대결이다.
뚫느냐 막느냐.
기교없는 순수한 실력 승부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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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환자의 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길고 길었던 LCL의 마지막을 장식할 경기! 이 오늘을 위해 벼르고 벼렀던 양 팀의 준비가 돋보이는 가운데 경기 들어가겠습니다."
캐스터와 해설자.
먼저 조명되는 것은 양팀의 조합이다.
<역대급 노력파 게이머>에서 꺼내든 조합은 가히 정석적.
프로 무대인 롤챔스에서도 자주 기용된다.
미드의 OP라고 부를 수 있는 대장군 나이즈를 필두로 안정적인 캐리력을 보여주는 안정감있는 조합이다.
그에 대항하는 <딸기맛 치킨>의 조합은 이색적.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그리고 할 생각이 없는 올마스터 전용 챔피언 미드랄라.
뿐만 아니라 말카림과 치비르까지.
서포터인 한나와 정글러인 콩머스를 제외하면 솔랭에서조차 보기 드문 챔피언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재밌는 일이지만 가장 주목해야 봐는 건 조합의 컨셉이다.
"하나하나가 전부 기동성이 좋기로 손에 꼽는 챔피언들입니다. 그들이 소환자의 전장에 펼칠 레이스! 기대해볼만 합니다."
결승전의 컨셉은 구 강팀와 신 강호의 대결.
그에 걸맞게 마지막 경기에서 양 팀의 꺼낸 조합은 정석 대 변칙.
안타깝게도 치킨각은 아니다.
지금 만약 따끈따끈한 치킨을 배달 시킨 사람이 있다면 후회할 노릇.
경기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킨이 식어있을 테니까!
-올마스터 올라가면 좋겠다. 롤챔스에서도 비주류 챔프 보고 싶어!
-나 트린장인인데 롤챔스에도 트린다조아가 나올 일이 있을까?
-ㄴ응 똥챔은 절대 안 나와~
비록 스프링 시즌부터 깊은 팬층을 보유한 <역대급 노력파 게이머>지만 <딸기맛 치킨>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짙다.
늘 비슷한 챔프로 똑같은 경기 양상만 나오는 롤챔스.
밥줄이 걸린 만큼 프로들이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는 건 알아도 시청자들은 목이 마르다.
혹시 자신의 주챔프가 롤챔스에 나올 수 있을까.
오늘은 색다른 경기가 펼쳐지진 않을까.
이번 서머시즌의 LCL이 유독 인기가 많아진 이유의 반은 올마스터 덕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리그보다 재미있는 아마추어 대회!
그 향연의 중심에는 언제나 올마스터가 있었다.
올마스터가 결승전에서 우승해야 꿀잼각을 시청할 기회가 생길 텐데.
하는 마음에 파프리카 TV를 비롯한 여러 중계사이트, 그리고 각 커뮤니티에서는 <딸기맛 치킨>을 응원하고 있다.
"해설자께서는 과연 마지막 세트, 그 한타에서 어느 쪽이 승산이 높다고 보십니까? 물론 이론상으로 말이죠!"
지금까지 <딸기맛 치킨>에 대한 예상을 전부 틀려버린 해설자.
영락없이 개그 포지션으로 전락한 그에게 캐스터가 농담삼아 질문을 던졌다.
-해설자 반대로 생각하면 무조건 맞음ㅅㄱ
-제발 올마스터가 진다고 해라ㅋㅋㅋ 그럼 이김ㅋ
-저주 걸면 죽는다 진짜!
어느 쪽이 이길지.
2승 2패의 막상막하, 용호상박의 대결에서 쉽사리 예상할 수 없지만.
해설자만은 발언이 자유롭다.
아무도 기대를 안하니 쉽게 내뱉을 수 있다.
"한 번도 못 마춘 제가 예상을 하라니, 캐스터님도 참 짓궂기도 하여라. 어떻게 말해도 모순이네요. 예, 양팀의 조합은 모순이란 고사성어 같습니다."
자폭으로 시작하는 해설자의 드립.
하지만 모순이란 발언은 언중유골이다.
무엇이든 꿰뚫는 창과 어떤 것이든 막아내는 방패.
양 팀의 조합 특색이 그러하다.
창은 <딸기맛 치킨>.
방패는 <역대급 노력파 게이머>.
과연 어느 쪽이 이길지 예측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예측을 하는 해설자가 지금까지 맞힌 적이 없으니 이 또한 모순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바란다.
불확신한 순간에 등을 떠밀어주는 사람.
고민이 마구마구 일 때.
짜장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탕수육을 찍어 먹을지, 부어 먹을지.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남는 결정의 순간에 총대를 대신 메주는 사람.
그 역할을 이미 만신창이가 된 해설자가 자폭해준다.
"전 올마스터 선수의 팀이 이길 것 같습니다. 소심한 복수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하하!"
얼핏 들으면 덕담이지만 속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LCL 해설 내내 올마스터때문에 봉변을 당했던 해설자.
올마스터가 이긴다고 응원해주면 그 반대가 되겠지.
말 그대로 소심하기 짝이 없는 복수다.
-해설자님 밤길 조심하세요.
-오프게임넷 본사 위치가 어디더라…. 용산맞음?
-저 직관 중인데 맞은 편 오른쪽 두 번째 좌석입니다^^
자칭 파프리카 TV와 직관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시청자!
백분 단순한 드립이겠지만 진짜라고 생각하면 살 떨리는 노릇.
해설자는 급히 기침을 하며 말을 수정한다.
"이제 보니 <역대급 노력파 게이머>가 이길 것 같기도 하고. 역시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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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경기의 상황은 무난하다.
서로가 한타를 노리고 파밍모드.
지금껏 가장 많이 티격댔던 봇라인도 안정적이다.
치비르와 한나라는 픽 덕분.
킬을 만들기엔 좋은 조합이 아니라지만 라인전 안정도 하나는 끝내준다.
두 챔피언이 워낙 잽싼 데다 치비르 또한 스킬 실드가 있으니까.
사실 한나가 딜이 없어서 그렇지, 아군 원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살린다.
때문에 오히려 접점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탑.
말카림과 쇈이 투닥거리는 와중이라 리심과 콩머스도 서로 얼굴 볼 일이 잦다.
그렇게 무안하게 지나친 두 정글러가 혹시 몰라 방문하는 곳은 미드.
탑미드의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대로 한타까지 간다면 진짜 모르겠는데.'
한타의 결과는 정말 붙어봐야 안다.
쉽사리 예측이 불가능.
어느 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다.
승산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방도는 CS를 하나라도 더 먹는 것 뿐.
나는 절대 막타를 놓치지 않도록 장인 정신으로 정성껏 미니언을 깎고 있다.
물론 이따금 각이 나올때 견제도 잊지 않는다.
챠라랑!
내 랄라의 보라색 창이 엇나간다.
파밍을 하는 와중에도 종종 EQ 견제로 나이즈를 노려보고는 있지만 역시나 다대기.
역대 프로게이머들 중에서도 무빙 하나는 알아주는 그다.
꽤나 매섭게 날렸다고 생각했는데 잘 피해낸다.
아니, 필사적일 정도.
4세트에서 자신이 해버린 역캐리를 만회하려는 듯 5세트에 임한 자세는 얼핏 봐도 남다르다.
진중한 각오가 엿보인다.
'솔킬을 내고 싶긴 하지만 무리해선 안되겠지.'
적극적으로 견제해 나이즈의 체력을 깎고 싶지만 마음처럼 안된다.
적 리심이 요리조리.
와드방로를 사용해 동선을 꼬고 있으니까.
누가 아웃섹 아니랄까봐 사납게 갱각을 노려온다.
물론 난 그것을 잘 피해내고 있지만, 공격을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내가 그리려던 게임이 아니다.
타임끝이 못해주는 게 아님에도 아쉽게만 느껴진다.
만약 리뮤가 정글을 해주었어도 이렇게 서로 파밍만 했을까.
'후우, 집중하자.'
잡생각을 할 시간이 아니다.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결승전.
그 파이널 세트에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라인전이 너무 한가하게 흘러가니까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결승전까지 거쳐왔던 경기들.
리뮤와 발을 맞춰 진행했던 게임들이 꼭 좋은 추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번도 답답하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을 때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솔킬도 엄청나게 땄고 로밍도 마음가는 대로 다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단순 내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다.
정글러가 판을 만들어 줬기에 가능했다는 당연한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하는 서포터와 원딜.
미드와 정글 또한 그러하다.
각각을 따로 놨을 때 아무리 잘해도.
그 방향성이 다르다면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1+1이 아니다.
단순한 1차원의 사칙연산으론 해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세계최고 미드라이너.
약칭 세체미라 불리는 테이커.
만약 그의 정글러가 비행기가 아니었어도 마음놓고 활약할 수 있었을까.
스타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 가능했을까.
그 누구도 섣불리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문제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이다.
그럼에도 슈퍼스타가 존재하는 이상한 게임이다.
10명이 플레이하는 게임에서 나 홀로 우직하게 빛나는 하나의 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별을 태어날 수 있게 남몰래 받혀준 팀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해줬으면 하는 플레이.
굳이 육성으로 주고 받지 않아도 통하는 마음의 파트너가.
'지금와서 후회해도 어쩔 수 없지만.'
블라인드 픽으로 진행되고 있는 5세트 경기.
원하는 챔프, 원하는 조합을 가져갔음에도 답답하게만 흘러간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양팀이 의도했던 대로의 한타싸움.
창과 방패의 대결이 시작될 터.
물론 우리팀 다섯이 만들어낸 창은 그 어떤 방패도 뚫어낼 정도로 날카롭다고 자신한다.
분명 창은 날카롭다.
창날도 매서롭게 서있고 그 뼈대를 이루는 창대 또한 단단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창날과 창대를 잇는 중요한 이음매.
조금은 헐겁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 뿐일까.
아직 한타가 시작하려면 멀었음에도 기우.
쓸데없는 걱정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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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를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