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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고사
세코.
소리없는 암살자.
그의 은신은 징조따위 보이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갱킹의 공포.
상대하는 입장에선 여간 어이없는 노릇이 아니다.
물론 그 만큼이나 단점도 있다.
흔히 말하는 유통기한의 문제.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때의 이야기지.
지금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세코처럼 킬을 말도 안되게 쓸어 담게 된다면.
─Unknown Error is Legendary!
한국어로 하자면 전설의 출현!
전설을 달성하기 위한 제물은 벌써 4번이나 정글에서 마주쳐 목숨을 잃은 리심이 됐다.
리심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겠지만 나에게는 일용할 양식!
배치고사 6승 0패의 상태다.
매판 평균 20킬.
그리고 현재 일곱 번째 게임에서의 초반 성적은.
'8킬 0데스 0어시. 스타트는 나쁘지 않네.'
당연한 결과다.
이 내가 실버, 골드 티어에서 양학을 하고 있는데.
실버에서 시작한 내 배치MMR은 6연승으로 인해 훌쩍 올랐다.
현재 만나는 상대 플레이어들은 평균 골드 티어.
제법 잘해졌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안되지.'
딸칵, 딸칵.
상점으로 귀환한 내가 마우스로 클릭해 산 두 아이템.
주술의 검과 테자이의 재능약탈자.
둘 모두 킬이나 어시를 챙길수록 진정한 빛을 보는 아이템이다.
물론 죽으면 말짱 헛것이긴 해도.
'안 죽으면 되니까!'
양학이란 이러한 마인드로 하는 거다.
아무리 양학이라 주술의 검과 테자이의 재능약탈자를 동시에 가는 경우는 없지만.
세코는 AD도 AP도 수용 가능한 챔프.
어차피 킬어시를 쓸어담을 거라면 사둬서 나쁠 건 없다.
'슬슬 시동을 걸어볼까?'
8킬, 전설의 출현은 시작일 뿐이다.
배치고사에서 내 평균 킬은 20킬.
심지어 30킬을 넘긴 판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판은 이제 겨우 8킬을 했을 뿐이다.
또 다시 갱킹을 가기로 선택한 곳은 탑라인.
적 탑챔프는 트린다조아
물불 안 가리는 전형적인 탑신병자 챔피언이다.
이 탑신병자들은 항상 올곧다.
한 번 당해주면 사려야 하는데 자신이 조금만 유리하면 다시 덤벼 온다.
퍽! 퍽!
연속으로 치명타가 터지자 신이 나서 개서스를 후두려 패던 트린다조아.
개서스는 내가 갱킹을 와주는 걸 눈치채고 뒤로 슬금슬금 뺀다.
트린다조아는 개서스가 튀는 줄 알고 회전 가르기까지 사용해 쫓아가지만.
퍼억!
은신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 트린다조아의 뒷통수를 거세게 후려쳤다.
게임시간 10분 만에 8킬을 먹고 전설을 찍은 세코의 위력.
더군다나 세코의 Q스킬, 은신이동은 스킬 사용 후 첫 번째 평타가 확정 치명타로 터지는 효과가 있다.
고작 한 대 맞았을 뿐인데 트린다조아의 체력바가 1/3이나 깎여버린다.
SHEKO[All]-BYE BYE!
나를 보자마자 부랴부랴 유령화와 궁극기를 사용하고 도망가지만 헛수고다.
따라가서 한 번 더 은신이동, 기다렸다가 독단검을 던진다.
트린다조아의 궁극기, 불사의 격노.
5초간 무적이 되는 효과가 있지만 그 시간이 끝나면 바로 사요나라.
─Unknown Error is Legendary!
한 번 더 전설을 과시한다.
당연 멈추지 않는다.
세코가 상대하기 껄끄로운 정글러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까닭.
이렇게 까다로운 은신 갱을 궁극기도 아닌 주제에 시도 때도 없이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퍼억!
미드라인에서 열심히 CS를 먹고 있던 럭키.
어느샌가 나타난 내 세코가 럭키의 뒷통수를 후려친다.
확정 치명타에 더해 패시브에 의한 20%의 추가 데미지.
그래도 브론즈 실버는 아니라는 걸까.
골드 티어다운 반응속도를 보여주며 속박스킬을 날리지만.
끄히히히히!
세코의 웃음소리와 함께 시전되는 궁극기.
환영은 세코와 똑같이 생긴 분신을 만듬과 동시에 0.5초간 무적효과가 있다.
마이의 알파 슬래쉬와도 비슷.
럭키의 속박을 여유롭게 피하고 독단검을 날려 슬로우를 건다.
아군 미드라이너 아링이 갱호응을 할 찬스도 주지 않는다.
세코에게 어시스턴스는 불명예와도 같으니까!
툭!
독단검에 의해 느려진 럭키에게 한 번 더 평타.
확실하게 마무리한다.
─Unknown Error is Legendary!
계속해서 터지는 전설의 출현!
벌써 10킬이다.
이쯤 되면 미니언 대신 챔피언을 파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드 오브 로드는 서렌을 치려면 20분까지 기다려야 한다.
앞으로 5분 넘게 고통의 시간이 예약돼 있다.
─Enemy double kill!
봇라인에서의 적신호.
적팀이 이기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봇은 초반에 두 번이나 갱을 가줬던 라인인데.
'뭐, 그럴 수도 있지.'
솔로랭크에서 연승을 하면 아군에 비해 적팀의 수준을 높게 붙여주는 경우가 있다.
탑과 미드는 그래도 정상적인데.
초반에 두 번이나 따줬던 봇라인이 역으로 지고 있다.
적 원딜과 서폿은 크레이브즈와 소리커.
현 시즌2의 최강 봇듀오인 만큼 이해는 가지만.
'아군 봇듀오가 죽었으니 적은 당연히 용을 간다.'
와드로 슬쩍 보니 역시나.
리심과 함께 적 봇듀오가 용을 치고 있다.
그것도 내 은신에 대비해 핑크와드를 깔아두고서.
이렇게 되면 세코로 할 게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세간의 편견이다.
흔히 세코가 한타에서 약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 정도로 커버린 세코에게 불가능은 없다.
적이 부단히 치고 있는 용에 다가간다.
슬금슬금.
단타로 용을 뺏을 것처럼 연기를 한다.
하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음파를 날리는 리심.
용을 반 이상 먹었음에도 망설임이 없다.
그동안 나에게 카정당해 죽었던 복수를 하겠다는 듯 과감하게 날라차기.
이~쿠우!
점멸까지 활용해 내 세코를 멋지게 걷어찼다.
크레이브즈와 소리커가 있는 방향으로.
와드 방로도 아닌 데다, 솔직히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리긴 했지만 골드치고 칭찬해줄만한 플레이다.
혹시 내가 은신이동으로 도망갈까.
소리커는 침묵부터 걸고 크레이브즈가 앞대쉬를 까지하며 산탄총을 흩뿌린다.
한 순간에 집중된 어마어마한 데미지.
세코가 시체도 남지 않고 터져버린다.
퍼엉!
세코가 터지며 코 앞에 있던 크레이브즈에 마법 피해.
리심이 회심의 일격으로 배달한 내 세코는 분신이었다.
미드에서 럭키를 딸 때 사용했던 궁극기.
슬슬 시간이 다 되어 사라지려던 찰나에 멋지게 재활용했다.
그리고 내 진짜 본체는.
퍼억!
분신이 당하고 있던 시간에, 나는 은신으로 벽을 넘어 소리커에게 도달했다.
일반적으론 원딜부터 노리는 게 정석이지만.
소리커가 힐을 주기 시작하면 아슬아슬하게 못 죽이는 경우가 생긴다.
때문에 적팀에 소리커가 있으면 소리커부터 암살.
치지직!
확정 치명타와 발화가 동시에 들어가며 소리커는 영문도 모르고 사망.
남은 건 리심과 크레이브즈.
불리한 상황이지만 나에게도 아군이 한 명 있다.
챠라랑!
미드에서 어시도 먹지 못한 아링이 궁극기를 쓰며 필사적으로 날아온다.
어찌나 킬에 목말랐는지, 용에게 얻어 맞아 체력이 반피 이하로 깎인 리심을 발화까지 사용해 꿀꺽한다.
이제 남은건 크레이브즈뿐.
아무리 OP로 소문난 크브라 할 지라도 내 분신잡느냐 스킬이 다 빠진 와중이니 반항조차 할 수 없다.
─Double kill!
주술의 검과 테자이의 재능약탈자가 차곡차곡 쌓여 강화된 내 독단검에 맞고 골로 가버린다.
적들이 열심히 리시해준 용은 보너스.
─Unknown Error has Slain the Dragon!
안 그래도 깨졌던 적팀의 멘탈이 와르르르르.
콩가루가 되어 흩어질 지경!
만약 한국이었으면 채팅으로 입을 엄청나게 털었을 텐데.
그래도 북미라 그런지 유쾌하게 반응해온다.
Li Sim[[All]-HEY, SHEKO! ARE YOU STREAMER GREEN WARD?
'스트리머? 그린와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순간 파악을 못했지만 금새 기억났다.
그러고 보면 해외에도 파프리카TV 비슷한 게 있었다.
토이치TV라도 하던가.
STREAMER(스트리머)라 함은 파프리카TV로 따지면 BJ.
그 토이치TV에서 방송하는 인기 스트리머 중 하나가 바로 그린와드다.
세코 장인 그린와드.
현재는 해외에서만 통용되는 스타지만, 차후 유튜부의 매드무비를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는 이름이다.
그는 상대 입장에서 모니터를 부숴버리고 싶을 만한 슈퍼플레이를 연달아 해내는 명실상부 북미 최고의 세코 유저.
AP세코를 주로 하지만 AD세코도 안 하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방송인의 양학은 만국공통컨텐츠 아니겠는가?
내 세코는 현재 전적만 해도 배치 6연승.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게임도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 사실상 7연승.
운으로 이긴 것도 아니고 매판 수십 킬이나 해댔으니 의심받을 만도 하다
세코라는 비주류 챔피언.
잘 나오지도 않는 세코를 수준급으로 다루는 유저가 달리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다른 나라의 세코 장인이 오지라도 않는 한!
SHEKO[All]─YES. I'M GREEN WARD!
Li Sim[All]─WHAT THE HELLLLLLLLL!!!
당연히 난 그린와드가 아니지만!
입 터는 것은 개인의 자유 아니겠는가!
내 압도적인 전적과 실력까지.
더군다나 그린와드라는 믿지 못할 시인에 급격히 멘탈이 부서지는 상대팀.
생각보다 효과가 대단하다.
그나마 잘해주고 있던 적 봇듀오마저 실수를 연발하기 시작하자 믿을 구석이 완전하게 사라진다.
─Enemy team agreed to a surrender with 5 votes for and 0 against!
주술의 검과 테자이의 재능약탈자를 풀스택까지 채워버리니 원샷 원킬이 가능.
완전히 질려버린 상대팀은 20분이 되자마자 서둘러서 항복에 찬성했다.
─Victory!!
'이걸로 7연승. 점점 재밌어지는데.'
-GG. FUCKING GREEN WARD!
-FREE WIN THANK YOU! KKKKKK!!
승리와 패배,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는 대전기록창의 채팅들.
하지만 유쾌하다.
상대팀에서도 기분나쁘다는 내색도 없고 팀탓도 없다.
재밌는 게임했다면서 훈훈하게 마무리.
'그린와드라고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보고도 싶네.'
세코만 하면 질리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아니다.
겁나 재밌다.
일반적인 AD세코만 하면 모를까, 그린와드가 주로 플레이하는 AP세코라면 할 맛이 난다.
물론 효율의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AP세코는 캐리력면에서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낮은 티어대라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
더군다나 그 재미가 상당히 쏠쏠.
'상대를 골탕먹일 때의 즐거움이 장난이 아니지.'
일단 당장은 아니다.
배치고사를 끝내고 해도 늦지 않을 터.
목표는 당연히 10연승.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추천!
부디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위해서 쿠폰 보내주신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다음 화부터는 일부채팅을 제외하곤 한국어로 대체하려 합니다.
영어채팅의 약어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해요.
잘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일부 독자님들께서는 헷갈리실 수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린 판단입니다.
채팅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양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