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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고사
세코로 하드캐리를 하는 방법.
간단하다.
일단 초반 카정과 갱킹으로 킬을 쓸어 담는다.
그렇게 킬을 먹고 무럭무럭 성장하면 보통 여기서 갈리게 된다.
갱킹 덕에 잘 성장한 아군과 함께 적팀을 끝까지 몰아붙이거나.
믿었던 아군이 말도 안되게 계속해서 짤리더니 결국 역전의 기회를 주고 말거나.
전자를 택해 승리한다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솔랭에서는 아군을 믿지 않는 게 좋다.
5킬 먹은 원딜이 3데스한 적 미드 르풀랑한테 어이없게 죽어주는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니까.
'이해가 안되네.'
그 광경이 실제로.
그것도 하필이면 배치고사 9연승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판에서 일어나버렸다.
한 마디로 우리원딜 노답이다.
후반 가면 무조건 진다.
한 번 더 그런 골때리는 광경을 보다가 암세포가 폭발하느니 혼자 캐리를 하는 게 속편하다.
특히나 낮은 티어대에서 양학을 할 때는 더더욱.
그것이 세코에게는 가능하다.
바로 솔바론으로.
'15분 햇바론따위 세코에게 걸리면 순삭이지.'
팀원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다.
고독한 솔랭.
솔랭에는 솔랭에 맞는 운영방식이 있는 법.
대회게임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방식이지만.
솔랭에서는 상당히 잘 먹힌다.
햇바론이라 함은 15분에 갓 젠되는 바론.
조금 약한 탓에 차후 20분 젠으로 패치가 되는 부분이지만.
현재 시즌2에서는 정확히 15분에 바론 백작이 나온다.
물론 햇바론이라고 혼자 잡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다.
솔바론은 로드 오브 로드의 전 챔피언들 중 오직 세코만이 가능한 과업이다.
'굳이 따지고 들면 두두도 가능하긴 해.'
정글링만에 특화된 챔피언 설인 두두.
대신 두두는 캐리력이 안 좋다.
빠른 정글링과 반비례해 챔피언을 상대하는 데미지는 약하니까.
하지만 세코는 전형적인 암살 챔피언.
초중반 캐리력이 돋보이는 데다, 용과 바론 잘잡기도 소문나 있다.
궁극기와 박스.
와리가리 컨트롤을 절묘하게 해주기만 하면 뚝딱이다.
쿠어어어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소환자의 전장을 깜짝 일깨우는 바론의 포효.
심지어 아군도 놀랐다.
세코가 잠깐 안 보인다 싶더니 기적을 행했으니까.
내가 20분까지 먹은 킬은 10킬.
평소보다 조금 적은 수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정글 특화 아이템 티굴의 랜턴.
그리고 현재 체력에 기반한 %데미지를 주는 영락한 왕의 기사검.
두 아이템이 갖춰지면 솔바론은 가뿐하다.
─적팀이 찬성 5표 반대 0표로 항복하였습니다!
'어? 여기서 서렌을 치나.'
킬스코어는 15 : 6
상당히 유리한 상태였지만 우리 원딜이 워낙 노답이라 내심 불안했는데.
내가 바론을 잡았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적팀이 서렌을 쳐왔다.
─FUCKING FEEDING $$#^#@
- #$^###^ YOU TOO!
대전기록창에 들어가니 적팀이 서로 싸우고 난리가 났다.
팀내의 불화가 불거진 상황에서 바론까지 먹혔으니 멘탈이 나갈 수밖에.
서렌을 친 것도 이해가 가는 노릇이다.
'양학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일석이조구만!'
싸움구경만큼 재밌는 게 없다!
간간히 알아보기 힘든 단어도 섞여 있지만 무슨 말하는지는 대강 알아 들을 것 같다.
미드는 정글러가 세코에게 킬을 줘서 게임이 터졌다고 따지고.
정글은 르블랑 니도 죽어줘놓고 무슨 소리하냐고 반박하고.
한국보다 싸우는 빈도가 덜 하기는 해도 결국 사람사는 곳이다.
서로 억지부리고 땡깡부리고.
없을 리가 없다.
오히려 오랜만에 보니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광경.
'마지막 판으로 할까 고민도 했는데 빨리 끝나서 다행이네.'
우여곡절 끝에 거머쥔 아홉 번째 승리.
킬을 먹여줘도 못 하는 아군 원딜이 골때리긴 했어도 결과가 좋으니 괜찮다.
배치 9연승.
이제 한 판만 더 이기면 오늘 하루를 쏟아부은 배치고사가 마무리 지어진다.
'양학도 요령을 배우면 이렇게 간단하지.'
회귀한 직후.
실버티어 아이디로 게임을 할 때 고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내 전적이 7승 3패였나.
팀운은 둘째치고 양학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 크다.
연습생이었던 나에게 양학같은 걸 할 시간이 어디있었겠나.
본캐 솔랭만 빠듯하게 돌려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천상계에서만 게임하다 정말 수년만에 실버에 오니 완전히 다른 게임 같았다.
애들이 말도 안 듣고,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도 안 해주고.
가장 결정적으로 정글을 양보 못 받은 게 컸다.
양학하기 제일 좋은 라인이 바로 정글이니까.
'심지어 서폿도 했었네. 큭.'
내 전적을 못 믿겠다며 아우성쳤던 팀원들!
하지만 북미에서는 그럴 일 없다.
내 빛나는 9연승을 보면 누구라도.
─3L JUNGLE OR AFK.
배치고사의 마지막 큐.
픽창부터 억지를 부리는 팀원이 있었다.
자신은 무조건 정글을 가겠다고.
정글을 주지 않으면 게임을 던지겠다는 3픽.
그런데 그가 친 채팅이 심상치 않다.
'3P가 아니라 3L이면 중국, 아니면 대만 유전데.'
1픽부터 5픽까지.
일반적으로 순위 뒤에 P를 붙인다.
예를들어 3픽을 지칭할때는 3P.
하지만 중화권에 속한 국가들에서는 P대신에 L을 붙인다.
내가 중국인을 싫어해서 하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중국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게임에서 만난 중국유저들하고 답답한 경험이 많다.
조금 이기적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는면은 눈살 찌푸려진다.
'어쩔 수 없지.'
배치 마지막 판인데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끝내야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겠나.
나는 탑을 가기로 했다.
내가 2픽이긴 해도 정글 안 주면 던진다는데 양보를 해줘야지.
약간 특이한 챔프를 하긴 할 거지만.
─2P, YOU TOP? REALLY?
─REAL.
혹시 잘못 픽한 건 아닌가 물어보는 팀원.
레알이다.
진심으로 탑세코를 택했다.
즐겜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절대 질려고 하는 픽은 아니다.
세코장인 그린와드.
그는 AD가 아닌 AP세코로 유명하다.
AP세코.
주류픽이 아니라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못할 건 없다.
─Welcome to Summoner's field.
탑AP세코는 스펠부터가 색다르다.
발화, 그리고 텔레포트.
대부분의 탑라이너가 발화와 점멸을 드는 시즌2에서, 텔레포트라는 이색적인 스펠을 사용하는 몇 안되는 챔피언.
정글을 할 때도 점멸이 필요없는 세코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미니언이 출발하였습니다!
상대라이너는 미니언을 따라 이대로 라인에 도착하겠지.
하지만 세코는 다르다.
정글몹부터 시작한다.
까꿍!
5개나 겹쳐 깔은 속임수 박수가 일제히 튀어나와 쌍둥이 골렘을 녹여버린다.
순수하게 주문력만 올린 AP세코이기에 더욱 강력!
깔끔하게 정글캠프 하나를 비우고 탑라인으로 올라간다.
탑라인에서 나를 맞이하는 적 라이너는 다리웁트.
라인전 강력하기로 손에 꼽는 탑 챔피언이다.
갱킹에 약하다는 단점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우리 정글러가 제 역할을 해줬을 때의 얘기고.
솔랭에서는, 특히나 양학을 할 때는 기대하지 않는 게 옳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패시브 덕분에 1레벨부터 강력함을 과시하는 다리웁트가 무서운 줄 모르고 나에게 덤벼온다.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겠지만.
사실 싸우게 되면 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하는 유저라도 1레벨에는 엄연히 챔프빨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다리웁트는 1레벨 세기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챔프다.
그렇다.
내가 진다는 건 1레벨일 때의 이야기다.
'일부러 싸워준 거지.'
나와 다리웁트가 열심히 치고박던 와중에.
서로 투닥거리던 미니언들이 하나하나 죽는다.
원래라면 다음 웨이브에 레벨업을 하는 게 당연지사.
그러나 쌍둥이 골렘을 먹고 온 내 세코는 미니언 몇 마리의 경험치를 먹는 것으로 2레벨이 찍힌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걸 당해주네..!'
사실 당할 수밖에 없다.
모르면 당해야지, 별 수 있나.
정정당당한 승부도 물론 멋있지만, 이렇게 꼼수로 이기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WHAT??????????
다리웁트 입장에서는 어이가 털릴 노릇.
분명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세코가 2레벨을 찍더니 역관광을 당해버렸다.
아차 싶어 점멸을 쓰고 도주하려 했지만 발화와 독단검에 의해 마무리.
용감무쌍한 다리웁트 덕분에 첫 귀환부터 아이템이 펑펑 나온다.
더군다나 내가 든 스펠은 텔레포트.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입한 다음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해 복귀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게 라인에 도착하니 설렁설렁 걸어온 다리웁트와는 벌써 2레벨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불쌍하게도 느껴지지만 봐주는 것은 없다.
슈루룩!
레벨과 더불어 아이템의 격차!
독단검 한 방에 다리웁트의 체력이 한 움큼 뜯겨 나간다.
미니언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게임하기 싫어질 지경!
하지만 진짜는 시작도 안했다.
AP세코에게 시동이 걸리면 탑은 티몽이 깔아놓는 지뢰밭, 그 이상이니까.
결국 다리웁트는 포션을 먹으며 경험치만 어찌저찌 받아먹는다.
이제 다리웁트가 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자신을 도와줄 정글러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랄까.
아군 정글러는 안 오고 적 정글만 왔다.
하아!
적팀의 정글러 리심.
다리웁트의 SOS신호를 받고 칼같이 달려왔다.
우리 정글러는 열심히 정글돌고 계신데!
나와 거리를 천천히 좁히더니 무려 음파를 맞히는데 성공하셨다.
정확히는 맞아줬다는 표현이 옳지만.
까꿍!
리심의 발차기가 나에게 닿기 직전.
박스가 튀어나오며 리심에게 공포를 건다.
W스킬, 속임수 박수를 선마한 덕에 어마어마한 데미지까지 선사한다.
그래도 숫자가 깡패일까.
다리웁트가 갱호응을 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깔려있다.
박스.
까꿍!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있는지.
박스의 공격을 받으며 어떻게든 내 지척까지 접근한다.
그런데.
내가 언제 박스 한두 개만 깔아놨다고 말이라도 했던가?
겹쳐 놓았던 2개의 박스가 동시에 튀어나오며 다리웁트를 점사한다.
레벨과 아이템의 격차.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나는 다리웁트.
─적을 처치했습니다.
믿었던 탑라이너 다리웁트의 전사.
사방에 깔린 박스밭에 안되겠다 싶은 리심이 도주를 선택한다.
안타깝게도 이미 박스에게 얻어 맞을 대로 맞아 깎여버린 체력.
은신 이동으로 따라가 가볍게 독단검을 던진다.
슈루룩!
독단검이 빨려 들어가며 리심을 실피까지 깎아놓는다.
죽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멈추지 않고 줄어드는 체력.
귀환버튼을 연타하며 탑에 갱킹을 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더블킬!
Unknown Error님이 학살 중입니다!
독단검과 발화는 세트와도 같다.
타겟팅으로 들어가며 확실하게 리심을 숨통을 끊어놓는다.
'쯔쯧, 음파맞혔다고 함부로 날아오면 안되는 법인데.'
브실골 티어의 리심은 음파를 맞히면 일단 날아가고 본다.
무시하는 발언같기는 해도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한국 뿐만이 아니라 만국공통의 진리.
다시 한 번 Q를 누르고 싶은 그 벗어날 수 없는 유혹에 저항해야 올라갈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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