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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천상계로
상혁씨와 함께 싸돌아다녔던 한인타운.
맛난 음식도 먹고, 장도 보고.
반드시 사기로 마음먹었던 라면은 당연히 구입했다.
그것도 컵라면이 아닌 봉지라면으로!
'전기 냄비라니 생각지도 못했네.'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국물 요리들이 으레 그렇듯 냄새가 퍼지니까.
인터넷 같은데서 종종 볼 수 있는 외국에서 청국장 끓였다가 옆집이 항의한 사연.
뭐, 사연이니 만큼 청국장 맛을 보고 친해졌다는 둥 이야기가 있지만.
호텔은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모두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다.
때문에 같이 구입한 것이 냄새 제거제.
물론 청국장처럼 특유의 향이 심한 식품은 경우가 아니겠지만, 라면정도의 냄새는 쉽게 잡아준다고 한다.
'라면 국물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지.'
나중 가선 선지국을 찾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어제 구입한 두 가지 장비 덕에 오늘 아침은 라면을 먹기로 정했다.
그것도 계란을 까넣어서.
어제 하도 걸어 다녔더니 다리에 알이 배겼다.
식당이 있는 2층으로 걸어 내려가기도 귀찮을 지경.
하루 정도는 게으름을 펴도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짜파게티 요리사는 아니더라도 라면 요리사 정도는 해줘야 한다.
'난 평일이나 주말이나 별 차이 없긴 하지만..'
별 다른 스케줄 없이 개인시간뿐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는 철저한 내 자유.
물론 평일에는 영어공부를 빡세게 하긴 한다.
하지만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느낌이 아닌 지라 평일이나 휴일이나 느낌은 비슷하다.
공부라기 보다는 순수하게 학문을 탑구한다는 느낌일까.
나에게 학구열따위 없다고 생각했는데 배울 수록 잘 늘어서 그런지 재미가 쏠쏠하다.
보글보글.
전기 냄비로 팔팔 끓여지는 라면.
아직 노른자가 깨지지 않은 달걀이 면 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크아!
군침 돌아라.
살짝 설익게 끓은 라면을 예쁘게 접시에 담아 책상 위로.
컴퓨터를 켜고 로드 오브 로드에 접속한다.
어제는 그렇다 쳐도 오늘은 뽕을 뽑아야 하니까.
오늘로서 드디어 진입한다.
천상계.
일반적인 기준으로 천상계의 시작은 당연 다이아부터.
로드 오브 로드의 수많은 티어들 중에서도 그 색깔이 남다른 티어대다.
물론 그 다이아 티어대 사이에서도 단계 별로 격이 나뉜다.
다이아 5티어부터 1티어까지.
한 단계의 MMR차이가 브론즈, 실버 등에 비해 2배 이상 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게 제법 버겁다.
그렇게 다이아1을 찍어도 천외천은 있는 법이다.
바로 마스터 티어.
하지만 그곳조차 정상이라 부르기엔 이르다.
그 마스터 티어의 고수들조차 우러러 보는 괴물들의 리그, 그랜드 마스터가 존재하기에.
현재 내 한국 계정은 마스터 티어다.
LCL대회 준비관계로 랭크게임을 돌리지 않아 마스터 티어에 머무르고 있다.
이 정도만 돼도 충분 고수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 내가 게임하는 곳은 북미서버.
한국서버에 비해 플레이어들의 격이 한 단계 이상은 높다.
물론 밑에 구간이야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하지만 다이아 이상, 천상계부터는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북미서버의 천상계에 도전하기 위한 첫 걸음.
어제 말카림으로 깔끔하게 승격전을 따냈다.
하지만 승격전에서는 말카림을 하지 않는다.
현재의 북미 메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어떤 방법이 좋을까.
그리고 북미 유저들의 심리를 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북미에 오기 전부터 정해두었다.
그것은 바로.
'운영으로 간다.'
기교가 아닌 머리 싸움으로 게임을 뒤집는다.
굳이 솔킬을 따지 않아도.
오히려 적팀보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도.
운영 단 하나로 모두가 포기한 게임을 바닥부터 뒤집어 버린다.
그것이 가능한 오직 하나의 챔피언.
'싱나드.'
파밍으로 캐리한다.
미니언만 먹어도 절로 캐리.
마법같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챔피언이다.
하나 단점이 있다면.
'리폿을 많이 받으면 곤란한데.'
게임사의 리폿시스템이 너무 대충이다.
딱히 욕도 문제를 저지른 게 아니라도 리폿 수만 보고 제재를 때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나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되는 노릇인데 안타까울 노릇.
싱나드란 챔프는 그 특성상 KDA, 킬 데스 어시스턴트 비율이 다소 문제가 있다.
게임을 이긴다 해도 KDA를 높이기가 힘들다.
그리고 특유의 플레이 방식이 더 해지면 심각한 수준까지 될 수 있어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 계정의 전적은 유용하다.
세코부터 시작해 별의 별 해괴한 챔프들을 다 했으니까!
조금 특이한 플레이를 해도 승률이 좋으니 믿고 따라와 주겠지.
─HEY?
싱나드를 픽하자 마자 이상반응.
팀원 한 명이 나를 부른다.
─FIRST TIME.. SINGNAD?
MMR이 높다 보니 대부분 다이아 티어를 만난다.
그것도 트롤 많기로 소문난 죽음의 구간 5티어.
피해의식 높기로도 유명하다.
아군이 처음하는 챔프를 하기라도 하면.
─OK. TWO TOP.
와, 그건 예상 못했는데.
투탑이 북미에도 있구나.
탑신병자들은 참 어딜 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실력으로 증명해주는 수밖에.
─SEARCH CP.GG.
팀원끼리 싸움이 날 때.
종결시킬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CP.GG 사이트의 전적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WOW, THIS GUY HAS 80% WINRATE!
─LOL. YOU MASTER?
─HMM.. OK.
쿨하기도 하셔라.
투탑을 하겠다는 선언을 깔끔하게 접어주신다.
당연 난 마스터 따위로 머물 사람이 아니지만 허락해준다면야 상관없다.
정당히 탑싱나드를 할 권리를 인수받았다.
'진심 빡겜 했으면 솔랭 승률 80% 정도야 가볍게 뛰어넘겠지만.'
이것으로 날뛸 명분은 얻었다.
눈치따위, 원래부터 보지 않는 나지만 싱나드는 조금 마음에 걸린다.
플레이 스타일이 남 보기에 약간 안 좋은 구석이 있으니까.
-Welcome to Summoner's field.
대부분의 챔피언은 초반 방어를 위해 인베를 보다가 미니언이 출발하면 같이 라인으로 나선다.
하지만 싱나드는 초반부터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몰래몰래 적팀에 침투.
적 탑라인의 2차 포탑 뒤까지 슬금슬금 돌아간다.
이것을 성공시키냐 못하냐로 초반 라인전 양상이 확 바뀐다.
'오버파밍을 한다.'
싱나드는 성장기대치도 높아 굳이 잘 크지 않더라도 한타에 들어가면 확실한 위력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
너프가 되지 않은 싱나드의 궁극기엔 CC기의 지속시간을 줄여주는 효과까지 존재한다.
어지간해서는 싱나드를 막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싱나드가 잘 쓰이지 않는 이유.
카운터 챔피언이 너무 많기에.
원거리 공격기가 하나도 없는 순수 근접탱커인 싱나드.
상대가 견제하면 반항도 못하고 맞기만 해야 한다.
라인전만으로도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갱이라도 오면 그대로 저세상 행.
후픽은 몰라도 선픽으로 하기엔 애매한 챔프다.
마침 상대 라이너는 티몽.
싱나드 잘 괴롭히기로는 손가락에 꼽히는 챔피언이다.
하지만 1레벨부터 오버파밍.
라인전을 해주지 않으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슈우우우.
조용히 뿜어져 나오는 독가스.
싱나드만의 특색이 있는 스킬이다.
지나간 길 위로 독가스를 남겨 닿는 적들은 중독시킨다.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나가 허락하는 한 독을 계속해서 켜놓을 수 있다는 것.
덕분에 스킬이 하나밖에 없는 1레벨임에도 오버파밍이 가능하다.
띠링! 띠링!
맹독에 충분히 적셔진 미니언들 하나하나가 골드로 화한다.
미니언들이 뒤를 따라오게 만들면서 빙그르르 돌다 보면 큰 체력 손실 없이 손쉽게 한 웨이브를 클리어 할 수 있다.
적팀의 입장에선 해괴망측한 노릇.
탑에서 라인전을 진행해야 할 싱나드가 2차 포탑 앞에서 미니언한테 맞으면서 파밍을 해댄다.
갱을 당하고 싶어 미친 것인지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테지만.
'티몽 상대로 라인전을 해줄 이유가 없지.'
조금만 크면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게 초반 라인전은 그토록 까탈스러울 수가 없다.
독침을 한 대 씩 뾱뾱 날려대는데 맞을때마다 스트레스 지수가 장난이 아니게 올라간다.
그런데다 이속까지 재빠르니 어떻게 잡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1렙부터 오버파밍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티몽의 입장에서는 포탑에 먹히는 CS를 포기할 수 없으니 날 따라오기도 애매하다.
싱나드를 따라가자니 미니언이 먹히고, 가만히 두자니 싱나드가 성장하고.
당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답답함!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세 번째 웨이브 타이밍에 오는 갱킹이다.
'슬슬 시작해야겠지.'
3분 경부터 적팀의 정글러 아모모가 레드를 먹은 후 나에게 따라붙기 시작할 거다.
어째서 저러는지는 몰라도 무리한 오버파밍을 한 탓에 체력마나가 완전히 동난 싱나드.
맛난 먹잇감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포탑에 처형 당했습니다.
3번째 웨이브를 깔끔하게 먹었으니 미련따위 없다.
아모모가 올라오기 전에 집에 간다.
포탑에 맞아서 강제로!
─WHY ARE YOU FEEDING?
─NOOB. OMG..
오 마이 갓.
믿었던 승률 80%의 부캐가 1렙부터 오버파밍을 하더니 포탑에 박고 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적팀에게 킬을 준 것도 아니고.
한 마디씩은 내뱉어도 게임을 진행하는 팀원들.
안타깝게도 진짜는 지금부터다.
'섞고 섞고 돌리고 스까고!
혼자서 게임을 비벼버린다.
우물로 강제귀환한 내가 구입한 아이템은 여제의 눈물방울.
스타트 아이템으로 마나 수정을 갔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상대가 대포 미니언 웨이브를 천천히 받아먹을 동안 여유있게 라인에 도착.
처음으로 내 라인전 상대라고 할 수 있는 티몽과 대면했다.
'이젠 내 세상이다.'
처음부터 만났으면 실력차고 나발이고 상성의 차이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점멸발화에 킬각을 내줄 수 있다.
티몽이라는 챔프가 트롤취급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쓰이는 이유 중 하나가 극초반 라인전의 강력함때문이니까.
하지만 아이템 차이가 나기 시작하면 상성이고 뭐고 없다.
슈우우우.
천천히 독가스를 뿜어 미니언을 적시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이템 차이가 나는 티몽의 입장에선 어떻게 한 번 귀환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데 저 놈의 싱나드는 계속해서 라인을 밀어대니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
이대로 서서히 티몽을 압박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싱나드는 그게 아니야.'
오로지 오버파밍.
티몽을 무시하고 1차 포탑을 넘어 미니언을 잡순다.
독가스를 지그재그로 뿌려 좋다고 따라오는 미니언들을 골드로 바꾼다.
내가 라인을 대놓고 넘어 파밍을 해도 티몽은 밀려오는 미니언들과 씨름하기 바쁘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갱킹.
이렇게 패기 플레이를 하다 보면 올 것이 오고 만다.
─아군이 위험신호를 보냄!
아군이 위험신호를 보냄!
적 정글 올라갔다고 세차게 빽핑을 찍어주는 아군.
하지만 싱나드에겐 후퇴란 선택지는 없다.
그것이 설사 죽음을 불러온다고 해도.
─적에게 당했습니다.
아직 제대로 코어템이 갖춰지지 않은 싱나드.
유령화를 키고 고군부투했지만 역시 안될 건 안된다.
티몽과 아모모가 점멸을 두 개나 쓰니 어쩔 수가 없다.
─TOP, JUNGLE NO FLASH!
갱킹을 당해놓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한 마디!
빽핑까지 찍어준 아군의 입장에선 골때리는 소리지만 분명한 이득이다.
그것도 개이득.
게임시간 6분.
나와 티몽의 CS차이는 벌써 스무 개에 가깝게 나고 있다.
타워를 끼고 어떻게든 막타를 쳐야 하는 티몽과 독가스를 묻히기만 하면 골드가 절로 수급되는 싱나드의 차이.
더군다나 나를 한 번 따보겠다고 탑과 정글이 점멸까지 써서 따라왔으니, 웨이브 하나가 타워에 고스란히 박혔음은 물론이다.
미니언의 공격에 깎이고 깎인 적 1차 포탑의 체력도 벌써 반피 이하.
스코어는 0:1
분명 적팀이 앞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문제 없다.
티몽도 아모모에게도.
이미 적팀에게는 모두 마법을 걸어놨으니까.
로드 오브 로드의 모든 챔피언 중 유일하게 데스가 많아질 수록 강해지는 챔피언.
싱나드가 펼치는 운영은 그 누구도 트릭을 알아챌 수 없는 기묘한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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