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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43화 (14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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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마술사

이번 주말부터 근무하기로 계약을 맺은 호텔.

강남호텔 5층의 복도에서 예은은 이마를 찡그렸다.

분명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가 연하게 남아 있었기에.

'감자탕?'

설마하는 생각이 먼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미국이니까.

'그래도 혹시….'

일단 5층 이상의 객실에는 기본적으로 한국인 손님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당연 예외정도는 있을 수 있다.

장기투숙 손님에 한해서.

사업 상의 문제때문에 오래 묵는 손님들이 간혹 계신다고 들었다.

그 손님이 객실에서 감자탕을 끓였을 수도.

'확인해 봐야겠네.'

5층 객실의 정리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다.

마스터키도 받았다.

물론 아무 객실에나 들어가면 안되고 청소 서비스를 신청한 일부 객실에 한해서지만.

'못 들어가면 보고해야 하려나.'

하는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도.

사무장에게 받은 차트에 의하면 감자탕 냄새의 근원지라 생각되는 객실은 청소 서비스를 신청한 곳이었다.

어쩌면.

'주말이라고 그냥 난장판 쳐놓고 나간 걸지도 모르겠네.'

오히려 그 편이면 한숨 놓는다.

아직 초짜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이곳은 외국인들도 많이 묵고 있는 호텔이니까.

같은 한국인이 망신살 뻗칠 일을 하면 자신 또한 얼굴 붉어진다.

예은은 순서를 무시하고 문제의 객실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이 라인에 주거하고 있는 손님 당장 밖으로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일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끼익.

문을 세 번 두들기고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마스터키를 사용했다.

아무리 입실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개인의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사무장에게 교육을 받은 부분이다.

"EXCUSE ME, SIR..?"

그래도 세상엔 만의 하나라는 게 있으니.

딱히 누가 있지 않더라도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끔찍하리라 여겼던 객실의 내부는.

'엉망진창.. 까진 아니네.'

밖으로 냄새가 퍼질 정도면 심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진 않았다.

깔끔, 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혼자 사는 방치고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솔직히 자신도 조금은 대충 살고 있는 편이니까.

'…. 집에 돌아가면 정돈하자.'

모르긴 몰라도 방 주인은 남자일 거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남성 취향의 못된 잡지.

그리고 옅게 남아 있는 체취만 맡아도 파악할 수 있다.

사람의 체취라는 게 본인은 몰라도 타인은 안다.

특히나 자신은 조금 민감하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봐서 그러나..'

예은은 어질러져 있는 식기.

감자탕을 끓였을 거라 생각되는 전기 냄비와 수저와 젓가락 등을 세면대로 옮기며 생각했다.

웬지 모르게 익숙한 향취.

맡아본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음식 냄새를 맡아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일 것이다.

괜히 고향 생각 안 나려고 미국의 입맛에 맞춰서 먹고 있는 것의 반작용일지도.

예은은 잡생각을 깔끔히 접어버리고 음식 찌꺼기를 청소용의 검은 봉투에 담아 밀봉한 후 식기 세척을 시작했다.

수도꼭지에서 세차게 나오는 물에 세제까지 사용해 헹궈 낸 식기는 깨끗.

다시 제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원래라면 이런 것까지 자신이 할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치우지 않는 이상 냄새는 계속해서 퍼질 테니까.

물론 자신이 조금 민감한 것도 사실이기에.

남들한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지 수도 있다.

하지만 5층은 자신이 당담하고 있는 구역이니만큼 클레임이 걸려올 만한 일은 내버려 둘 수 없다.

식기 설거지를 마친 예은은 방 내부의 정리를 시작했다.

이것이 본디 자신이 해야 할 일.

조금 늦어졌지만 착실하게 진행한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만큼 대충 하는 건 실례이기에.

'그 외엔 뭐.. 별 거 없네.'

식기만 조금 어지럽혀져 있었을 뿐이지.

쓰레기도 분류 별로 모아두고 방주인은 제법 정돈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앉아있는 먼지를 털고. 청소기로 바닥을 한 번 쓱 훑는 것 만으로 마무리.

너무 쉽게 끝나자 다른 데에 눈이 갔다.

'흐음, 역시 한국인 맞네.'

정말 우연찮게.

청소 겸 해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플라스틱통에 꽉 밀봉돼 있는 한국의 음식들.

감자탕도 그렇고 이 정도면 확인할 것도 없다.

근처가 한인타운인지라 외국인도 한국음식 사올 수 있는 노릇이라지만, 이렇게나 많이 구비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나이 드신 아저씬가..?'

개인 물품의 센스는 분명 자신과 비슷한 20대 라고 생각했는데.

음식 취향을 보니 영락없이 아저씨다.

아저씨가 아니면 곤란할 지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이 정도로 누르렁 입맛이라면 충격받아 쓰러져 버릴 지도 모른다.

개인 물품정도야 자식 뻘 되시는 분이 맞줘줬을 수도 있는 일.

분명 본인은 나이가 지긋하실 것이다.

청소가 끝난 손님 방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건 실례이기에.

예은은 누르렁 입맛의 손님이 묵고 있는 객실문을 닫고 나갔다.

'505호.'

미국에서 한국 사람 만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왜인지 신경 쓰인다.

누르렁 입맛의 손님.

어떤 사람인지 적어도 나이대 정도는 꼭 확인해보고 말리라.

부디 20대만은 아니길 빌며 예은은 청소를 해야 할 다음 객실로 이동했다.

.

.

.

* * *

루시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잠을 설친 건 아니었음에도 아침이 바빴다.

분명 준비가 완벽히 됐다고 생각했는데 나갈 때쯤 돼서야 이것저것 떠오른다.

가장 신경써야 했던 머리 손질.

어떻게 계속 만져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지체되었다.

미처 식기 정리할 짬도 남지 않았을 정도로.

일단은 냄새 제거제를 무진장 뿌리고 갔는데 괜찮으려나.

혹시라도 타 객실에서 클레임이 들어왔으면 얼굴 들고 다니기 민망하다.

들어가자마자 싹 다 정리해야지.

하고 들어간 객실.

끼익.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간 내 방은 깨끗했다.

무려 정리가 되어있었다.

'뭐지?'

우렁각시라도 왔다 간 건지.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금새 기억났다.

'아, 룸청소 서비스가 있었지.'

그러고 보면 저번 주에도 있었다.

그 때는 내가 방에 있었기에 직접 들어오라고 말까지 건넸는데.

하지만 지난주 내 방을 청소해주신 아주머니는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해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서 심하게 대충이었다.

돈내고 서비스를 받아야 하나.

어차피 내 돈은 아니니 상관없지만서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나 말고 다른 객실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던 건지.

이번 주부터 청소 아줌마가 바뀐 모양이다.

마음에 쏙 들 정도로 말끔하게 청소됐다.

심지어 내가 늦은 아침으로 감자탕을 먹었던 식기까지.

'미국 사람들 입장에선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감자탕을 먹었던 식기 음식물이 조금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것까지 정리해준 것 보면 배려심이 깊은 상냥한 사람이다.

분명 심성이 무척이나 고울 테지.

나한테는 군침도는 감자탕이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선 고역일 수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경쓰이는 사실이 있다.

아직 왔다 간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살짝이나마 좋은 향기가 남아 있다.

딱히 페브리즈의 냄새가 아닌 걸 보면 어쩌면 아줌마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은 개뿔이…. 내 팔자에 무슨.'

다시는 여자 생각따위 하지 않을 거다.

일에만 집중해야지.

내 인생 목표는 오늘부터 워커홀릭이다.

루시와의 만남.

역시나라면 역시나일까.

데이트라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애인이 있으면.. 말을.. 해줬어야지….'

루시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왔다.

같이 한인타운 구경을 하고 싶단다.

한국인이 워낙 많아 갈 엄두가 안 났는데 부탁한다고.

물론 친구를 데려온 건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현지인과 놀러 다닌다는 것 자체가 이색적인 체험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웃고 떠드는 과정에서 친구의 입을 통해 루시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 거다.

그리고 그 애인이 무려 여자란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은 동성애자.

왜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줘서 순진한 남자를 착각하게 만든 건지.

원망스럽다.

찔끔 나오는 눈물.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싸가지녀에게 한 번 된통 당한 덕에 멘탈이 단단해진 걸까.

'나는 그냥..'

여자를 사귈 운명이 아닌 갑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할 것 같다.

여러 모로 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더라도 기분이 꿀꿀한 것만은 어쩔 수 없다.

팍 가라앉은, 이 갑갑한 기분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안되겠다.

니들 다 죽었다 진짜.

'싸그리 죽여주마.'

컴퓨터를 켜고 로드 오브 로드에 접속한다.

양학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물론 랭크게임에서 나를 만나게 될 자들에그는 죄가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길가다 진흙 밟았다고 생각하렴.

아닌 밤중에 봉창 한 번 제대로 두들겨 줬다.

'역시 양학은 카정이지.'

20분은 커녕 10분만에 강제 오픈.

정글리심으로 카정을 성공시킨 나는 전 라인에 재앙을 흩뿌렸다.

그렇게 양학 한 판 시원하게 하자 답답했던 속이 대강 풀린다.

아무리 내가 조금 단순한 면이 있다고는 해도.

게임 좀 이겼다고 실실댈 만큼 바보는 아니지만 한 가지 더.

깨끗하게 정리된 가구들과 먼지 한 톨 없는 방안을 보고 있자니 그것 만으로도 꽤 나아졌다.

'다음 주에 팁을 따따불로 드려야겠군.'

미국에는 팁 문화가 있다.

식당에 가면 음식값의 10~20%정도를 웨이터에게 팁으로 줘야 한다.

월급에 더해서 받는다기 보단, 이 팁 자체가 월급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솔직히 상당히 귀찮긴 하다.

식당에 갈 때마다 눈치보고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

그래도 일단 이 나라의 문화인 만큼 내가 따진다고 뭐 되는 건 아니기에 내고 있다.

물론 청소 서비스도 팁을 낸다.

하지만 그 양이 많지는 않고 적당히.

거진 팁으로만 벌어먹고 사는 웨이터와는 다르다.

그런데 외출때문에 깜빡했으니 다음에 챙겨드려야 한다.

그것도 따따불로.

여기 미국은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느낌이 있는 나라다.

이 정도까지 세심하게 청소해줬으니 만큼 나로서도 높은 팁을 지불할 마음이 있다.

'만날 수 있으려나.'

청소 서비스는 주단위에 오니 딱히 당담자가 바뀐 게 아니라면 대면할 수 있으리라.

너무 지나치게 준다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적당한 선이라면.

앞으로도 신경 써달라는 의미에서 건네는 사소한 예의정도로 받아들여 줄 것이다.

샤워를 하고 돌아오니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

하루 종일 루시를 따라 돌아다녔던 탓에 몸이 뻐근하다.

이럴 때는 배를 조금 포만감있게 해주는 편이 좋다.

잠자리에 들기 전의 간단한 야식.

나는 냉장고에서 민트 초코우유와 고춧잎무침, 그리고 감자떡을 꺼냈다.

지난 주 상혁씨와 한인타운에 사온 음식들.

이게 또 조합이 괜찮다.

내가 식당에서 종종 해먹는 김치 치즈 탕수육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위력이다.

'달고 맵고 구수하고. 삼위일체라고 말할 수 있지.'

누군가 보기엔 특이한 취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인정은 한다.

하지만 먹어 보면 의외로 고개를 끄덕일 거다.

특이할 뿐이지 맛없는 건 절대 아니니까.

쩝쩝.

따끈하게 데운 감자떡에 매콤짭짤한 고춧잎을 올려서 한 입.

입가심으로 민트 초코우유를 마셔준다.

달달한 초코에 향긋하게 남는 민트의 향.

개운한 기분에 잠이 솔솔 올 것만 같다.

============================ 작품 후기 ============================

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 ㅠ.ㅠ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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