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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마술사
게임스코어 8:19.
무려 11킬 차이나 나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더군다나 게임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타워로 전진해오는 적팀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싱나드가 출동하면 어떨까?
─SING!
─NA!
─D!
한 마음으로 외친다.
누구 하나 앞서 나가는 사람 없이.
그래야만 합류해주기로 미리 말을 해놨으니까!
치이이잉..!
0킬 10데스의 싱나드.
정말 처참하기 그지없는 성적이다.
그런데 이 싱나드가 현재 소환자의 전장에 있는 10명의 플레이어 중 가장 성장을 잘 했다고 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진실이다.
레벨이 우월하게 높은 물론이고 처치한 미니언 수의 앞자리가 다르다.
그렇게나 죽어 놓고 대체 어떻게 그런 파밍력을.
의문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일단 봐야할 건 한타.
그리고 싱나드의 템이다.
억겁의 스태프.
대악마의 한숨.
나일아이의 수정창.
3코어가 갖춰진 싱나드는 악마와도 다름없다.
아무런 가감없이 말 그대로의 의미.
유령화까지 켠 미친 소독차가 달려간다.
쏟아지는 적팀의 포화를 몸으로 받아낸다.
순수한 체력만 4천에 가까운 싱나드.
그런데 궁극기에 의해 방어력과 마법저항력까지 오르니 단단하기 그지없다.
그 뿐인가.
두두두두!
어떻게든 나를 멈추기 위해 이동방해의 효과가 있는 스킬들이 날아온다.
효과시간이 짧지 않은 CC기임에도 금새금새 풀린다.
싱나드의 궁극기와 아테나의 신발이 중첩된 효과.
그야말로 막을 수 없는 폭주기관차다.
그대로 달려가서 애씨를 확!
아이스께끼 해버린다.
으하하하!
뒤로 넘기기.
막대한 주문력을 보유한 싱나드의 뒤집기는 애씨의 반피를 확 까버린다.
애씨는 어떻게 살아보기 위해서 독구름의 늪에서 발버둥치지만 헛수고다.
<곰돌아!>
아군 미드라이너 배티.
땅딸막한 꼬맹이 흉칙한 곰아저씨를 소환해, 애씨의 머리 위를 그대로 내려 찍는다.
애씨는 반항도 못 해보고 사망.
이것이 한타에서 싱나드가 보여주는 무서움이다.
그 무서움이 만약 입감이 안된다면 단순하고 명쾌하게 알려줄 수 있다.
궁극기와 유령화까지 킨 싱나드는 자신을 향하는 모든 CC기를 금새 풀어버리고 지척까지 도달한다.
싱나드의 돌격을 저지하지 못했다면 끝.
방금 전의 애씨처럼 적팀으로 토스되고 그대로 죽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싱나드는 계속해서 붙어서 자신들을 따라올 테니까.
적팀의 모두가 전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
한타에서의 싱나드를 일컫는 말임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치이이잉..!
저 눈엣가시같은 싱나드.
남은 4명의 적팀이 협공을 하고 두들긴다.
네 놈만은 잡고 말리라.
점멸까지 쓰며 나에게 따라붙는다.
그 위기를 대악마의 한숨, 보호막을 발현시켜 버텨낸다.
그렇게 되면.
으하하하!
나에게 달라붙은 발렐리아를 뒤로 넘겨버렸다.
아군 4명이 벌떼같이 달려 들어 금새 먹어치운다.
아비규환의 한타.
한 순간 만들어진 틈으로 냅다 뛰었다.
내 독이 묻어버린 적팀은 쫓아오지 못한다.
적팀의 스킬은 다 빠진 상황.
믿을 거라고는 두 발 뿐인데 내 독구름에 중독되자 쿰척쿰척.
몸이 둔해진다.
나일아이의 수정창, 모든 스킬에 둔화효과를 추가해주는 아이템.
이 아이템을 갖추는 순간 2% 부족했던 싱나드의 CC기는 완벽히 만족된다.
한 번이라도 독이 묻어버리면 결코 도망갈 수가 없다.
적팀의 협공을 받고 가까스로 버텨낸 보람이 있었을까.
독에 중독돼 느려진 나머지 3명의 적을 아군이 하나하나 마무리한다.
이래서 부모님이 싱나드 쫓아가지 말라고 하는 건데.
─마무리..!
8:19였던 게임스코어는 단숨에 13:19로.
단순 숫자로만 보기에는 아직 멀은 것처럼도 느껴지지만, 이미 게임은 터졌다고 말할 수 있다.
적팀의 누구도 싱나드를 막을 수가 없는 이상 한타는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
치이이잉..!
독가스를 뿜어대며 질주하는 소독차.
애씨의 궁극기부터 시작해 온갖 스킬들이 날아오지만 무시하고 들이박는다.
으하하하!
광적으로 자신만 보는 싱나드에 기겁해서 분명 점멸을 사용했음에도 애씨는 뒤로 날라가 버렸다.
싱나드의 넘기기가 사정거리가 짧을지 언정, 판정 하나는 기가 막힌다.
점멸을 쓸 거면 미리 썼어야지.
붙잡히고 난 뒤에는 돌이킬 수가 없다.
─WHAT THE….
가장 중요한 원딜이 물린 이상 한타는 볼 것도 없이 정리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타워 안 쪽까지 막힘없이 들어가 마지막 적까지 마무리.
미니언 웨이브와 함께 물밀 듯 들어가 싸그리 엎어버린다.
─승리!
차마 서렌은 치지 못했다.
적팀의 입장에선 어이가 털릴 노릇.
싱나드를 계속해서 죽였는데 오히려 아군 탑라이너가 성장이 밀린다.
그리고 한타에 들어가지 10데스한 싱나드를 막을 수가 없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이야 말로 싱나드가 펼치는 마술, 그 자체다.
─I HAVE SEEN SINGNAD IN REDIT. IS YOU?
─ALSO. IS HE THE FUCKING MAGICIAN?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직역은 되는데 뭔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직 영어가 부족한 걸까.
아니면 저 사람들 머리가 부족한 걸까.
그냥 어이없이 게임을 졌다고 역정을 내는 것일 확률이 높다.
깊게 생각해줄 이유가 있을까 싶어 대전기록창을 나왔지만 하나의 단어가 신경쓰이게 머리에 남는다.
'래딧?'
들어본 적은 있다.
아니,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리라.
실제로 이용해본 적은 없지만 잉벤을 하다보면 가끔 눈에 걸린다.
해외의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래딧에 대해서.
'혹시.'
혹시 모른다.
설마가 사람잡는 법이니까.
누군가 내 캐리력있는 플레이에 심취해 찬양글을 올렸을 지도.
'후후, 내가 실력이 좀 되긴 하지.'
내 망상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한 번쯤 가볼 여지는 있다.
영어를 모를 때의 나로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꽤나 자신감이 붙었다.
영어권의 팬사이트따위 금새 정복해주마.
'우클릭, 한국어로 번역.'
우두루급 태세전환!
어쩔 수가 없다.
일상회화 위주로 배운 나는 단어가 조금 빈약한 게 사실이니까.
페이지 자체를 읽는 것은 무리다.
'뭐 별 일 아니구만.'
일단 Unknown Error로 검색을 해보니 잡히는 글은 두어 개.
하나는 내용없이 Unknown Error가 누구냐고 묻는 글이고.
다른 하나는 삭제된 글이라 나온다.
결국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삭제된 글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내가 확인할 길은 없으니까.
그냥 아이디 신기해서 누군가 글을 올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큰 의미 가지지 않기로 하자.
'일단 오늘은 게임에 전념하기로 했으니까.'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이다.
쓸데없는 일에 할애할 짬따위 나지 않는다.
평일에 하지 못하는 만큼 주말에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그래도 싱나드는 너무 많이 했지.'
다이아 4티어에 안착할 때까지 싱나드만 플레이했다.
마술사 컨셉이 제법 재미지긴 했지만 물릴 때도 됐다.
슬슬 다음 카드를 꺼낼 시기다.
강제캐리의 컨셉보다는 서서히 메타 적응하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으니 꺼낼 챔프가 한정된다.
재미없이 쇈같은 극운영형 챔프를 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새로운 시도도 나쁘지 않다.
라인을 바꿔서.
그것도 게임에서 비중이 낮다고 할 수 있는 서포터를 해보기로 했다.
'서폿은 간만이네.'
내가 결코 서포터를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다른 라인에 비해 캐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하지 않았던 거지.
하지만 메타를 익힐 겸이라면 서포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터다.
쿠웅!
북미서버든 한국서버든 이 큐잡히는 소리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래도 난 한 번만 놀라면 되니 괜찮다.
픽창의 팀원들은 앞으로 두 번 더 놀라야 할 테니까.
─SUP.
서포터를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
딱 한 마디 친 채팅에 아군의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5픽 걸렸으니 자진해서 서폿 가주겠다는데 어째서?
─5P GO TOP. I CAN SUP, PLZ….
─WHAT DO YOU WANT? JG? TOP?
─KEEP SEKO? OR SINGNAD?
천상계쯤 되면 아군의 전적을 한 번 쭉 검색해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도 그럴 게 서로 간에 라인을 맞춰야 하니까.
픽순이 낮다고 못하는 라인에 가는 경우는 천상계쯤 되면 잘 없다.
아랫픽이 확실하게 더 잘한다면 양보해주는 경우야 흔한 일이다.
그 정도만 돼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데.
완전 양학 수준으로 밟고 올라온 사람이 팀에 있다니.
제발 좀 탑이나 정글 좀 가달라고 싹싹 빌 수밖에.
세코 승률 90%.
귤선장 승률 70%.
싱나드 승률 85%.
모스트 챔프들이 트롤느낌나는 게 제정신인 사람은 아닌 성도 싶지만 승률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일단 현지인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서폿을 간다니.
그냥 귤선장 하듯이 즐겜하겠다는 소리로 밖엔 들리지가 않을 터다.
─I'M MASTER SUP. IT'S REAL.
이거레알이다.
서포터도 마스터급으로 할 줄 아는 것 뿐이지,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서포터라는 라인을 가본 기억부터 감감하지만.
책임도 못질 말이라도 뒷감당이 없다면 떠들고 보는 법이다.
안되면 마는 거고.
─OK. I'LL BELIEVE….
착한 팀원들이 믿어주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도 있는 법이지만 착하게 살면 언젠가는 분명히 복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복받을 날이 어쩌면 이 판일지도.
내가 고르는 서포터는 후픽을 하는 게 제법 중요하다.
5픽에 걸린 것이 오히려 괜찮은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게 갱킹에 조금 약한 면모를 보이니까.
다행히도 적팀의 정글러는 아모모.
6렙 이후의 갱킹은 매섭지만 상관없다.
그 전에 터트려 버리면 되는 일이니.
─HEY, 5P. YOU SUP. ISN'T IT?
─WHAT THE.. AH... OK.
꽤나 고민을 하신 모양이지만 알아서 납득해 버렸다.
세코에 귤선장에 싱나드.
별의 별 챔프하시는 분이 딜서폿쯤이야.
오히려 양반이지 생각하는 걸 수도.
그래도 솔직히 미달리나 럭키처럼 되도 않는 서폿도 아닌데.
'지금 시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긴 하네.'
꼬마 마법사 배티.
특징은 애지중지 끌고 다니는 곰돌이 인형을 큼지막하게 소환해 상대를 내리찍는 것.
패시브로 스턴까지 걸면 원콤 데미지가 어마어마해 어지간한 물몸 챔피언들은 녹아버린다.
데미지 하나는 알아주지만 그럼에도 잘 쓰이지 않는 이유.
사거리가 짧아도 너무 짧다.
궁극기를 감안해도 원딜러보다 조금 긴 정도다.
심지어 이동스킬도 없어 뚜벅뚜벅 걸어만 다녀야 한다.
아무리 쎄도 안 맞아주면 말짱 헛 것.
챔프자체가 너무 애매하게 설계했다.
미드라이너로 쓰기엔 단점이 지나치게 확연하다.
그런 비주류 챔피언을 서포터로 꺼냈다.
팀원들 입장에선 한숨이 나오기 그지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단 부캐인 것 같고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니 최소한 발목은 붙잡지 않겠지.
딱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다르다.
배티는 서포터들 중에서도 그 위치를 달리한다.
전무후무한 캐리형 서포터.
서포터도 주도적으로 캐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챔피언이 바로 배티다.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서포터도 캐리를 해낼 수 있다.
팀원이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이번 게임에서 그 사실을 증명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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