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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세요
챵! 챵! 타앙!
평일이 끝나고 주말이 찾아왔건만.
어제에 이어서 나는 오늘도 소환자의 전장에서 구르고 있다.
내 목표는 로드 오브 로드의 최상위 티어인 그랜드 마스터.
한동안은 집중해서 랭크를 올려야만 한다.
롤드컵이 개막하기까지 이제 2주가 조금 남지 않았다.
그 전까지 빠듯이 달려 놓는다.
나를 가볍게 본 핫숏의 콧대를 눌러버리기 위해서.
'두 달이라고 했나.'
CLC의 숙소 앞에서 내려, 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핫숏의 모습.
머릿속 한 구석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깜짝 놀래켜주마.
'북미의 메타는 슬슬 적응했지'
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한타다.
서로가 무난하게 가다가 한타를 꽝 붙는 식으로 승패가 정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시즌2가 물론 한타 위주로 게임이 풀리는 경우가 대다수긴 하지만, 북미는 그러한 성향이 조금 심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타의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높으되, 운영 쪽은 조금 서투르다.
특히나 혼자 돌출되어 행동하는 유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을 못잡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
'그렇다고 스플릿이 답이라는 건 아니지만.'
솔랭에서 하는 스플릿이란 전략은 의도치 않게 악수로 작용되는 경우가 많다.
스플릿을 하는 이유 자체가 자신이 어떻게 게임을 비벼보기 위함이 아니다.
아군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지.
예를 들자면 나에게 두 명이 왔을 때 칼같이 용을 먹어라.
혹은 다른 라인을 압박해라.
이 말인즉, 아군 또한 스플릿 푸쉬에 익숙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원할 때 원하는 플레이를 정확히 해주지 않는다면 스플릿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이는 점수대가 올라갈수록 확연하다.
낮은 구간에서야 억지로 핑을 찍어서 듣게 할 수 있지만.
혹은 개서스를 했었을 때처럼 개어거지로 혼자서 다 죽이는 각도 만들 수 있지만.
점수대가 올라갈수록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그러한 게 이곳은 북미서버니까.
플레이어의 수준이 동티어대의 한국보다 높기까지 하다.
'그래도 아직은 멀었지.'
이번 판을 이기면 다이아2에 승급.
아무리 북미라고 한들, 겨우 다이아2티어에서 버벅일 내가 아니다.
물론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게 된다면 강제캐리를 해내는 게 힘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두 가지 결론을 냈다.
만족스러운 해답.
하지만 그 전에.
이번 게임부터 확실히 이겨 깔끔하게 다이아2에 안착해야만 한다.
타앙!
'4레벨.'
찍히는 순간, 배인은 하나의 선택지가 생긴다.
딜교환에서의 우선권.
일반적으로 라인전 최약체로 불리는 배인이라고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라인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단이.
데구르!
앞을 향해 구른다.
서폿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크레이브즈에게 딜교환을 걸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라인전 최약체, 배인주제에.
하지만 다 계산이 되어 있다.
챵!
굴러서 평타.
굴러서 도달한 위치가 상당히 절묘하다.
나는 닿지만 크브는 닿지 않는 사거리를 계산했다.
고작 사거리 25의 차이.
반걸음도 되지 않는다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다음 평타의 쿨타임을 돌리는.
터엉!
그브가 나에게 총구를 돌리자마자 판결이 나가고, 동시에 탄환 하나가 뒤따른다.
평E평.
오직 지금 시대의 배인만이 할 수 있는 콤보.
이 딜교환의 사기성은 차후 너프의 대상이 될 정도다.
타앙!
크브가 밀어짐과 동시에 은탄의 3중첩.
고정데미지의 효과를 지닌 3타가 터진다.
더군다나 판결의 효과로 밀어나버린 크브는 어떻게 반항도 못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딜교환.
그 대가는 판결과 구르기에 드는 마나.
그리고 플레이어의 판단력이다.
섣부른 타이밍에 딜교환을 걸었다간 역효과.
몸이 종이짝같은 배인이 서포터와 적원딜의 합공을 맞는다면 그냥 찢어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딛고 계속해서 성공만 시킨다면.
-와; 저도 원딜유저인데 배인으로 크브 어떻게 이겨요?
-딜교환을 이기고 있네.. 무슨 짓을 한 겨?
의문을 표하는 팀원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이럴 때 준비한 대사.
당당히 읊어준다.
-내 가위는 주먹을 이긴다.
상대 원딜러는 다소 너프를 먹었다지만 아직까지도 대회의 주류 원딜러 자리를 꿰차고 있는 크레이브즈다.
라인전만 따진다면 헤이클린 다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도.
그런 크브를 상대로 라인전 최약체 배인이 딜교환을 압승한다.
이것이 바로 판결 딜교환의 진수.
괜히 차후에 너프 조정되는 부분이 아니다.
제대로 쓸 줄만 안다면 상성을 극복해버리니까.
그래도.
'답답한데.'
하지만 그 뿐이다.
적이 작정하고 딜교환을 하지 않고 라인만 밀어댄다면 방법이 없다.
크브와 배인의 라인푸쉬력차이는 명명백백.
마나포션을 빨면서 라인을 쭉쭉 푸쉬해댄다면 배인은 그저 타워를 끼고 미니언을 받아먹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서로 성장구도가 된다면 웃어주는 것은 배인이다.
그도 그럴 게 한타에서 배인이 크브보다 좋다는 것은 언급할 걸도 없는 사실이니까.
성장기대치 또한 배인이 훨씬 높으니 만큼,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그렇게 된다.
그럼에도 답답하다.
게임의 구도 자체가.
'결국 파밍밖에 할 게 없네.'
차라리 헤이클린은 괜찮다.
내가 어떻게 각을 잘 노려서 따고 죽는 각을 만들 수 있으니.
하지만 크브라던지, 미스터 포텐이라던지.
1:1이 지독하게 강력한 챔프들을 상대로는 감히 시도할 수도 없다.
잘못하면 벽꿍을 맞히고 싸운다 해도 질 수가 있을 정도.
이러한 파밍구도를 풀어줄 수 있는 건 오직 서포터와 정글러 뿐.
내가 괜히 서포터와 원딜의 라인전 비중이 7:3 그 이상이라 한 게 아니다.
아무리 기교를 부려 크브상대로 딜교환을 이긴다고 한들, 그것까지가 한계다.
기회를 킬로 바꾸기 위해서는 다른 팀원이 움직여줘야 한다.
깝깝하게 흘러가는 게임.
결국 라인전에서 만들어낸 이득은 하나도 없다.
서로 똑같이 파밍만 했을 뿐이다.
한타에서 조금 더 잘하면 되는 일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솔랭이라는 게 꼭 원하는 바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크브보다 한타에서의 딜링을 더욱 잘할 수록 주목받게 된다.
적팀의 관심이 나에게 쏠린다.
온갖 CC기.
어지간한 논타겟은 피할 수 있는 배인이라 해도 상대하기 벅찬 상성들이 있다.
나이즈나 말화이트처럼 배인을 꼼짝 못하게 해버리는 챔프들.
이처럼 타겟팅에 특화된 챔프들이 강제로 나를 물어버리면 혼자서는 반항할 껀덕지가 없다.
물론 적팀이 나에게 과도한 포커싱을 쏟을 때 아군이 대신 잘해준다면 상관없다.
내가 묶여 있는 만큼 그들은 자유롭다는 셈이니.
그런데 그 아군이 못해버리는 경우가 솔랭에서는 왕왕 생긴다.
이번 판이 그러하다.
크브가 한타에서 한 짓이라곤 겨우 QR.
스킬딜만 던졌을 뿐인데 나머지 적팀이 전설을 찍으면서 휘몰아친다.
그리고 아군은 내가 죽을 때까지 멍때리고 있다가 쓸려 죽는다.
─아군이 찬성 4표 반대 1표로 항복하였습니다!
극후반을 가보자고 해도 지들끼리 멘탈이 터져 서렌을 쳐버리는 아군.
답답하기 그지없는 놈들을 만났다.
그럼에도 캐리는 해야 한다.
내 승률은 높다고 하지만.
한 판, 한 판에서 쓸데없이 발목이 붙잡혀버리면 시간이 배로 걸리고 만다.
원딜캐리라는 건 결국 믿을만한 아군이 한 명은 있어야 마음놓고 성장해 딜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솔랭에서 그 믿을 만한 아군을 기대하기 힘든 노릇이다.
그렇다고.
'팀운탓따위 할 게 못되지.'
챔프를 바꾼다.
오직 나만이 가능한 장점.
시기적절하게 색다른 챔피언들을 사용한다.
그것도 강제캐리가 가능한.
라인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딜러.
딱 하나 있다.
지금 시기에는 있지만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는 챔프.
솔로랭크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리는 야생마가.
.
.
.
* * *
강남호텔에서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예은은, 이번 주말의 첫 출근을 하자마자 한숨을 푹 셨다.
호텔 청소라고 해봤자 별 것 없을 줄 알았는데 객실이 어쩜 이리 많은지.
그리고 객실 간의 거리는 어찌나 먼지.
지난 주에는 다리에 알이 다 배겼을 정도였다.
그래도 힘들었던 만큼이나 보람과 재미가 있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예은은 스스로를 다잡았다.
"EXCUSE ME. SIR."
방에 손님이 계신 경우에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린다.
손님이 문을 열고 나오면 인사를 하고 방 내부를 청소.
여기까지의 작업은 힘들고 어색하지만 보람이 하나.
청소가 완료될 때 쯤에 손님이 팁을 챙겨주신다.
듣기로는 고작해야 1달러 정도라고 들었지만 자신이 받은 양은 그보다 많다.
'남자들이야 다 뻔하지.'
여자 앞에서 씀씀이가 적어 보이기 싫어한다.
이런 점은 한국이나 미국이 마찬가지.
덕분에 팁으로 얻는 소득이 꽤나 쏠쏠하다.
딱히 돈을 보고 하는 일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일.
조금 재미가 들렸을 정도다.
'505호의 손님이 그 누르렁이었나.'
504호에서 청소를 마치고 나온 예은은 다음 객실의 문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지난 주에 감자탕을 치우지 않고 나간 손님의 객실.
다행히도 오늘은 일을 벌이진 않으셨는지 별다른 이상징조는 없다.
없다고 해도 신경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무슨 냉장고가 동네 슈퍼마켓도 아니고.'
미국에 사는 주제에 별의 별 걸 다 갖춰놨더라.
반찬가게라도 차리려는지 고춧잎무침에 깻잎절임에 별의 별 게 다 있었다.
게다가 감자떡이라던지, 흑임자 인절미라던지.
한국에서도 먹을 기회가 적은, 굳이 사서 먹기보단 선물받는 경우에나 볼 법한 간식들까지.
고작 음식 취향으로 사람에게 흥미가 생기기는 처음이다.
그런 주제에.
'롤을 해?'
키보드 위를 쓱 닦았을 때 우연찮게 봐버렸다.
본체의 전원이 켜져 있었는지 키보드가 살짝 눌리자 모니터에 불이 들어왔다.
있을 수 있는 일이게 별로 신경쓰진 않았지만, 모니터를 닦다가 바탕화면에 로드 오브 로드가 깔려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자신의 입장에선 어쭈구리싶은 일.
음식 취향만 봐도 40대, 혹은 그 이상일까.
나이 드신 아저씨가 취미삼아 롤을 한다면 기껏해야 브론즈나 실버티어.
마스터티어에 빛나는 자신이 보기엔 재미진 노릇이다.
'롤을 하는 아저씨라니, 상상이 안 가네.'
오랜만에 롤을 하는 사람을 보니 조금 필요 이상으로 관심이 간다.
미국에 도착한 이후로 로드 오브 로드를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물론 L.A에 어학연수를 온 동기들 중 있긴 했다.
롤얘기를 열렬히 떠드는 애들이.
하지만 당연하게도 전부 남자다.
한국에서는 어디가서 롤한다고 말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당연히 없었는데.
로드 오브 로드를 안 한지 하도 오래되어서인지 귀가 쫑긋했다.
그러나 남자들 사이에 섞여서 롤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아.'
안 그래도 자신은 여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별로 좋지 않다.
남자에 흥미없고 공부하러 온 거라고 딱 잘라 이야기를 했음에도 옆에서 보기엔 그렇지가 않나 보다.
정작 자신은 남자들에게 관심을 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에도.
쓸데없는 이야기로 물고 늘어지는 애들이 있다.
공부하러 온 주제에 연애에 뭐 이리 관심이 많은지.
조금 튄다고 할 수 있는 외모때문에 원하지도 않게 이목을 모으는 경우가 어렸을 때부터 잦았다.
몇 명을 제외하면 서먹해져 버린 어학연수의 동기들.
초기에는 호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소 오해가 쌓여버렸다.
너무 공부에만 집중을 해버린 업보일까.
여행이라던지, 행사에 끼지 않다보니 그 의도를 달리 해석한 이들이 생겼다.
'나는 비슷한 말도 꺼낸 적이 없는데.'
하지도 않았던 말이나 생각.
와전되어 사실인 것 마냥 퍼졌던 경우가 최근에 두 번 있었다.
일단 해명은 했지만 기분이 상하는 일.
그리고 그런 소문을 퍼트렸을 애들과는 가깝게 지내기 싫다.
오히려 더욱 공부에 집중할 계기가 됐다.
지금은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 뿐.
그런 와중에 로드 오브 로드를 하는 별난 아저씨를 보니 약간이지만 흥미가 갔다.
딩동!
만약 인상 푸근한 아저씨라면.
지나가듯 롤이야기를 꺼내보는 것도 괜찮을 지도.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예은은 505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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