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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세요
나의 방을 말끔하게 청소해주시고 가셨던 아주머니.
정말 우연찮다.
어떻게 니가 지금 여기 있는지.
너도 궁금하겠지만 내가 더 궁금하다.
"저기요."
어색한 공기가 어깨를 타고 흐른다.
나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회피하는 죄인.
내 앞에 앉아서 눈을 피하고 있는 호텔의 직원분에게,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대답해주시죠, 레. 베. 카씨."
"자, 잠깐만."
어째선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신다.
정중하게 성함으로 불러드렸는데 무엇이 문제인 걸까.
"레베카는 그만둬.. 레베카는…."
대체 무엇이?
가슴 왼 편에 떡 하니 붙어 있는 이름표.
부르라고 붙어있는 명함아닌가.
사람을 사람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일 뿐인데 대체 뭐가 불만이신지.
"아는 사람한테 영어이름으로 불리는 건 부끄럽다고…."
"아는 사람..?"
너 참 말 잘했다.
아는 사람 말이지, 그래 아는 사람.
"그 아는 사람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셨죠?"
최대한 점잖은 어조로 타박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속이 부글부글.
확! 터져버릴 것 같으니까.
내 눈 앞에 있는 사람.
LCL에서 나에게 빅엿을 제대로 먹이신 분이시니까.
"사정이 있긴 했는데.. 이런 건 변명이겠지. 혹시 때려서 풀린다면…. 때릴.. 래?"
눈을 꼭 감고 뺨을 내밀어온다.
기가 차는 노릇.
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분고분하게 나오는 상대를 때린다고 풀릴 속이 아니다.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르던 나는 당장의 화를 삭혔다.
'후우.'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예은을 만나게 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귓방망이부터 날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나다보니 누그러진 걸까.
난리도 멍석깔아주면 못한다고 정작 닥쳐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뻔뻔하게라도 나왔다면 소리라도 버럭 질렀을 텐데.
그랬으면 당장은 화가 폭발하더라도 며칠 지나고 나면 속이 제법 가라앉았을 텐데.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받겠다는 식으로 나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오히려 모르겠다.
아주 잠깐, 생각의 시간을 거친 내가 도달한 답은.
"됐다, 난 다 잊었으니 가봐라. 그리고 가능하면 여기에 얼굴비추지 말고."
여기서 할 말이 더 있겠나.
내가 얘를 때려서 속이 풀릴 것도 아니니 만큼 손찌검을 할 이유는 없다.
이대로 얼굴을 보지 않는 편이 속 편하지.
훠이 훠이.
예은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괜시리 얼굴 불거질 일 만들 바에야, 여기서 깔끔하게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낫다.
그거면 됐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될까?"
말을 내뱉고, 떨리는 듯한 눈망울을 치켜 뜨며 내 눈치를 살핀다.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 하다.
하지만 뭐를?
이제 와서 용서라도 해달라는 말인가.
용서를 해서 회복될 신뢰라면 애초에 머리를 싸매지도 않았다.
어차피 서로가 남남.
쓸데없는 감정싸움 1초라도 덜 하기 위해 내린 판단이다.
그런데 대체 왜.
'아니, 얘가 왜 이래?'
더욱 더 가관.
고개를 숙여온다.
정자세로 하리까지 굽힌다.
그 자존심 드센 예은이, 아니 리뮤가.
그렇다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라."
성격 드럽기로 소문난 네가 사과를 해올 정도라면 빈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게임에서만 5년 넘게.
네가 모르는 세월까지 함께 지내왔으니까.
그렇다 해도.
그저 미안한 마음을 덜기 위해서라면 서로가 구차해질 뿐이다.
이대로 헤어지는 편이 서로에게 뒷끝이 덜 남는다.
그럼에도 만약.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데?"
뚜벅뚜벅.
다가온다.
결코 돌리지 않겠다는냥, 부담스럽게 마주쳐오는 눈.
굽혀서 안된다면 대쉬라니.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예은의 가느다란 손가락끝이 뻗어져 온다.
아니, 잠깐.
이 녀석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적반하장 협박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보호본능에 의해 반쯤 감기는 눈.
때문에 생긴 순간의 망설임.
대처가 늦고 말았다.
"한 번만 믿어주지 않을래? 용서해준다면 뭐든지 할께."
뻗었던 손.
내 손을 감싸 안아 쥐어온다.
쉽게 뿌리치지 못할 정도로 꼬옥.
가시내의 힘이 만나 싶을 정도로 억척스럽다.
자신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듯.
도망가지 않겠다고 시위하는냥,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본다.
이러한 면이 내가 알고 있는 리뮤같다고 한다면 덧없는 미련이 남은 것일까.
이대로 보내버린다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미련이 남을 것 같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악감정, 미움, 분노.
분명 남아있지만 그 만큼이나 악연이 짙다.
미운 정이 쌓여있음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뭐든지 한다니.
남자와 여자.
단 둘이 있는 방 안에서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얘는 무슨 의미인지 알고서 하는 말일까 몰라.
까득!
내 손을 감싸 쥔 예은의 손이 굳세게 조여온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모를 리는 없다.
뚫어질 듯한 눈으로 강렬하게 나를 쳐다본다.
헛소리하면 때릴 거라는 듯 사뭇 진지한 태도.
장난으로도 이상한 소리는 꺼내지 못하겠다.
'참….'
얼굴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실소가 터졌다.
이런 면이 또 확실하게 리뮤다.
녀석과 나는 정말 많이도 싸웠지만, 많이도 화해했다.
그 때마다 어떻게 화해했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
어찌저찌 어느 순간 다시 말을 섞게 되더라.
그 만큼이나 녀석과 멀어지게 되었을 땐 두려웠다.
그러한 공포.
이미 한 번 경험했다.
그 상실감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도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회귀를 하게 되었고.
우연의 우연이 겹쳐 이 자리에 마주보게 됐다.
그것도 게임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서.
한 번.
딱 한 번이라면 믿어줘도 되는 것일까.
대답할 생각이 없었던 문제임에도.
'정말 끈덕지네.'
눈앞의 여자는 기어코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듯, 두 눈으로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 정도까지 용서를 구한다면 나도 악귀나찰이 아니니.
한 대 때리고 용서해줬을 지도 모른다.
만약 남자였다면.
하지만 아무리 내가 착한 편이 아니라고는 해도 여성에게 손찌검을 할 만큼 모나진 않다.
저런 얼굴에 기스라도 났다간 마음이 편치 못하기도 하고.
'적당히 예쁘던가.'
성격은 모난 주제에 외관만큼은 어떻게 흠잡을 곳이 없다.
이렇게 가까운 데서 볼 기회는 없었는데.
눈을 돌려서야 안되겠다는 생각에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지긋이 관찰했다.
예쁘기는 참 더럽게도 예쁘다.
성격이 싸가지 없는 것과 반비례할 정도로.
조깅길에서 처음.
만났었을 때부터 얼굴이 괜찮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치장을 한 적도 없었던데다, 애초에 얼굴을 자세히 보여준 적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보고 있자니 확실히 반반하긴 하다.
'조금 못된 생각이 나는데.'
태도를 참작해 용서받을 기회는 줄 것이다.
하지만 고얀 심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이든 하겠다고까지 그녀 자신이 얘기했는데 받아주는 게 인지상정.
그녀의 각오를 시험해주기로 했다.
.
.
.
* * *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내가 아닌 예은의 시간.
일단 호텔의 직원이니 만큼 일을 하고 와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묻는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다시 올 때 반드시 문을 열어 달라고 확답을 받을 때까지 가지 않겠다고 뻐팅기는 예은때문에 골머리.
게임에서와는 느낌은 다르지만 고집하나 만큼은 똑같다.
정말로 기가 세다.
'우연도 무슨 이런 우연이 있는지.'
어쩌다가 여기 호텔에서 일을 하게 됐는지 이야기는 들었다.
강남호텔.
이곳이 지인이 운영이라는 곳이라나.
경험삼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었댄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어째서 LCL, 마지막 순간에 연락을 끊게 되었는지를.
분명 사정이 있을 거라는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격이 안 좋을지 언정, 못 지킬 말 내뱉는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변명을 듣는 것은 용서할 마음이 든 이후로 하고 싶었다.
그것이 최대한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선.
그럼에도 막상 이야기가 흘러가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예은의 입에서 나온 사정은 흔히 말하는 학업의 문제.
어떻게 거부하고 싶었지만 집안사정상 어쩔 수가 없었다며 털어놓았다.
당연히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래서야 너도 나도 불편할 것 같았다며 자신감없게 눈을 내렸던 그녀.
'이해는 되지만.'
예은과 리뮤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
그냥 대놓고 들이밀었다면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급박한 대회의 와중이었던 만큼 부담을 주기 싫었다는 속사정.
듣고 나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내가 쉽사리 용서해줄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심부름을 시켰다.
호텔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인타운 들러서 된장찌개를 사오라고.
얼마나 맛있고, 갓 끊인 것처럼 따끈하게 유지를 해오나.
그 정성에 따라 네 마음을 평가해주겠다고도 덧붙였다.
'나쁘진 않네.'
삐져가지고 대충 사오겠거니 했는데.
꽤 제대로 맛있는 집에서 사온 것 같다.
직원복에서 사복차림을 갈아입은 예은이 내 눈치를 보고 있지만.
그 모습이 꽤 어울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봐주는 건 없다.
"애미야, 국이 짜다."
"나도 맛봤지만 짜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물 좀 부을까..요?"
그리고 한동안은 존댓말을 쓰라고도 명령했다.
찬 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나이를 들어보니 역시나 나보다 한 살 어리다.
"나 빠른인데..요?"
어허!
요즘 세상에 빠른이 어딨나, 빠른이.
생일 조금 빠르다고 쳐도 나보다 늦게 태어난 것은 하늘과 땅이 증명하는 사실.
연장자에게 대우를 갖춰라.
"알겠씀..........니닷."
말꼬리를 바들바들.
지금의 상황이 어진간히 분한지 손끝을 떨고 있다.
심지어 반대 쪽 손은 손아귀에 힘까지 줬다.
뒷통수를 한 대 후려치기라도 할 기세.
솔직히 살짝 쫄리긴 하지만, 내가 당한 것을 되돌려 주기엔 아직 이르다.
따르릉!
이번엔 또 어떻게 엿을 먹일까.
구상하던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나에게 전화를 할 사람이 있나?
애초에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보이스톡?'
잘 이용하지 않는 기능이다보니 생각을 못했다.
지금 상황에 받아야 하나.
약간 망설였지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오랜만입니다. 시현씨. 잘 지내시고 계시나요?
반가운 목소리다.
씨지맥.
만호씨가 상당히 좋은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와줬다.
"야, 일로 와바."
핸드폰에 잠깐 입을 떼고 조용히 부른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인다.
도리도리.
예은이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젓는다.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손바닥을 내저어온다.
어허,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구하는 게 순리지.
"잠깐만요, 얘가 말을 안 들어먹네."
만호씨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재교육시킨다.
여기 호텔 자판기에서 애비앙인가 하는 생수가 그렇게나 목에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더라.
혹시 뚜껑 따고 침뱉어오면 알지?
"정확히 3분 준다. 시작!"
나를 한 번 흘겨보더니, 문을 박차고 부리나케 뛰어 간다.
참고로 음료수 자판기는 1층에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 엘리베이터가 하도 느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온다면 늦고 말 거다.
내가 정한 3분의 리미트에.
정확히 3분, 그리고 수 초의 시간이 흐르자 객실문이 열린다.
헥헥 대며 애비앙을 뽑아온 예은.
솔직히 5초 정도 늦긴 했는데 특별히 한 번만 봐준다.
"자, 여기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예은에게 핸드폰을 건네줬다.
굴욕의 시간.
그래도 내가 귀신은 아니다.
심부름꾼은 노릇은 딱 오늘 하루만.
다음날부턴 잊어주기로 했다.
굉장히 말을 꺼내기 힘든 듯 침을 꿀꺽 삼킨 다음에서야 죄송합니다.
한 마디 내뱉는다.
긴장을 했는지 혀를 씹은 게 우습긴 했지만 차마 웃음을 터트리진 못했다.
태클을 걸면 물어 뜯기라도 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볼 일이 끝난 핸드폰을 건네왔으니.
"제가 지금 자암깐 볼 일 있어서. 다음에 전화를 드려도 될까요?"
다시 핸드폰을 받아든 나는 지금의 흥미로운 시간을 조금 더 즐기기 위해.
씨지맥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따르릉!
한 번 더 핸드폰이 울려온다.
오늘따라 갑자기 뭐 이리 나 찾는 사람이 많은지.
이번에도 보이스톡이었다.
심지어 전화를 건 사람은.
'타임끝?'
씨지맥과 마찬가지로 LCL에서의 피해자 신분.
어째선지 오늘 참 요상한 날이다.
시기적절하게 재밌는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어쩌냐. 너한테 볼 일 있는 사람이 한 분 더 계신 것 같은데."
반쯤 썩은 표정이 돼버린 예은의 동여맨 머리를 톡톡.
나는 친절하게 수화기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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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작가가 추천 부탁드려요!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작품 공지사항에 히로인 짤 2부 버젼으로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