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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54화 (15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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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세요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성깔 드세기로 알아주는 예은이 내 앞에서 무릎 꿇어 앉은 채 봉사를 하고 있다.

배덕감이 드는 상황이라지만 망설임도, 일말의 주저도 없이 내뱉어준다.

"옳지, 그 부분을 좀 더 세게."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예은에게 충고했다.

손아귀에 힘을 주지 않으면 빨리 끝나지 않을 거라고.

그런 나의 말에 아직 기가 죽지 않은 듯 예은이 대꾸해온다.

"말 안 해도 알거든..요!"

처음에는 고분고분나오더니만 갈 수록 가관이다.

착실하게 내가 하라는 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입은 살아나는 듯 하다.

예은은 아주 건실하게 내 객실의 바닥을 닦고 있다.

그러나 내 사전에 윤기가 나지 않는 바닥은 걸레질을 한 바닥이 아니다.

구석구석까지 박박 닦지 않는다면 집으로 보내주지 않는다.

'크크, 만족스럽도다.'

세상천지 그 어떤 것도 이만한 풍취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리라.

그 기센 예은이 바닥에 꿇어 앉아 걸레질하는 모습을 눈 아래로 보고 있자니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런데다 걸레질을 시킨 나는 의자에 앉아 감상만 하고 있다.

뿌듯한 우월감이 내 몸을 지배한다.

"아, 거기 아주머니! 좀 더 세게 박박박 문질러서 닦으라고요, 때가 안 지워지잖아 때가."

"아주머..니?!"

째릿하게 흘겨보는 눈동자.

감히 마주칠 수는 없는 위압감이 풍겨온다.

눈길로 사람을 죽일 셈인가.

그래도 이건 조금 말실수 한 걸지도.

찔끔 찔리는 상황에서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예은은 묵묵히 바닥만을 닦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긴 한가 보네.'

아까는 그냥 흐름 탄 거지만.

솔직히 몇 번 조금 심술을 담아서 찔러봤었다.

그때마다 부들부들 재밌는 반응을 보여줬지만 참기는 하더라.

이쯤 되니 오히려 내가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바래는 줄게."

"됐거든..요."

바닥 청소를 다 마치니 해가 지고 어두컴컴하다.

슬슬 보내주기로 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싫은냥 표정을 짓는 예은이었지만 거부하는 기색까진 없었다.

물론 거부한다고 해도 강제로 할 예정이었지만.

이 근처는 밤이 찾아오면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무리 택시를 탄다고는 해도, 생판 외지인 미국에서 여자 혼자 내보내서야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

"걱정돼서 그래, 걱정돼서."

"그러시던가..요.".

그리고 이제 존댓말은 됐다고 했는데.

입을 뾰루퉁 내밀고 있는 게 완전 애다 애.

그런 고집이 너같다면 너같긴 하지만.

택시를 타고 15분이 약간 안되게 갔을까.

예은은 생각보다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를 주거하고 있다는 기숙사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마지막까지 내민 입을 풀지 않고 한 마디도 안 하는 게 후폭풍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뭐.

내가 아는 리뮤는 딱히 뒤끝있는 성격은 아니니 괜찮을 터다.

아마도 말이지만.

예은을 바래준 나는 택시를 잡고 강남호텔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의 15분이 안되는 잠깐의 시간.

생각에 잠긴 나는 떠올렸다.

'지구촌이라고 하더니. 참, 세상바닥이라는 게 좁아.'

사실 L.A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시점에서, 한인타운 근처에 살게 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 넓고 넓은 미국에서 하필 L.A.

우연히 마주쳐서 화해를 하게 됐다는 사실이.

이런 게 혹시 운명이 아닐까.

'뭐, 친구로서 말이지만.'

조금 티격태격대는 일이 많기는 했어도.

내 얼마 안되는 소중한 친구다.

지난 일, 분명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정을 하나하나 들어보니 분명 내 잘못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내 잘못에서 시작된 일일지도 모른다.

학업 바쁜 사람한테 게임하자고 조른 꼴이니.

애초부터 말해줬다면 좋았겠지만, 서로의 사정이 얽히고 얽히다보니 꼬인 실타래처럼 풀기 힘든 상황이었다.

어쩌면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진실.

오늘의 우연 덕에 사정을 알게 돼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다지 가깝게 지내 온 단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한 마디 전하고 싶은 기분이다.

이것이 우연이든 운명이든 간에.

기회를 내려줘 감사하다고 말이다.

.

.

.

* * *

우연에 가까웠던 어제의 만남은 그동안 단 하나.

답답하게 막혀있던 마음속 통로 하나를 뻥 뚫어 헤쳐줬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혼자 조촐한 술파티를 벌였다.

두 가지 의미를 담아서.

하나는 오랜 친구와의 화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이다가 따로 없었지.'

꼴깍꼴깍 어찌나 잘 넘어가던지 맥주가 아니라 톡톡 탄산 터지는 사이단줄 알았다.

주량이 많은 편도 아닌데 밤중에 혼자 4캔을 깠을 정도.

아침에 일어나니 숙취때문에 머리가 조금 쑤시긴 했지만 그마저도 기분이 좋다.

어제는 조금 주인님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예은이 내 하녀.

나는 못된 시엄마가 되어 괴롭혀줬다.

사정을 듣고 나니 약간 미안한 감정도 들었지만 결국은.

'크캬캬! 흑역사 한 페이지 진하게 그어줬도다.'

어제의 일을 예은 앞에서 다시 언급한다면 그 녀석의 성격상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하지만 회상하고 싶지 않을 과거 하나를 잡게 된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일.

물론 쌓였던 감정은 깨끗이 털어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평범한 친구라면 절교를 해도 진작에 했을 일을 많이도 겪어온 사이다.

오해때문에 생긴 일정도야 별 것도 아닐 지도.

나도 녀석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다

지난 일은 어제로서 끝낸다.

나 스스로 솔직히 쪼잔한 사람인 건 인정하지만, 이미 끝난 일을 시시콜콜 걸고 넘어지는 놈은 아니다.

그래서야 화해의 의미가 없으니까.

LCL에서의 일은 이제 용서해준다.

그걸로 예은과의 일은 일단락됐다지만 문제가 하나.

내가 어제 분명 술을 마시고 무어라 전화를 건 것 같다.

씨지맥, 그리고 타임끝까지.

어제는 거진 개그요소가 돼버리긴 했지만 일단 둘다 나에게 용건이 있어 전화를 건 것이다.

그래서 어제 내가 다시 연락을 했다.

하필이면 술을 마셨을 때.

'술김에 뭐라뭐라 씨부린 것 같기도 한데.'

혀가 꼬부라진 상황에서 전화를 걸고 떠들어댔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는 상황!

혹시 꿈을 꾼 건 아닐까, 보이스톡 내역을 확인해봤지만 정말로 전화를 했었다.

내가 무슨 술주정을 했었는지 확인하기 두려울 지경.

'뭐, 아쉬운 소리는 안 했겠지? 나를 믿는다..'

숙취가 남아있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르며 골똘히 기억을 되짚는다.

파편처럼 떠오르는 기억.

하나하나 이어붙어 정리한다.

내가 씨지맥과 타임맥에게 떠들었던 내용은.

'말카림에 대해서.. 였나?'

일단 씨지맥.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씨지맥이 말카림에 대해 물어왔고 나는 거기에 답했었다.

몇 가지 더 술김에 말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타임끝.

방송 조언을 해달라고 했었나.

이것도 뭐라뭐라 대답은 했었고 문제는 그 후.

나 혼자 신나서 한 30분쯤 떠든 것 같다.

통화 시간과 비교하니 얼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그래도 큰 실수는 저지르지.. 아마도 않았겠지?'

가슴이 약간 철렁 가라앉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와 그들의 사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라는 게 술 좀 들어가서 한 이야기는 다 잊어주는 게 관례아닌가.

혼자서 자문자답, 납득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이제 와서 고민한다고 어떻게 될 이야기도 아니니까.

'해장부터 하자.'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라면.

혹시 몰라 사놓은 콩나물 한 뭉치가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파까지는 썰어넣을 환경은 안되지만 이 정도면 충분.

전기냄비에 뚜껑을 꼭 닫고 끓이니 그럭저럭 해장이 된다.

입가심으로는 민트 초코우유 한 팩.

'상큼하구만.'

향긋한 민트향으로 시작해 달달한 초코우유가 입안 가득 퍼진다.

오늘 하루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오늘의 일과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어제 하지 못했던 만큼 보충을 해야겠지.'

결국.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탓에 본업인 랭크점수는 올리지 못했다.

하려고 했던 도라이븐의 연습까지도.

그래도 대충 느낌은 기억한 것 같으니 바로 랭크게임에서 천천히 시험해보면 되겠지.

로드 오브 오브에 접속한 나는 곧바로 랭크게임의 큐를 돌렸다.

.

.

.

* * *

'무슨 의미일까.'

어젯밤.

올마스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은 빨라도 다음 날 닿을 줄 알았는데.

애인분과 꽤 일찍 헤어지신 모양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시현씨는 어째선지 음성으로도 뚜렷이 알 수 있을 만큼 술에 취한 상태였다.

혹시 애인과 트러블이 있어 술을 마시셨나.

생각도 들었지만 딱히 기분이 안 좋아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쾌활.

말투가 상당히 유쾌한 게 기분좋아보였다.

덕분에 미주알고주알 내 질문에 대해 대답해주었기에 나로서는 나쁠 게 없는 일.

발음이 새기는 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큰 상관은 없었다.

문제는.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지만.'

그 내용이 난해하다.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아도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딱히 그 속담이 맞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분명 의미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와따리가따리? 슝? 무슨 말을 전하고 싶으셨던 걸까….'

대답은 정말 열심히 해줬는데 단어 간에 연결이 안된다.

언뜻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지만.

정작 실마리가 될 것 같은 사실은 아직도 모르겠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전 까지 생각을 해봤음에도.

'그냥 술취해서 헛소리하신 건 아닐까?'

아니다.

가르침을 받는 입장에서 의심을 해서는 아니될 노릇.

더군다나 정말 중요한 정보라면 오히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입밖으로 나올 확률이 높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내내 고민을 해보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뿐이라고 스스로 믿자.

<어? 어? 말이야 어? 어? 그 있잖아 그거, 그거 그냥 슝슝해서 슝! 와따리가따리하다가 그냥 텔타고 파악! 박아버리면 다 죽는다고. 뭔 말인지 감이 와? 어? 요지는 슝이야 슈웅~!>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술을 잡숴도 제대로 드신 모양.

혀가 꼬부라져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반복을 했다는 건 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의미.

'단서는 텔레포트, 그리고 와따리가따리와 슈웅.'

말카림에게 텔레포트가 어울린다는 말일까.

그건 그렇다쳐도 와따리가따리와 슈웅은 대체.

'더 고민을 하자.'

이 알지 못할 단어들에 대해서 연관점을 찾아보자.

무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니 만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면 분명 결과를 만들 수 있을 터.

어쩌면 나를 믿었기에 일부러 난해하게 말씀을 한 걸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은 그렇게 믿자고 씨지맥은 결론지었다.

.

.

.

* * *

어제의 일을 회상하던 타임끝은 고개를 저었다.

'난 절대 꽐라가 될 때까지 술퍼마시지 말아야지.'

올마스터형은 평소엔 굉장히 반듯하고 착실해 보이는 사람인데.

술을 퍼마시고 전화를 걸었던 어제, 나를 붙잡고 1시간 가까이 똑같은 말만 반복해댔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화를 하면서도 술을 마셨는지.

어느샌가 통화가 끊기고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

'나름 해답은 됐지만.'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듣는 게 고역이긴 했어도 대답은 되었다.

자신이 최근 고민하던 문제들.

파프리카TV에서 어떻게 하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지표가 되는 말들을 던져주었다.

'캠방과 컨셉이라.'

개인방송을 한다는 건 아직까지 익숙지 않다.

그래도 일단 BJ로서 얼굴을 공개하는 건 기본이라는 인간조아라형의 조언때문에 캠은 켜놨지만.

사실 제대로 시청자와 소통을 하려고 했던 적은 없다.

그도 그럴 게, 자신만 얼굴을 공개하고 이야기하는 셈이니 쑥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BJ는 뻔뻔해야 한다는 올마스터형의 말.

그리고 기껏 외모가 괜찮으면 그 방향을 살리라고도 조언했다.

어디 나갈 때 꾸미고 나가는 것처럼 방송을 하라고.

어차피 실력으로 방송을 하는데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대꾸했더니.

BJ는 닥치고 얼굴에 컨셉이라며, 알겠다고 해도 똑같은 말을 열두 번째 하고 나서야 멈춰주었다.

그리고 컨셉.

'다이아 양학이라.. 할 수 있으려나.'

본캐에서 재밌는 랭크게임을 하는 건 한계가 있고, 양학을 해봤자 구별되지 않는다면.

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살리라는 올마스터형의 조언.

다이아 양학.

그것도 여러 챔프, 듣도 보도 족보도 없는 챔프들로 날뗘봐라.

네 장기가 아니냐며 찔러댔다.

정확히 열세 번씩이나!

'올마스터형의 말대로 해보자.'

술에 취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을지언정 구구절절 옳은 말이 맞다.

크게 참고가 되었다.

마음먹은 타임끝은 곧바로, 당장 오늘부터 시도해보기로 결정내렸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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