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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공연
최근, 래딧에 불어닥친 하나의 카더라 통신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그 카더라 통신이라 함은 로드 오브 로드의 팬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소문.
사실 뚜렷한 증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이 한 번 의심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이것저것 살이 붙여지기 마련이다.
계기가 된 것은 한 배인장인의 영상.
어떤 래딧 유저가 이 정도로 배인을 잘하는 유저는 프로게이머를 제외하곤 처음봤다며.
CP.GG에 자동 저장되는 천상계 영상들을 편집해 래딧에 올린 게 시작이었다.
이렇게 팬심으로 영상이 만들어지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잘해도 너무 잘한다는 사실.
영상에 나온 배인유저의 플레이는 하나하나가 과연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믿겨지지 않았다.
<혹시 트리플리프트 아니야?>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심증은 굵어만 갔다.
심증만으로 사람을 의심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 맞지만.
적어도 영상을 본 유저 중에서는 감히 반박하는 이, 아무도 없었다.
└저 상황에서 딜을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에 가까움. 최소 프로게이머.
└제가 트리플리프트 선수 데뷔하기 전부터 팬인데 보증합니다. 100% 트리플리프트임.
└윗분들 너무 설레발 치는데~ LUL.
딱히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설레발이라 생각하는 것은 과연 옳은 의견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플레이의 수준이 너무 지나치게 뛰어나다.
애초에 말이 안된다.
한타에서 어떻게 혼자 세 명을 상대할 수 있는지.
달려오는 위웍과 네네톤.
탱커 두 명을 장난감마냥 가지고 노는 것으로 시작해 미드라이너까지.
점멸과 궁극기를 쓰며 한 순간에 접근한 아링의 모든 스킬을 피해낸데다 역으로 잡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잘 큰 것도 아니고 평범, 이하인 상황에서.
그것도 20분이 안 된 중반시간대.
2코어조차 나오지 않은 타이밍이다.
아무리 원딜러가 AD캐리라 불린다 할 지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후반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코어아이템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넣을 수 있는 딜량에 한계가 뚜렷하다.
그것은 아무리 고정데미지로 유명한 배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인 일.
안 그래도 비주류의 챔프인데다 사거리가 지극히 짧은 배인이다.
그러한 배인으로 중반한타에서 딜을 넣어보겠다고 나대는 것은 자살행위.
범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미는 꼴이다.
만약 조용히 뒤에서 딜을 넣었은 거라면 모른다.
주도적으로 앞에 나가 시선을 끌고,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공격케 했다.
믿어지지 않는 일.
결정적으로.
사실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행동까지 해버렸다.
나 죽여달라고 시위하는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앞구르기를?
└배인 앞구르기 한 시점에서 바로 영상 뒤로 넘겼는데 왜 한타가 이겨 있음? 신기해서 5번이나 돌려봤네.
└나도 지금 10번째 보는 중.. 이거 보고 연습하면 따라할 수 있을까?
└난 팀이 배인픽하면 무조건 미드박는데. 어차피 저 정도로 잘하는 사람은 우리 티어에 없어요.
트롤 유저의 자기합리화.
긍정은 않겠지만 사실 공감은 가는 소리다.
배인은 명실상부 최약, 그리고 최악의 원딜챔프니까.
3대장이라 불리는 현재의 주류 원딜러들.
크레이브즈, 헤이클린, 이즈레알의 한 끼 식사거리도 안되는 게 배인이다.
그들을 상대로 배인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라인전이 덜 터지냐, 많이 터지냐.
이 정도로 라인전이 극악하다고 불리는 게 배인이라는 챔프.
팀이 배인을 픽하면 닷지가 나거나 트롤픽이 박히는 경우가 허다한 이유기도 하다.
그것은 당연 천상계라 할 지라도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점수대가 높을 수록 승부에 대한 욕망은 강렬하니까.
상대팀에 배인이 잡기 좋은 탱커가 많다고 해도.
차라리 꼬그모같은 픽을 하고 말지, 굳이 하위호환인 배인을 플레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생존기가 약간, 꼬그모보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라인전을 털리게 되면 한타를 진행할 힘 또한 나오지 않는 법이다.
완벽한 정론.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 트리플리프트라 오해를 받고 있는 유저는 라인전 또한 잘한다.
어느 정도냐면 서포터의 도움없이 헤이클린을 솔킬따고 크브를 상대로 딜교환을 이길 정도.
누군가 만약, 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냈다면 당신 미친 거 아니냐고 욕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판결로 딜교환? 이론상으로는 좋을 것 같은데..
└방금 전에 하다가 크브 앞대쉬에 QR맞고 공중분해된 1인.
한타에서부터 라인전까지.
특히나 논타겟을 피하는 능력이 말이 안된다.
혹시 잘된 게임만 간추려서 영상을 만든 게 아니냐.
나도 흥한 판에서는 저 정도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의문은 나왔고, 때문에 확인이 들어간 사실이지만 해당 유저가 배인을 플레이한 판수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밝혀진 하나의 진실.
└Unknown Error 저 사람 저번에 어그로 끌던 사람인데.
└무슨 마술사라고 하지 않았나?
└싱나드 장인? 그랬던 걸로 기억함.
전적과 승률을 보자면 확실히 부캐.
그런데 챔프폭이 너무 아리송하다.
아무리 트리플리프트가 부캐를 키운다고 해도 싱나드, 세코, 귤선장 같은 트롤 챔프들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챔프폭이 저렇게 넓을 수는 없다.
하느이 글에 달린 댓글이 세 자리 수가 넘을 지경까지 토론이 이어진 결과.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견은 하나로 굳혀졌다.
└잘나가는 프로가 부캐키우나 보네.
└누굴까? 저렇게 챔프랑 라인폭이 넓은 프로도 있나? 게다가 원딜은 트리플리프트급으로 잘하는데 말이 돼?
└내가 보기엔 게임단의 공용계정 같다. 그럴 듯한 소리 아님?
프로게이머의 부캐.
그것도 CLC 소속의 공용계정일 확률이 높다는 의견.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는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크게 불거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어째선지.
해당 유저는 갑자기 토요일 하루 랭크게임을 돌리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라고 꼬리가 잡히자 계정을 포기한 것일까.
더 이상 떠들 이야깃거리가 생기지 않자, 자연스럽게 래딧의 화두는 다시 롤드컵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설사 CLC의 공용계정이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관점.
진짜 중요한 건 CLC가 롤드컵에서 거둘 성적이지, 확실한 증거도 없는 일로 북미의 자랑인 CLC가 신경쓸 일 만들지 말라는 소리들이 뒤늦게서야 쏟아졌다.
대부분의 래딧 유저들이 적어도 롤드컵에서만큼은 CLC의 팬이었기에, 옳은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관심을 끄기로 했다.
그렇게 Unknown Error, 알 수 없는 오류라는 의미의 아이디를 가진 유저의 행보는 찰나의 신기루처럼 한 순간에 사람들의 관심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적어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막을 내렸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
.
.
* * *
<이리 와! 같이 놀아보자고.>
도라이븐은 대사부터가 가히 도발적인 챔프다.
챔프의 컨셉부터가 사람의 복장을 터지게 만든다.
파앙!
시원하게 튕겨오는 회전도끼.
적 원딜러 이즈레알의 머리통 후려찍고 돌아온다.
당연 도라이븐은 딱히 사거리가 길진 않다.
원딜러의 평균 사거리에 정확히 해당.
때문에 이즈레알도 나에게 반격을 하기는 하지만.
'데미지의 스케일부터가 다르지.'
도끼를 던지고 다시 받아야 한다는 요상한 매커니즘.
제대로 지킬 수만 있다면 평타 한 방, 한 방의 격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1레벨부터 평타의 데미지가 1.5배.
마스터시 근 곱절에 가까워진다.
거진 치명타에 가깝다고 보면 될 정도.
그리고 도라이븐의 사기성은 이 뿐만이 아니다.
내 회전도끼에 맞은 이즈레알의 체력이 조금씩 줄어든다.
출혈의 효과가 있는 도라이븐의 패시브.
상대의 체력을 4초에 걸쳐 조금씩 깎아낸다.
서로 정확히 평타 한 대를 교환했음에도, 실질적인 데미지 차이는 두 배.
이것이 1레벨 도라이븐이 딜교환에서 가지는 장점이다.
고작 1레벨의 장점.
도라이븐이 과연 어떤 챔프인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파앙!
파앙!
미니언에 던진 회전도끼들이 튕기고 튕겨 되돌아온다.
던지고 받고, 던지고 받고.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은 원딜에게는 눈돌아가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익숙해진다면 호흡이 보이기 마련.
'슬슬 도끼돌리는 건 적응했고.'
한 마리만 더 막타를 치면 2레벨.
찍히는 순간 망설임없이 달려든다.
적 원딜러 이즈레알에게 사정없이.
미니언이 있건 없건 무시하고 도끼부터 내려찍는다.
파앙!
첫 번째 도끼가 찍히는 순간.
이즈레알은 최소 점멸 예약이다.
아무리 비전점프라는 사기에 가까운 이동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한 번 발동이 걸린 도라이븐은 막을 수가 없다.
두 번째로 찍은 W스킬, 광란의 피바다가 발동되자 유령화 이상으로 늘어나는 순간 이속.
유지되는 시간은 고작 1.5초뿐이라지만.
파앙!
다시 한 번 발동되는 광란의 피바다.
도끼를 받아들면 쿨타임이 리셋된다.
그렇게 또다시 증가되는 이동속도, 거기에 공격속도까지.
터엉!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서면 적팀의 서포터 모르피나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속박을 던지고 발화까지 건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맞아준다.
그리고 클린즈를 사용해 풀어낸다.
모든 까지는 아니여도, 대부분의 CC기를 풀어낼 수 있는 스펠 클린즈.
실드나 힐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일반적으로 많이 드는 스펠은 아니지만 도라이븐에게는 필수 스펠이다.
도라이븐이 CC기를 맞아 도끼를 놓치게 되면 딜로스가 유발되기에.
이처럼 클린즈를 들고 맞자마자 바로 풀어내는 것이 정석.
아니, 맞지도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이즈레알을 향해 도끼를 내려 찍는다.
파앙!
도끼가 떨어지고 다시 받아들고 광란의 피바다를 발동한다.
누가 보면 완전 미친 것마냥 하는 딜교환.
아군 서포터 한나는 내 돌발적인 행동에 어찌할 줄 모르며 그저 실드만을 걸어주고 방관한다.
애초부터 호응따위 기대도 안 했지만.
파앙!
이즈레알에게 정확히 네 번 찍힌 도끼.
원딜러의 평타가 초반에 주는 데미지는 사실 그다지 크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막대한 스킬데미지를 자랑하는 서포터가 강력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네 방이 전부 회전도끼다.
이즈레알의 평타보다 근 2배는 강력한.
결국.
말도 안되게 틀어박히는 데미지에 깜짝놀라 도주를 선택하는 이즈레알.
비전에 점멸에 힐까지 쓸 수 있는 생존기를 전부 사용했다.
하지만 점멸이 있는 건 나 또한 마찬가지.
아직 한 발 남았다.
파앙!
점멸 평타.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아군 서포터가 발화를 걸어준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억지로 딜을 우겨 넣은 거니.
그럼에도 충분하다.
로드 오브 로드에 존재하는 원딜러 중.
유일하게 서포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라인전을 풀어 헤쳐나갈 수 있는 챔피언.
존재한다면 도라이븐 뿐이다.
도라이븐의 패시브.
4초에 걸쳐 체력을 깎아내는 출혈의 효과를 가졌다.
지나치게 강력해 차후 아예 삭제가 돼버릴 정도.
이 패시브가 싱나드이 독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크나 큰 착각이다.
무려 중첩이 된다.
이즈레알은 회전도끼를 다섯 대나 맞았으니 5중첩.
발화의 데미지를 가볍게 상회할 정도로 빠르게 체력이 빠진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대놓고 들어오는 도라이븐을 상대로 딜교환조차 하지 못하고 꽁지가 빠지게 타워까지 내뺐건만.
이즈리얼은 출혈에 의해 피가 주륵주륵 빠지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나는, 무리한 딜교환의 댓가로 점멸이 빠지긴 했지만.
퍼블을 먹은데다 죽지도 않았다.
파앙!
파앙!
튕겨져 나오는 도끼를 받아들며 라인을 민다.
반사적으로 실드 한 번주고 얼떨결에 어시를 챙긴 한나.
기분좋게 귀환해 아이템을 사지만.
다시 라인에 도착하는 순간 살벌한 딜교환이 다시 시작된다.
적과 자신의 피를 마시고 크는 챔피언.
광기에 물든 무차별한 학살자.
도라이븐이 펼치는 학살의 공연이 소환자의 전장에서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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