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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59화 (15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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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공연

어제는 상당히 불쾌한 식사자리를 가졌다.

시간이 갈 수록 소스에 허우적 대며 눅눅해지는 탕수육.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게 뭔 상관이냐면 우적우적 먹고 있는 예은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입맛 참 특이하네.'

그래도 사람마다 입맛은 다를 수 있는 노릇이다.

마음이 하늘과도 같이 넓은 내가 이해를 해줘야지.

조금 특이한 음식취향정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나다.

'뭐, 여튼.'

조금 일은 있었다지만 예은과의 사이는 이전처럼 돌아올 수 있었다.

마음의 커텐이 걷어지고 본성이 나온다.

티격태격 서로가 못 잡아 먹어서 안달.

조금 유별나긴 해도 이게 원래 나와 녀석의 사이다.

'그래도 영어는 잘하긴 하더라.'

상혁씨가 털털한 느낌으로 기본기를 두들겨 줬다면.

예은은 살짝 시어머니 느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까지 시시콜콜하다.

어제는 그렇게 두 시간.

중국집에서 나온 후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예은과 영어토킹을 했다.

길게 있을 생각은 없었지만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하나하나 걸고 넘어지시는 바람에 붙잡혀 버렸다.

'..도움은 되었지만서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나.

예은, 아니 리뮤로 알던 시절부터 오해를 만드는 타입이었다.

따져보면 틀린 말을 안 하지만 말투가 정말 싹수 노랗다.

같은 말을 해도 좀 좋게 돌려 말할 수 있는 것을.

언제나 설명도 부족해 자신의 생각을 남이 알아 들을만하게 꺼내지 않는다.

성격은 정말 더럽지만.

그렇기는 해도 역시.

'근본이 나쁜 녀석은 아니지.'

녀석과 이야기를 할 땐 결과만 놓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얘가 나한테 시비를 거는 건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건지 나조차도 이해가 안될 때가 많으니까.

그렇게 결과만 따져 봤을 때.

'이상한 의도로 말을 꺼낸 건 아니려나.'

엊그제, 내가 호되게 굴긴 했다.

대신에 그걸로 끝이라 내 안에서는 결론이 났지만.

어쩌면 녀석은 속죄를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영어를 가르쳐주겠다 이야기를 꺼낼 이유도 없어 보이고.

어쨌든 간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니 딱히 거부하진 않는다.

'다시 만나는 건 빨라봐야 다음 주겠고, 난 이제 도끼나 돌려야지.'

어제는 예은이 강제로 컴퓨터를 끈 이후로 로드 오브 로드에 접속하지 않았다.

호텔의 내 방으로 돌아오니 시간도 늦은 참이었는 데다 무엇보다 힘이 든다.

간만에 예은의 장단을 맞춰 졌더니 입도 아프고 머리도 쑤신다.

그래서 그대로 잠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목표를 잊은 건 아니다.

'이제부터가 고비인가.'

도라이븐으로 다이아2에서 연승가도를 밟은 덕에 다이아1까지 쉽게 안착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그랬 듯이 다이아1부터가 진정한 천상계다.

게임의 수준이 그 이전까지와는 달라진다.

그리고 마스터 티어.

또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하게 될 수록 게임은 더욱 더 난해해진다.

물론.

'그를 위한 도라이븐이지.'

도라이븐은 최소한 암걸릴 일은 없다.

주인공이 되는 챔피언.

사실 따지고 보자면 원딜계의 야흐호같기도 하다.

이겨도 나 때문에 이기고, 져도 나 때문이 진다.

만약 현지인이 그랬다면 속터지는 팀원이 되겠지만, 나니까 상관없다.

이 내가 캐리를 해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 리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나는 로드 오브 로드에 접속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변이 일어나 있었다.

'뭐지, 이 친구 추가들은?'

주르륵.

알림창을 쭉 내려본 친구 추가 메세지들.

한두 개도 아니고 꽉 차있다.

최대 50개가 저장되는 메세지 알림창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

대체 무슨 일인지.

그냥 랭크게임에서 만난 애들이 나 잘한다고, 혹은 버스태워 달라고 친구제의 거는 일이야 종종 있었다.

하지만 50개가 전부 꽉 차다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달이 났다고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조금 궁금하긴 하다.

이중에 한두 명 붙잡고 친구추가해 물어보면 알 수도 있겠지만은.

'귀찮네.'

나는 50개에 달하는 친구추가 메세지들을 전부 삭제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니까.

모르긴 몰라도 어딘가에 영상이라도 하나 등록됐겠지.

그것을 본 몇몇 이들이 메세지를 보낸 것일 테다.

내가 조금 관심종자 기질있기에.

약간 원하고 하드캐리를 했던 바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로 만족할 그릇은 아니다.

지금 내 티어는 다이아1.

주목을 받는 건 어디까지나 올라간 이후에.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뺏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전까지의 사소한 관심은 묵과한다.

지체할 시간따위 없기에, 나는 곧장 랭크게임의 큐를 돌렸다.

.

.

.

* * *

투욱.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한창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트리플리프트를 향해 핫숏은 입을 열었다.

"트리플리프트, 요즘 부캐를 키운다는 소문이 자자해?"

"원, 아니란 거 알면서 농담도."

트리플리프트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게임에 집중했다.

그가 하고 있는 게임.

랭크게임도, 스크림 경기 또한 아니다.

지인들을 대동한 봇라인전 연습.

그는 도라이븐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뭐야, 잘 하잖아? 이러면 대회에서도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핫숏이 본 트리플리프트의 화면에서 그는 도라이븐의 도끼를 자유자재로 받고 있는 듯 했다.

단 하나 놓치는 모습없이 CS를 챙기며 딜교환에서도 우위를 가져간다.

그렇다고 양학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라인전 연습이라고는 하지만 상대 또한 수준이 높다.

프로게이머의 지인들은 대부분 프로게이머나 지망생인 법이기에.

"아니야, 이건 못 써먹어."

"충분히 잘 하는 거 같은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 핫숏을 보며, 트리플리프트는 게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짧막하게 설명을 했다.

도라이븐은 도끼를 놓치지 않으며 미니언을 챙기는 것 만으로도 고역이다.

그런데 딜교환까지 진행하려니 부담이 늘어난다.

그 뿐이면 다행이되 도끼를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 스킬에 노출된다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적의 이니시가 걸려왔다.

"아!"

"미안 미안, 방해한 꼴이 돼버렸네."

한 방, 한 방이 강력한 도라이븐.

도라이븐을 플레이하던 트리플리프트는 딜교환에 심취한 나머지, 상대 서포터 모르피나의 점멸 이니시에 노출되고 말았다.

곧바로 점멸을 사용해 떨쳐내긴 했지만 탈력이 발을 늦춘다.

느려진 이동속도, 그리고 튕겨져 나오는 회전도끼를 받다 진로가 제한된 트리플리프트는 그만 속박에 얻어맞고 말았다.

그대로 적 크레이브즈의 풀콤보에 얻어 맞고 즉사.

"봐, 잘하다가도 한 순간이야."

"뭐, 이 게임은 그래 보이긴 하지만."

미련따위 없다는 듯 게임을 종료한 후.

의자를 뺑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트리플리프트에게 핫숏은 의문을 던졌다.

자신이 말을 걸어 방해를 한 건 둘째치더라도.

래딧에 화제가 됐던 그 도라이븐 장인처럼 클린즈를 들면 되지 않냐고.

"당연히 해봤지. 근데 그거 미친 짓이야."

기본적으로 모든 원딜러에게 CC기는 치명적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부분의 원딜러들은 클린즈라는 스펠을 멀리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CC기를 맞자마자 칼같이 클린즈를 쓰지 못한다면 힐이나 실드보다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신경쓸 게 많은 원딜러가 사용하기엔 난이도가 너무 높은 스펠이다.

"그냥 원딜러들도 그런데, 도끼까지 받아야 하는 도라이븐으로 클린즈를 들라고? 내 팔이 하나 더 있다면 생각해보겠지만 무리야."

"오호, 정말로 부캐가 아니었나 봐?"

얼마 전 래딧에서 일어난 Unknown Error의 사건.

다 알면서도 능청맞게 질문을 던져오는 핫숏을 보며 트리플리프트는 작게 한숨을 내셨다.

자신 또한 자존심이 상하는 건 사실이다.

그 도라이븐 장인이 하는 일은 자신은 못하고 있는 셈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연습을 하면 할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어. 어차피 쓸 수 있는 픽이 아니니까."

"어째서? 조금만 가다듬으면 라인전을 확실히 가져갈 수 있지 않아?"

방금 전 게임만 해도 다소 실수를 해서 킬을 먼저 내줬을 뿐이다.

라인전 구도 자체만 봤다면 확실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것도 라인전 강력하기로 손꼽히는 크레이브즈를 상대로.

라인전을 세게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분명 가치가 있는 픽이 틀림없음에도, 트리플리프트는 안된다고 대답했다.

"라인전만 하라면 할 수 있지. 하지만 라인전이 전부가 아니잖아?"

"한타? 아니면 정글러가 문제된다는 뜻이야?"

"둘 다지."

고도의 난이도를 가지는 도라이븐으로 라인전을 진행함과 동시에.

정글러의 눈치까지 살펴야 한다.

이즈레알의 비전정도는 바라지도 않지만 최소 크레이브즈나 헤이클린정도의 생존기만 보유했어도 할만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도라이븐은 이동기 스킬이 전무하다.

"광란의 피바다는? 유용할 것 같던데."

"게임에서 서커스를 하라는 꼴이지. 해봤지만 사용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광란의 피바다로 인한 1.5초간의 순간 이속은 무시할 수 없다.

도끼를 받기만 하면 쿨타임이 계속해서 리셋되니 도라이븐의 유틸성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도망을 가면서 반격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 자주 나올 리가.

쿨타임을 리셋할 수 없다면 "광란의 피바다는 1.5초간의 조루 스킬로 전락해 버린다.

"도라이븐은 그렇다 치고. 그런데 핫숏, 뭔가 숨기고 있지 않아?"

"호오? 뭐를?"

모른 척 둘러대도 이미 다 알고 있다.

트리플리프트 자신은 핫숏과 지내온 시간이 길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면 모르는 사람도 눈치챈다고. 그런 점도 싫어하진 않지만."

"아차, 티가 날 정도였나? 확실히 내가 거짓말과는 조금 인연이 없긴 해."

들킨 게 그다지 대수로집 않다는 듯.

핫숏은 트리플리프트의 옆에 있는 팀원의 좌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끌고 와 앉았다.

그러고서 하는 이야기가.

"이른바 비밀병기라는 거지. 재미있지 않아?"

"참, 애도 아니고. 모르긴 몰라도 우리 CLC에서 정신연령이 가장 낮은 건 너일 거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이야기를 하는 핫숏을 보며 트리플리프트는 실소를 지었다.

가끔 보면 애같기도 한 핫숏.

하지만 진지한 핫숏만큼 무서운 실력의 프로는 없다.

트리플리프트 자신이 여러팀들을 전전하다 CLC에 안착한 이유도 결국 핫숏때문이었으니까.

그런 핫숏이 무언가 기획을 하고 있다면 순수하게 기대해봄직 하다.

"어차피 가르쳐줄 생각은 없지?"

"아아, 그렇긴 한데 아쉬워?"

"그다지."

싱거운 녀석.

생각하면서도 트리플리프트는 못내 관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하필이면 원딜러.

자신과 경쟁이 될만한 사람을 영입한 셈이니.

"혹시 착각할까봐 얘기하는 건데.. 그 비밀병기, 원딜러는 아니야."

"설마, 나 놀려 먹는 거지?"

아무리 다이아1,2티어.

현 로드 오브 로드의 최정상급 원딜러로 불리는 자신이 보기에 낮은 구간이라 할 지라도.

대충 플레이를 보면 실력정도야 감을 잡을 수 있다.

누가 봐도 AD캐리 프로지망생.

아닐 수가 없을 텐데.

"혹시 한 명이 아닌 거야?"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조금 궁금해 조사를 해본 결과.

Unknown Error, 그는 꽤나 여러가지 챔프와 라인폭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이는 아무리 양학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생각해봐도 지나치다.

자신은 물론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이 최소 눈팅은 하는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래딧에서는 프로게임단의 공용계정, 그것도 CLC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을 정도다.

그말인 즉, 설마 3군팀이라도 만들 요량인 건지.

생각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건 아니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선물상자는 개봉하기 전까지 두근두근 대는 맛이잖아? 찬찬히 기다리고 있어봐."

"하아, 너도 참. 사람 놀려 먹는 거 좋아한단 말이지."

얼굴로는 별게 아닌냥,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트리플리프트는 못내 불안한 감정을 지우지 못했다.

핫숏이 다른 건 몰라도 거짓말을 하는 녀석은 아니니 만큼.

방금 전 들은 말들은 전부 반전없이 사실일 터다.

진짜 불안해지는 까닭은 실력.

Unknown Error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유저.

그의 바닥이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순간의 운에 불과한 건지.

아니면 핫숏의 말마따나 정말 비밀병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가치를 가진 자인지.

조금 시험을 해보자.

이미 제 할 말 떠들고 가버린 핫숏이 타준 커피잔.

모락모락 나던 김이 식어 따뜻해져 버린 커피잔을 두 손으로 잡으며 트리플리프트는 결정했다.

저격을 해보자고.

"으엑, 핫숏 이 자식. 설탕 안 넣었잖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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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작가 위해서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챕터 제목이 155화부터 학살의 공연으로 수정됩니다.

내용 변경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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