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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공연
도라이븐 장인 Unknown Error.
마술사라는 둥, 트리플리프트의 부캐라는 둥.
여러 소문이 있는 유저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가 현 로드 오브 로드의 유일한 도라이븐의 장인이자 수준급의 원딜러라는 사실.
그것만큼은 논쟁의 거리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도라이븐같은 건 왜 하는 거야? 그 피지컬로 크레이브즈를 하면 안돼?
└그냥 트롤챔프만 골라서 하는 컨셉계정같은 거 아닐까..?
대신 다른 논쟁거리가 생겼다.
그는 왜 도라이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도라이븐 뿐만 아니라 비주류 챔프들만 골라서 하는 것일까?
이는 그의 전적을 쭉 훑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품을 의문이다.
하도 궁금증이 증폭되다보니 래딧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취재를 나서려 했다.
대체 어떻게 도라이븐을 접했고, 그 정도 숙련도를 갖기 위해 얼마 만큼 연습을 했는 가 알아보기 위하여.
굳이 취재가 아니더라도 그냥 순수하게 여러 목적을 가지고 Unknown Error에게 친구 추가 메세지를 보낸 이들은 많았다.
그런데 받지를 않는다.
엊그제에 이어 어제, 그리고 오늘도.
Unknown Error, 그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만약 프로게이머가 아닌 일반 유저라면 굳이 정체를 숨길 이유는 없을 터.
유명세를 타는 게 그 본인에게도 나쁘게 작용할 리가 없다.
물론 관심을 받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비율을 따지자면 좋아하는 사람이 더욱 많을 테니까.
그것도 좋은 의미로 유명해진다는데 거부할 까닭이 무엇일까.
Unknown Error가 신비주의의 컨셉을 유지할 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그와 어떻게 접촉할 수단이 없을지 강구하던 와중.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해법을 제시하는 이들이 생겼다.
그가 아니라 그 분.
정작 본인은 래딧에 얼굴도 비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팬층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이해해주기 힘든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이로운 결과도 있다.
그의 플레이를 심도있게 분석하는 이들로 인해 트리플리프트 본인이 아니라는 발언에도 힘이 실렸다는 것.
그 중에서도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글이 존재한다.
이 글을 올린 장본인으로 인해 Unknown Error에 대한 사람의 관심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을 정도니.
─Unknown Error와 트리플리프트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유 있고요, 해설 들어갑니다.
플레이 스타일부터가 다르다는 의견.
확실히 두 사람 다 인간의 피지컬은 아니다.
일반 유저는 어떻게 따라하려고 노력해도 불가능한 수준.
일례로 Unknown Error가 너무도 당연하게 해내는 밀쳐내라로 스킬막기.
탈리반 3세나 루나의 돌격스킬을 방해하는 행위 또한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실패했다간 연계된 CC기에 즉사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줄타기같은 행위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트리플리프트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배인이 크레이브즈의 카운터라고 선언할 정도의 자신감이 있는 프로.
그 이유를 들어보자면 어처구니가 없다.
크레이브즈의 스킬을 구르기로 피하면 이길 수 있다.
트리플리프트는 이 말도 안되는 입롤을 실제로 실현시키기까지 했다.
심지어 같은 프로 원딜러들을 상대로.
둘 다 플레이 스타일이 공격적이며 화려하다.
같은 사람이라 의심받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지만 결정적인 차이.
두 유저가 동일인물이 아님을 주장을 제기한 래딧의 유저는 그 근거로서 판단력의 차이를 꼽았다.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때.
총구를 보고 피하느냐, 눈으로 보고 피하느냐의 차이.
예측된 위험은 위험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문명인이 Unknown Error, 즉 전자라면.
후자인 트리플리프트는 뛰어난 피지컬로 위험을 극복해내는 야생동물과도 같다.
└그럴 듯하긴 한데 결국 개소리 아니냐?
└작성자님 입롤 자제요~
나름대로 근거가 뒷받침 돼있긴 했다.
그럼에도 언뜻 받아들이기 힘든 무거운 주장.
래딧에 글을 올린 유저는 만약 평범한 유저였다면 그렇게 묵과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름아닌 프로게이머, 심지어 팀 독나타스의 정글러 루베리였다.
그 사실을 인증한 그는 다시 한 번 Unknown Error의 팬을 자처함과 동시에, 자칫 누가 될 수도 있는 흑역사를 과감하게 공개했다.
─제가 이러한 추론을 낼 수 있었던 데는 사실 제 경험이 밑바탕돼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Unknown Error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랭크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만났냐고요?
사연이 있죠.
여러분도 아실법한 저희 독나타스의 자랑, 싼티나와 저는 얼마 전에 듀오랭크를 돌린 적이 있습니다.
바로 다이아 구간에서.
게임사에게 받은 슈퍼계정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 듀오랭크를 돌렸다.
물론 이 자체는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양민 학살을 하든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다.
올라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문제니까.
진짜 문제는 그 Unknown Error에게 져버렸다는 거다.
심지어 듀오였음에도.
└현 프로 두 명이 듀오를 했는데 그걸 혼자 깨부셨다고? 애초에 정말 루베리 맞아?
└글쓴이 확인해봤는데 루베리 본인 맞음. 근데 대체 어떻게 진 거야? 심지어 싼티나는 원딜러인데.
└저 루베리님 팬인데 T.T 솔직히 루베리님 부캐 전적 보다가 Unknown Error와 게임한 거 보긴 했음..
이러한 댓글들의 반응에 루베리는 하나하나 답글을 달아줬다.
트리플리프트라는 오해가 있음에도 입장 한 번 표하지 않은 CLC와는 다르다.
똑같이 롤드컵에 출전하면서도 래딧과 자신의 팬들에게 관심이 많다.
어쩌면 그것을 노리고 글을 올렸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일단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건 Unknown Error에 대해서다.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저와 싼티나가 Unknown Error와 만났을 때 그가 플레이했던 챔프는 세코입니다.
저는 원딜러가 아닌 정글러로서의 그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루베리는 가장 먼저 공용계정임을 의심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정글을 그렇게나 잘하는 Unknown Error가 원딜러라는 사실이 납득이 안됨은 물론, 북미 최고수준의 정글러 중 한 명으로서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를 면밀히 관찰하던 도중 깨달은 사실.
계산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플레이는 분명 정글러의 것이다.
원딜을 하면서도 피지컬이라기보단 계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저는 그의 주포지션이 정글러라 단언합니다.
또한 공용계정이라는 사실 또한 저는 일축하고 싶습니다.
저는 Unknown Error의 팬 1호로서 섣부른 의심은 삼가주셨으면 간곡히 청합니다.
모두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일단 해결되었다.
다름 아닌 프로게이머가, 그것도 상당히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루베리가 저렇게까지 말을 했으니 반박하는 측에서 꺼낼 말이 없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생겨버리는 의문.
어째서 루베리가 Unknown Error의 편을 들어준 것일까.
정말 순수하게 그의 플레이에 감동을 받아서 일까.
굳이 프로게이머로서의 체면을 깎아가면서까지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독나타스에서 Unknown Error 침 발라 놓는 건가?
└하긴 나같아도 감동해서 독나타스 갈 듯.
└그건 너고ㅋㅋ 당연히 조건보고 가야지~
└설마 조건 섭섭하게 잡겠냐? 근데 이미 프로라면 헛다리 짚은 거 아니야?
옹호를 빙자한 영입 작전이 아닐까.
의혹을 품는 댓글들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독나타스의 루베리가 사건을 시원하게 해명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이제 남은 건 Unknown Error 본인이 입장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고, 상당한 수의 래딧 유저들이 기대를 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며칠 지나면 나타나겠지.
하지만 하루하루 나날이 지나도 Unknown Error는 묵묵히 솔로랭크만 돌릴 뿐 반응이 없었다.
친구 추가제의를 받지 않음은 물론이고.
솔로랭크에서 만나 직접 이야기를 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대답이 없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정말로 사연이 있는 프로의 부캐는 아닐까.
래딧 유저들의 답답한 감정은 쌓여만 갔다.
그것이 폭발하기 직전.
한 남자에 의해 논란은 종지부.
아니, 더욱 더 혼돈의 도가니를 향해 내달리게 되었다.
.
.
.
* * *
-롤아이디를 사는 게 왜 안되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뻔뻔스런 대답.
나는 얼척이 없는 나머지 소리쳤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니냐? 자기 아이디는 스스로 키워야지."
-그러니까, 대체 왜?
나는 지금 예은과 통화를 하고 있다.
지난 주말 이후로 종종 까톡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는 있었지만 지금껏 전화하는 일까진 없었다.
하지만 내가 걸었다.
까톡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답답한 나머지.
"어, 어? 그러니까, 그.. 다른 사람 아이디.. 잖아?"
-그게 어때서? 아니면 나한테 양심의 가책같은 거 바래?
말이 꼬여버린 이유.
정말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대답하는 예은때문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잊고 말았다.
그리고 말하는 도중에 떠올랐다.
현재 시즌2에는 계정거래 자체가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물론 세간의 시선이 따가운 건 매한가지지만 확실히 제재를 받을 우려까진 전혀 없다.
"뭐…. 그렇긴 하네. 남 눈치 안 보는 게 너답기도 하고."
-바보, 찌질이.
사람을 욱하게 만드는 저 주둥아리.
검지와 엄지로 쭉 잡아 땡겨버리고 싶지만 전화통화 와중이라 그럴 수도 없다.
뭐, 사실 그렇게 화난 것도 아니지만.
어째선지 평소보다 그녀의 말투가 누그러져 있다는 게 이유일까.
"너 왜케 얌전하게 통화하냐? 어울리지도 않게."
흥분해서 떠들고 있을 땐 몰랐는데.
차분히 듣고 있자니 내가 아는 예은의 목소리가 아니다.
목소리에 언제나 돋아있던 가시가 조금은 가라앉아 있다.
365일 연중무휴 불쾌지수를 유지하는 네가 무슨 연유로?
"팩하고 있으니까 할 말 없으면 끊기나 해. 전화를 걸어도 어떻게 넌 눈치도 없는 타이밍에 거냐?
그냥 말투만 조신해졌을 뿐이다.
그것도 팩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얼굴 좀 깠다고 사람의 본성이 쉽게 변할 리가 없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 사연이나 알고 넘어가고자 했다.
듣지 못하면 당하기만 한 게 억울해서 잠이 안올 것 같다.
이 밤중에 갑자기 북미서버 아이디를 어디서 사냐고 나한테 왜 물은 거야?
-그야 너 여기서도 정신 못차리고 롤하고 있잖아. 근데 잠깐, 너 혹시 1렙부터 키운 거야? 키킥, 완전 멍청이아니니?
키득키득 웃으면서 신랄하게 까대신다.
내가 롤하는 걸 보다가 못내 하고 싶으셨구나.
안타깝게도 난 재미로 롤을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직접 키운 게 아니라 슈퍼계정이다.
'그런데 이걸 말하려면 프로가 됐다는 사실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하네.'
예은은 아직 내가 프로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미국에 만나게 된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던 적도 있지만 그 부분은 지 알아서 납득을 해버렸다.
<너도 꼴에 공부는 하는구나?>
예은은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고 들었다.
자신의 처지에 나의 상황을 겹쳐 생각한 모양.
알아서 착각해준다면 나로서는 편하기에 굳이 대꾸를 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난감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을 검색해 계정거래 사이트를 찾아봤다.
"그런데 갑자기 롤은 왜 하려고? 너 공부 안 하세요?"
검색할 시간을 끌기 위해서, 그리고 내심 궁금하기도 했기에 나는 질문을 던졌다.
왜 뜬금없이 롤을 하려는 지.
그것도 아이디를 구입하면서까지.
-게임을 하든 말든 내 맘이지. 전화 끊을 테니까 주소는 까톡으로 보내라.
그러고서 목소리가 끊긴다.
지 할 말만 하고 넘어가는 말싸가지는 참.
내가 언젠가 이 녀석 성격 개조시키고 만다.
-아, 그리고 니 아이디도.
끊긴 줄 알았던 전화에서 예은의 한 마디가 더 이어지더니 그제서야 뚜우- 신호음이 들린다.
욕지거리를 육성으로 내뱉지 않아 정말로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짐과 동시에, 예은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사이트 주소는 보냈고, 일단 내 아이디는 Unknown Error다. 근데 왜? 오랜만에 나랑 같이 겜하고 싶냐?
─하? 내가 니랑? 김칫국 마시지 말고 잠이나 자셔.
어떻게 된 게 얘는 무슨 말을 해도 곱게 하는 법을 모르신다.
해달라는 거 다 해줬으면 고맙다는 말을 못할 망정.
진짜 언제 한 번 날잡고 확 쥐어 박아주고 싶다.
'막말해도 삐지지 않는 점은 편해서 좋지.'
전화를 끊고 침대에 디비 누워 잠을 청한다.
고요한 밤 중이다 보니 쓸데없이 예민해지는 감성.
티격태격 싸울 상대가 없어 자극이 부족했던 일상이 조금은 재밌어진 것 같기도 하다.
상냥하기 만한 루시와는 달리, 예은은 사람의 아드레날린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희한한 기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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