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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공연
헤이클린은 긴 사거리를 이용한 평타딜링이 도드라지는 원딜러다.
때문에 평타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초반에는 스킬딜 위주의 원딜 챔프들보다 약하기는 해도.
킬을 먹고 아이템이 쭉쭉 뽑히기 시작하면 거칠 것이 없어진다.
타앙!
패시브의 스택이 모이자 발사되는 굵다란 총성.
1.5배의 데미지에 더해 짜릿한 전기가 퍼지며 이즈레알을 괴롭힌다.
'헤이클린도 아이템이 뽑히면 한 방의 묘미가 생긴단 말이야.'
무극의 대검으로 인해 높아진 공격력.
그리고 스토커의 단검이 추가되자 첫 타에 치명타가 터진다.
아이템의 효과를 받는 건 다른 챔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헤이클린은 번개를 터트리기가 쉽다.
압도적인 사거리 덕분에.
치지직!
패시브에 의한 추가데미지까지 더해지자 이즈레알의 마치 도라이븐의 도끼를 맞은 것마냥 뜯겨나간다.
그래도 아직 헤이클린이 진가를 발휘됐다고 하기엔 멀었다.
'헤이클린은 원래 3코어부터가 시작이긴 해.'
순수한 평타의 데미지가 스킬데미지를 넘어서는 시점이 바로 무극의 대검이 나온 후 부터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값비싼 치명타 아이템 중 하나인 무극의 대검은 빨라도 3코어, 늦으면 4코어 이후에 뽑히는 게 일반적.
그러나 나는 이미 무극의 대검과 스토커의 단검까지 갖췄다.
초반에 엄청나게 흥한 덕분이다.
이즈레알과의 CS차이, 그리고 시원하게 따낸 더블 킬.
타워철거까지 완벽하게 해내자 아이템이 나오는 속도는 무럭무럭.
가성비가 높은 피를 마시는 칼부터 가는 경우가 많지만, 단순 데미지만을 따진다면 무극의 대검이 낫다.
스토커의 단검과 연계되는 상호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치지직!
치명타 데미지의 최대치를 올려주는 무극의 대검은 스토커의 단검에서 퍼지는 번개에도 적용된다.
무시할 수 없는 마법데미지와 더불어 헤이클린의 Q스킬 대탄환.
나는 라인을 깔끔하게 밀고 용으로 향했다.
'원래 지금 시점이 헤이클린의 고생문이 열리는 타이밍이지.'
아이템이 나왔다 쳐도 그렇게 썩 데미지가 만족할 만큼 박히지 않는다.
무극의 대검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다른 한 가지.
원혼의 춤꾼, 속칭 팬댄을 2코어로 올리기 때문이다.
본디 대부분의 원딜러들은 스토커의 단검을 기피했다.
아이템에 달려있는 치명타 확률이 10%나 낮은데다 공격속도 또한 원혼의 춤꾼과 차이가 난다는 게 까닭.
시간이 지날 수록 원혼의 춤꾼을 간 쪽이 딜링 기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반.
'중후반까지는 스토커의 단검이 훨씬 나아.'
일단 치명타 보정을 받는 마법데미지를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주위의 적에게 체인 라이트닝마냥 퍼지기 때문에 어시를 먹기도 좋다.
용 앞에 도착하자 양팀이 대치한 채 눈치를 보고 있다.
적팀은 나를 노릴 속셈이 뻔하지만, 아군은 공격을 택한다.
─아군이 가시오가피를 지목.
적팀의 미드라이너, 뱀인간의 형상을 한 가시오가피에게 핑이 찍혔다.
주문력템을 올리는 미드면서도 원딜에 준할 정도의 지속딜을 자랑하는 챔피언.
아군은 한타에서 가장 먼저 가시오가피부터 보내버리고 싶은 듯 모양이다.
물론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
헤이클린을 결코 흥분을 해서는 안된다.
사냥감을 기다리는 송골매의 심정으로 차분히.
그리고 매의 눈으로 관조한다.
콰가광!!
아군 탑라이너 말화이트가 점멸궁을 꼴아박는 것으로 한타가 시작했다.
조금 무리하게 열은 이니시때문에 아비규환이 돼버린 한타.
나는 평점심을 잃지 않고 생존만을 목표로 딜링을 꽂아넣었다.
아군이 달려나가든, 적들이 나한테 미친 듯이 쫓아오든 나는 나만의 호흡을 유지한다.
이것이야 말로 헤이클린의 한타.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도라이븐이나 슈퍼플레이가 필요한 배인과는 다른 특색이다.
눈에 띄지 않는 조연과도 같은 느낌이지만 주연은 언제나 마지막에 빛을 발하는 법.
조급해서는 될 것도 안된다.
타앙!
탕!
돌출돼 있는 네네톤부터 두들기기 시작한다.
리듬타듯 무빙을 밟는 게 중요.
언제, 어느 순간 상대가 나를 노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번 물려버리면 답도 없는 헤이클린이기에, 방심은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쭈욱.
나를 노리지 않는 척 하다 점멸 붕대를 노려오는 아모모.
궁극기를 아끼고 있던 시점에서 눈치를 까고 있었다.
사뿐히 무빙을 밟아 피해낸다.
그렇게 아모모는 유일한 돌진기를 낭비해버렸고, 네네톤은 내 앞에 미리 일렬로 깔아 놓은 쇠덫때문에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나를 물 수 있는 자, 아무도 없다.
이제부터 한타는 헤이클린의 솔로 무대다.
탕!
탕!
중반 타이밍에 딜로스가 있는 헤이클린답게 잘 박히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치명타가 터지자 움푹움푹 패여 나가는 네네톤의 가죽.
무극의 대검은 먼저 완성한 보람이 제대로다.
퀴리릭!
중간중간 사거리가 닿지 않을 때는 대탄환까지 날리며 꾸준하게 딜을 박아 넣는다.
한 방, 한 방은 약할지 언정 범접할 수 없는 거리에서 지속적으로 때려 넣는 포격은 무시할 수 없다.
네네톤이 마무리되자 혼자 남은 아모모 또한 버티지 못한다.
남은 건 적팀의 원딜러 이즈레알과 가시오가피일까.
'그렇게 뻔히 들어가면 당연히 못 따지.'
말화이트가 점멸궁을 맞힌 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아군이 호응하기에 거리가 너무 멀었다는 사실.
결국 쫓아온 아군까지 가시오가피의 궁극기에 단체 스턴에 걸리고 소냐의 파워센도까지 떨어지자, 잘 성장한 것에 비하면 허무하리 만큼 손쉽게 당해버렸다.
'조아라와 콩머스도 체력이 없고.'
일단 2:3의 유리한 교환을 하긴 했지만 체력이 온전한 건 나 뿐이다.
비교적 멀쩡한 체력의 적 두 명이 어떻게든 더 성과를 내기 위해 쫓아오고 있다.
조아라와 콩머스는 도망을 택하지만.
'해볼까.'
체력관리가 꽤 돼어있는 나이기에 혼자서라도 붙어볼 만하다.
먼저 쇠덫의 위치부터 재조정한다.
이즈레알과 가시오가피가 한 번에 들어오지 못하게 애매한 위치로.
그리고.
퀴리릭!
대탄환을 던져 가시오가피를 견제한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멈추지 않고 들어오는 가시오가피와 이즈레알.
나는 가시오가피가 던지는 독을 투망으로 피해냈다.
그렇게 내 생존기가 빠지자마자 이즈레알은 앞비전을 사용해 쇠덫을 넘어 과감히 들어온다.
옳은 판단이다.
하지만 놓친 것이 한 가지.
나 또한 점멸이 있다는 사실.
심지어 앞점멸이다.
이즈레알과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가시오가피를 노린다.
가시오가피가 깔아놓은 보라색 늪지대를 과감히 넘는다.
언뜻 미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계산된 선택.
적을 중독시키지 못하면 독니를 연속해서 쏠 수 없는 가시오가피의 약점.
내가 연이어 독을 피해버린 탓에, 다음 독을 쏠 수 있는 3초 동안 강제 딜로스가 생겼다.
탕!
타앙!
앞무빙을 밟으며 이즈레알이 나를 따라하지 못하게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차곡차곡 쏘아대는 탄환은 가시오가피의 체력을 빼낸다.
결코 느리지 않다.
방어아이템이 없는 가시오가피 정도는 헤이클린으로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
담가내는 뱀술.
─더블킬!
Unknown Error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남은 것은 이즈레알 뿐이다.
이즈레알도 가시오가피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다.
오히려 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법화살을 날리는 타이밍에 왼쪽으로로 쓰윽.
피해내는 것만으로 상당한 딜로스를 유발시킬 수 있다.
치지직!
번개데미지가 치명타로 터지자 단 한 방에 들어가는 놀라운 데미지.
이즈레알은 순식간에 뜯겨나간 체력에 허겁지겁 놀라서 점멸까지 사용해 내뺀다.
바보같은 판단이다.
조금만 머리 굴려도 안 했을 실수였을 텐데.
<조준, 발사!>
아직 한 발 남았다.
궁극기가 쏘아져 나가며 이즈레알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낸다.
─트리플킬!
Unknown Error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할만한 실수긴 해도, 팀입장에서는 어지간히 답답하겠다.'
이즈레알이 멍청해서 실수를 했다기 보단 인간의 본능이다.
가끔 가다 죽는 거 뻔히 알면서도 점멸을 쓰게 되는 이유.
체력이 한 순간에 깎이게 되면 딜계산이 안돼서 정신줄을 놓아버릴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스토커의 단검이 주는 심리적인 효과기도 하다.
치명타로 터진 번개데미지는 평타 한 방에 필적하기에, 원딜러에게는 원래 없는 깜짝누킹을 가능하게 해준다.
방금 이즈레알이 점멸을 쓴 게 그러한 이유.
티링!
한타를 대승하고 상점에 가서 구입하는 아이템은 최후의 숨결.
피흡템이 없는 게 다소 아쉽긴 해도, 이렇게 3코어가 갖춰지면 헤이클린의 딜로스 구간은 끝났다.
오히려 우월한 사거리를 이용해 다른 원딜러보다 손쉽게 한타 포지션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반적으로 원딜러들은 팀이 못하면 시간이 흘러도 답답하다.
물론 그 점은 헤이클린 또한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이템이 나오는 순간 극복할 수 있다.
게임을 혼자 다 해먹는 게 가능하다.
바로 타워링때문에.
헤이클린은 로드 오브 로드에 존재하는 모든 원딜러 중에서 적팀의 포탑을 가장 부수기 쉽다.
답답한 아군 데리고 이리저리 핑찍고, 시야장악하고, 용이나 바론먹다가 설마 강타 뺏기는 거 아니겠지.
그런 눈치 볼 필요없이 채팅 한 번만 치면 된다.
-미드 모여!
-네, 형님. 지금 당장 갑니다!
-캬아~ 안전벨트 매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머리채 끌고 잡아 가네ㅋㅋ
미드에 대치상황을 만들고 타워를 하나하나 깨부순다.
방법은 간단.
일자로 뚫려 있는 미드라인에 쇠덫을 깐다.
그것만으로도 적팀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제한된다.
그렇게 되면 당연 아군도 나도 대응하기가 쉬워진다.
더군다나.
탕!
탕!
다른 원딜러들은 짧은 사거리때문에 타워를 깰 때 혹시 이니시를 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헤이클린은 100이나 긴 사정거리 덕에 눈치 안보고 손쉽게 타워를 깨부술 수 있다.
어떻게 몰아내고 싶어도 쇠덫때문에 제한되는 진로.
아이템이 잘 나온 헤이클린한테 한 대 맞기라도 하면 장난아니게 아프다.
이것이 헤이클린으로 고속도로를 뚫는 방법.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파괴되는 미드의 2차 포탑.
그러나 억제 포탑만큼은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듯 적팀은 작정하고 간을 보고 있다.
확실히 2차포탑에 비해 수성이 용이한 억제 포탑은 자칫 무리수가 될 수 있는 게 맞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썼다고.
탕!
탕!
미니언이 도착하는 데로 포탑 철거를 시작한다.
과감하게, 하지만 신중하게.
평타 한 방, 한 방의 공격속도를 계산하여 스스로의 목을 죄는 상황을 방지한다.
투욱!
내가 다음의 평타를 쏘기 직전.
아모모의 붕대가 날라오며 나를 노린다.
만약 평타를 온전히 쳤다면 그 딜레이로 인해 허용했을 수도 있다.
대비를 했기에 피해낼 수 있었고, 적의 노림수를 훌륭하게 파훼하는 게 가능했다.
부와아아악!
내가 피한 붕대는 그대로 지나쳐 미니언에 명중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한타
아모모의 궁극기가 깔리고 말화이트가 다시 한 번 가시오가피를 노린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처럼 뒤에서 조용히 차곡차곡 평타를 우겨 넣는다.
당장의 주인공은 아모모와 말화이트같지만 영화에서도 으레 그렇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자만이 진정한 주인공이다.
탕!
타앙!
단조롭기 짝이 없게 재미없을 정도로 리듬감없는 총성.
그럼에도 한타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헤이클린이다.
모든 적팀이 어떻게든 나를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절대 잡히지 않는다.
나는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헤이클린의 사거리란 장점을 살려 탄환을 우겨 넣는다.
탕!
탕!
헤이클린에게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타의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남은 것은 대승이냐, 아니냐의 차이.
말화이트가 무리하게 안까지 파고 들지 않은 덕에, 진형이 유지되는 이번 한타는 손쉽게 흘러간다.
꾸웨에에엑!!
나를 잡지 않으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듯.
점멸궁까지 쓰며 나를 잡으려는 가시오가피.
미안하지만 하품이 나오는 움직임이다.
슬금슬금 맞으면서 걸어오는 시점에서 눈치채고 있었다.
굳이 투망을 쓸 필요도 없이 가볍게 고개를 돌려 스턴을 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탕!
탕!
적팀의 억제 포탑 앞에서 열린 한타의 대승.
전리품은 고작 포탑정도가 아니다.
그대로 쭉 밀어 게임을 끝내버린다.
잘 큰 헤이클린에 의해 깨져나가는 포탑들을 관전하며 적팀이 전체말로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이즈레알[All]-GG. 쏘냐가 궁극기만 맞아줬어도 솔직히 할 만했는데..
쏘냐[All]-응, 아냐. 너 데리고 절대 못 이겨.
가시오가피[All]Unknown Error님 제발 래딧 한 번만 봐주세요! 나 혹시 차단먹나?
넥서스가 터지기 직전까지 전체말로 떠들어댄 상대팀의 채팅들.
저 래딧 좀 보라는 말을 벌써 열댓 번도 더 들었다.
래딧 어쩌고만 나오면 칼차단을 박을 정도.
물론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마스터 승격완료.'
승격전의 마지막 판.
도라이븐이 밴돼 헤이클린을 해야 했다.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수월하게 승격전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이아1에서 마스터티어까지 총 11게임.
8승3패의 성적은 썩 나쁘지 않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친구창이 꽉 찰 정도로 나를 불러대는 래딧.
이제 슬슬 얼굴을 비춰도 괜찮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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