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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치TV
코어 아이템이 완성된 이블퀸은 저승사자와도 다름없다.
단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진실.
자연스럽게 인사하듯 죽음을 전염시킨다.
챠라락!
광란의 춤으로 이동속도를 높임과 동시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건 죽음의 불타는 손길.
그 액티브 효과는 최대 체력의 15%에 비례하는 마법데미지와 더불어 4초간 가하는 마법피해량을 20% 증가시켜 준다.
찰! 콱!
쌍발톱과 가시세례가 헤이클린의 몸을 산뜻이 유린한다.
죽불손에 의해 증가된 데미지는 더욱 강렬하게 사무치고.
헤이클린은 투망을 사용해 날아가는 모양새 그대로 산화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Unknown Error님은 전설적입니다.
└그냥 스치니 죽네ㅋㅋㅋ
└커도 어지간히 커야지 10분이 안돼서 죽불손이 뜸.
죽음의 불타는 손길이 박히는 순간.
적은 챔피언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미니언으로 격하된다.
적팀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털릴 노릇.
와드로 보이기라도 하면 대비라도 하겠지만.
보이지도 않는 은신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덮쳐올 지도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은신을 밝혀주는 핑크와드를 깐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안 그래도 벌어진 글로벌 골드 격차는 비싸디 비싼 핑크와드를 구매하는 것조차 부담되게 만들었으니까.
'애초에 들켜줄 내가 아니지.'
내가 이곳 마스터티어의 현지인도 아니고.
적팀이 핑크와드를 깔만한 위치는 전부 예상이 가능하다.
오히려 핑와를 깔았다는 사실을 역으로 이용해, 방심을 유도하고 로밍을 성공시킬 수 있다.
보고 대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기동력의 신발과 광란의 춤의 빠른 속도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판단을 내리는 순간엔 이미 저승예약이다.
'시시하기 짝이 없구만.'
이블퀸이라는 챔프가 로밍으로 게임을 터트리기에 너무 좋다.
로드 오브 로드의 초창기 밸런스가 괜히 개판 소리를 들은 게 아닌 것.
OP챔프와 일반챔프 사이의 격차가 지나치다.
그렇기에 어지간하면 픽창부터 필밴이 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어쩌다 살기라도 하면 게임이 너무 일방적이다.
'물론 파일럿이 나인 탓이 결정적이지.'
북미서버 유저들은 로밍이나 운영보단 순수하게 한타싸움 위주로 게임하는데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이가 이블퀸을 했다면 초반부터 막 나가진 않았을 터다.
그냥저냥 라인전을 하다가 어쩌다 한숨돌릴 때나 로밍각을 잡았겠지.
나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집가는 척, 딴 데가는 척.
온갖 페이크를 섞어가며 로밍을 가는 이는 구경도 못했을 터다.
게다가 예상을 하고 있더라도 제발 오지 말았으면 하는 타이밍을 정확히 노려댔다.
탤런도 그랬지만 로밍챔프라는 게 결국 처음에 한두 번 킬을 먹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풀리기 시작하면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폭주기관차가 된다.
초장부터 킬을 와장창 먹고 죽불손을 빠르게 완성시킨 이블퀸.
1분에 한 번, 액티브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적챔피언들의 목숨을 촛불마냥 꺼트릴 수 있다.
탕!
토옥!
따로따로 있다간 확실히 각개격파, 암살의 대상밖에 되지 않는다는 판단일까.
적팀은 미드에 모여 아군의 포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 한타조합의 구색을 갖췄으니만큼 정면으로 붙으면 승산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송사리가 뭉쳐봤자 큰입배스의 한 끼 식사거리겠지만.'
일반적으로 암살 챔프는 한타에 들어가면 성장한 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점을 노렸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블퀸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웃어준다.
챠라락!
광란의 춤을 발동해 어둠속에서 갑자기 나타난다.
먼저 끊기로 정한 상대는 가장 돌출돼 있던 카서트.
딱콩으로 아군을 견제하던 카서트에게 죽음의 불타는 손길이 들어간다.
찰! 콱!
쌍발톱과 가시세례가 동시에 박히고 발화까지 걸리자 자비가 없다.
억겁의 스태프로 인해 상당한 맷집을 자랑하던 카서트의 체력이 놀라우리만큼 깎인다.
하지만.
투욱!
아무리 적팀의 호흡을 끊는 기습이었다 할 지라도, 일단은 한타를 하기 위해 모인 적팀이다.
선공을 허용했다고는 하지만, 깜짝 놀라서 혼비백산 도망갈 만한 점수대는 아니다.
아모모가 붕대를 던짐과 동시에 랄라가 궁극기를 사용해 카서트를 아슬아슬하게 살려낸다.
거기에 더해 아모모의 궁극기가 넓다랗게 펼쳐지며 나와 아군 몇의 발을 묶는다.
꽤나 순조롭게 받아치는 적팀의 역습.
완벽히 내 계산대로다.
쿠확!
적의 최대 체력에 비례하는 이블퀸의 궁극기.
어둠의 침식이 4명의 적을 집어 삼킨다.
괴이한 가면을 구입해 높아진 마법관통력은 치명적인 데미지를 선사한다.
카서트의 상황은 더욱 심각.
랄라의 궁극기로 인해 체력량은 올라갔다지만 어둠의 침식은 상대의 최대 체력에 비례한다.
죽불손의 효과로 1.2배 강하게 들어가는 %뎀은 버틸 수가 없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한 명 끊어냄을 시작으로 연달아 도미노다.
어둠의 침식에 의해 발목이 붙잡힌 적팀이 나를 부단히 때리고는 있지만.
궁극기를 4명이나 맞춰 추가된 보호막의 양은 거진 1천에 육박한다.
안 그래도 잘 성장한 이블퀸을 잡기엔 딜링이 한참은 부족하다.
챠라락!
아모모의 속박이 풀리자마자 다시금 쿨타임이 돌아온 광란의 춤을 발동해 적을 추격한다.
아군도 놀고 있진 않다.
버스를 탈 거면 최소한 요금은 내야겠다는 생각.
내가 쓸어담는 그림이 나오도록 밑바탕을 그려준다.
츄륵!
챠라락!
퇴각하는 적을 하나하나 따라가 마무리한다.
이미 전장은 희망따위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대지.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전세 속에서 도망갈 구석은 남아있지 않다.
─더블 킬!
Unknown Error님은 전설적입니다..!
킬어시를 챙길 때마다 쿨타임이 리셋되는 광란의 춤.
이곳 저곳에서 킬이 터져 나오니 유령화 이상의 이동속도가 항시 유지된다.
어떻게 뿌리치고 싶어도 압도적인 속도의 차이.
더불어 흩뿌린 둔화스킬마저 떨쳐내니 도주마저 불가능하다.
─트리플 킬!
Unknown Error님은 전설적입니다!
마무리..!
포탑 안으로 숨어도 봐주는 건 없다.
기어코 추격해 목줄을 따버리고 광란의 춤을 발동해 빠져나온다.
자신들을 지켜줘야 할 마지막 보루, 포탑조차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
적팀의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진다.
헤이클린[All]-그냥 미드 밀어주세요. 제발…. 저 이번 판에서 우물에 있던 시간이 더 기네요..
아모모[All]-1픽놈이 이블퀸 살려서 한타도 제대로 못해보고 끝나네;
카서트[All]-미드는 안 할 줄 알고 이블퀸 살렸지.. 나도 이블퀸 잘하는데..
예상했던 대로일까.
서렌을 받는 최소시간인 20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대로 미니언을 밀고 전진해 포탑들을 철거해버린다.
└지들이 저격해 놓고 징징대네. 그냥 끝내지 말고 고통주시지ㅋㅋ
└REAL 저런 애들은 우물에 가둬놓고 계속 죽여야 함.
└저격러 정의구현 사이다ㅋㅋㅋㅋㅋㅋ
└근데 방장 챔프폭 진짜 넓다. 아니, 라인폭인가?
우월한 챔프폭과 할 수 있는 라인이 많다는 장점은 솔랭에서 이토록 유리하다.
OP챔프가 살아버리면 즉각 가져가서 사용할 수 있으니까.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보통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오픈을 하더라도 찔끔찔끔 기어 나와 간을 보는, 흔히 말하는 김치식 오픈을 할 텐데.
상대는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미서버여서 라기보단, 그만큼 고통스러운 게임을 더 이상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반증이다.
홀가분하게 넥서스를 깨버리고 승리를 쟁취한다.
└방송키고 3연승 오져버렸다..
└심지어 3판 연속 강제캐리 미드오픈임ㅋㅋ
└CLC나 TSL 주전데리고 와도 이 정도는 못할 거 같은데. 방장 대체 누구야?
└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주전들은 방송을 잘 안해서 비교하기 힘드네..
토이치 TV를 키고 진행한 게임 세 판.
연속해서 박살내며 클라스를 완벽히 증명했다.
내 실력 덕도 있지만 사실 게임의 의도한대로 잘 풀린 탓도 있다.
어쨌거나 결과가 좋았으면 만사오케이.
덕분에 방송홍보는 제대로 됐다.
핸드폰으로 해딧을 언뜻 확인해보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 대한 글이 무진장 올라오고 있다.
방송을 킨지 고작 1시간 반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시청자의 수가 3천명에 가까워졌다.
후원금도 상당히 짭짤하게 받았다.
물론 첫 방송 버프 덕이 상당하겠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가능하다.
'후후, 오늘 저녁은 쪽갈비를 사먹어도 낭비가 아니겠군.'
파프리카마냥 수익금을 절반씩 뚝 떼가지도 않으니 버는 액수가 직관적이다.
그런데다 플랫폼자체가 미국에 국한되지 않으니 시청자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나마 가로 막고 있던 언어의 장벽.
허물어지자 토이치TV에서의 방송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이건 어디까지나 부업이지,'
사실 이전부터 몇 번이나 고심했던 문제다.
내가 조금 소시민스러운 바람에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자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파프리카나 토이치같은 방송인으로서 말뚝박는다거나, 적당히 벌어서 주식 투자를 하며 놀고 먹기만 해도 최소한 생계를 걱정할 일은 없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우직하게 참아내고 있다.
딱히 큰 뜻을 품어서 라기보다는.
'그런 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명성을 얻고자 하면 지금이 절호다.
물들어올 때 노저어야 한다는 건 단순히 토이치TV의 방송만이 아니니까.
바로 다음 주면 열리게 될 롤드컵.
나는 참가하지 않는다지만 롤드컵 이후에도 대회가 있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한국이 아닌 북미 롤챔스의 윈터시즌이 열린다.
그리고 롤챔스 윈터시즌이 끝나면 연이어 LCF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북미와 유럽을 통틀어 최강자를 정하는 리그가 개최된다.
현재 시점에선 사실상 롤드컵의 상위호환이라 회자되고 있을 정도의 대회.
'내가 참가하게 될 다음 시즌에도 그렇게 평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지.'
다음 주에 열리게 될 시즌 2의 롤드컵에서 일어나게 될 이변.
CLC가 광탈하고 뜬금없이 대만팀이 우승한다.
그야말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격이다.
그 때문에 LCF의 평가가 조금은 떨어질 수도 있을 터다.
그 부분은 내가 고민을 한다고 어떨게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렇다 치고.
중요한 건 대규모 대회가 연달아 열린다는 사실이다.
이만한 기회는 좀처럼 없다.
왜냐하면.
'조금 꿀빨게 많다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최근에 들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확신이 있다.
갈고 닦으면서 준비하기만 해도 충분한데 곧 있으면 로드 오브 로드 시즌2가 끝난다.
격변하는 시즌3의 초기에 쪽쪽 빨만한 챔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 정도면 거진 보증수표 아닌가.
다음 큐를 기다리는 사이에 약간의 망상.
아직 이룬 것도 아닌데 떠올리니 부끄럽지만서도 내심 흐뭇하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인생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커피를 아직 마시지도 않았네.'
일단 신비주의 컨셉을 취하고 있는 Unknown Error.
점잖지 않게 인터넷 서핑을 하기도 뭐하니 손이 널널하다.
이전 판에 하도 심하게 털려서 그런지 큐가 잘 잡히지도 않는다.
핸든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지루해지자 자연스럽게 예은이 타줬던 커피 쪽으로 손이 뻗어졌다.
'에이, 뜨거울 때 마실 걸.'
따끈하게 올라오던 김은 식은지 오래다.
다소 미지근해진 커피.
예은이 탔다는 사실로 인해 조금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한입정도는 마셔주는 게 예의라는 생각.
설마 죽기라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입에 가져댄다.
꿀꺽.
한 모금 머금고서 그대로 목구멍에 삼킨다.
사약을 마신다는 각오로 마신 커피.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데?'
살며시 혀에 닿은 액체의 맛은 쓰지 않았다.
목넘김 또한 부드러웠다.
방구석에 있는 커피라고 해봤자 인스턴트 뿐이다.
내가 탔을 때는 분명 이러지 않았는데.
설마하지만.
'이것이 손맛이란 건가..?'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두 가지.
적당히와 손맛.
인스턴트 커피라 할 지라도 적당히 배율해 적당히 손으로 섞으면 이 정도 맛을 낼 수 있는 건가.
진지하게 음미해봐도 나쁘지 않은 맛이다.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입에 가져댈 만큼.
적어도 내가 탄 것보다는 확실히 맛있다.
커피는 그냥 물넣고 쓱 저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탄 건 뒷맛이 쓰기도 하거니와 목넘김 또한 깔끔하지 않다.
대체 어떻게 탄 건지, 고민하며 마시는 새에 커피잔의 하얀 바닥이 보인다.
마지막 한 모금을 꿀떡 삼키자 남아 버리는 아쉬움.
'다른 건 몰라도 커피 하나는 소질이 있네.'
어떻게 평가절하를 하고 싶어도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향.
외견말고는 장점을 찾기 힘든 예은에 대한 평가가 1mg정도는 오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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