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76화 (17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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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치TV

결국.

토이치TV의 방송은 예은이 오기 전에 끝마쳤다.

일이 끝나는 시간은 대략 파악하고 있었기에, 조금 여유를 두고 방송을 종료했다.

나는 예은의 반발을 고려해서.

"배고픈데 밥부터 먹으러 가자."

"야, 잠깐! 방송은!?"

오자마자 냅다 손을 붙잡아 끌고 나간다.

밥이라는 말에 솔깃하는 밥순이.

이성을 차리고 반박을 내뱉기도 전에 먼저 확정타를 먹인다.

"쪽갈비."

"콜."

이전부터 봐왔지만 이 녀석은 음식에 상당히 환장을 한다.

게다가 오늘은 싸울 일 없게 메뉴도 일부러 갈비로 정해놨다.

LA의 특산품 갈비로!

'사실 로스앤젤레스랑 LA갈비랑은 전혀 상관이 없다지만.'

나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LA갈비라 명명된 이유는 잘라낸 형태때문이란다.

결코 로스앤젤레스가 원산지라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 사실을 나이먹고 성인이 돼서야 알았다는 게 쪼금 부끄럽긴 하지만 모르는 게 분명 나만은 아닐 터다.

"너 LA갈비가 왜 LA갈비인지 아냐?"

"알아서 뭐하게? 그냥 처먹하고 메뉴나 고르렴."

택시를 타고 근처 한인타운의 갈비집.

이전에 상혁씨와도 함께 왔던 그 음식집에 예은과 찾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제집인냥 앉아 메뉴판을 펼친 예은에게 LA갈비에 대해 묻자 반응이 저따구.

퉁명스러운 대답이긴 하지만 명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지난 번에 부먹이니 찍먹이니 중국집에서 싸웠을 때.

그것도 생각해보면 처먹이 결론이다.

뭘 먹어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아니.. 적어도 넌 아니야."

예은이 정말 어이가 없다는 어투로 대꾸를 해온다.

그러고선 이마를 살짝 찌푸리더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대체 또 뭐가 불만인지 감도 안잡히는데.

"으엑, 관두자, 관둬."

혀를 쭉 내밀며 질렸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끊는다.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한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뭐하자는 건지, 의도를 모르겠지만 어쨌던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갈비 나왔습니다~."

갈비를 사주는 이유는 딱히 미운 놈 떡하나 더주자는 심정이 아니다.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고민을 했었던 문제.

털어놓기로는 밥먹어서 이야기하는 게 한층 편하기 때문에.

치익..!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 양념갈비와 쪽갈비를 올려 놓는다.

먼저 익는 건 오히려 쪽갈비 쪽일까.

생으로 구우면 오래걸리는 탓에 조리가 된 상태로 나왔다.

오물오물.

장갑을 끼고 쪽갈비를 뜯어대는 음식 욕심많은 예은을 빤히 쳐다보며 생각한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망설이던 사이에 예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애 꼬나바?"

"…삼키고 말해라."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양쪽 볼에 우겨넣은 고기는 넘어가는 속도보다 들어가는 양이 많다.

복스러운 건지 철딱서니가 없는 건진 몰라도 꿀떡꿀떡 잘도 삼킨다.

"조금 뜬금없긴 한데.. 넌 프로 할 생각 없냐?"

"프노? 애가?"

아니, 그러니까 좀 삼키고 말하라고.

창피하다는 게 뭔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내 앞이라 이라는 건지.

나도 어지간히 뻔뻔한 편이지만 너도 만만찮다.

"프노느 가차기 애?"

"걍 처드시고 듣기만 하세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던가.

일단 배터지게 먹으라고 접시에 갈비를 얹어줬다.

그걸 또 꾸역꾸역 먹는 예은을 보고 있자니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낸 내가 바보같이도 느껴지지만.

'일단 뭐 이야기를 해두는 게 낫겠지.'

오해시킨 채로 놔두면 나중에 불편해지는 건 결국 나니까.

나는 예은이 듣든 먹든 말든 상관없이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 북미에 온 이유.

앞으로의 목적.

그리고 네 생각은 어떤지.

내 말이 끝나자 예은이 씹고 있던 갈비를 꿀꺽 삼키고는 잠깐 진중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늘여놓았다.

"음.. 쫄깃하면서도 힘줄이 부드러워서 잘 끊겨. 양념도 괜찮은 듯?"

"갈비말고!"

그래도 내 얘기를 아주 흘려들은 건 아닌 듯 고민하는 모양새.

그렇게 맛있게 먹던 쪽갈비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나를 쳐다본다.

조명 탓인지 빛나는 눈동자에선 사뭇 결의가 느껴진다.

입술을 달싹달싹 망설이던 예은이 드디어 입을 벌렸다.

"너.. 별로 못 먹은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시킬까..?"

"…내 평생 소원인데 가는 길에 죽빵 딱 한 대만 때리게 해줘라..제발."

.

.

.

* * *

어제 이후.

북미의 최대 규모의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래딧은 축제분위기다.

그도 그럴 게 CLC니까.

안 그래도 세계 최강이라 손꼽히는 CLC에 새로운 강자가 들어왔으니까.

정체불명의 플레이어 Unknown Error.

트리플리프트의 부캐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 진위는 어제 확실히 그어졌다.

토이치 TV에 있었던 Unknown Error의 방송.

CLC의 계정으로 방송을 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를 증명한다.

하나는 Unknown Error가 CLC소속이 맞다는 사실.

그리고 Unknown Error는 트리플리프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CLC의 다른 선수들 또한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100% 반박할 수 없는 증거까지는 아니라지만 최소한 의심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그 Unknown Error가 개인방송에서 목소리를 드러냈으니까.

이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

북미의 로드 오브 로드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팀에 대해 매니아성이 높다.

어느 정도냐면 대한민국의 오빠부대에 준하다고 할까.

당연 좋은 의미로 열성적이다.

그런 그들 중 단 한 명도 CLC 선수들과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공증이 있었으니 더 확인할 것도 없다.

완전히 파티투나잇이다.

└CLC의 롤드컵 우승을 가로막을 자 누구냐!

└어차피 LCF에서 CLC가 우승한 시점에서 반론의 여지가 없지, 암.

└크! 그냥 조별리그 생략하고 바로 우승전 가자!

자칫 오만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북미 로드 오브 로드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래딧에서 감히 CLC의 우승에 반박을 달 수 있는 이 없으리라.

광신도와 같은 래딧유저들은 하루빨리 롤드컵이 열리기만을 손꼽고 있다.

그런데.

─아, 핫숏입니다. 또 놀러왔어요!

조금 난데없는 타이밍.

아무리 유쾌하게 인사를 한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가장 연습에 바빠야 할 그가 래딧에 글을 남기다니.

무슨 까닭인진 모르겠지만 일단 클릭하고 본다.

그리고 댓글부터 남긴다.

└선플! 근데 연습안함?

└빠져가지고! 어차피 우승했다 이거지?

└캬아, 진짜 핫숏이다!

신나디 신난 래딧 유저들.

그러나 핫숏이 뜬금없이 등장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상당히 부담되는 래딧유저들의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서랄까.

정확히 말하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다 발라당 까인 마당이 걍 지를게요.

Unknown Error는 일단 CLC인 건 맞습니다.

호쾌하기 짝이 없다.

다른 프로들은 자신의 자리때문이 말의 경중을 중요하기 마련인데 핫숏은 그런 것도 없다.

그럼에도 말실수 한 번 안하고 프로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렇기에 그는 실력부분을 제외하고도 인기가 많다.

└오오! 역시 Unknown Error CLC일 거 처음부터 알았다니까?

└난 마술사라는 둥 헛소리할 때부터 알아봄

└응, 나는 캐릭 생성할때부터 알아봄!

댓글란에 흔히 보이는 유치한 경쟁.

하지만 지금 신경써야하는 건 니가 먼저인지, 네가 먼저인지 그런 게 아니다.

일단이라니?

핫숏은 분명 일단이라고 말을 잘랐다.

─예, 일단이죠.

그는 CLC 소속이 맞고, 차후 CLC 소속으로서 활약을 할 테지만, 여기서 선을 긋건데 아직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게 확실히 정리하자면 Unknown Error는 롤드컵에 나오지 않아요.

아니, 그걸 굳이 왜 지금 말해서 실망시키는 건지.

래딧유저들은 핫숏이 원망스럽게도 느껴졌지만 핫숏은 유쾌하게 받아쳤다.

─그야 혹시라도 롤드컵에서 우승 못했을 때를 위한 보험이랄까 하하.

아야, 농담이니까 돌던지지 마시고요.

어차피 방송경기 나가면 기존멤버가 참가한다는 사실을 다 들키니까 미리 말해두는 겁니다.

나중에 또 얘기가 나올까봐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Unknown Error는 성장 중이다.

그렇기에 아직 CLC 소속으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다.

가히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웬만한 프로보다 잘하는데 아직 성장 중이라고?

└혼자서 독나타스 듀오를 잡아낸 마당에 말이 돼?

└어제 방송보니까 혼자 마스터티어를 브론즈마냥 박살내던데 거기서 더 성장하면 롤 혼자하겠네ㅋㅋ

너무도 허황되기에 래딧유저들 모두가 흘려 넘겼다.

원래부터 가끔 정신나간 소리를 내뱉곤 하는 게 핫숏의 컨셉이기도 하고.

또 그러한 부분조차 핫숏의 매력이기도 하기에 큰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렇게 핫숏이 남긴 글의 마지막은 훈훈하게 정리됐다.

롤드컵에서 부디 우승을 해달라는 팬들의 응원부터 시작해.

핫숏 놀지 말고 똑바로 해라! 같은 장난성 메세지들까지.

그것들조차 답답하며 니들이 뗘라!

끝까지 장난스러운 글만 남기고 간 핫숏이었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핫숏은 단 한 마디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

.

.

* * *

"에취!"

조금은 쌀쌀해진 날씨.

한국보다는 훨씬 덜 하다지만 그게 또 문제다.

평소에 하도 따스한 로스엔젤리스다보니 옷을 얇게 입고 다닌다.

'폼잡지 말고 겉옷 걸치고 나갈 걸.'

살짝 있는 감기기운에 몸상태가 썩 괜찮은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어제 외출은 제법 의미가 있었다.

예은과 함께 했던 저녁식사는 다소 빡치긴 했지만서도 나름대로 끝맺음된 게 있었다.

갈비를 쳐드시느냐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것 같았던 예은.

솔직한 속심정은 어떻게 반응할지 곤란했었다고 한다.

'뭐, 그럴만도 하지만.'

어제 갈비집에서 고기 먹으며 가볍게 소주 한 잔.

나는 몰라도 쟤는 주량이 센 편이니 취하진 않았겠지만서도 말문이 조금 트인 모양이다.

덕분에 제법 속사정까지 들을 수 있었다.

예은에겐 정해진 미래가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

입 걸걸한 성격파탄자 주제에 아주 잘 나가신다.

하지만 딱히 공부때문에 입장이 난처한 건 아니라며.

우울한 표정으로 자기 팔을 끌어안은 예은은 갈빗집 계산을 마친 내 팔을 갑자기 잡아채더니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할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다면서.

후식은 자기가 쏜다고 하시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지만 메뉴 욕심은 많아가지고 내꺼까지 지가 고르셨다.

먹고 싶은 게 있었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많았다면서 시키신 메론빙수.

메로나도 그렇고 메론을 참 좋아도 하신다.

주문한 메론빙수가 도착하고 테이블에 놓인 양을 보자니 입이 떡 벌어졌다.

나라면 빈속이라도 먹기 애매할 수준.

자기 돈 아니라고 갈비를 아주 배터지게 먹은 예은을 바라보며 다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있댄다.

보통 사이즈보다 큰 스푼을 삽처럼 퍼서 꾸역꾸역 잘도 퍼먹었다.

평소에 꽤나 스트레스받은 게 많으신지.

울분과 함께 빙수를 삼키면서 꺼내는 이야기.

하도 쩝쩝대며 말해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요점은 대략 정리가 됐다.

'조금 심하게 방임주의인 우리 부모님도 그렇지만, 그 반대도 또 문제네.'

요즘 대학생들이 1,2년 휴학하고 자기계발하는 건 흔하디 흔하다.

굳이 자기계발이 아니더라도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방황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부모님이 꽉 잡고 있는 바람에 그러기 힘들다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평소에 못된 말만 입에 달고 사는 녀석이 투덜투댈대는 모습은 흥미가 깊었다.

얘도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할 때가 있구나.

게임에서도 그렇고 단 한 번도 지 속사정은 털어놓은 적이 없었는데 어제의 일로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딩동!

일요일의 오후.

주말은 여기 호텔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 붙이러 왔어. 아함~."

"…여기가 니 안방이세요?"

문을 열자마자 대뜸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더니 주무시고 싶단다.

어처구니가 없어 쳐다보는 나를 툭 밀쳐내더니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가 이불에 골인하신다.

그래도 뭐, 이해는 해줄 만도 하지만.

"됐다, 자라."

"뭐가 말했어?"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며 사는지라 피곤에 상당히 찌들어 산다고 하니, 친구로서 이해는 해줄 수 있는 노릇이다.

일단 방송부분에 대해서는 훼방하지 않겠다 확답도 들었기에.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쟤가 뒤에서 코를 골던, 침을 질질 흘리던 토이치TV를 키고 방송을 하기로 했다.

다만, 훼방을 하지 않겠다는 거지 참견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 게스트할래, 게스트!"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침대에 반쯤 누워있는 녀석의 눈동자.

분명 조금 전까지 피곤해 죽겠다던 썩은 동태눈깔이 동그랗게 커진다.

가끔이긴 하지만 은근히 표정변화가 재밌는 녀석이다.

"그래, 언젠가 그 다크써클이 사라지면 말이지."

"…티 많이 나나?"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거진 민낯으로 다니던 신경 굵은 녀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굳이 화장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결정적으로.

"멍청아. 첫 날엔 안 했잖아."

"…니가 더 바보다, 뭐."

기는 세가지고 어떻게 한 마디를 지지 않는다.

그래도 피곤하긴 한지, 내뱉듯 말을 던지고 고개를 빙돌려 새우잠을 청하는 녀석.

곤히 잠든 얼굴에 낙서를 해줄까.

장난스런 생각이 떠오르면서도 막상 하지를 않는 것 보면 나도 참 물렁하기 짝이 없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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