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77화 (17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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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치TV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린 주말.

토이치TV를 비롯해 이러저러 일도 있었고.

특히나 예은의 투정을 들어 주다보니 시간 가는지 몰랐다.

사실 남이야기 들어주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서도.

평소에 자기 얘기를 한 번도 하지를 않던 녀석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니 나중에 약점 하나 잡기 위해서라도 성심성의껏 들어줬다.

물론 진지하게 말이다.

사람 감정이라는 게 묘해서 딱히 해결되지 않더라도 남이 순수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완화되는 법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속에 감정을 깊이 쌓아두는 일이 많다는 말이 있다.

그 녀석의 성별이 정말로 여자인지는, 외견을 제외하고 따진다면 심각히 의심될 때가 있지만 일단.

그래도 미묘하게 친구사이인 건 맞는만큼 고민의 해결은 못해주더라도 맞장구정도야 쳐줄 수 있었다.

'고 녀석, 그렇게 말 많은 건 난생 처음 봤지.'

토요일날 카페에서 한 번 입을 터놓고 난 후로는 완전히 말문이 터졌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라고 속시원히 외치기라도 한 기분인지, 일요일에도 한참이나 조잘조잘 내 방에서 떠들다 갔다.

심지어 밤중에도 전화를 걸어 내 소중한 잠시간을 빼앗더라.

'그런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나도 이제 꽤 아슬아슬하니까.'

다가오는 주중의 시작은 이전과는 느낌이 다르다.

조금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게.

'오늘이 지나면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는 건가.'

바로 이번 주 금요일에 개최된다.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

줄여서 롤드컵이라 불리우는 국제규모의 롤대회가 지금 내가 위치한 로스앤젤레스, L.A에서 열린다.

'결과를 알고 있는 나로선 안타깝긴 해.'

시즌2의 로드 오브 로드를 장식했던 쌍두마차.

북미와 유럽의 몰락이 회자되는 시발점이다.

심지어 현재 TSL과 함께 최고의 성세를 자랑하는 북미의 두 기둥.

내가 몸담고 있는 CLC가 광탈하게 된다.

단순히 실력차이로 졌다기보다는 짙은 컨디션 난조.

변명같이 들리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게임을 보여줬다.

다 이겨 놓은 게임을 잇따른 실수에 두 번이나 내줬으니까.

만약 조금 더 긴장된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럴 일은.. 없으려나.'

사실 조금은 생각하고 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일어나면 어떨까 하고.

무언가 계기가 있어 각성을 한다던지 같은.

그리고 계기라는 게 생긴다면 그 방아쇠는 내가 아닐까 하는.

'…과대망상이지. 시도하지도 않을 테고'

내가 굳이 CLC에 전화해 조언을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정해진 역사의 흐름을 내가 비틀어서야 본말전도.

나는 딱히 CLC가 롤드컵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면서 박수 짝짝 쳐주고 싶은 게 아니니까.

툭 까놓고 말해서 나 잘먹고 잘사는 게 내 목표다.

CLC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쉽게 생각될 수 있겠지만서도.

CLC가 우승해버리기라도 하면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없어진다.

이미 흥하고 있는 게임단에 공적 하나 더 세운다고 부각될 리 없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알고 있던 역사의 흐름대로 흘러주는 편이 좋다.

'애초에 가능은 한 걸까.'

그럼에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나라는 존재가 정해진 역사의 흐름을 뒤틀 수 있을지.

지금까지의 선례를 생각하면 충분히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예를 들만한 일도 있었으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테이커가 챌린저스 리그에 출전하기도 했었지.'

내가 기억하기로는 테이커가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건 시즌3부터.

하도 유명한 선수라 모를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겪고 있는 현재가 증명한다.

알고 있음에도 조금은 기대가 부푸는 게 사실이다.

곧 개최될 롤드컵에서 최소한 허망하게 탈락은 하지 않기를.

일단은 CLC의 일원으로서 간곡히 빌어줬다.

'한 번 기도해줬으니 의리는 다 지킨 셈이고.'

만약 핫숏이 듣는다면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이 이상 나에게 바라는 건 계약사항에 없었다.

돈받은 만큼 일해준다.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숙지하는 규율아닌가.

그리고 정말로 계약사항을 이행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솔로랭크의 점수를 올리는 게 먼저다.

쿠웅!

익숙해졌음에도 간간히 사람 간 떨어지게 하는 솔로랭크 큐 잡힐 때의 소리.

무거운 책받침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나는 물론이거니와 시청자들까지 깜짝 놀랐다.

└오 드디어 잡혔네.

└기다리다 잠들 뻔..

└난 살짝 졸고 있었음.

└천상계라 그런지 장난아니게 오래 걸린다 야.

높은 점수대의 큐라는 게 으레 그렇다.

마스터 초입만 해도 10분 이상씩 걸릴 때가 흔하게 있으니까.

더군다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그냥 천상계가 아니니까.'

솔로랭크가 에베레스트에 준하는 거대한 산이라고 한다면 그 까마득한 정상의 목전이다.

그림동화속에서나 볼법한 산구름들을 살짝 지나친 곳이라 할 수 있다.

혼돈! 파괴! 망가!라 불리우는 마스터 초입을 지나 한숨 돌릴 수 있게 되는 마스터 중반 점수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유저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어 번거로워지는 구간이기도 하다.

어지간한 현지인들은 조금만 한 눈 팔아도 벌러덩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이 흔하니까.

아무리 나라고 해도 마스터 초입마냥 마구마구 양학을 하긴 힘들다.

내가 이전에 연승을 하며 강제 오픈을 받아낸 것도 결국 적의 구멍을 잘 찔렀기 때문.

그리고 구멍의 틈을 힘껏 벌려 스노우볼을 굴려 넣은 덕이다.

그렇지만 여기 마스터 중반 점수대쯤 되면 애초에 구멍 자체를 찾기 힘들어진다.

때문에 압도적인 양학을 하는 경우는 잘 나오지 않겠지만.

'안정적으로 이기만 그만이지.'

자신감이 있다.

게다가 요즘은 챔프 추천도 받지 않고 있다.

연습도 안된 챔프들 막하다간 자칫 지기라도 하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하루 빨리 올라가야 한다.

'여유가 있진 않단 말이야.'

정확히 나흘남은 롤드컵.

그 전에 그랜드 마스터를 달성해야 하기에 지금 나는 심리적으로 상당히 빠듯한 상태다.

무난하게 나아가고는 있다지만 언제 발목을 붙잡힐지 모른다.

로드 오브 로드는 그날의 컨디션이 영향을 지대하게 끼치는 게임.

잘못하다 멘탈이라도 한 번 깨져서 하루를 공쳐버리면 그랜드 마스터에 입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뭐, 결국 개인만족에 지나지 않긴 해도.'

핫숏에게 당당히 인사를 하겠다 이리저리 돌려 결심했지만.

결국 그 본질은 나 자신에 대한 약속일 뿐이다.

이렇게라도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나태해지는 법이니까.

내 본성이 게으르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족쇄가 필요하다.

─Welcome to Summoner's field.

이번 게임에서 내가 선택한 라인은 정글이다.

이전까지는 탑미드와 원딜을 번갈아가며 돌렸지만 한동안은 정글을 하기로 결정했다.

딱히 일반적으로 정글이 캐리하기 좋다는 이유로 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현재 가장 캐리력이 좋은 라인은 미드와 원딜이 맞으니까.

여기보다 낮은 구간에서는 원딜을 할 때 서폿때문에 답답한 감이 있지만 마스터 중반대의 서포터들은 최소한은 해준다.

공격적인 플레이야 서로가 호흡이 맞아야 한다지만 수비적인 태세는 기본적으로 취할 줄 안다.

산전수전 공중전 정도는 가뿐하게 겪어본 이들만이 마스터 중반 점수대에 안착할 수 있는 법.

서로가 조금 안 맞더라도 수비적으로 한다면 그렇게 심하게 터지진 않는다.

문제는.

'정글러가 너무 답답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타까지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 지루하다는 게 문제지.

기본적으로 서로가 사리면서 성장해 한타를 꽝! 맞붙는 형식으로 게임의 승패가 결정되는 시즌2.

심지어 그러한 메타가 정형화된 북미서버다 보니 더욱 심각하다.

양팀 정글러들 초반에 하는 꼬라지보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미드나 탑으로 혼자 날뛰어 캐리하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다.

원딜러로 혼자 딜 우겨 넣어 한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슬슬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정글로 전라인 갱킹다니면서 터트리는 것 또한 썩 좋은 방법이라고는 볼 수 없기에.

나는 토이치를 택했다.

일단 토이치라는 챔피언은 원딜러로 설계돼있다.

은신이라는 특성상 세코등과 비슷하게 정글러로도 활용이 가능하지만, 기본 스펙이 낮아서 정글을 도는 게 다소 힘이 든다

그러한 단점을 가뿐히 극복해낸다.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단 말이지.'

원딜챔프로 정글을 도는 것은 흔히 말하는 요령이다.

요령이 있고 없고의 차이로 초반 정글링의 피관리가 결정될 정도.

숙련자라면 거진 한 대도 맞지 않고 정글을 도는 게 가능하다.

촹!

촹!

현재 시즌2의 정글엔 아주 미묘한 위치가 존재한다.

마치 버그와도 같다.

정글몹은 나를 건들지 못하는데 나는 정글몹을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는 얍시자리.

정말 1mm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서있을 수만 있다면 실현시킬 수 있다.

└방장 얍시자리 쓰네ㅋㅋㅋㅋ

└근데 저 위치 진짜 애매하던데. 프로게이머라 그런지 감도 좋다 진짜.

└저거 나도 썼었는데 한 번 실패하면 짜증나서 안하게 되더라.

우연에 의한 경험이든,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봤든 간에 아는 사람은 많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껄끄러울 뿐.

얍시자리에서 1mm만 앞으로 가면 정글몹에게 맞게 되고.

역으로 1mm 뒤로 가버리면 정글몹이 타겟을 잃고 되돌아가서 체력을 회복한다.

그러면 기껏 때려 놨던 정글몹을 다시 처음부터 잡아야 한다.

때문에 알려져 있음에도 쓰이지 않는다.

물론 나라고 정글링을 할 때마다 자리를 정확히 잡는 게 번거롭지 않은 건 아니지만.

'초반만 조금 수고해주면 되니까.'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정글을 돌아야 한다.

최소한 목표했던 아이템까지는 뽑아야 하기에.

정글을 한 바퀴 깔끔하게 돌아 빨간장갑을 사는 게 목표다.

티링!

빨간장갑, 속칭 빨장은 오직 정글링에만 특화된 아이템이다.

도마뱀 장군의 혼령처럼 챔피언에 대한 데미지는 없다지만.

정글링만큼은 어떤 챔프도 빠르게 해줄 수 있기에 정글링이 버거운 챔프일 수록 효율성이 높다.

└토이치 정글은 초반갱아닌가? 함 찔러보지.

└그러게, 나같으면 발화들고 미드 2렙갱 갔음.

└후반가면 정글 토이치 유통기한 오는데ㅋㅋ

나라고 킬먹기 싫어서 갱을 안 가는 게 아니다.

단순히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이곳은 마스터 티어에서도 실력자들만이 모이는 중반 점수대다.

레드를 먹은 토이치의 2렙갱에 대비를 하지 않을 리가 없다.

결정적으로.

'어중간하게 실패하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원딜러의 특성을 지닌 정글챔프는 정글링을 기반으로 한 무난한 성장이 필수다.

유통기한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원딜 정글러에 대한 곡해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점멸이 허무하게 빠지거나 레벨링이 뒤쳐져 적팀의 표적이 되면 안된다.

그렇다고 너무 정글링만 하면 안되고 한 번의 갱각을 아주 날카롭게 잡아준다.

그럴 거면 리심같은 거 해서 초반갱으로 전라인 터트리고 다니지, 왜 토이치를 하냐고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살금살금..!>

레드가 사라지기 직전.

한 번도 갱킹을 가지 않은 토이치 위치를 적팀이 모르고 있을 때 봇라인에 4렙갱을 노린다.

그것도 직선갱으로.

당연히 직선갱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상황일지라도 점멸로 회피하는 게 가능하다.

그럼에도 토이치는 노려볼 만하다.

Q스킬을 선마하는 토이치의 은신 시간은 상당히 길기에, 느긋이 적챔피언의 지척까지 도달할 수 있다.

적 서포터 소리커의 바로 옆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한 순간 지체없이 공격을 시작한다.

<내가 왔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평타를 꽂아 넣는다.

정글링을 위해 공격속도 룬만을 들었기에 한 방, 한 방의 데미지는 약하다지만 토이치의 패시브.

중독은 내가 이전에 플레이했던 도라이븐의 출혈과 비슷하게 적을 때릴 때마다 독스택을 중첩시킨다.

츄우웅..!

마스터 티어다운 빠른 판단력.

소리커는 내가 나타나자마자 탈력을 걸고 점멸을 사용해 도망갔다.

물론 힐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아군 서포터 두두가 걸은 발화때문에 그 회복량은 많지가 않다.

나는 눈덩이에 의해 발이 느려진 소리커를 따라가 6스택을 쌓고 터트렸다.

퍼엉!

토이치의 E스킬 맹독폭발.

내가 쌓은 독스택에 비례해 강렬한 한 방을 선사하는 스킬이다.

탈력의 효과가 끝나자마자 정확히 들어갔다.

소리커에게 묵직하게 터진 맹독폭발이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의 물리피해를 가한다.

하지만 강력하다 해도 한 방 데미지다.

이미 소리커는 포탑 저편까지 피신한 상황.

더 이상 후속타따위 없을 텐데도 이상하게 소리커의 체력이 줄줄이 빠지고 있다.

그 이유.

치익..!

기어코 따라가 독화살을 한 방 더 먹인 보람이 차고 넘치는 딜계산.

레드버프와 발화, 그리고 중독의 고정데미지가 연주하는 삼중주가 소리커를 사르르르.

토이치가 좋아하는 샛노란 치즈처럼 진하게 녹여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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