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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치TV
└우우! 승격전은 끝내고 가라!
└방장 지금 잠자면 내일 승격전 떨어지라고 저주건다.
└깔끔하게 승격전 3승하고 끝내자. GOGOGO!!
그랜드 마스터 승격전을 결정짓는 마지막 판.
정말 고되기는 했지만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더 하라고 떠들썩대고 있다.
내가 오늘 방송을 몇 시간 한 줄 알고.
"그랜드 마스터 승격전..! 은 내일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잘 자용~."
나는 산뜻하게 인사를 마치고 채팅창에 메세지가 주루룩 올라오기 전에 토이치TV의 방송을 서둘러 종료했다.
하나하나 붙잡고 이야기들어주다보면 밑도 끝도 없기에.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재빨리!
방송을 마치고 의자에서 일어서니 허리가 결린다.
어깨도 상당히 뻐근한 게 피로감을 호소한다.
그럴 수밖에.
'아이고오, 삭신이야.'
오늘 하루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시간이 무려 15시간.
중간중간 짧았던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게임만 했다.
정말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
마지막에 훅 꺼버리긴 했어도 이렇게나 오래 했으면 솔직히 착한 방종각 인정해줘야 한다.
당연히 이렇게 오래할 생각이 없었지만 오랜만의 승부욕이 나를 떠밀었다.
'그래도 중간에 독나타스듀오만 안 만났어도 쉽게 갔을 텐데 참.'
나는 한숨을 내쉬며 오늘 있었던 게임들을 회상했다.
사실 오늘 그랜드 마스터 승격전까지 띄울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었다.
어제만 해도 승률이 7할이 안 됐으니까.
마스터 상위권에 올라온 이후로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게임이 운빨을 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방송을 키고 게임을 하다 보니 저격밴도 상당히 당해버려서 고승률을 유지하는 건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게임이 잘 됐다.
팀운도 팀운이거니와 게임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풀렸다.
이 기세를 탄다면 어쩌면 그랜드 마스터를 뚫을 수 있을지도 오후의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순풍을 타고 있던 나에게 갑작스런 난항이 들이닥칠 줄이야.
하필이면 북미의 유명한 프로팀 중 하나인 독나타스의 주전멤버들을 상대로 만나버렸다.
그것도 계속해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사실 찔리는 게 없는 건 아니다.
이전에 다이아구간에서 슈퍼계정 부캐를 키우고 있는 독나타스 듀오를 만난 적이 있으니까.
그 때는 내가 세코로 박살을 냈다.
게다가 게임이 끝난 후에 몇 번 친구추가 메세지를 보낸 것을 전부 거절했다.
물론 그것 뿐이라면 그때의 앙금이 다소 남아있었구나 했겠지만 풀렸다고 생각해다.
래딧에 Unknown Error, 내 이야기가 터졌을 때 독나타스가 글을 올렸었으니까.
나중에 확인한 글 내용은 분명 호의적이었다.
그때 일에 앙금이 남아있는 듯한 어투는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저격을?
'뭐, 우연히 만날 걸 수도 있겠지만서도.'
결과적으로 독나타스 듀오를 질리도록 상대로 만난 탓에 대략 3시간이나 낭비해버렸다.
이기고 지고, 이기고 지고를 반복.
나도 독기가 올라서 어디 한 번 갈때까지 가보자 멈추지 않고 게임을 돌린 탓도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늦은 저녁이 되자 상대 쪽에서 게임을 그만 돌렸고, 나도 다시금 정상적인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발목이 잡혔다는 분한 감정은 남아있다.
나는 손해본 만큼 보충을 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게임을 돌렸고 기어코 그랜드 마스터 승격전까지 띄워버렸다.
그것이 방금 전까지의 일.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자자.'
오늘은 이걸로 깔끔하게 마무리.
몸에 있는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노곤한 게 잠이 솔솔 온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면 곧바로 잠에 들 수 있을 터.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쓰러졌고 잠에 빠졌다.
아니, 빠졌다고 생각했던 찰나에.
푹신하디 푹신한 침대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던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링~♬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는 녀석은 대체 머리 뭐가 든 거야?'
막 잠이 들려던 찰나에 짜증이 났다.
더욱이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반갑지가 않은 녀석.
나는 받자마자 퉁명스러운 어조로 소리쳤다.
"왜!"
─죽을래? 어따대고 승질이야?
예상했던 대로 표독스러운 반응이 들려온다.
물론 졸리다고 해도 믿는 구석이 있기에 저지른 거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화니까.
─..토요일 날 가서 보자.
"하하, 농담도 못하네 농담도. 그래서 전화는 왜?"
실패해버린 딜교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지금이라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 녀석이 어째서 전화를 걸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용건도 없이 전화를 걸만큼 살가운 녀석이 아니니까.
'예은 이 녀석이 오밤중에 웬일이야?'
이런 심야에 전화를 걸어 놓고 목청높일만큼 싹수가 노란 녀석이 달리 있을리가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데 대체 왜 일까.
뜬금없이 전화를 건 이유가 정말 짐작도 안된다.
─뭐, 그냥.. 오늘 방송 재밌게 하길래….
내가 방송하는 걸 알려주긴 했지만 찾아 보라고는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는데.
그리고 얘가 그런 걸 찾아 볼만한 녀석도 아닌데.
무슨 심정의 변화인지 내 방송을 본 모양이다.
게다가 말꼬리를 흐리는 게 뭔가 심상치 않다.
─하? 딱히 따지려는 거 아니거든. 제법.. 나쁘지 않게 하기도 했고.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내 실력에 흠잡을 데가 있을 리가 있나.
그래서 전화는 왜 한 건지, 그 부분이나 말을 꺼내라고.
나는 졸린 나머지 집요하게 용건을 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품이 찍찍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고 있기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일단 그.. 카지트하는 거 재밌어 보이길래..
말하는 태도가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
겨우 그 말하려고 전화를 하시진 않았을 텐데.
어울리지도 않게 소심한 척 하지 말고 본 목적을 말하라고 본 목적을.
─으윽, 그러니까.. 내가 카지트를 해봤는데 생각보다 조금 복잡해서.
"그래서 뭐? 나보고 요령을 가르쳐 달라고?
근데 왜 뜬금없이 이 시간대에 전화를 했을까.
네가 때려 죽여도 가르쳐 달라는 말을 내뱉을 사람은 아닌데.
─귀엽게 생겨서 하고 싶었는데 쪼금 어렵더라. 응? 가르쳐줄 거지?
"그래그래,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잠깐, 너 지금 카지트가 귀엽다고..?
물론 사람의 취향이 독특할 수야 있는 일이다.
특히나 독특한 사람이 독특한 취향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여성유저들이 한나, 쏘냐, 랄라, 티몽같은 귀여운 챔프들을 많이 하듯이.
네 녀석에게도 자신만의 취향이 있을 수도 있겠지.
네네톤이나 리심같은 우락부락한 챔프들만 골라서 하던 너이니 만큼 굳이 따지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납득해주마.
그것으로 용건은 끝이라고 생각해는데 자꾸 전화를 이어온다.
─응?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
응, 당연히 않아.
에일리언과 곤충이 혼합된 듯한 생김새를 귀엽다고 할만한 여자.
아니,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귀엽다고 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이 심히 유감스럽다.
맞받아쳐줬더니 갑자기 주절주절 카지트의 귀여운 부분에 대해 설명해대기 시작했다.
사마귀와 메뚜기틱의 외관을 혼합한 듯한 생김새가 매력있다고.
요리조리 뜯어서 보면 긴 갈고리도, 푸드덕대는 날개도 앙증맞다고 얘기하신다.
뭐,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할 말을 잃고 묵묵히 들어주던 나는 괜찮은 타이밍을 잡아 전화를 끊기로 했다.
헛소리를 들어줄 만큼 난 지금 맨정신이 아니니까.
그런데.
─잠깐!
최대한 자연스럽게 끊으려고 했는데 이 타이밍은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귀신이 따로 없네.
그래도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하던 이야기를 끊고 호흡을 거르는 것 보니 본론은 따로 있으신 모양.
나는 어쩔 수 없이 통화를 이었다.
─구할 수.. 있을까?
혹시는 역시였다.
주말에 해도 될 얘기를 굳이 지금 시점에서 전화로 했다는 게 이상했다.
분명 하나 이상의 용건이 더 있을 거라 짐작을 하긴 했지만.
"티켓? 있기야 있지.. 근데 맨 입으로?"
이러니저러니 해도 얘도 롤을 어지간히 좋아하긴 하는 녀석.
곧 로스앤젤레스에서 치뤄지는 롤드컵.
오늘이 지나면 겨우 이틀밖에 남지 않은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의 티켓을 한 장만 구해 달라고 말씀하신다.
─이 내가 너한테 부탁....... 하는 거잖아. 들어줄..... 거지?
당연 나는 CLC 소속으로서 관람티켓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니라 두 장이나.
원래라면 상혁씨에게 같이 가자 말을 꺼낼라 했는데.
정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몫 이외에 것을 하나 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최근 티켓이 보통 귀한 게 아니지.'
티켓은 당연히 유료다.
가격대가 꽤 있긴 하지만 부담될 정도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안도 꽤 사는 모양이고.
애초에 저 녀석 돈으로 구할 수 있었다면 전화를 해오지 않았을 거다.
나한테 전화를 한 이유는 당연, 지금 롤드컵 티켓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가 없기 때문.
작년에 비해 배의 배는 인기가 많아진 로드 오브 로드.
그런 로드 오브 로드를 대표하는 1년에 한 번 밖에 열리지 않는 롤드컵의 직관 티켓은 구하는 게 과장없이 하늘의 별따기다.
그나마 간간히 거래되던 암표가 희망이었지만 이제는 그 암표마저 수량이 없다.
최근 눈팅을 하고 있는 래딧에 간간히 징징글이 올라올 정도니만큼 확실한 정보.
정말로 구하고 싶었다면 한달 전에 미리 움직이던가.
이제와서 왜 나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시는지.
─그 때는 조금 바빴달까.. 어쨌든 우리 사이에 이 정도야 뭐.. 괜찮지?
"그래그래,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는 아니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희망적인 예은의 대답이 들려오는 중간에 사뿐히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니 말마따나 우리가 귀하디 귀한 티켓을 막 줄 사이는 아닌 것 같으니까.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전화를 끊자마자 귀따갑게 울리는 통화음.
한 번 더 끊어줬음에도 끈덕지게 걸어온다.
이대로 핸드폰을 꺼버릴까 하다가.
'후환이 살짝.. 아니, 넓은 마음으로 한 번만 기회를 줘볼까.'
절대 토요일 날 내 방을 엎어버리기라도 할까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저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줄까 생각한 거지.
다시 전화를 받은 내가 수화기에 귀를 기울이자마자 예은의 음성이 터져나온다.
─밥! 밥사줄게!
내가 전화를 끊기라도 할까.
상당히 급하게 소리쳐온다.
이거 참 내가 살다살다 너한테 밥을 얻어먹을 날이 오다니.
제법 흥미로운 제안이다.
하지만 거절한다.
난 누구랑 달리 밥순이가 아니니까.
─바, 밥순이?! 너 죽을..!
"티켓."
윽박지르는 예은에게 단 한 마디 전하니 알아서 닥치신다.
이거 참 이토록 편할 수가.
전화기를 들고 부들부들 대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흐뭇하기 그지없다.
간만의 갑질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는 예은을 최대한의 한계까지 쪼아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이라는 생각.
슬슬 폭발해서 뒤집어 엎어지기 직전에 당근을 물려주기로 했다.
물론 조건은 있다.
"그럼 금요일 4시까지 강남호텔 앞으로 집합. 알아 들었습니까?"
─갈 수야 있지만.. 설마 같이 가자는 얘기?
그 소리다.
알아듣는 게 참 느리기도 해라.
"내가 요즘 어깨가 결리기도 하고, 주위에 또 내 돈으로 가기엔 아쉬운 식당이 몇 곳 있더라고~."
거만하게 말을 마치고 나니 수화기 너머로 진동이 느껴진다.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듯 진동음이 들려오는 게 심상치 않다.
어쩌면 역린을 건드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여차하면 하나 정도는 취소를 해야겠구나 생각하던 찰나에 예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내일모레 보던지.
뚝.
생각보다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닌 듯한 음성.
한 마디를 남기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제 뭐 받을 건 다 받았단 건지.
재미 볼만큼 봤으니 상관은 없지만서도.
시시한 반응에 조금 김이 빠졌다.
그런데.
'어깨는 조금 잘못 말한 듯한 감이..'
살짝 트라우마가 남아버린 걸까.
예은의 손아귀 힘을 떠올리니 오슬오슬 오한이 난다.
이전에 한 번 내 어깨를 주물러 준답시고 손을 올렸을 때는 관절이 빠지는 줄 알았을 정도.
그런 예은한테 다시 어깨를 맡겼다간 앙갚음을 담아 내 뼈를 완전 분질러놔도 이상하지가 않다.
'어깨결림은…. 다 나았다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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