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92화 (19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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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마스터

독나타스의 주전 정글러, 루베리는 지금 하고 있는 게임에서 직접 오더를 맡아야 했다.

프로게이머들이 솔로랭크의 승패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히 이례적인 일.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게 된 데는 당연 이유가 있었다.

솔랭임에도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저격을 했다는 사실을 Unknown Error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더욱 더 이겨야만 한다.

원래 오더까지는 안 하려고는 안 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가 없다.

다른 팀원들이 마음대로 하는 것을 두고 보기에는 게임이 답답하게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중요하디 중요한 용한타.

용이 젠되기 전까지 채 1분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게임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루베리다.

루베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싼티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싼티나."

"판단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하는 거지. 난 언제나 따를 뿐."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싼티나가 오더 부분은 영 모르겠다는 말을 건네오는 싼티라를 보며 루베리는 머리가 아파왔다.

싼티나의 말마따나 확실히 게임의 밑그림을 그리는 건 정글러인 자신의 역할이 맞다.

그러나 원래라면 채색까지는 하지 않는다.

대회무대에서는 세세한 오더는 서포터인 마일러의 해주는 역할이니까.

물론 솔로랭크에서 오더따위로 골머리 썩을 수준의 자신이 아니지만 그것도 상대나름, 게임나름이지.

그 비밀 많은 유저, Unknown Error를 상대로 한 게임이 말리기까지 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도맡아 하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마일러가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시시콜콜한 오더는 정말 못 해먹겠어."

"크크, 여기 구간에서 나랑 네가 게임을 한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치트야 이 사람아. 뭐…. 치트를 치고도 지게 생겼지만."

게임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솔랭에서 3인큐를 허락하겠냐며, 어깨를 으쓱해대는 싼티나.

하지만 상황이 얼마나 안 좋게 흘러가면 그런 아쉬움을 토로하게 됐을까.

바로 저 Unknown Error의 기기묘묘한 운영 때문이다.

자신 혼자서는 몰라도 마일러가 있었다면 운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날 정도로 곧 진행될 용한타때문에 루베리는 골치를 썩고 있다.

용은 먹고자 하면 반드시 가져갈 수 있지만 적팀은 용을 단순한 시간벌이용으로 쓸 게 뻔하다.

자신들이 용을 치는 순간, Unknown Error는 탑라인 억제탑을 철거해버릴 터.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나는 건 당장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는 용이 아니라 더욱 큼지막한 바론을 먹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니시를 걸어 적팀을 몰살시키고 자신들도 미드 억제탑을 밀어버리는 거다.

같은 억제탑이라고 해도 탑보다는 미드가 중요도가 높으니까.

게다가 킬까지 생각한다면 그 가치는 비교할 수도 없다.

적팀이 그걸 당해줄 리는 없다는 게 문제지.

'이니시가.. 부족해.'

현재 루베리의 팀은 철저한 극한타 조합의 짜임새를 갖췄다.

이만큼 완성도가 있는 조합은 대회게임에서도 짜기가 힘들 정도.

정말 우연이 겹쳐서 높은 레벨의 한타조합이 완성됐는데 문제는 적팀이 싸워주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반항만 하면서 시간을 끌고만 있다.

한타만 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음에도 마땅히 이니시를 걸 수단이 없으니 답답한 노릇.

유일한 이니시 수단은 스캐너를 플레이하는 자신이 샤랄라의 몽상을 키고 빠르게 뛰어가 누구 하나 낚아 채오는 것이지만.

"쟤네 아예 싸울 생각이 하나도 없는데?"

"알고 있다고, 제길!"

아무리 샤랄라의 몽상으로 순간 이속을 높이고 점멸을 쓴다고 해도 스캐너라는 챔프 자체가 뚜벅이라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말화이트나 말카림마냥 적팀의 의사를 무시하는 강제 이니시까진 불가능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군팀에는 그런 이니시가 가능한 챔피언이 없다.

한타가 좋은 대신에 강제 이니시가 불가능한 조합.

그렇다고 바론을 치는 것도 애매하다.

만약 Unknown Error가 봇라인 푸쉬를 했다면 당연 시도해봄직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바론과 가까운 탑라인에 있다.

그대로 억제탑을 밀면 모르되, 방향을 틀어 합류한다면 곤란하다.

바론의 공격은 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니까.

그만큼 보상도 짭짤하지만 바론을 치는 도중에 한타가 진행됐다가는 모든 것이 망한다.

자신의 팀이 한타조합이라고는 해도 바론이라는 적을 하나 더 끼고 한타를 하게 되면 승산이 희박하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

막다른 골목에 처한 루베리는 새로운 생각을 떠올려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세 번째 방법을.

'전부 모여서 탑을 푸쉬한다. 그러면 된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한타를 원하는 루베리의 팀이 오히려 한타를 거부하게 되는 꼴이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네톤[0/2/0]-한타 안 해요? 이러다 적이 용 가져가면 또 다음 용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광우스타[0/1/3]-그래서 님 티어가? 루베리가 오더해주는데 닥치고 듣자. 나도 가만히 있는데 마스터주제에 입털고 있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마스터티어 상위권에 랭크된 네네톤은 어디가서 실력으로 한 소리 들을 유저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 소환자의 전장에서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유저들에게 있어서는 평범하디 평범한 이곳 현지인일 뿐이다.

그에 비해 루베리는 부캐가 아닌 이상 만날 수 없는 귀인.

정말 어쩌다 새벽큐에 사람이 없어서 20분만에 걸리는 큐가 아니고서야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 그에게 감히 토를 달 수 있을 리가.

상황의 여의치 않아 게임이 영 유리하게 가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을 루베리와 싼티나의 탓으로 돌릴 겜알못은 이 구간대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탑을 밀면 Unknown Error가 과연 용을 먹을까? 훗, 그럴 리가 없지.'

확신이 있고 계산이 섰다.

결코 Unknown Error가 자신들에게 했던, 용을 먹는 동안 타워를 깨부수는 운영을 고대로 돌려주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세세한 오더는 몰라도 큰 그림을 그리는 건 루베리도 제법 자신이 있으니까.

용타이밍에 뜬금없이 탑을 밀자는 판단을 내린데는 깊은 속 뜻이 담겨있었다.

Unknown Error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의 다음을 내다보기 위함.

자신들이 탑에 모이면 애꾸사자는 용을 먹거나 합류를 하기 보단 봇라인을 푸쉬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행동의 방향을 이제와서 바꾸진 않을 터.

물론 탑과 비슷하게 억제탑이 위험한 건 맞지만, 생각대로만 된다면 억제탑은 지킬 수 있다.

그 방법은.

'애꾸사자가 맵에 보이는 순간 바로 바론을 친다.'

봇라인에는 2차 포탑이 건재한 만큼 바론을 먹는 동안 억제탑을 밀 시간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나지 않는다.

만에 하나, Unknown Error가 팀원들과 함께 탑을 막으러 온다고 해도 하책이다.

타워를 끼고 있다고 해도 광우스타가 있는 한 이니시 각이 무조건 나오니까.

자신들은 타워라는 다소의 패널티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극 한타지향형 조합이기에 이길 자신이 있다.

파앙!

용이 젠되는 시점에 루베리의 팀은 탑에 모여 포탑을 끼고 있는 상대를 압박했다.

럭키의 포킹으로 갉아 먹으며 기회가 오면 광우스타가 궁극기를 발동해 이니시를 건다.

정말 완벽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적팀에서 누군가 한 명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전 까지는.

'잠깐, 어디로 간 거지?'

그 사실을 알아채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적팀의 탑라이너 블러디체리가 없었다면 뒤로 뺑돌아 역이니시를 노릴 수 있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적팀의 원딜러 이즈레알이었다면 합류가 조금 늦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트와이스 페이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미니언 웨이브를 막기 위해서는 멀리서 스킬을 던져 라인클리어를 할 수 있는 트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즈레알이나 블러디체리로서는 버텨낼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니까.

골드나 플레마냥 실수로 합류가 늦었다는 변명이 통하는 점수대가 아니다.

절대 실수가 아니라 고의.

아무리 자신이 하던 점수대보다 낮다고는 해도 이곳은 그랜드 마스터의 초입, 프로게이머의 등용문과 같은 구간이다.

특이한 행동에는 색다른 의도가 묻어있다.

그리고 그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챈 것은 자신 뿐이었다.

루베리는 아군에게 핑을 미친 듯이 찍음과 동시에 급박한 목소리로 싼티나를 향해 소리쳤다.

"당장 바론으로 가자. 어서!"

"아니, 이번에 왜 또? 기적의 바론 오더라도 하겠다는 거야?"

싼티나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현실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설명할 틈조차 없다.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늦을 테니까.

어쩌면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

두-둥!

벌써 행동을 개시한 것일까.

머리 위에 떠버린 거대한 눈동자.

자신들의 위치가 적에게 낱낱이 알려졌다.

"우리 바론가는 거보고 쟤네가 이니시 걸려나 본데?"

옆자리에 앉은 싼티나가 중얼거려 오지만 결코 이니시가 아니다.

안 그래도 한타를 피하고 있는 적팀이 이니시를 걸 리가 있나.

텔레포트 스펠과 비슷하게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트페의 글로벌 궁극기.

발동한 이유는 당연히 이동하기 위해서지만,

현재 소환자의 전장에서 이동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치는 한 곳밖에 없다.

바로 봇라인.

타악!

타악!

루베리는 트페가 아군의 봇라인 2차 포탑을 파괴하는 장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트와이스 페이크의 카드 한 장, 한 장이 찰지게 박히고 있다.

게다가 트페 혼자 스플릿을 할 리가 있나.

애꾸사자가 부쉬에서 튀어나오며 포탑을 순식간에 철거하기 시작했다.

애꾸사자와 트페, 타워 철거 빠르기로는 악명이 높은 챔프들이다.

지금 당장 귀환을 한다고 해도 억제탑을 나가는 건 분명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남은 길은 이제 하나 뿐.

촹!

촹!

그나마의 다행일까.

한 발이나마 빠르게 움직인 덕에 바론을 먹을 시간은 빠듯이 나왔다.

바론 버프를 바탕으로 다시 봇라인을 압박한다면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터.

판단을 마친 루베리는 미약한 한숨을 내쉬며 인정했다.

'..한 방 먹었는데, 에러갓?'

바론을 먹는다고 해도 확실히 손해다.

억제탑 뿐만 아니라 봇라인의 2차 포탑까지 내준 셈이니.

하지만 아직 게임이 끝났다고 보기엔 이르다.

시간이 흐를 수록 결국 적팀은 한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될 테니까.

포탑을 빨리 부숴 얻은 글로벌 골드 또한 서서히 따라잡을 수 있다.

게임을 초장기적으로 보겠다는 판단.

억제탑을 내주긴 했어도 시간을 끌면 지루하게나마 승리할 수 있다고 루베리는 생각했다.

바론이라는 변수가 있었으면 모르되 자신들이 바론을 먹음으로서 그 변수가 사라졌으니까.

치사하리 만큼 빈틈없게 운영을 하면서 장기전을 가면 승리만큼은 거둘 수 있다.

솔직히 프로게이머 두 명이 솔랭에서 이겨볼려고 목숨을 거는 게 쪽팔린 일인 건 맞지만.

'그래도 질 수는 없잖아 최소한.'

어떻게 이기기라도 해야 체면이 그나마 덜 구겨진다.

이미 Unknown Error에게는 한 번 진 전적이 있기에 두 번까지 허락할 수는 없다.

때문에라도 필사적으로 이기려고 했는데.

모든 계획이 정말 어처구니 없는 한 방에 깡그리 무너져버렸다.

촤아앙!

이제 귀환을 타서 바론버프를 바탕으로 공성전을 하면 굳힐 수 있는 게임이었다.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차후 운영계획까지 전부 짜놨다.

그런데 난데없이 깔린 블러디체리의 궁극기 한 방에 모조리 물거품이 돼버렸다.

물론 적팀이 한타를 걸어왔다는 게 위기라는 뜻이 아니다.

한타를 걸어오는 건 오히려 환영이니까.

문제가 있다면 본진 쪽이다.

"야, 이거 끝났는데? 넥서스 날아가게 생겼다."

"점멸 궁.. 제기랄."

당연히 대비를 하고 있었고 광우스타가 밀쳐내기로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블러디체리가 점멸과 함께 궁극기, 그리고 각혈을 흩뿌리며 귀환을 방해했다.

블러디 체리의 궁극기인 붉은 감염이 터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4초.

블러디체리를 단칼에 찢어 죽이긴 했지만 팀 전원이 귀환을 타려면 4초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골 때리는 상황인데, 이즈레알과 쏘냐까지 점멸로 목숨을 던져오며 훼방을 해댔다.

그렇게 상대팀이 목숨을 교대로 버려가며 시간을 끄는 사이.

쌍둥이 포탑과 넥서스가 애꾸사자와 트페에 의해 철거되고 있다.

장기전까지 철저하게 계획했던 게임이 어이가 빠질 정도로 허무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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