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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94화 (19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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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챔피언 컵

그 날이 왔다.

별 일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지만서도.

내심 기다려지기도 하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꽝!

꽝!

예은과 롤드컵을 관전을 가기로 했던 약속날짜.

바로 오늘이다.

하지만 분명 약속시간은 4시라고 말했었는데 성격 급한 녀석이 벌써 와서 내 방문을 두들겨댄다.

아직 약속시간까진 30분이나 남은 데다 난 채 준비도 못 마쳤는데.

투덜투덜 이를 닦고 있던 나는 칫솔을 입에 물고서 현관문으로 향했다.

아무리 미운오리같은 녀석이라도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안으로 들여보내자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깜짝 놀라버렸다.

"…뭘 기분나쁘게 꼬라보고 있냐?"

썩은 표정의 띠꺼운 어조.

언제나의 대응을 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혹시 얘가 다른 사람이 아닐까,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으니까.

평소에 옷을 입어도 후드티부터 시작해 그다지 여성적인 특징이 띄지 않는 옷만 골라 입던 예은이다.

지금까지 입었던 옷 중에 가장 괜찮았던 옷이 호텔 직원복일정도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다녔다.

왜 그러고 다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딱히 불쾌감을 주는 복장도 아니었으니 굳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문제는 지금껏 당연하게 그래왔던 예은이 오늘은 아주 평범한 여성복을 입고 왔다는 사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형태의 긴 치마.

그 아래로는 검은 스타킹이 눈에 들어온다.

'나쁘진.. 않네.'

말려 올린 머리와 미약하게 맡아지는 향기.

얼굴만 훑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어렴풋이 화장품냄새가 나는 걸 보면 밖에 나간다고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 같다.

그 때문에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순간 헷갈려버렸을 정도다.

"아니…. 옷걸이는 괜찮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남이사. 장승처럼 서있지 말고 비키기나 하셔."

나를 밀치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우신다.

아니, 주말마다 말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 댁네 안방 아니라고요.

그래도 여기 호텔 침대 쿠션이 꽤나 푹신하긴 해서 빠져드는 것도 이해는 간다.

'확실히….'

나는 침대에 반쯤 누워 자연스럽게 새우잠을 자는 예은을 보며 생각했다.

성격은 개판이지만 외견만큼은 트집잡을 구석이 없다.

평소와 다른 느낌의 옷을 입은 것도 딱히 지적할 부분도 없이 잘 어울린다.

유감스럽지만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고 하는 소리가 정론임을 인정할 수밖에.

'뭐, 저 정도라면 부담스럽진 않지.'

옷에 신경쓰고 다니지 않는다고 타박하긴 했지만.

오히려 쓸데없이 화려하게 다녔으면 내가 난처했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번, 예은이 리뮤라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외관 하나로 반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니까.

아무리 내가 쟤를 소 닭 보듯 생각하고 있어도 가끔 입다물고 있을 때는 여자로 보일 때가 있다.

딱히 이성적으로 본다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말이다 순수하게.

'역시 신은 공평해.'

적어도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보다는 밸런스 패치를 잘 잡는 것 같다.

성격과 반비례하는 외모라니.

스탯투자를 올인한만큼 외관은 괜찮지만 역시 사람의 진가는 인성에서 나오는 법이지.

"빨리빨리 칫솔 안 움직여? "

"니가 빨리 와 놓고.."

예은의 눈치를 보며 조금 서둘러서 준비를 했더니 3시 50분 남짓.

잠깐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한숨 돌릴까 하던 찰나.

침대에서 예은이 펄떡 일어나더니 내 팔을 억세게 붙잡고 문 쪽으로 나간다.

"가자."

"아니, 아까부터 뭘 그리 서두르냐고. 천천히 좀 삽시다 천천히."

그렇게나 롤드컵이 보고 싶은 걸까.

빨리 간다고 빨리 열어주는 동네 야채가게가 아닌데.

내 팔을 강하게 끌고 가는 예은을 가까이서 관찰하니 역시나 무언가 이상했다.

조금 상기된 볼.

혹시 조금 아픈 건가 싶어 손바닥을 들어 이마에 갖다대 보았다.

어찌나 민첩하신지 갖다대기도 전에 쳐내셨지만.

"진짜 힘하나는 더럽.. 아니, 강력하십니다."

내가 이마 쪽으로 손을 향하자마자 손등을 휘둘러 툭 밀쳐냈다.

이 기지배가 진짜.

뼈로 때린 건진 몰라도 정말 얼얼하다.

멍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강력해지는데 보태준 거 있냐? 빨리 안내나 하시지..?"

내가 손을 부여잡은 사이.

어느새 내 옆에서 떨어진 예은이 팔짱을 낀 채 나를 삐딱하게 쳐다본다.

경멸의 눈초리.

딱히 감정을 담았다기보단 원래 저런 오해받을 눈초리를 종종 해대는 녀석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나조차 순간 욱! 상처받았다고.

오순도순 걸어다닐 만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나와 예은은 일단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택시 뒷자석에 예은과 나란히 앉은 나는, 아직까지도 뭐가 불만인지 팔짱을 끼고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는 예은을 향해 한 소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선 좀 어떻게 하면 안될까?"

오늘을 일단 내가 갑의 입장이기에 담을 수 있는 용기.

말을 내뱉으면서도 조마조마 했지만 생각보다 까칠한 반응이 돌아오진 않았다.

"내 시선이 뭐.. 어때서..?"

나를 향해 고개를 15도 정도 돌린 예은이 말꼬리를 내리며 되물어온다.

말투를 보니 자신도 조금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지만 나는 굳이 결정타를 넣었다.

물론 가능한 심기 안 건드리도록 조심스럽게.

"혹시.. 친구 많으세요?"

"…그런 거, 딱히 없어도 상관없잖아..?"

혹시나 하고 꺼낸 말인데 말꼬리가 약해지는 게 역시나인가.

확실히 세상사는데 친구 적어도 자기 자신이 못난 사람이 아니라면 크게 불편할 건 없다.

특히나 자기 자신에대해 지대한 자부심을 가진 너라면야 어지간하시겠지.

말하는 나도 딱히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설교하고 싶은 마음까진 없지만.

"네 성격은 그렇다 쳐도.. 솔직히 너 좀 무서운 거 알아?"

"윽..! 그래서 꼽냐?"

그런 면이 무섭다고 그런 면이.

예은이 나를 날카롭게 쏘아붙이더니, 눈을 가늘게 뜬 채 따갑게 째려본다.

그래도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이런 막말을 던질 수 있을까.

한 마디 크게 하려고 호흡을 가다듬은 순간.

예은이 의자에 닿은 손을 슬그머니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꽉 조여 온다.

"아니, 아프다고! 진짜로.."

"…솔직하게 말해봐."

보통 남녀가 손을 잡으면 두근거려야 하는데.

두근거리는 건 맞지만 다른 의미로 두근거린다.

꽉 쥐어진 손가락이 너무 아픈 나머지, 뇌에서 엔돌핀이 분비되는 바람에 심장이 팔딱팔딱 뗘댄다.

내 손가락의 모세혈관과 통각세포들아, 잠깐만 참아주렴.

"눈을 좀 웃어볼래? 그러면 훨씬 나을 거 같은데."

"…눈을 어떻게 웃어? 입도 아니고."

하하, 이 분 혹시 진지하게 하는 소리신가.

싶어 얼굴을 쳐다보니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진짜냐..'

그러고 보면 얼굴 표정변화는 꽤나 가지각색인 녀석이 웃는 쪽으론 거의 기복이 없었던 것 같다.

확실히 웃는 근육이랑 인상쓰는 근육이 다르다는 말은 익히 들어봤지만.

어떻게 너는 사람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발달을 하니.

"자아, 따라해바."

정말로 눈웃음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닐 터다.

하도 인상 찌푸리고 살다 보니 어떻게 웃는 건지를 모르는 거겠지.

때문에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다.

의도와는 조금 벗어나지만 최대한 웃기게.

나는 양쪽 볼을 올리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붙잡히지 않은 다른 한쪽 손으로는 코를 올렸다.

흔히 말하는 돼지 표정을 지었다.

"풋! 그건 그냥 웃기는 표정이잖아?"

목표했던 대로 예은이 웃어줬다.

웃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의도에서 다소 벗어났지만.

역시 순수하게 웃는 순간만큼은 사람의 눈이 웃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광대짓이 아니라 정말로 노리고 한 거다.

예은이 꽉 쥐고 있던 손을 풀고서 내 손등을 쳐댄다.

아프지 않은 정도로 찰싹찰싹.

이런 사소한 것에도 잘 웃는 녀석이 평소에는 왜 그러고 다녔을까.

'그러고 보니 웃는 모습을 보는 건 이게 처음인가.'

게임상에서 알고 지낸 몇 년은 그렇다 치지만.

조깅길에서 만난 이후만 셈쳐도 꽤나 많이 만났던 것 같은데 웃고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뚱하거나 찡그리거나 둘 중 하나.

평범하게만 있어도 그날따라 기분이 썩 좋아보이는 그런 느낌의 녀석이었다.

내 한 번의 체면구긴 덕분에 제법 분위기가 풀렸다.

그렇다고 내가 얘랑 가볍게 수다를 떨 사이는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곧바로 택시에서 내리려던 찰나, 예은이 차에서 내리던 나를 확 붙잡는다.

붙잡는 이유는 뻔하다.

택시비를 왜 내 몫의 택시비를 안 내냐는 이야기.

하지만 방금 전 훈훈했던 상황과는 별개로 난 오늘 돈을 쓸 생각이 없다.

"나 오늘 지갑을 안 가져 왔는데."

"하? 그게 말이 돼?"

안 그래도 기본적으로 싸늘한 예은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까지 더해졌다.

그래도 아까 한 이야기 덕인지 조금은 풀린 눈초리.

물론 믿는 바가 있기에 저지른 상황이다.

아직까지도 눈치를 못 채고 있는 예은에게 나는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기로 했다.

내 지갑이 지금 어디에 있는 지를.

"오늘 내 지갑은 너잖아? 혹시, 기억 안 나는 건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지갑을 안 가져온 건 아니다.

가져오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여주고 있으니까 굳이 가져올 필요성이 없었던 거지.

나는 헤맑은 표정을 지으며 예은에게 다시 한 번 웃는 얼굴을 가르쳐주었다.

.

.

.

* * *

택시를 타고 대회장에 도착했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다른 데서 잠깐 시간을 때우기는 애매하다.

안 그래도 지금도 사람이 바글바글 개미떼같은데 롤드컵이 개막되는 5시에 직전쯤엔 들어가다 깔려 죽을지 모른다.

저 거대한 미국인들에게.

그냥 한두 명 지나갈 때야 그렇다 쳐도 모여 있으니 그 압박감이 어마어마하다.

공항에서도 느꼈지만 지나가는 것조차 상당히 부담스러우니까.

평균적으로 키도, 등치도 한국 사람들에 비하면 크니까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굶주린 배를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나와 예은은 대회장 안에서 파는 음식들을 사들고 미리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런데서 파는 음식들은 자릿값 때문에라도 워낙 비싼 지라,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지를 않는 편이지만.

"..맛있냐?"

"이야, 정말 맛있다. 역시 음식은 남의 돈으로 사먹어야 제맛이지. 그치, 밥순아?"

가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도 느끼지만 이 팝콘은 정말 허기진 배에 스며든다.

절대 맛만 보고 넘어갈 수 없는 마술이 걸려있는 팝콘이다.

특히나 저 까칠한 예은의 돈으로 산 팝콘이라 그런지 짭짤한 팝콘이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그렇게 맛있으면 입에 쑤셔 박아 줄까?"

"미안, 미안하니까 허벅지 좀 놔줘.."

상당히 저기압 상태이신지 깐깐하시다.

내 허벅지 살을 검지와 엄지로 꽉 꼬집던 예은은 2초나 더 유지하고 한 번 확 비튼 후에야 놔줬다.

이 아픔의 정도를 보아하니 분명 멍이 들었겠지.

눈물을 찔끔 흘린 나는 다음부턴 신중하게 놀려야겠다고 다짐하며 팝콘 한줌을 입에 넣었다.

며칠 전, 내가 롤드컵 관람 티켓을 구해주는 대가로 단단히 얻어먹기로 약속이 오갔었다.

그렇다.

예은은 오늘에 한해 나의 지갑이다.

그리고 내 품에는 예은의 돈으로 산 거대한 팝콘과 핫도그 세트가 안겨 있다.

정말 말 그대로 거대한 팝콘.

한국 기준으로 생각했는데 이곳의 大자는 용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한국 영화관에서 샀던 것들보다 얼핏 봐도 3배는 더 많다.

그 大자 위에 있던 패밀리 용량을 시켰으면 얼마나 많았을지.

지금도 들고 있기 부담될 정도인데 적당히 시키길 잘했다.

'기지배가 진짜 손 하나는 매워.'

예은에게 꼬집힌 부위가 한참은 더 아릴 것 같지만 상관없는 기분이다.

쌤통도 제대로 된 쌤통을 먹였으니까.

그 식탐많은 예은이 자기 몫의 핫도그도 안 시켰다.

부잣집 아가씨나 되시는 분이 돈 아까워서 안 샀을 리는 없고, 분해서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겠지.

"크캬캬!"

"이게 어디서 쪼개고 있어, 죽을래?"

너무 통쾌한 나머지 웃음소리가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그 바람에 또 허벅지를 꼬집혀 버렸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아니, 몸이 아픈 건 맞지만 마음이 즐거워서 괜찮다.

하나 더 쌤통을 먹여줄 게 있으니까.

"야, 내기하지 않을래? 누가 이길지."

"하? 첫 경기는 얼밤이 이길 게 뻔하잖아. 내가 모를 줄 알고?"

입이 살짝궁 나온 채로 들은 척 만 척 한다.

그래도 대답은 하는 것 보면 영 관심이 없는 건 아닌 모양.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한테 부탁을 할 정도로  롤드컵을 그렇게 직관하고 싶었던 녀석이니까.

게다가 이 녀석이 얼마나 승부근성이 쩌는 지 난 아주 잘 알고 있다.

내가 자존심 슬금슬금 건들면 분명 내기에 응하게 될 것이란 녀석의 본성을.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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