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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95화 (19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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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챔피언 컵

롤드컵 경기장의 규모는 당연 어마어마하다.

가끔 TV에서 보는 롤챔스하고 비교해서는 실례가 될 정도.

실제로 어떤 시즌에서는 월드컵 경기장 자체를 빌려서 행사했을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만큼 롤드컵 경기장 크기는 기본적으로 어지간한 야구장에 준한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앉는 좌석의 위치는 상당히 중요하다.

저 멀리 가장자리에 앉거나, 너무 방향이 치우치면 관람하다 목 돌아가는 수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앉은 자리는 가장 보기 편한 앞라인의 좌석.

CLC에서 직접 나에게 신경을 써준 자리니만큼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이게 다 나님이 잘난 덕이지."

"…그래, 덕 좀 볼게."

한 대 맞을 각오를 하고 내질렀는데 예은의 반응이 영 싱겁다.

원래 이렇게 내뱉으면 받아쳐 주는 녀석인데.

어째서인지 오늘은 조금 가라앉아 있는 듯 하다.

그렇게 원하던 롤드컵에 와놓고 왜?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 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꾸역꾸역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지라 대충 대회분위기는 나고 있는 경기장이다.

'오늘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있긴 했지.'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이 계속 꿍해 있으면 일단 같이 있는 내가 불편하다.

내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띄워주자고 마음먹었다.

"너 혹시 CLC에 좋아하는 선수 있냐?"

"왜? 있으면 만나게라도 해주게?"

내가 CLC 소속이라고 밝힌 후로 이 녀석이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흔한 프로게이머에 대한 팬심이겠지 했지만, 말하는 걸 들어보니 꽤나 CLC를 좋아하는 모양.

어쩌면 오늘 롤드컵에 나오고 싶어했던 이유도 CLC때문일 지도 모른다.

'반응속도 보니까 역시 맞네.'

그것도 꽤나 관심이 깊은 모양.

평소였다면 실랑이를 벌이면서 얻을 것을 짜냈겠지만 오늘은 일단 관둔다.

애초에 얻어먹기로 한 날이기도 하고 기분도 저기압인 것 같으니 선심써줘도 괜찮을 터다.

결정적으로 주위가 슬슬 시끄러워지고 와중인 지라 시간이 더 가면 대화 섞기도 힘들어진다.

나는 쿨하게 긍정해줬다.

"한 번 물어 봐줄게. 무조건은 아니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정말??…. 아니, 뭐.. 쫌생이가 웬일 이래?"

아주 잠깐, 반색한 얼굴을 보았다.

금새 얼굴을 돌리고 아닌 척 하고 있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기분이 풀린 건 잘 된 일이지만 그래도 말이 좀 너무하시네.

나같이 밥 잘 사주는 쫌생이가 어딨다고.

오늘은 어쩌다 얻어 먹게 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네 목구멍으로 넘어간 음식이 한두 푼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가.

나는 욱하고 올라오려 했던 말을 다시 삼켰다.

그래도 방금 반응을 보니 꽁했던 게 제법 풀린 듯 하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자.

"야, 야. 내기하자, 내기. 대회는 역시 어느 한 쪽에 걸고 봐야 제맛이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첫 경기는 누가 봐도 얼밤 승리라고. 니가 반대 쪽에 걸어주면 또 모르지."

비위를 맞춰준 덕일까,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조금 전 예은을 띄워졌다고해도 가라앉을 걸 뻔히 아는 배에 타줄 사이는 아니니까.

확실히 예은의 말마따나 일반론을 내세워도 얼밤이 이길 확률이 높은 첫 경기다.

게다가 난 이미 얼밤이 이길 거라는 승패를 알고 있는 몸.

질 내기를 할 턱이 있나.

나는 서둘러 다음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럼 두 번째 경기는 어때? 니가 좋아하는 CLC경기인데."

"윽..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 내가 CLC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봐도 CLC가 이길 게 뻔하잖아, 그치?"

아니라고 말했다간 한 대 때릴 것 같은 표정하고서 묻기는 왜 묻는지.

속으로나마 대답해준다.

아니다.

CLC가 지고 만다.

내 기억력이 아무리 별로여도 역대급 이변이 터졌던 시즌2의 롤드컵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나.

오늘 진행된 첫 번째 롤드컵 조별 예선은 총 여섯 경기.

첫 번째 경기는 한국팀 얼밤 대 중국팀 인크레더블 게이밍.

두 번째 경기는 미국팀 CLC 대 중국팀 인크레더블 게이밍이다.

물론 예은이 얼밤이 이길 거라 단언한 것도 그럴 만하다.

최근 한국팀이 로드 오브 로드에서 꽤나 상승세인 데다 래딧에서도 한국의 우세를 점쳤을 정도니까.

그리고 두 번째 경기사 세계적 명문 CLC가 이길 거라 말한 것 또한 대단히 상식적인 발언이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이다.

"콜! 그럼 난 반대쪽에 걸게."

"너 요즘 궁하냐? 역배당 해줄 생각 없거든?!"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 평소의 뚱한 표정으로 예은이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철회할 생각도 없을 뿐더러 역배당을 노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상냥한 얼굴로 예은에게 다시 한 번 내기를 권했다.

"아냐, 아냐. 역배당같은 거 아니고 공평한 승부니까. 그러니까 할래?"

"난 나쁠 건 없으니 하겠지만.. 괜찮아?"

예은이 오늘따라 이 녀석이 왜 그러지 하는 표정으로 마지못한 듯 수락한다.

저 녀석 입장에서 정말 나쁠 게 없을 테니까.

혹은 내가 져주려고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당연히 아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니 기분 맞춰주기 위해 져줄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내가 지금까지 무릎을 꿇었던 이유는 추진력.. 아니, 이 한 수를 두기 위함이었다.

솔직히 결과를 알고 있는 나조차도 두 번째 경기의 승패가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을 정도로, 누가 어떻게 봐도 CLC가 질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괜히 시즌2의 롤드컵이 말도 안되는 이변의 연속이다 평받는 게 아니었으니까.

우승후보팀의 광탈부터 우승자까지 전부 대격변이었다.

'바로 그 CLC가 말이야.'

두 번째 경기를 시작으로 난조를 보여준 CLC는 겨우 조별예선에서 광탈하게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때문에 역배당이 아님에도 내기를 청했다.

어떻게 보면 제살 깎아먹기 같기도 하지만.

"너는 CLC에 들어간 주제에 중국팀에 거냐? 쯔쯧, 인성하고는~.

"내가 너한테 인성드립 들을 정도로 인생을 막 살지는 않았는데.."

제법 분위기기 풀린 덕인지.

평소와같은 분위기로 서로를 잡아 먹을 듯 뜯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시간 빠르게 흘렀고.

드디어 대회의 막을 알리는 첫 번째 순서가 시작됐다.

"…귀 따가워."

첫 번째 순서는 당연 관중석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초청 가수의 공연.

그런데 그 락음악이 정말 귀따가운지 예은이 귀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난 좋기만 한데.'

실제로 노래는 나쁘지 않았다.

저 녀석이 민감한 거지.

가수도 당연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유명한 곡을 부른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취향 차이라는 게 그럴 수 있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시간이 흘러 노래가 끝나고, 가수가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그 다음에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설진이 등장했다.

앞선 공연으로 초청 가수가 분위기를 잔뜩 업 시켜준 덕일까.

이미 관중석은 떠들썩, 주위는 열광의 도가니.

해설자들을 잡아 먹기라도 할 기세로 관중들이 광기를 흩뿌리고 있다..!

하지만 어째설까, 해설진은 무대에 올라온 후로 입도 뻥끗 안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러는 편이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건가..'

해설진은 분명 대회를 시작할 최적의 타이밍을 재고 있을 것이다.

관중들이 안달이 났을 때,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마쳐 졌을 때 해설진은 입을 열게 된다.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청 가수가 업 시켰던 분위기를 한 번 가라앉히고.

그 가라앉은 분위기를 해설진이 다시 한 번 띄운다.

마치 대장장이가 뜨겁게 달군 검을 두들긴 후 식히고, 꺼내서 또다시 두들기는 것처럼.

더욱 단단해진, 아니 열광적으로 달아오른 광준석의 분위기는 이제 폭발하기 직전이다.

더 이상의 담금질은 버틸 수 없다.

과아아아아아아아아!

고막이 터질 듯한 수만 관중의 목소리.

한꺼번에 울려 퍼지며 회장을 인도한다.

바로 다음 차례로.

지금의 적기임은 나보다 해설진이 더욱 잘 알고 있을 터다.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 제 1경기 지금~~~!!! 개막합니다!>

구오오오오오와아아아아아아아!

사람의 목소리가 모이면 이렇게나 커질 수 있구나.

방금도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건 아예 진동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이나 여기 대회장인 모인 사람들이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설마 또 귀 아파하고 있으려나.'

나조차 분위기에 들떠 동석했던 예은을 잠깐 잊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옆을 보니 역시나, 예은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다.

하지만 다르다.

'표정이.. 무서워..!'

평소의 차가운 눈초리,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의미로 무섭다.

흥분하고 있다.

얕게 립스틱을 펴바른 옅은 분홍색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며 웃고 있다.

눈동자도 무대를 향해 완전히 고정돼 있다.

그만큼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

해설진이 첫 경기의 선수들 소개하자 관중들이 강렬하게 맞아준다.

그 차례가 끝나자 선수들은 경기석 안으로 들어가 게임을 준비했다.

시간이 드는 부분은 사전에 끝난 듯,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 * *

"맞지? 내 말이 맞지? 이제 와서 무르는 거 없다고?"

"그래, 그래."

팔꿈치로 나를 툭툭 찔러대는 예은은 완전히 경기에 빠져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게임은 첫 세트.

경기 초중반은 중국팀 인크레더블 게이밍, IG가 약간의 우세.

하지만 서로가 충분한 아이템이 갖춰지고 한타를 거듭할 수록 얼밤쪽으로 승기가 넘어오고 있다.

결정적이었던 건 클끼리의 바론 스틸일까.

이어지는 한타에서 계속해서 얼밤이 압승한데다 억제기까지 밀어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클끼리가 이즈한테 일단 궁 쓰고 시작하겠네."

"당연한 소리를 왜 하냐? 원딜 지켜야지. 야! 야!"

정말 힘 하나는 억척스럽게 세다.

마지막 바론 앞에서의 한타.

적팀의 이니시로 불안하게 시작하는 것을 보며 예은이 내 팔을 잡아당겨 댔다.

이번 한타에서 지는 쪽이 그대로 게임이 끝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니만큼 다소 흥분해버린 것.

그러나 경기는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대로 흘러갔다.

광우스타를 플레이하는 얼밤의 서포터, 매일라이프.

그의 슈퍼플레이가 터져나오며 적팀의 원딜러 고르키를 띄운 게 결정적이었다.

연계되는 공격에 적팀의 원딜러가 허무하게 죽자 승기는 단박에 넘어왔고 마무리까지 이어가는 건 순식간.

바론 한타를 대승한 얼밤은 그대로 적팀의 넥서스까지 진격해 게임을 끝냈다.

"크크, 내가 이겼지? 그치?"

"내기는 두 번째 경기고.. 작작 좀 찔러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아프니까.."

얘 팔꿈치가 너무 뾰족하다.

그 뾰족한 팔꿈치로 열 번 넘게 내 옆구리를 찔러댔으니 이제는 호흡곤란이 올 지경.

내가 한 마디 내뱉고 나서야 들떴던 게 부끄러운지, 예은은 팝콘을 한줌 쥐어 삼키는 척 연기를 한다.

어찌 됐건 첫 번째 경기의 승자가 얼밤으로 확정지어졌다.

하지만 클끼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첫 경기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여기서부터다.

두 번째 경기까지의 준비시간 동안 첫 번째 경기의 명장면이 대형화면을 통해 송출될 테니까.

<이즈한테 일단 궁 썼어! 이즈 앞으로 가!>

역시나 역사는 바뀌지 않는 걸까.

나는 예은과의 내기를 이길 수 있겠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심 떨떠름해졌다.

CLC가 완전히 광탈을 해버리면 급격하게 떨어질 대회장의 온도.

그것을 딛고 내가 CLC를 다시 최고의 팀으로 만들어가야 할 테니까.

자신은 있다지만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건 역시 걸린다.

"야, 큰 일난 거 아니야? 클끼리가 막말 했는데..?"

대형화면으로 보여지는 명잔면을 눈이 빠져라 보던 예은이 내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 흔들었다.

아까처럼 팔이 떨어져라 잡아당기진 않았지만 무척이나 걱정된다는 표정.

그럴 만도 하다.

'저 사건 후에도 클끼리는 잘 먹고 잘 사니, 딱히 걱정해줄 필요는 없겠지만.'

방금 전, 대형화면을 통해 송출된 장면은 얼밤팀의 보이스 채팅이다.

마지막 한타 부분에서 욕설을 조금 심각하게 했다.

솔직히 큰 문제로 번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욕설을 쏟아부었다.

특히나 클끼리가.

욕설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도 듣기 거북할 정도로 늘여놓았다.

하지만 아예 한국어 자체를 모르는 L.A현지, 미국 중계진은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고 모든 욕설들을 적나라에게 공개해 버렸다.

이 문제는 당연 한 번의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래도.

'결국 유야무야 덮히고, 나중에는 개그요소로까지 쓰이니까.'

예은이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해는 된다.

클끼리는 상당히 인기있는 선수고 그가 퇴출된다면 얼밤이란 팀자체가 흔들리게 될 테니.

결과를 알고 있는 내 입장이니까 별 생각 하지 않을 수 있는 거다.

나는 예은에게 괜찮다, 괜찮다 해주면서 다음 경기를 기다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대회는 방금 전 클끼리의 욕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직접 관람하러 온 한국인들이 몇이나 된다고.

지금 관중석은 방금 전 사태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축제 분위기다.

이제 곧 북미 최고의 명문팀 CLC 대 인크레더블 게이밍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여기 모인 팬들 대부분이 미국인 인만큼 두 번째 경기에 엄청나게 들떠 있다.

두 번째 경기를 진행한 CLC 선수들이 무대에 한 명, 한 명 올라오자 과연 반응이 엄청나다.

귀를 막아도 고막이 따가울 정도.

이번 경기만큼은 나도 기대가 되는 바다.

'설마..라.'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다고 했나.

과연 오늘도 나를 놀래켜줄 수 있는지.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나는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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