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96화 (19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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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챔피언 컵

"야, 야. 야!"

예은이 나를 두 손으로 붙잡고 마구마구 흔들어 댄다.

정신이 빠져나갈 만큼 격하게.

하지만 그렇게까지 안 해도 내 정신은 이미 혼미해진지 오래다.

두 번째 경기의 결과.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라지만 누가 봐도 승패는 불보듯 뻔하다.

그것도 CLC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체, 어째서?

'내 도오오온...'

예은과의 내기때문이 아니다.

솔직히 토로하자면 오늘 경기 전에 조금 투자를 했다.

미국 정부에서 운영되는 E스포츠 토토..

미국 정부가 로드 오브 로드를 신규 E스포츠 종목으로 밀어주기 위해 개설한 사이트에 약간 재미삼아.

당연 많은 금액이 아니라 소소하게.

그래도 강호팀인 CLC가 져버린다면 역배당이 쏠쏠하게 터지기 때문에 그 돈으로 소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작정이었는데.

'.............내일은 내내 컵라면만 먹어야겠다..'

역시 도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맞다.

확실히 맞는 말이고 이견도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

'어떻게 미래를 알고 있는데도 질 수가 있지?'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감출 수 없었다.

운이 없어도 앵간치 없어야지.

신이 나를 엿먹이려고 작정을 한 걸까.

기분은 썩 나쁘지 않지만 서도 묘하다.

'예은도 좋아하고 있으니.. 그리고 CLC가 광탈하지 않으면 나한테 나쁜 건 없지만.'

두 번째 경기.

CLC 대 인크레더블 게이밍의 경기는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는 본디 CLC가 패배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CLC가 그 이후로는 완전히 멘탈이 갈라져 실수를 연발한 끝에 예선에서 광탈, 이여야 하는데.

'첫 경기를 이겼으니 조별 예선도 뚫을 수 있겠고.. 그나저나 난 오뚜기가 아니니까 그만 좀 흔들어 대라.'

아까부터 내 몸을 밀고 당겨대는 예은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찌나 지구력이 좋은지, 지치지도 않는다.

그런 예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 어이가 없었던 기분도 나아졌다.

이렇게까지 기뻐서 기운 넘치는 녀석은 처음 보니까.

그래도 그 이후의 경기는 별 이변없이 쭉쭉 진행됐다.

혹시 다른 경기들도 내가 알고 있는 결과에서 바뀌는 건 아닐까 싶어 주목해서 봤지만, 경기의 내용도 그렇고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걸리는 점이 있다면 단 하나.

'CLC가 꽤 컨디션이 좋네..?'

CLC는 창단 역사를 거진 로드 오브 로드의 시작과 함께하고 있는 유서깊은 명문팀이다.

그런 만큼 CLC가 겨우 조별 예선에서 광탈할 거라 생각하는 이는, 현재 대회에 관람을 온 수만이나 되는 관중들 사이에서도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예정된 역사에서는 유리했던 게임에서조차 꽤나 실수를 남발했는데, 이렇게까지 컨디션이 좋으니 조금은 걸린다.

'일단..보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CLC에 작용했을 수도 있다.

조그마했을 변수가 나비효과를 낳았을 지도.

어찌 됐건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들러리와 같던 경기들은 끝났다.

가장 주목해서 봐야 할 한 경기만이 남아있을 뿐.

CLC 대 얼밤의 경기가.

마지막 경기는 서로가 2승씩을 가져간 상태에서 진행되는 조 1위 쟁탈전이다.

사실 이기든 지든 조별 예선을 통과하는 건 맞지만 흔히 말하는 자존심 매치였다.

"이번에 어느 쪽에 걸 거냐?"

"또 하게..?"

완전 흥이 나버린 예은이 신이 나서 물어온다.

어쩌다 한 번 이겼다고 우쭐하고 있는 모양.

마지막 경기의 승패 또한 알고 있는만큼 내기를 할 수도 있지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집중해서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진중한 어조로 받아쳤다.

"그냥 조용히 보자."

"키킥, 완전히 쫄으셨네, 우쭈쭈~."

어느 순간부터 내 팝콘을 봉투째 뺏어서 꾸역꾸역 입에 우겨넣고 있는 예은이 기세가 등등해서 나를 놀려 온다.

역시 얘는 기를 살려주면 안 됐는데.

역시 내가 내기에서 이겼어야 했는데 생각이 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예은의 장단에 놀아줄 시간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얼마나 변할 지, 그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

어째서 저러한 결과가 도출됐는지는 CLC의 경기내용을 통해서만 알 수 있으니까.

사실 이미 대략적으로나마 결론이 나왔다.

'남은 건 확신을 얹을 뿐..'

트리플리프트.

오늘 그의 컨디션이 유독 좋다.

그가 하도 잘해주는 덕에 다른 선수들의 잔실수가 커버되고 있다.

확실히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은 그날 컨디션의 영향을 상당히 받으니까.

안 그래도 잘하는 트리플리프트가 완전히 날라다닌다.

선수의 컨디션이라는 건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특별하게 중요하다.

기본적인 빌드를 짜고 하는 갤럭시 크래프트에서조차 선수 컨디션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초반부터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상할 수 없는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도 안되는 변수를 생성하고 만다.

즉, 선수의 컨디션은 게임의 승패에 직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원딜은.. 더욱 편차가 심하지.'

그나마 탱커나 서포터라면 덜할 수 있다.

몸이 종잇장인 미드라 할 지라도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하지만 지속딜을 해야 하는 원딜에게 있어 소환자의 전장은 언제 어느 때 총알이 날아올 지 모르는 FPS 총게임처럼 스릴이 넘친다.

컨디션의 좋은 날은 당연하게 피할 수 있는 스킬을 안 좋은 날에는 어처구니 없게 맞고 죽어버려도 이상하지가 않다.

더욱이 시즌2는 원딜 오브 로드.

원딜의 중요성이 그 어떤 시즌보다 높았던 때다.

그런 게임 에서 원딜 컨디션이 날라다닌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원딜러라 평받는 트리플리프트가.

'이번 게임은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CLC가 상당히 선전을 하고 있다고 해도 얼밤 또한 뒤지지 않을 만큼 상승세다.

딱히 한국 팀이라고 높은 평가를 해주려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다.

한국팀의 수준이 요 몇달 사이에 놀라우리만큼 높아진 데다 무엇보다 최근 기세가 좋다.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이 있듯이, 팀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팀의 컨디션라는 게 따로 존재한다.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현재 메타에서 각 선수들이 주챔프로 잡은 챔피언들이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팀 분위기도 탓도 크고.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재 CLC는 비교적 하향세.

우려가 되는 정도는 아니라지만 팀컨디션은 확실히 얼밤 쪽이 좋다.

하지만 기본 기량은 CLC가 낫다고 할 수 있으니 용호상박.

'확실히, 붙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승부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경기.

그리고 경기장에 모인 수만의 관중들이 가장 기대하던 CLC 대 얼밤의 경기가 시작됐다.

게임의 시작은 순조.

'롭지 않구만.'

CLC의 선취점이 빠르게 터져나왔다.

적팀의 허를 찌른 인베이드가 보기 좋게 먹혀버렸다.

킬 하나를 내준 선에서 끝나긴 했지만 기분 좋은 시작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나일까.

CLC가 선취점을 따내자 경기장이 떠나가라 터져나오는 환호.

북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CLC다운, 그리고 본진다운 반응이다.

특히나 CLC는 숙소도 여기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 정도의 편파응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얼밤이 지는 게 아쉽고.. 나도 참 애매한 입장이네.'

내 입장과 전혀 상관없이 게임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CLC의 퍼블로 시작된 게임이었지만 얼밤도 만만치 않다.

수비적인 라인전을 성공적으로 해낸 덕에 초반의 퍼블 스노우볼은 크게 굴러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집중력이.. 상당한데?'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는 원래 초반에 유리했던 CLC가 공격적인 게임을 펼치면서 실수를 터트렸다.

그 실수 탓에 역으로 킬을 뺏기게 되고 역전이 되는 흐름이었지만, 오늘은 양쪽 다 집중도가 상당해서 큰 실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CLC 측에서 먼저 공격적인 흐름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에 들어갔다.

서로가 안정적인 파밍을 바탕으로 한타를 보겠다는 이야기.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중반 타이밍이 왔다.

로드 오브 로드의 꽃, 한타를 할 시기가.

하지만 그 전에 슬슬 내가 예측하고 있던 또 하나의 변수가 터져나올 시기다.

"잠깐!"

"어쭈, 안 내놔?"

내 옆에서 꾸역꾸역 목구멍에 팝콘을 삼켜대던 예은이 드디어 한계가 왔다.

텁텁한 팝콘을 그렇게나 먹어댔으니 목이 막혀 올 수밖에.

손을 뻗어 강제로 콜라잔을 뺏으려던 예은에게 나는 한 마디 던졌다.

"주는 거야 상관없지만.. 입대고 마실 거냐?"

"윽..! 초딩도 아니고... 내놔!"

내가 빨대를 통해 콜라를 한 입 빨자 예은이 이를 으드득 씹는다.

잠깐 망설이던 예은은 전광석화처럼 내 손에서 콜라잔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빨대를 쪼옥 빨아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목이 말랐겠지, 크크큭.'

짜디짠 팝콘을 꾸역꾸역 먹었으니 목으로 꿀떡꿀떡 넘어가는 콜라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느낌일 테지.

하지만 참, 알고는 있었지만서도 잘도 먹는다.

영화관 팝콘의 3배쯤 되던 팝콘량과 마찬가지로 콜라잔 또한 크기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된다.

상당히 큰 콜라잔에 담겨 있던 콜라가 쭈우욱 빨려들어가는 게 반투명한 플라스틱 너머로 보일 정도.

그렇게 콜라를 거진 반 리터가량 마시고 나서야 목말랐던 게 나았는지, 예은은 살짝 호흡을 고르고 나를 한 번 흘겨본 후에야 다시 경기를 보는데 집중했다.

예은과 잠깐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도 당연 경기는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아니, 큰 변화가 있었다

무려 이니시가 걸렸다.

쏘냐를 플레이하던 얼밤의 서포터, 매일라이프가 점멸센도를 맞힌 것.

타라랑~♬!

이니시 자체는 훌륭하다.

그러나 성장도를 보자면 CLC가 조금 더 유리.

그렇게나 떠들썩 했던 관중석이 잠시나마 호흡이 멈출 정도로 긴박한 한타가 시작됐다.

고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충 소리만 들어도 직감할 수 있다.

매일라이프가 점멸까지 쓰며 얼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한타를 열어냈지만 트리플리프트.

오늘 대회의 최고 명장면이라 꼽힐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카이팅을 보여주고 있는 트리플리프트의 크레이브즈가 미쳐 날뛴다.

집중도 있는 카이팅을 보여주며 첫 번째 한타를 아슬아슬하게 승리로 이끌었다.

용까지 챙기자 조금씩 굴러가게 되는 스노우불.

게임의 승패는 조금씩 굳어지게 되었다.

중간중간 CLC에서 몇 번 실수가 터진 탓에 확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었다.

매한타마다 억소리가 날 정도로 트리플리프트가 대활약을 펼친 덕.

오늘의 경기로 안 그래도 높았던 트리플리프트의 위상이 더욱 더 높아지리라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억제탑을 지키는 마지막 한타에서 드디어 승부가 결정됐다.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임탓일까.

얼밤의 원딜러 거눙이 잠깐 한눈을 팔아버렸고 이를 캐치하지 못할 오늘의 CLC가 아니었다.

점멸 이니시가 걸리자 순간적으로 딜계산을 해낸 크레이브즈가 궁극기를 발사했다.

저 멀리까지 넓다랗게 퍼져나가는 축포 세례.

거눙은 팀의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적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크레이브즈의 궁극기가 끄트머리에 닿아버렸다.

30분이 넘은 타이밍에 억제탑 대치 와중 갑작스런 원딜러의 사망.

게임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억제탑 앞에서의 한타 대승을 거둬낸 CLC가 얼밤의 본진 내부로 물밀듯 쳐들어갔다.

어떻게든 두 명이 살아남은 얼밤이 거눙의 부활시간을 벌어보려 했지만 살아남은 딜러가 없었다.

타워를 점사하는 CLC를 어떻게 떼어놓을 방법이 없다.

결국 CLC는 거눙의 부활타이밍보다 약간 늦게나마 넥서스를 터치는데 성공했고 게임은 그대로 끝이 나버렸다.

그러자.

과아아아아아아!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환호소리.

관중석은 끓어오르기를 넘어서 활화산마냥 폭발했다.

앉은 관객보다 서있는 관객이 많다.

곽객끼리 서로 부둥켜 앉으며 뛰어대고 난리가 났다.

경기장 전체가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하도 방방 뗘대는 바람에 지진이 난 것처럼 울릴 정도.

로스앤젤레스가 본진이라 할 수 있는 CLC가 마지막 경기를 승리해버렸니 그럴 만도 하지만.

'미래는.. 변하는 걸까.'

여기에 있는 이들은 순수하게 CLC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오늘의 생각지 못한 개변때문에 생각할 게 더욱 많아졌으니까.

"야, 너희팀이 승리했는데 안 기뻐?"

내 옷을 확 잡아당긴 예은이 뻐끔뻐끔.

주위가 하도 시끄러워서 들리지는 않지만 입술의 모양이 그렇게 말해오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얼굴과 얼굴과의 거리가 채 주먹 하나밖에 들어가지 않는 상황이었는지라 잘못 봤을 리도 없다.

"분위기 타면 죽는다?'"

평소와 같은 거친 말투.

옆에서 막 끌어 안고 난리가 났다고 나한테까지 그러면 손찌검을 하겠다는 말.

하지만 눈동자가 빛나는 걸 보니, 그리고 신나 죽겠는 듯한 헤맑은 미소를 보아하니 게임이 재밌긴 어지간히 재밌었던 모양이다.

끌어 안을 정도는 아니여도 꽤나 흥분을 한 예은이 내 옷이 늘어져라 흔들어 댔다.

그렇게 다른 경기들보다는 조금은 의미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가장 재밌었던.

그리고 명경기로 회자될 가치가 있던 오늘 롤드컵의 마지막 경기가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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