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97화 (197/803)

197====================

월드 챔피언 컵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숙소.

팀 독나타스는 이틀 전까지만 해도 미시간 주에 있었지만 어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곧 열리게 될, 아니 이미 개막이 돼버린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 컵, 롤드컵에 독나타스 또한 활약할 예정이니 당연하다.

그런 사정을 가지고 있는 독나타스지만 오늘은 영 연습을 못했다.

바로 팀의 주장께서 큰 볼 일이 있던 모양이었기 때문.

독나타스의 서포터, 마일러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한참은 늦은 밤이 돼서야 숙소에 돌아온 주장에게 못마땅한 듯 물었다.

바로 팀의 주장이자 정글러인 루베리에게 그토록 바랬던 성과가 나왔냐고 따져댔다.

"그래서, 원하던 건 찾으셨나?"

루베리는 오늘 롤드컵 대회의 출전팀이 아님에도 관전을 갔었다.

Unknown Error가 반드시 경기장에 올 거라는 추측 하나로.

자신들 독나타스 또한 경기 일정이 바로 내일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무엇이 그리 급한지.

속사정을 알고 있는 마일러였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을.

"글쎄.. 수확이라 할만한 건 없었지."

힘이 쫙 빠지는 루베리의 대답에 마일러는 작게 한숨을 내셨다.

그럴 거면 당장 내일 경기나 준비하지 왜 쏘다니고 왔냐고 한 소리 따지려던 마일러.

하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그는 가끔 팔푼이 짓을 하긴 해도 능력있는 팀의 주장이니까.

"그런데 정말로 아무 것도 없었어?"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되 루베리라면.

정말 허탕만 치고 돌아오진 않았으리라 마일러는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을 한데는 어젯밤 루베리가 했던 이야기가 제법 흥미가 동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아무리 주장이라고 해도 팀의 의사를 무시한 채 행동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지간한 날도 아니고, 그것도 대회 전날에 개인 시간을 내다니 원래라면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

그럼에도 루베리는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능수능란한 화법으로 자신을 포함한 팀원들을 납득시키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확실히 내용이 혹할만큼 흥미를 유발시키기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납득한 것과는 별개로, 마일러는 다시 한 번 정말인지 되묻고 싶었다.

다름아닌 루베리기에 믿어주긴 했어도 내심 미심쩍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게이머는 보면 알아볼 수 있다. 그렇게 말했었지.'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 만화책을 너무 보지 않았냐고 물었겠지만 그는 루베리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비주류 챔프만 해댄 탓에 빛을 보지 못했던 자신을 과감히 독나타스에 받아들였던.

사실 마일러는 루베리가 자신을 영입하겠다 했을 때 어리둥절했었다.

어째서 하고 많은 아마추어들 중에 자신인지 이해가 안됐으니까.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자신은 프로무대의 적응은 물론 독나타스라는 수준 높은 팀의 주전으로서 완전히 녹아들 수 있었다.

루베리 덕분에 자신은 프로게이머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헛소리를 많이 하긴 해도 확실히 그는 인생의 은인이나 다름없기에, 어지간한 일이면 편들어 주긴 하지만 루베리의 설명은 늘 알아듣기 힘들었다.

"감의 문제라서 명확히는 설명 못하겠지만.. 레이더에 걸리는 녀석이 없더라고."

양손을 올리며 어깨를 으쓱하는 루베리를 보며 마일러는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약간의 존경심을 금새 털어내고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 어제 하루 놀려고 작정을 했구나 하고.

마일러는 시간 버린 셈치고 대회 전 마지막 스크림에 대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루베리가 가로 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멋대로 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재밌는 커플은 발견했지! 특히나 여자 쪽이 아름답더라고?"

루베리가 장난기 있는 미소와 함께 영문 모를 소리를 던져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이해는 안 가도, 그가 가끔 4차원 같은 소리를 해대는 걸 이해해주는 마일러기에 일단은 들어주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순수하게 땡땡이를 친 거라면 자신이 넘어 가주는데도 굳이 태클을 걸어오진 않았을 거란 생각.

이야기에 맥락은 없다지만 뜬금없는 소리를 꺼낸데는 분명 뒷사정이 있을 것이다.

마일러는 진지하게 들어주기로 했다.

"옆구리가 시려워서 하는 소린 아닐 테고. 들어나 보자."

"사실 말이야, 진짜로.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거든?"

눈썹을 찡끗 올리며 주절주절 이야기를 침을 튀겨대는 루베리.

한참을 듣던 마일러는 역시 꽝이구나 직감했다.

가끔 해대는 4차원틱한 헛소리는 다 들어보면 속 뜻이 깊을 때도 있지만, 역으로 아무런 내용이 없을 때가 훨씬 많다.

방금 전 루베리가 한 소리는 아무리 곱씹어봐도 후자였다.

"그냥.. 관광객이잖아?"

루베리가 제법 진지하게 두고 봤다는 아시아인 커플.

최근 아시아 쪽에도 로드 오브 로드 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프로게이머로서 모를 수가 없다.

마일러가 그냥 관광 차원에서 온 게 아니냐, 힘빠진 어조로 되묻자 루베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감있게 받아쳐왔다.

"내가 말이야, 생각을 해봤는데.."

한 번 자신의 공상을 늘여 놓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 루베리였기에, 불안해진 마일러는 적당히 이야기를 듣는 척하며 슬금슬금 도망칠 각을 보았다.

그런데 도망을 귀신같이 루베리가 어딜 도망가냐는 듯 마일러의 손목을 잡아채고 이어서 떠벌떠벌 떠들어댔다.

"나는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난데없이 하늘에서 인재가 뚝! 떨어질 수는 없잖아? 그런데 Unknown Error는 그랬단 말이야."

루베리는 Unknown Error가 외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시아인 커플을 발견하자마자 번뜩였다고 이야기 했다.

확실히 외국이라면 자신의 눈이 닿을 수 없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그럴 듯 하다고.

경쟁 상대인 핫숏디디의 선견지명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라 탐탁치 않으면서도, 생각할 수록 앞뒤가 맞으니 부정하기 힘든 노릇아니냐 자신에게 동의를 구해왔다.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제스처까지 보내오며.

마일러는 내심 또 골때리는 이야기 하나 지어냈구나 생각하면서도 확실히 그럴 듯한 소리는 맞다고, 루베리가 아니면 생각해내기 힘든 부류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인정했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하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추리에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마일러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핵심을 물었다.

"그래서, 그 아시아인 커플이 네가 찾던 Unknown Error란 증거는 있어?"

"글쎄? 그건 모르지."

그렇게 신나게 말을 늘여 놓다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루베리.

어처구니가 없어진 마일러는 그냥 다 됐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손을 내젓고 그대로 퇴장했다.

깐깐한 마일러에게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루베리.

그는 룰루랄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던지듯 몸을 기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아직은 모르지.'

자신도 당연 외국인이라고 의심을 해댈만큼 대책없는 바보가 아니다.

단순한 예감과 우연이 만들어낸 산물인 건 맞지만서도 아무런 까닭이 없는 건 아니니까.

루베리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회상했다.

자신이 롤드컵 대회장에서 앉아 있던 좌석은 가장자리, 그것도 맨 끝이었다.

경기를 보기에는 힘든 자리라지만 경기장 가운데 동그랗게 있는 VIP좌석을 관찰할 목적으로는 아주 좋았다.

Unknown Error는 CLC인 만큼 VIP좌석을 분명 구했을 테니까.

혹시 몰라 간이만원경도 가져갔기 때문에 준비는 만반.

이제 하나하나 목표를 줄여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순조롭지가 않았다.

게이머를 보면 알 수 있는 건 정말로 사실이지만 Unknown Error라 추측될만한 이가 없었으니까.

조금 의심갔던 이들도 계속해서 관찰해보자 아니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앞서 말했듯 성과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결코 책임회피용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못 건질 뻔 하긴 했지만, 하하!'

1시간 넘게 열심히 찾아봤지만 영 신통찮았다.

Unknown Error가 경기를 보러 올 거라는 예상이 틀린 걸까, 그렇게 결론짓고 그만 대회장을 나가려고 했을 정도로.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눈에 띄었다.

VIP좌석의 앞라인에 있던 아시아인 커플이.

그들이 하고 있었을 대화의 내용은 엿들을 수야 당연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감이 왔다.

'시시껄렁한 내용일 게 뻔하지.'

제대로 염장을 지르는 듯한 느낌의 커플.

여자 쪽은 관심없는듯 하더니만 게임이 시작하고 나니까 아주 신이 나서 떠든다.

남자의 옆구리를 툭툭 찔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유도.

아주 여우가 따로 없었다.

그런 심정변화가 조금 재미있어 지켜보긴 했지만, 아무리 재밌는 시트콤이라도 계속 보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어차피 Unknown Error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으니 그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까닭.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표정, 여자의 장난을 받아치면서도 간간이 진중함이 엿보였다.

그 진중한 반응은 결코 일반인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뭐.. 일반인이라도 게임정도는 진지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어차피 숙소로 돌아가 봐야 붙잡혀서 내내 연습만 하게 될 것이기에.

루베리는 시간도 때울 겸, 다소 흥미가 생긴 아시아인 남자를 관찰했다.

그렇게 시간을 꽤나 쓴 덕에 남자의 얼굴이 진중해질 때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억측에 지나지 않은 일이긴 해.'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다면 남자는 꽤나 게임 지식이 많다는 사실.

그 사실을 구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이 게이머를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한 건 결코 거짓부렁이 아니었으니까.

일반인들이 게임을 집중해서 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한타를 할 때, 그리고 해설진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

그러나 자신들 프로게이머를 포함한 게임에 대한 지식이 높은 이들은 자기 주관이 또렷하다.

일부 예외를 제외한다면 해설자의 말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굳이 해설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

오히려 자신의 기준으로 게임을 보는 것을 즐긴다.

'물론 그것만으로 단정을 짓기에는 조금, 아니 상당히….'

Unknown Error는 상당한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 게이머다.

비하발언이 아니다.

아무리 프로계약을 했어도 데뷔하기 전까지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는 게 이 바닥의 룰이니.

그러니만큼 아직 한참 연습할 때인데 애인이랑 저리 알콩달콩 즐기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단순한 시셈이나 선배로서의 아니꼬움이 아닌, 직업적인 시점에서 진지하게 고려했을 때의 이야기.

희희낙락 여자친구를 사귈 시기가 아니다.

아마추어 프로게이머들은 물론이고, 자신처럼 자리가 잡힌 프로게이머들조차 대부분 솔로인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

정말이다.

'.......자학이 돼버렸군.'

어쨌거나 그러한 근거로 생각했을 때 남자는 프로게이머는 아닐 확률이 높았다.

단순히 게임 지식이 각별한 정도야, 재능이 뛰어나면 가능한 일이니까.

만약 자신이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을 했다면 미묘한 표정변화로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저 멀리서 간이만원경으로 확인하기에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게다가 확률적으로 생각해도, 특히나 여성쪽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고려해야 한다.

동서양의 미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레벨이 상당하다.

강남스타일이라고 얼마 전 유행했던 한국 음악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여성이 분명 저런 느낌이었으니 틀릴 리가 없다.

아시아인들의 기준으로 생각해도 상당히 보기 드문 미인일 터.

당연한 소리지만 썩 잘생기지 않은 남자가 미인을 끼고 있다는 말은 금전적으로 풍족하다는 의미다.

아시아인은 원래 돈이 많다는 게 통설이기도 하니 그럴 확률이 높겠지.

루베리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렇다 해도.. 가능성을 완전히 지울 필요까진 없으니.. 해볼까?'

금전적으로 풍족한 재벌 2세가 취미로 프로게이머를 목표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게 Unknown Error의 정체라고 해도 아주 말이 안 되는 일까지는 아니고.

시간이 조금 널널해졌을 때 한 번 접근을 해볼 가치는 있다.

몰려오는 피곤함에도 루베리는 조금 전 번뜩인 생각을 자신이 늘 들고 다니는 노트에 적고 나서야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귀찮으실 텐데도 잊지 않고 추천눌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분들 항상 고맙습니다.

*표지 작업 중입니다. 곧 새로운 표지가 올라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