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198화 (19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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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솔로랭크

이런저런 의미에서 흥미가 깊을 수밖에 없던 롤드컵이 끝났다.

만약 나 혼자 왔다면 무대 뒤편의 핫숏에게 찾아가 얼굴이라도 비출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내 옆에 짐덩이 하나하나가 쫄래쫄래 팝콘을 먹으며 쫓아오고 있었으니.

축하인사는 전화로 줄이기로 한 나는 예은과 식당을 가기로 했다.

내가 사게 되든 니가 사게 되든, 배가 고픈 참이니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그렇게 택시를 잡아타고 식당에 가는 길.

기분이 상당히 업돼 있는 것이 표정과 행동에서 드러날 지경인 예은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야, 딴 소리하면 죽는다?"

"그래, 그래. 니가 이겼다, 이겼어."

내기를 이긴 게 어지간히 기쁜 듯 싱글벙글한 상태다.

물론 내기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나 기대했던 롤드컵을 직접 경기장까지 가서 관람한데다 대회 분위기도 좋았으니까.

무엇보다 마지막에 나온 명경기는 정말 눈호강이었다.

평소에 싸늘하기 그지없는 예은의 기분이 붕 떠있는 것도 이해가 가는 노릇.

"얌."

택시 안임에도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 예은.

봉투에 있던 마지막 한 줌의 팝콘을 먹고, 무언가 아쉬운지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댄다.

완전히 봉투가 텅텅 빈 걸 확인한 녀석이 나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그래서 뭐가 먹고 싶은데? 이 얻어 먹기만 하는 도야지야."

도야지는 내가 몇 줌 먹지도 않은 그 대형 팝콘을 싹 다 비운 너고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도야지라고 했다간 이 녀석이 또 발광을 해댈 게 뻔하니까.

그리고 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대답으로 받아쳤다.

"내가 사면 되는 거지? 내기값으로."

"흐음, 역시 구라였나 보네~. 아까는 지갑 안 가져왔다며?"

눈초리가 가늘어진 예은이 나를 흘겨본다.

그래도 썩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는다.

내기의 대상이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는데 사소한 거짓말쯤은 눈 감아줄 수도 있는 일일테니.

하지만 밥값을 원했을 거라 생각한 내 예상과는 달리, 예은은 생각보다 의리가 있었다.

"오늘은 쭉 내가 살게. 어차피 팝콘도 내 돈으로 샀잖아? 피차 계산은 확실히 하자고?"

님이 대체 언제부터 그러고 사셨는지, 나 먹으려고 산 팝콘은 그대가 다 드셨는데.

또 한 번 목구멍까지 터져 나올 뻔한 말을 아슬아슬하게 삼켰다.

역시 계산은 나중에 하는 쪽이 편하긴 하니까.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받는다는 말이 조금, 아니 상당히 불안한 정도.

"뭘, 어떻게 받을 작정인데?"

때문에 물어본다.

얘가 나중에 자신의 소원은 소원을 두 가지로 늘리는 거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한 헛소리를 우겨대면 골치가 아파지니까.

"글쎄..? 메뉴나 빨리 정해. 배고프단 말이야."

예은이 자신의 배를 손으로 한 번 쓱 문지르는 것으로 대답에 진실성을 더했다.

그렇게 팝콘을 꾸역꾸역 먹어 놓고 또 배가 고픈지.

그래도 방금 전 행위가 부끄럽긴 한 듯 갑자기 시선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별명이지만 밥순이는 정말 너랑 잘 어울린다.

'그런 주제에 살은 찌지 않았지만.'

따로 운동을 하는 건지, 아니면 타고난 체질인지는 몰라도.

나와 함께 있을 때는 항상 과식을 해대는 예은은 제법 나쁘지 않은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었는데도 라인이 꽤나 잘 살아있다.

"…빨리 정하기나 하지?"

"기사님, 저 쪽으로 가주세요, 저쪽!"

내 쪽으로 보고 한 말도 아닌데 도둑이 제 발 저려 뜨끔했다.

너무 쳐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은 시선에 상당히 민감하다고 하던데.

설사 눈치채지 못했다고 해도 실례는 실례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니.

조금 미안해서라도 격을 낮추기로 했다.

원래 얻어 먹기로 생각하고 있던 비싼 레스토랑을 뒤로 하고 기억에 남아있는 맛집으로 택시의 방향을 돌렸다.

이전에도 두 번이나 갔었던 한인타운의 갈비집으로 향했다.

.

.

.

* * *

어제 롤드컵의 모든 경기가 종료된 건 오후 9시경이었다.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너무 늦었던 지라 그만 끝내고 귀가를 하려 했지만.

'아이고, 지끈거려 죽겠네....'

머릿속이 꼬챙이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쑤셔온다.

이래서 소주는 많이 마시면 안되는데.

'분위기도, 안주도 소주각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어떻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밥만 먹고 끝내겠나.

결정적으로 자기가 사주겠다고 하는데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2차까지 거하게 얻어 먹었다.

그 2차에서 예은의 진정한 식탐을 봐버린 게 조금 후회가 되지만.

1차로 갔던 한인타운의 갈비집에서만 갈비 2인분에 공기밥까지 싹싹 비었던 예은이다.

그렇게 먹어 놓고도 무언가 허전한 지 두리번두리번.

근처에 있는 꼼장어집에 2차를 가잔다.

예은은 나를 위하는 척 꼼장어를 시키더니 역시나, 지가 제일 열심히 먹었다.

크지도 않은 몸에 어떻게 그리 꾸역꾸역 잘도 들어가는지 보는 내가 신기할 지경.

그래도 꼼장어가 안주라 그런지 소주가 제법 잘 넘어가, 날짜가 바뀔 때까지 2차를 달렸다.

하지만 분위기로 마시다간 자신도 모르게 취하는 법.

나는 그래도 내 주량을 알고 있어 취하지 않는 선에서 눈치껏 마셨지만, 예은 녀석은 주량이 상당해서 그런지 눈치를 안 보더라.

술버릇 나쁜 아저씨도 아니고,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계속 퍼마시더니 결국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게 되었다.

'크크크, 술취한 여자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보내서야 남자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법이지.'

아무리 예은이라고는 해도 일단 외관만큼은 이쁘장한 아가씨다.

때문에 나는 2차로 갔던 꼼장어집에서 검은 봉투 얻은 후 택시를 잡았다.

쓸 일이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나는 검은 봉투로 예은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 몰라 두 개 달라고 하길 잘했단 말이야.'

택시에서 계속 헛구역질을 하더니 역시나 버티지 못하고 해버렸다.

기숙사 앞에 내리자마자 옆에 있던 전봇대를 붙잡고 아주 시원하게 게워내셨다.

그렇게나 식탐을 내더니 꼴 좋다.

비웃어줄까 싶다가도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엉망진창이 된 예은의 얼굴을 보니 그럴 마음까진 들지 않았다.

마음 약해진 나는 등을 두들겨 주고 손수건을 꺼내 예은의 입가를 쓰윽 닦아줬다.

그 탓에 립스틱이 조금 번졌기에, 손수건을 두 번 접어서 눈물과 콧물을 닦아줄 겸 얼굴을 꾸깃꾸깃 밀어줬다.

못난 녀석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그 후로 나는 예은을 기숙사까지 바래다 주고 다시 택시를 잡아타 호텔로 귀환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 일이 있긴 했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랄까.

알아서 해명하겠거니 생각을 멈춘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여기까지가 어제 있었던 일.

'모르겠다. 해장라면이나 끓이자.'

지난 번에 술을 마셨을 때처럼 콩나물을 넣고 팔팔 끓였다.

그렇게 한 숟갈 뜨자 조금씩 나아지는 속, 그리고 두통.

나름 조절해서 예은의 반도 안 마셨는데도 아직도 머리통이 깨질 지경이다.

콩나물이 아삭아삭 씹히는 라면을 소화시키자 제법 몸이 풀렸다.

몸이 풀린 것 자체는 좋은 일이었지만 정신에 여유가 생기니 어제 일이 명확히 떠오른다.

조금 걱정이 되는 노릇.

'............난 모르는 일이다.'

굳센 아이니만큼 알아서 잘 헤쳐나갈 거라고 믿으며.

나는 내 일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에 접속했다.

물론 롤드컵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진행되지만.

적어도 며칠 간은 굳이 관람까지 하러 갈 필요가 없다.

오늘은 다른 팀들의 조별 예선이 있다.

그리고 내일 일요일은 휴무.

CLC 경기는 다음 주 월요일에야 시작된다.

어제 술자리에서도 말이 오고 간 부분이지만 예은이 월요일에도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해왔었다.

그것을 분위기에 못 이겨 승락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월요일은 또 주정뱅이 상대를 해줘야 할 지도 모르겠기에.

때문에라도 오늘은 열심히 해야 한다.

'주말에 빠듯이 달려 놓지 않으면 아슬아슬 하겠는데.'

북미서버 솔로랭크의 이야기가 아니다.

3일 전에 이미 목표로 해두었던 그랜드 마스터는 달성해 두었으니까.

북미 그마와 더불어 염두하고 있던 다른 하나의 목표를 이룰 때다.

'한국서버도 슬슬 세기말이니까.'

시즌 종료를 얼마 놔두지 않은 시점의 솔로랭크를 흔히 세기말이라고 부른다.

시즌3이 시작되기까지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

나는 시즌이 종료되기 전에 한국서버 점수 또한 올려두기로 했다.

딱히 시즌 종료 후에 티어별 보상이 탐나서 라기보단, 알리바이를 만든다는 목적일까.

한국서버에서 잠수를 탄지 오래됐기도 하니 시간이 나는 때에 해둬서 나쁠 건 없다.

북미서버와는 달리 한 번 마스터를 찍어둔 지라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도 아니라 부담도 덜하다.

띠리링~♬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게임에 접속했다.

평소 하던 북미서버에서 한국 서버로 바꿔서.

그렇게 들어간 대기화면.

'…다이아2까지 떨어졌나.'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이 한동안 솔랭을 돌리지 않으면 자동으로 강등이 된다.

하지만 마스터 티어에서 겨우 두 단계 내려간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근 3달만의 한국서버 솔로랭크.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 LCL의 준비로 돌리지 못했던 기한인 한 달을 더한다면 대략 그 정도다.

3달을 쉬었는데도 저 정도밖에 내려가지 않은 셈이니 선방이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그랜드 마스터만 아슬아슬 유지할 정도로 올리는 게 목표니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터.

'그래도 요즘 한국 서버의 실력대가 무르익었다고 하던데.'

시즌2 중후반부터 후반까지의 급격한 변화.

북미서버만큼은 아니더라도 눈에 띄게 성장한 한국서버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어제의 롤드컵에서 얼밤의 선전.

결과적으로나마 CLC에 지긴 했어도 얼밤이 CLC에 크게 뒤지지 않는 팀이라는 사실엔 이견이 달리지 않게 됐다.

그 만큼이나 양 팀 모두 훌륭한 게임을 했으니 좋은 의미에서 인정할 수밖에.

그러한 얼밤의 상승세와 비례하게도 한국 서버 또한 그 수준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력의 상승도 실력의 상승이겠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양일까.

더욱이 그랜드 마스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단순한 승격이 아닌 최소 중하위권까지는 올려 놓아야 하기에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여정은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난 게 다행이라 했던 거다.

여유가 없었다면 시도도 해보지 못했을 테니.

'그렇다고 어려운 여정도 아니지만,'

단순히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챔프폭일까.

Unknown Error로서의 챔프폭과 올마스터의 챔프폭은 결코 비슷해서는 안된다.

내가 괜히 미국으로 넘어온 후로 이전에 사용하던 챔피언들을 봉인한 게 아니니.

더군다나 미드라인도 몇 번 이블퀸을 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하지 않았을 정도다.

그렇게 북미의 나를 철저히 구별해 왔기에 한국서버에서는 이전처럼 미드 위주로 플레이하기로 결정했다.

쿠웅!

정말 오래간만의 한국서버 솔로랭크다.

과연 잡히는 사람들의 실력대는 어느 정도일지.

CP.GG 사이트에 한 번 검색해 보았다.

'다이아1 중반대. 다행히 MMR은 많이 깎이지 않았다.'

솔로랭크를 오랫동안 하지 않음으로서 티어는 다이아2까지 내려갔지만 MMR은 더디게 떨어졌다.

때문에 다이아2임에도 다이아1 중반대의 유저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어? 올마스터다. 사칭?

-올마스터면 예전에 LCL에서 준우승한 사람 맞아? 솔직히 조금 팬인데.

내 이름값이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

픽창부터 올마스터라는 아이디를 알아보는 이들이 존재했다.

예전, 이라는 단어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2개월이면... 예전이라 할 만도 한가.'

북미에 도착한 후로 꽤나 바쁘게 살아왔던 지라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한국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LCL의 결승전이 끝나고 내가 사라진 두 달이 꽤나 길게 생각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실례가 될 정도로.

-ㅋㅋ 올마스터 퇴물이네 나랑 큐잡히고. 형이 버스태워 준다ㄱ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정말 게임 안 한 거? 곤란한데. 닷지해야하나~

첫 판부터 아주 재미진 놈들을 만난 것 같다.

적팀이었다면 아주 뼈도 못 추리게 몰살시켜 줬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아군이다.

'이야, 간만에 버스 타는 거야? 나.'

농담과 함께 얕게 나오는 실소.

내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당히 보여주기로 했다.

많이도, 조금도 아닌 한국식으로 적당히만.

너무 강렬하게 보여줬다가는 빠져들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래 봬도 내 팬은 질도 꽤 따지고 있어서 말이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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