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06화 (20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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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솔로랭크

─솔로랭크 마스터티어로의 승격을 축하드립니다!

깔끔한 3연승.

첫 번째판의 승리, 연이어 두 번의 승리를 추가시켰다.

마지막 판은 제법 불안불안하긴 했지만 결과적인 승리로 장식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 거지,  후후.'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마스터티어에 안착할 수 있었으니 됐다.

현재까지의 전적은 13승 2패.

가히 압도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사실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게 용하다.

그 전에 한 번 흐름이 끊길 거라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하고 있던 손님이 오지 않았던 탓이다.

'뭐, 오지 않을 만도 하지만 말이야.'

사정은 이해한다.

어제 일이 여러모로 굉장히 신경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

착한 내가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일인 청소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방청소는.

일단 이쪽은 손님인데 방에 와서 자기나 하고, 최근 너무 막 나가는 감이 있다.

나중에 와서 투덜투덜 해주기는 해도 말이다.

'사실 해주는 건 또 해주는 대로 신경쓰이긴 해..'

보여주기 민망할만큼 정리를 못하고 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깔끔하게 사는 편이라 자부하고 있다.

걸리는 부분은 역시 프라이버시일까.

남자 혼자 사는 방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존중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 시간이면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다른 건 몰라도 자기 자신이 뱉은 말을 안 지킬 녀석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 일이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고 하니, 지금은 잊은지 오래다.

따지고 보면 그때도 말을 안 하고 사라진 건 아니기도 하고.

똑.

똑.

드디어 일까.

밖에 손님이 온 모양이다.

조용한 노크 소리가 울려온다.

그런데,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근래 내 객실에 가장 많이 방문한 손님은 이렇게 소심하지가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다른 손님이 이 시간대에 오셨을 리가 없다.

과연 누가 오셨을까, 알고 있음에도 나는 천천히 나가기로 했다.

딱히 기다리게 하겠다는 심보가 아니라, 나는 아직 채 준비를 못 마쳤으니까.

끼익.

대략 1분이 지난 후에야 문을 열어줬다.

그 사이에 한 번 더 노크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전처럼 흉폭하지 않았기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었다.

평소였다면 몰라도 오늘은 아무래도 꽝 차버리는 일까진 없으리라 믿는 바가 있었으니.

일단 지도 자기 입장을 파악하고 있다면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데?"

문을 열자,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예은이 나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 티셔츠 위에 얇은 가디건을 덧입은 옷차림.

벌써 일이 끝나고 호텔 유니폼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따듯한 로스앤젤레스인지라 옷을 두 겹쳐 입는 일은 잘 없지만, 시기가 시기기도 하고 시간대도 시간대다.

살짝 쌀쌀한 감이 있으니 적절한 차림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맵씨있는 옷차림에 비해 기분이 썩 좋아보이진 않는 듯 입술이 뾰루퉁 튀어나와 있다.

기다리게 해서 삐졌다기 보단 다른 쪽의 사정때문일 터다.

"..어제 일 나한테 할 말 있지 않아?"

"글쎄, 난 그다지 없는데."

어제 술을 과하게 마신 예은을 기숙사로 바래다주는 과정에서 다소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절대 내 과실은 아닌데다 애초에 그렇게 술을 퍼마신 게 잘못이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꺼낸 말마따나 별로 해줄 말도 없다.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난 솔직히 할만큼 해주기도 했다.

그 사실을 내 앞에서 투덜거리고 있는 예은도 모를 리가 없기에, 다짜고짜 따져 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역시 할 말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네가 책임져줘야 하는 부분.....이잖아..?"

다소 낯빛이 붉은 듯한 예은이 뜨문뜨문 끊기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서 말을 이어온다.

의미가 조금 곡해되긴 했지만서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이해가 가는 노릇.

정 원한다면 한 마디 해줄 수도 있지만 그전에, 이야기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가야 할 장소가 있었다.

"자자, 이야기는 가면서 하자고."

"!?"

나는 예은의 팔을 자연스럽게 붙잡아 끌어 당겼다.

급작스런 반향전환에 조금 반항을 하던 예은이 마지못해 동행한다.

그나마 반항을 했던 이유도 내가 걸음을 옮긴 방향이 방안쪽이 아닌, 바깥 쪽이란 이유가 클까.

그렇다 해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얌전히 따라오는 수밖에 없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어디.. 가는 건데?"

팔을 살짝 붙잡힌 것에 저항감이 있지 않을지 생각도 했지만, 그 부분은 딱히 별 생각 없는 듯 하다.

오히려 가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 미심쩍은 부분이 더 큰 모양이었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본래 예은이 오지 않았어도 혼자 가려고 했던 장소.

설명해 주기 위해서 입을 열려던 찰나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발길이 급하기도 했고, 일단은 거부감이 없는 친구 사이인지라 확 붙잡긴 했는데 역시 여자는 여자인 걸까.

어제도 느꼈지만 손목이 가는데다 살갗이 부드럽다.

평소의 악력이 이런 얇은 팔에서 나온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지경.

"나는 식사할 시간이라서 말이지, 너는 어쩔래?"

"..그야 아직 안 먹었지만서도….'

딱히 거부하는 의사까진 없는 듯 해 나는 예은을 그대로 끌고 식당으로 향한다.

멀리 가려는 건 아니고 내가 늘 밥을 먹는 이곳 호텔 2층의 뷔페로.

정말 오늘 하루는 아침도 대충 때운데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게임만 했더니 등가죽이 배에 달라붙었다.

더욱이 배 고픈 것도 배고픈 거지만 몸이 뻐근한 게 좀이 쑤실 지경.

때문에라도 나가려고 했던 찰나에 이 녀석이 온 것이다.

띵동!

나와 예은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섰다.

평소엔 당연 계단을 이용하지만, 얘를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려니 뭔가 아닌 듯 했달까.

자주 타진 않는 엘리베이터지만 얼떨결에 이용하게 되었다.

'......느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여기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정말 굼벵이가 따로 없다.

기다리는 동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어색하게 흐르는 공기.

한참을 기다려서야 탈 수 있었던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공기가 유지된다.

"..........."

예은이 나에게서 시선을 삐끗 돌린 채 입을 다물고 있다.

어제 일 때문에 꽤나 불만이 많은 모양.

그렇다고 딱히 걱정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그랬듯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알아서 풀릴 것이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예기치 않게 일어난 사고에 당황하고 말았다.

덜컹!

엘리베이터가 너무 낡은 탓일까.

위쪽 방향에서 뜬금없이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우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짚이는 점이 있었다.

강남 호텔은 세워진 지 상당히 오래됐다.

때문에 겉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가 상당히 낡아있다.

그래도 대부분 리모델링을 거쳤기에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티나지 않는 부분이지만 한 가지.

엘리베이터 만큼은 어떻게 손보지 못했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루시, 여기 엘리베이터는 왜 이렇게 느린 거야?>

호텔 식당에서 일하는 내 몇 안되는 미국 친구, 루시에게서 들었던 정보.

여기 호텔이 다 좋은데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다고 그녀에게 투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루시는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호텔에서 오랫동안 일을 한 주방장이 이야기 한 바에 의하면.

엘리베이터는 호텔 사정상 교체를 하지 못했다는 별거 아닌 잡담을 했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끼이이익..!

이미 한 번 불안한 소리를 냈던 엘리베이터가 이번에는 갑자기 뚝, 끊어진 것 같은 묘한 감각.

마치 중력이 사라지기라도 한 듯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 난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재차 하강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그나마 무언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 듯 소름끼치는 금속음이 귀를 찔러오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곧 안전장치가 발동하겠지.

당연한 소리지만 현대 엘리베이터에는 기본적으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다.

그런데 순간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오래됐다는 이곳 호텔에는 혹시 없는 건 아닐까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엘리베이터는 금속음을 내면서 낙하하고 있다.

이대로 쭉 떨어진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엘리베이터가 이상이 생겼던 높이는 3층부터.

겨우 3층이라 할 수 있지만 높이로 치환하면 거진 10미터다.

결코 낮다고는 볼 수 없다.

게다가 균형이 무너진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넘어져, 어디를 잘못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예은의 손목을 낚아채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엘리베이터의 안전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까드드드드득!!

쇠와 쇠가 부딪히며 깎여나가는 듯한 기음.

낙하하던 엘리베이터가 어딘가에 걸렸는지 금속음이 귀따갑게 울린다.

충격은 있었지만 다행히 그 덕에 엘리베이터는 멈춰섰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갑자기 멈춰버린 만큼 당연 반동이 올 테니까.

그것도 어마어마한.

덜커엉!

안전장치인지는 몰라도 어딘가에 걸려 갑자기 멈춘 엘리베이터는 다시금 얕게 솟구쳤다.

그리고 다시 중력의 법칙에 따라 내려앉는다.

그 탓에 엘리베이터 내부는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려 댔고, 흔들린 바람에 가까스로 잡고 있던 균형이 무너져 내렸다.

다시 눈을 뜬 엘리베이터 내부에서는 먼지가 일고 있었다.

곳곳에 앉아있던 티끌들이 전부 일어날 정도로 세차게 흔들렸던 탓.

다행히도 더 이상 엘리베이터에서 진동이 느껴지진 않았기에 상황을 확인했다.

"너 괜찮냐?"

일단 목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나는 무사한 듯 하다.

마지막 순간에 엘리베이터 벽에 몇 번 부딪히긴 했지만 타박상 정도라 생각한다.

걱정이 되는 건 예은쪽.

일단 대처를 하긴 했지만서도 예의상 물어봐 준다.

방금 전, 한 손으로 안전손잡이를 잡고 있었던 나는 갑작스런 큰 진동에 그만 놓쳐버렸으니까.

다른 한 손은 예은을 안고 있었기에 힘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 탓에 엘리베이터 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안고 있던 예은을 놓치진 않았으니 별 일은 없겠지.

눈 앞에 보이는 예은의 모습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안심하고 말았다.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나의 물음에 예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게 어지간히 놀란 모양.

노란 바람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듯 했다.

아니었다.

"@#!%[email protected]!"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듣지를 못하는 거였지.

입을 뻐끔뻐끔 벌리며 무언가 소리쳐오는 것 같기도 한데 귀가 먹먹하다.

기분 탓인지 조금 어지러운데다 신기하게도 등 뒤가 따듯하다.

흐릿해지는 시야와 함께 내 의식은 끊기고 말았다.

.

.

.

* * *

뚜-

뚜-

규칙적으로 들리는 신호음.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는 바뀌어 있었다.

주위는 하얗고 네모난 방안이었다.

그리고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병원인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서 사고가 있었고 그 여파로 기절은 한 것 같다.

혹시 몰라 양 발과 양 손을 움직여 보니 감각은 멀쩡하다.

하지만 어째선지 일어서려고 하니 저항감이 있다.

'.....무거울 만도 하네.'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내 가슴팍 밑에 손님이 계셨다.

얼굴은 반쯤밖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양 팔을 포갠 채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람이 예은이란 사실을 눈치채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렇게 나도 예은도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다른 생각이 났다.

나는 어째서 기절한 거고,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된 걸까.

그리고 정신을 잃은 후로 과연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궁금한 건 산더미였지만 무사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기분이다.

'일단 큰 일은 없었던 듯 하지만.. 이 녀석은 언제 일어나 주려나..'

힘을 써서 치우자니 너무 잘 자고 있어 깨우기가 민망하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당담의나 간호사가 와주겠지.

나는 시간을 때울 겸 팔베개를 베고 예은의 얼굴을 관찰했다.

볼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어디 하나 못난 구석이 없다.

그래도 찾아보면 뾰루지 하나 정도는 있겠지.

못된 생각으로 예은의 얼굴을 살펴본 나는 의외의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뭐, 별 일 이었다고.'

자세히 보지 않았으면 놓쳤을 정도의 조그만 자국.

예은의 눈가와 속눈썹 사이에 마른 눈물자국이 엉겨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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