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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08화 (20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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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솔로랭크

어제 호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수직 낙하해버린 대형사고.

솔직히 토종 한국인으로서 살아왔던 나는 사고가 나도 융통성있게 넘어가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특히나 한국남자는 군대를 가게 되면 당연하게 붙는 사고방식이 아닌가?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하면서 큰 생각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호텔 측에서는 완전히 난리가 나서 뒤집혔다.

'부담스러우면도.. 은근히 계산적이네.'

꽤 오래 강남 호텔에 묶고 있었지만 그동안 얼굴도 보기 힘들었떤 호텔 지배인이 직원들과 함께 내 객실에 찾아왔다.

무려 오늘이 일요일임에도 정식으로 사과하기 위해 출근 후 방문한 모양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를 맡고 있는 관리업체의 대표 또한 와서 심심한 사과와 함께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해댔다.

오늘 오전에만 있었던 일이 이 정도.

그 사과가 결코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지만서도.

계산적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자신들이 안전검사를 통과했다는 부분에 대해 집요하게 설명을 하면서, 피해보상액수에 대해 양해를 구해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들 업체의 담당 변호사를 대동해서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맞았지만.

사고 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오는 건지.

심적으로도 변호사가 갑자기 내 앞에서 뭐라뭐라 하니까 죄지은 것도 아닌데 덜컹 하더라.

'한국 살면 어지간해서야 변호사 볼 일이 있어야지..'

이 부분은 나 혼자 어떻게 하기보다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모르는 부분을 어정쩡하게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만큼 볼썽사나운 일이 없으니.

그 구체적인 도움의 상대가 다소, 안타깝긴 되긴 했다.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나, 콜록!"

"......걍 누워 자라. 넌 자는 게 도와주는 거다."

침대에서 반쯤 일어난 예은이 기침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자기주장을 펼쳐왔다.

정말 옹고집도 저런 옹고집이 따로 없다.

나는 조금 전까지 분명 코 자고 있던 예은이 일어나게 된 사건을 회상했다.

호텔 지배인과 엘리베이터 관리업체의 대표가 왔었을 때.

당연 조금은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감기기운으로 자고 있던 예은이 깰까봐서라도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은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이야기할 테니 저쪽에 박혀 있어.>

예은이 의자에 걸어두었던 가디건을 입고 나오더니, 사건 장본인인 나를 비켜 세웠다.

언제나 그렇듯 굉장히 띠꺼운 말투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지만 의외로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예은의 전공도 알 수 있었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되려고 저런 녀석이 법학을 배우냐..'

아무리 법학을 전공했다고 해도 니 나이가 몇 갠데 알면 얼마나 안다고.

솔직히 속으로 콧방귀를 꼈지만 예은은 생각 외로 상당히 야무졌다.

아는 게 전혀 없는 내가 봐도 이야기가 척척 진행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

물론 불안한 부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조금 고민을 하더니 자연스럽게 넘겨버렸다.

차후에 전속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대변하겠다는 둥.

사실 그 때는 얘가 감기기운 때문에 정신이 나갔나 헛소리를 하나 했다.

<여기 L.A 사는 이모 회사의 변호사 있어.>

흔히 말하는 있는 집 자식!

알고는 있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장난이 아니더라.

평소에 워낙 싹수가 노래서 저러다 한 번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생각을 했던 적이 었었는데.

집안도 그렇고, 법대생인 것도 그렇고 뻔뻔할 만도 했다

그런 사람이 내 편을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이러니저러니 해도 꺼름칙한 부분이 없이 사건을 일단락할 수 있었던 것은 예은의 덕이 상당했다.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것은 이야기를 끝마친 직후.

역시 예은은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빈혈이라도 일으키듯 휘청거리던 녀석을 내가 붙잡지 않았다면 조금은 일이 났을지도.

나는 예은의 양 어깨를 잡아 그대로 끌고 침대에 눕혔다.

그런데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면서 바둥바둥.

강제로 재우는 일이 꽤나 고생이었다.

<얌전히 안 자면 확 덮쳐버린다?>

농담조로 한 마디 던지자 역으로 기가 살아가지고 대들어 왔다.

아무리 그래도 나 간호하다 감기 도진 녀석을 한 대 쥐어 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더욱 힘들었다.

겨우겨우 타일러서 재워야 했는데 어찌나 기가 세던지, 몇 분밖에 상대하지 았았는데 진이 다 빠졌다.

여기까지가 예은이 다시 일어나기 전까지의 일.

그나마 한 시간 정도는 조용히 자길래, 나는 나대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금새 다시 일어나서 저 모양이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어쩌고저쩌고.

내 걱정해주기 전에 니 걱정부터 안 하면 내 걱정이 더 늘어날 것 같은데 말이지.

나는 아까부터 내 뒤에서 쫑알거리던 예은에게 한 마디 던졌다.

하고 있던 일이 슬슬 마무리 단계에 온 지라 여유가 생긴 덕이었다.

"당장 할 필요는 없잖아? 좀 쉬다 이따가 기숙사로 돌아가고 내일부터 해. 바래다 줄 테니까."

예은이 잠을 자고 있던 동안에, 내가 나대로 하고 있던 일이 게임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정신이 조금 팔려버린 터라 위험한 상황이 몇 번 있긴 했어도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승리.

이제 남은 문제는 현실 쪽이었다.

"..오늘도 여기서 잘 건데?"

"........너 잠 덜 깼냐?"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대답에 순간 반론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금새 마음가짐을 고쳐 잡았다.

어제 내 손목을 간호해주기 위해 하룻밤 자게 된 건 그렇다 쳐도 오늘은 왜 또 그러냐고, 나는 예은을 향해 따졌다.

"그야... 다 안 나았잖아?"

"충분히 다 났거든?!"

되도 않는 변명에 조금 소리를 쳐버리고 말았다.

내 오른 손목은 원래부터 일상생활만을 생각한다면 큰 부상은 아니었다.

예은이 다소 호들갑을 떤 거고, 나도 굳이 죄책감 갖지 말라고 숙박을 허락해준 거지.

게다가 어젯밤 예은의 헌신 덕인지는 몰라도 현재 소목상태는 거의 괜찮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예은이 억지를 부려오는 이유는 뭘까.

짐작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냥 가기 싫은 거 아니야?"

"........."

반쯤 침대에서 일어나 있던 예은이 양 팔로 무릎을 끌어 안더니 고개를 돌린다.

대답도 없는 게 심증이 섰다.

나는 확증을 끼얹기 위해서 굳이 어제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가 아니라 이제는 그저께 일인가.

술에 잔뜩 취한 예은을 기숙사에 데려다 준 후의 이야기.

그때 조금 사건이 있었다.

"..그니까 어제도 그것 때문에 온 건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돼서."

"미리 말해두지만 내 잘못은 없다?"

볼을 부풀리고 투덜대는 예은에게 나는 혹시나 몰라 미리 받아쳤다.

이틀 전 밤, 술에 떡이 되었던 예은.

항상 나보다는 많이 마시던 녀석이었기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예전부터 궁금했다.

사람이 원래 술을 마시면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니, 과연 저 싹수가 노란 녀석은 얼마나 더 개판이 될까 하고.

"그러게 술버릇이 나쁘면 미리 말을 해 놓던가."

"하? 나쁘지 않거든!? 쪼오금.. 상황이 안 좋았을 뿐이지."

자기 욕하는 소리는 귀신같이 알아듣고 목청을 올리던 예은의 말꼬리가 죽어간다.

뭘 잘못했는지 알긴 아는 모양.

그래도 뭐, 예은의 말마따나 술버릇이 나쁜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 난감하게 만드는 쪽이었으니까.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친구분들 계신 데서 어떻게 그렇게 달라붙냐."

"..딱히 걔네랑은 친구도 아니고~, 친하지도 않거든~?"

정말로 사이가 안 좋은지 부풀렸던 볼에 입술까지 튀어나왔다.

신경 안 쓰시는 거라면 왜 댁네 안 가시고 여기서 뻐팅기는 거냐고?

한 소리 할까 싶다가 참았다.

대충 사정이 어떤지 감이 왔으니까.

"그래서 오해가 생겨버렸다?"

"맞아. 짜증나게..!"

어찌나 짜증이 나셨는지 인상을 쓴 채 이를 으득 씹으신다.

그야 친하지도 않은 친구한테 놀림을 받으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만.

이해는 가지만서도 애초에 따져야 할 부분은 다른 방향이다.

'니가 자초한 일이잖아..'

나는 속으로나마 한숨을 내셨다.

대인관계가 영 안 좋은 건 이러저러 이유가 쌓여있다 치더라도.

그렇게 술 퍼먹고 남자랑 돌아오면 누가 봐도 그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겠지.

팩트 공격 해버리면 또 꽁해 있을까봐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사정이야 알겠지만은 평생 여깄을 수도 없잖아? 옷가지도 없을 테고."

토라져 있는 사람을 몰아붙여서야 더욱 마음속 담을 쌓을 수밖에 없기에.

일단 타일러서 돌러보내자고 한 소리였지만.

아직 마음을 접지 못한 예은이 엉뚱한 대답을 해왔다.

"옷은 직원 탈의실에 여벌정도는 있을 테고.. 한동안만 여기 있게 해줘, 응?"

하루 이틀도 아니고 웬 뜬금없는 가출선언이신지.

확실히 여기 호텔이라면 그럭저럭 의류가 갖춰져 있긴 할 거다.

얘가 여기 호텔에서 일하지만 않았더라도 돌려보낼 수 있을만한 건수였는데 안타까웠다.

잠시 고민을 한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에은을 돌려보낼 자신이 있었다.

"감기, 나한테 감기 옮는다고? 그래도 괜찮겠어?"

"........"

안 그래도 뾰루퉁했던 입술이 붕어처럼 튀어나오고 삐딱한 태도가 됐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을 거다.

어젯밤에 날새워서 간호까지 한 사람이 병을 옮길 수야 없는 노릇일 테니.

"..바보라서 감기 안 걸리지 않을까?"

"바보도 아니고, 감기정도는 걸린다 야."

조금 상처받았다.

평소였다면 그러려니 넘겼을 텐데.

법대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신빙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얌전히 있어도, 안돼..?"

"응 안돼."

불쌍한 척 목소리를 낮추며 물어오지만 딱 잘라 거절한다.

여지를 줬다간 여우같이 파고 들 녀석인지라 선을 그었다.

그렇게 내가 확답을 해버리자 제대로 삐져버린 듯, 예은은 휙 돌아 눕더니 그대로 자는 시늉을 했다.

정말 자는 게 아닌 시늉이라 할 지라도, 누워 있다 보면 언젠가 잠이 들겠지.

자존심 센 녀석이 반박을 하지 않는 것 보면 적당히 자다가 알아서 갈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다음 게임의 큐를 돌렸다.

녀석과 말을 섞느냐고 큐를 한 번 거절해버린 것이 조금 아쉬운 노릇이지만.

아직 마스터 초입이기에 큐 잡히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큰 상관은 없다.

나는 다음 큐에서 쓸 챔피언을 떠올리려다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시기상조겠지.'

그랜드 마스터 1위를 노려보자 마음을 먹었다.

그것이 겨우 어제의 일.

단순 실력만으로 해나가기엔 시간이라는 여건이 충분치 못했기에, 이를 뒷받침 해줄 비장의 카드를 마련하고자도 했다.

그 비장의 카드로 무엇을 꺼낼지는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정해둘 수 있었다.

하지만 비장의 카드를 벌써부터 꺼낼 수야 없는 노릇.

최소한 그랜드 마스터까지는 기존에 하던 걸로 벌어먹어야 한다.

비장의 카드라는 걸 너무 일찍 노출해서 좋은 꼴이 나오진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올라가야 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 목표도 어지간히 힘들어 보인다.

오늘은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이 있을까,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조금 안 됐다.

어젯밤 피로해졌던 몸도 꽤나 정상 컨디션을 찾았기에 밤까지는 달릴 만하다는 생각.

나는 오랜만에 그것을 꺼내보기로 했다.

'안 한지가 좀 됐나.'

내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주력 챔피언.

그 한계가 너무나 명확했던 탓에 양학을 제외하면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양학이 더없이 필요한 때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내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이보다 더 좋은 챔피언이 있을까?'

마스터 오브 이.

안 그래도 이 챔프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지만 이제는 더더욱이다.

이전보다 상당히 올랐다고 자부하는 실력.

다시 한 번 솔로랭크에 올마스터의 펜타킬 열풍을 불러일으켜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번뜩인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때마침 잡힌 솔로랭크 큐의 수락 버튼을 눌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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