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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18화 (21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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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방꾼

'도방?'

도방이 무슨 뜻을 가진 약어인지, 그 정도는 당연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의 방송을 도둑질하고 있다는 뜻.

하지만 난 지금 게임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뜬금없이 도방이란 말이 나온 이유는.

-올마스터님 타임끝이 님 게임 도방 중. 혼내주셈ㅋㅋ

-우정파괴 쓰리런ㅋㅋㅋㅋ 진짜 못됐다ㅋㅋ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인터넷을 키고 파프리카TV에 접속했다.

일단 한국서버이니만큼 토이치TV일 리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타임끝이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한 번 언질을 받았었다.

'나한테 조언을 구하기도 했을 정도니까.'

당시 내가 술에 절어있어 정확한 내용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는 대략적이나마 파악하고 있다.

그런 타임끝이 내 게임을 도방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다니.

'꽤나 성장했구나.'

딱히 비꼬는 게 아니라 좋은 의미로다.

만약 유명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언급이 나올 일도 없었겠지.

사실 따지고 보면 도방도 아니고, 그저 내 랭크게임을 방송을 내보낸 정도다.

내가 파프리카TV의  BJ로서 큰 꿈이 있었다면 모르되 그렇지가 않으니까 너그러이 이해해 주고도 남는다.

'그래도 맨 입으론 좀 그렇고,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얻어 먹을까.'

파프리카TV에 타임끝을 검색하니 조금 흥분된다.

정작 나 자신이 방송할 때는 그러려니 별 생각이 없었지만서도.

지인이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미가 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LCL에서 보이스채팅을 할 때도, 결승전에서 직접 만났을 때 어린 말투를 쓰던 타임끝이 과연 어떻게 방송을 하고 있을까.

솔직히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나는 두근두근 방송 화면이 로딩되기를 기다렸다.

<형님들 AP마이 씹오지는 거 인정하는 부분? 이거리얼 빼박캔트! 바로 부캐 켜서 AP마이 달려버리기!>

방송을 킨 후 처음으로 나온 멘트.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타자로도 치기 민망한 말투를 입밖으로 꺼낼 수 있는지.

정말 스무 살을 먹고도 초딩스런 느낌이 묻어나오는 타임끝이 아니었으면 감히 시도조차 못했으리라.

-컨텐츠 도난 지리고요ㅋㅋㅋㅋ

-얼굴에 철판깔았네ㅋㅋㅋ 근데 이게 초딩끝 방송보는 맛이긴 함ㅋㅋ

-BJ님 현관벨 누르고 튀는 우리동네 초딩같아ㅋㅋ귀여웡♡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심지어 별명조차 초딩끝이었다.

얼핏 시청자 수를 살피니 1천 명이 가뿐히 넘는 인기BJ.

채팅창에서 터져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시청자 충성도도 상당히 높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경 쓰이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여성 시청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파프리카에... 여성 시청자가 이렇게 많았나?

나도 파프리카에서 활동을 할 적에 꽤나 인기BJ 축에 속했던 만큼 방송 시청자수는 많았다.

현재 초딩끝, 아니 타임끝이 진행하고 있는 방송의 시청자 수와 엇비슷했다.

물론 BJ랭킹은 조금 더 높았다.

파프리카TV 자체가 플랫폼으로서 많이 성장해 이용자수가 늘어났기 때문.

그럼에도 네 자리 수의 시청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나 많은 시청자수를 보유했을 때도 여성 시청자는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간간히 보는 수준이었다.

'롤방송 시청자 중에 여자들은.. 엄마 아이디로 접속한 거 아니었어..?'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마쳤었는데 초딩끝의 방송은 얼핏 살펴 봐도 성비가 남달랐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고 싶어도 눈 앞에 보이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대체 이 녀석 방송이랑 내 방송이 뭐가 달랐길래.

그리고 내 방송을 본 여성시청자들은 대체 무엇이 불만이었길래.

'.......내 와꾸도 그렇게 딸리진 않을 텐데.'

잘 생겼다고는 하진 않겠지만 나름 훈남 축에는 낀다고 자부한다.

말 그대로 나 혼자 자부하는 거고 타인에게 딱히 긍정받은 기억은 적지만 일단은.

대체 무엇이 극명한 온도차를 만들었을까 순수하게 궁금했다.

그렇게 내가 타임끝의 방송을 보며 골똘히 고민에 휩쌓였을 때.

뒤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던 예은이 어깨너머로 중얼거렸다.

"귀여운 애네. 헤에, 타임끝?"

"얘가, 귀엽다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예은의 말.

나는 실눈이 되어 방송 우측 하단에 캠을 킨 타임끝의 모습을 관찰했다.

청모자를 뒤로 눌러 쓴 캐쥬얼한 복장.

로스앤젤레스와 달리 쌀쌀한 가을이 온 한국이니 만큼 조금은 두텁게 입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츄리닝 입은 거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패션센스가 돋보인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부분을 남자 시선으로 보니 잘 몰랐는데 예은의 말을 듣고나서야 조금 보이는 것도 같았다.

저 초딩같은 말투도 어쩌면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 걸지도.

다른 건 아직 생각을 해봐야 하는 부분이지만 한 가지.

보들보들 해 보이는 뽀얗게 오른 하얀 피부는 결정적이었다.

타임끝의 아프리카 풀닉네임, 우윳빛깔 타임끝이라는 이명이 딱 맞아 떨어진다.

'이런 게 세대 차이인가..'

신체적인 나이 차이는 두 살밖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이 2년의 차이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과도 같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남자를 2년이란 세월동안 이세계에 격리돼 외관이 폭삭 삭아버리니까 말이다.

"내가 정말 2년 전만 해도 피부가 이 녀석 못지 않았는데.."

".........님 제정신?"

예은이 등 뒤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쫑알거린다.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

증거가 없는 걸 믿고 막 뱉었건만 곧바로 의심을 사버렸다.

차갑게 식어버린 공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와중에도 타임끝의 방송은 진행되고 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초딩스런 말투.

그럼에도 워낙 BJ 본인과 잘 어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화면에 눈이 갔다.

다행스럽게도 예은 또한 방송 쪽에 더 관심이 많이 가는지 그 이상의 태클은 걸어 오지 않았다.

<형들, 내가 올마형이랑 밥도 같이 먹은 사이잖아. 근데 이 형 식습관이 참 기묘해... 응? 듣고 싶다고요? 그렇다고 올마형을 팔 수는 없는데.. 추천 1500개 넘어가면 바로 우정파괴 쓰리런 달릴게요!!"

타임끝 녀석이 생각보다 나를 비싼 값에 잘 쳐서 팔고 있었다.

방송 흥행이라는 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만큼 어지간하면 이해를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넘어선 안되는 선이 있는 법인데.

"아니, 내 식습관이 뭐가 어때서?"

"정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는 아니지..?"

뭐가 그리 우스운지.

예은이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키득댄다.

정작 본인인 내가 떳떳한데 왜 주위 사람들이 흔들어대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터다.

다행히 내가 접속해서 추천을 누를 필요도 없이 1500개의 추천수는 후다다닥 올라갔다.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이래 봬도 나는 쩝쩝충도 아니고 밥도 깔끔하게 잘 먹는 편이다.

어디서 방송 흥행을 위해서 없는 말을 지어내려 하는 건지.

다른 건 몰라도 유언비어 유포만큼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봐주기 힘들다.

<그때 막 씨지맥형도 그렇고 메뉴가 서로 갈려서 타협점으로 뷔페에 갔는데 거기서 올마형이 정말 야무지게 잘 먹더라.>

의외로 별 말이 없었다.

이 녀석이 헛소리를 내뱉고 다닐 녀석은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 봬도 내가 복스럽게 잘 먹는 편이다.

친구들끼리 뭐 먹으러 가면 한 입만 달라는 소리는 무조건 들을 만큼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다.

아무리 방송 어그로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시청자들의 실망스러운 후폭풍을 감당하려고 멀쩡한 사람한테 누명을 씌우냐.

이런 점에서 보면 아직은 방송 초보다.

그런데 타임끝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먹는 건 맛있게 잘 먹는데... 이 형 이상하게 자꾸 섞어 먹어! 샐러드만 먹을 거면 샐러드만 먹고, 메인만 먹을 거면 메인만 먹지, 혼자서 막 신메뉴를 개발하더라고..>

그러면서 부연설명으로 내가 어떤 신메뉴를 개발했는지까지 덧붙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틀린 말은 한 건 없지만 사생활 보호 조금 해줬으면 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ㅁㅊㅋㅋㅋㅋㅋ 올마스터 누렁이였냐

-살다살다 뷔페에서 스까 먹었다는 소리는 또 첨 듣네 ㅋㅋㅋㅋ

-올마스터가 인간적인 면이 있네ㅋㅋㅋㅋㅋ 잉벤에 퍼가도 되죠?

뒤풀이로 뷔페를 간 것도 사실이고, 결승전에서 진 울분을 담아 내 마음대로 마구마구 퍼먹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억울하다.

오해를 하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해명할 기회를 요구하는 바.

"유언비어라며? 눈에 흙 넣어 줄까?"

"아니...... 사람이 먹고 싶은데로 먹는 건 죄가 아닌데….."

예은이 손끝을 세워 내 어깨를 꾸욱 찔러온다.

감기때문에 평소보다 살짝 체온이 올라간 예은임에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싸늘하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을.

이게 다 타임끝 때문이다.

"전화해서 한 마디 해야 겠구만."

"타임끝 탓하지 말고.. 그냥 이 기회에 고치시지..?"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고칠 필요까지야.

어느 시대에서나 선지자는 질타받는 법이다.

차라리 이 기회에 증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

때마침 슬슬 배가 고파져 오는 저녁시간대다.

과연 누가 어리석은지 판가름할 좋은 기회.

"내가 여기 호텔 뷔페 짬만 두 달이야. 섞어 먹는 게 결코 잘못된 식습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누렁이가 어련 하겠어."

쓴 소리 한 마디를 덧붙이는 예은이었지만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번도 밥먹자는 말에 거부반응 보이지 않는 밥순이니까.

얻어 먹는 주제에 메뉴도 따지는 입맛 까다로운 밥순이지만서도.

그렇기에 오히려 기똥찬 음식 조합을 못 알아 볼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

.

.

* * *

솔직히 말해서 여러 음식들의 장점을 살리는 것은 내 식습관이 맞다.

그리고 여기 강남호텔의 뷔페에서도 이러저러 음식을 섞어 먹고 있다.

내 식대로, 마음가는 대로 먹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계산이 존재한다.

더욱이 종종 조합을 특별하게 신경쓰는 경우 또한 있었다.

김치 치즈 탕수육.

정말 특이하다면 특이한 조합이지만 한 번 먹어보면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흔히 말하는 밥도둑 메뉴.

차후에는 누구나 호기심에라도 한 번 시켜먹게 되는 음식이지만, 현재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아직 방송에 안 나왔으니까 말이야.'

존재하냐, 하지 않냐를 묻는다면 하는 쪽이다.

지역음식의 개념으로.

하지만 인지도가 알려지는 건 TV에 소개된 이후다.

식탐많은 예은이라 할 지라도 모르는 게 이상하진 않지만, 그 맛을 보면 폄하하기는 힘들 거다.

"어때, 괜찮지?"

"뭐…. 나쁘진 않네."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오물오물 김치 치즈 탕수육을 씹고 있는 예은.

나는 그런 예은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맛있다까지는 나오지 않았어도 쓴 소리를 뱉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 인정을 했다는 뜻.

솔직히 비주얼적으로 마이너스 요소가 큰 퓨전음식인지라 호평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조금 어레인지한 감도 있지.'

호텔 뷔페에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김치에 후식 코너에 있는 치즈 퐁듀.

그 둘을 탕수육 위에 끼얹었다.

안 그래도 별로인 비주얼을 해괴한 수준까지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섞지는 않아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다.

대신 직접 볶은 게 아닌 지라 약간 어색한 감은 있지만.

"이상하긴 한데.. 제대로 해먹으면 맛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예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역시 먹는 거라면 사족으로 못 쓰는 밥순인지라 음식 맛은 제대로 알아본다.

아직까지도 영 언짢은 듯 우물쭈물한 상태지만,내가 만들어 준 김치 치즈 탕수육은 한 그릇 싹 비었을 정도.

나중에 절대 딴 소리 못할 거다.

그 후에도 다른 퓨전음식들.

자신있게 조금씩 만들어 예은에게 갖다 줬지만 결과만 따지자면 승패는 반반일까.

사람 입맛이라는 게 원래 안 맞는 부분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김치가 만능이 아니라고 이 누렁아."

미식의 길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법이다.

뭐, 누렁이 누렁이 하면서도 나름대로 재밌는 식사였다며.

예은의 표정은 마지막에 가서는 나름 만족한 듯 보였다.

그러면 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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