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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19화 (21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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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방꾼

*148화에서 언급됐던 대만팀 티파가 TWA로 수정됩니다.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 컵.

통칭 롤드컵의 조별 예선이 끝나고, 드디어 본선 무대가 시작된다.

조별 예선의 진출자는 금요일에 열린 A팀에서는 CLC와 얼밤.

토요일에 열린 B팀에서는 한국의 또 다른 강팀인 마진 공격대, 그리고 유럽의 명문 포나틱.

그렇게 총 네 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물론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섭하다.

조별 예선과는 무관하게 본선 진출이 확정된 팀들이 있으니까.

각 대륙을 대표하는 대회들의 우승자들은 롤드컵 본선 진출권을 조별 예선없이 하이패스로 뚫을 수 있었다.

하이패스권을 얻은 각 대륙을 대표하는 대회들의 우승팀이 네 개의 팀.

조별 예선을 통과한 팀들과 합쳐져서 총 여덟 개의 팀들이 롤드컵 본선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는데.

"그냥 가게?"

"....더 봐서 뭐 하려고?"

예은이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하며 화가 난 듯 쿵쿵 거리며 걷는다.

아무래도 경기의 결과가 상당히 불쾌한 모양.

괜한 불똥이 나한테 튄다.

아무리 그래도.

'CLC가 진 건 내 탓이 아니라고요..'

나와 예은은 롤드컵 직관을 갔다.

금요일에도 한 번, 롤드컵 개막전에 갔었다지만 당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니까.

오늘 월요일에도 본선 첫 경기가 있었다.

A조의 1등팀인 CLC와 본선 진출권을 얻어 올라온 팀의 3전 2선승제의 매치.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열렬히 응원을 하고 있었건만 경기의 결과가 신통치 않자 이 모양이다.

"다음 경기 안 볼 거야?

"딱히 관심없는데?"

툭 쏘아붙이며 갈 길 가는 예은.

이 녀석이 이렇게 화가 난 이유는 응원하던 CLC가 져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질 만도 했지만.

북미의 강호 CLC와 타이완 아시안즈라는 팀명을 가진 대만의 유일강자가 맞붙었다.

경기 승패가 어떻게 될지는 일반적인 시선으론 CLC의 손을 높이 들어줄 수밖에.

CLC는 북미의 강호임과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따져도 한 손에 꼽는 최강팀 중 하나니까.

게다가 상대팀인 타이완 아시안즈, 약칭 TWA는 아무리 대만의 유일강자라고는 해도 결국은 대만이라는 것이 크다.

대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의 국가레벨을 가졌다.

하지만 그 비교대상이 아직 로드 오브 로드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데다 심지어 최근엔 추월까지 당했다.

시즌2 후반에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

이번 롤드컵 본선에 한국팀인 얼밤과 나진 공격대, 두 팀이나 올라온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런 변방의 약자 TWA에게 CLC가 결과적으로나마 패배했다.

물론 접전을 거쳤다고 해도 말이다.

1승 1패의 상황에서 마지막을 경기가 치뤄지고, 마지막 경기를 통해 TWA가 승자로 결정났다.

양 팀 다 훌륭한 경기를 펼친 게 사실.

그러나 CLC의 팬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CLC의 패배가 확정난 순간 어마어마한 수의 관중들이 무더기로 일어나 경기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선진국의 시민이라 생각하기 힘든 응원매너.

안타깝게도 그 중 한명이 저 녀석이었다.

'헬조선, 헬조선해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게 다 비슷하단 말이야.'

나름 CLC의 팬을 자처하고 있는 예은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음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예은과 경기장 밖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나가서야 곤란하다.

나는 불똥을 각오하고 예은을 향해 다시 한 번 물었다.

"이대로 그냥 가게?"

"안 본다고 말했지? 두 번 말하게 할래?!"

기지배가 앙칼지게 소리쳐 온다.

왜 나한테 화를 내는지 억울할 따름.

나도 일단 CLC 소속이고 CLC가 지면 너보다 내가 많이 화나야 하는 입장일 텐데.

그나마 미리 각오했던 일이니 데미지가 적다는 게 다행이었다.

'솔직히 나야 그러려니 하고 있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오늘의 경기는 적어도 내 안에선 의미하는 바가 컸으니까.

만약 CLC가 TWA를 이겼다면 역으로 곤란했을 것이다.

'역시 역사는 큰 틀에서는 바뀌지 않는 걸까나….'

확답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적어도 당장 역사가 개변되는 것보다는 낫다.

오늘 CLC를 꺾은 TWA는 현재 상당히 만만히 생각되고 있는 팀이지만, 시즌2의 롤드컵은 정말로 이변의 연속이었다.

바로 그 TWA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즌2 롤드컵의 우승팀.

쟁쟁한 강호들을 꺾고 운이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야 듣도 보도 못한 취급인 TWA가 CLC를 꺾은 게 단순한 운으로 생각될 수 있는 노릇.

CLC의 광팬들이 성을 내며 경기장을 뛰쳐 나가는 것도 그럴 만하다.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내가 내가 예은을 멈춰 세운 이유는 롤드컵을 더 관람하자, 당연히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나의 또 다른 볼 일과 더불어 녀석을 조금 달래주기 위함일까.

나는 다시 한 번 예은을 불러 세웠다.

당장 화가 나있기는 해도 귀를 틀어막는 녀석은 아니니.

이야기를 듣고 나면 반드시 귀를 쫑긋할 터란 확신이 있었다.

.

.

.

* * *

롤드컵이 치뤄지는 무대의 뒤편.

선수대기실로 향하는 통로 안은 조명이 살짝 어둡기 때문인지 공기가 가라앉아 있다.

그렇게 다소 칙칙하게도 보이는 공간이지만 나와 상대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도 그럴 게 같은 CLC의 소속.

물론 같은 팀이기 때문에 나는 선수대기실까지 들어가도 괜찮았지만, 다른 일행이 있어 일부러 통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행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수줍은 고양이마냥 숨어 있는 것도 귀엽지만은."

내 앞에 서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져 오는 남자.

그는 나를 미국으로 오게 만든 사람이다.

지금까지 이러저런 일이 있어 다소 만나는 게 늦긴 했지만, 원래라면 진작에 만났어야 하는 상대.

나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목소리 끝이 다소 힘빠져 있는 듯한 핫숏의 물음에 대답했다.

"잠깐 기다리라고 말해뒀어요. 그보다 일단은.. 경기 아쉽게 됐네요, 핫숏."

단순히 관람을 하고 응원을 한 정도로도 지쳤을 정도다.

무대에서 경기를 한 선수들의 상태가 어떠한 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으리라.

만약 이기기라도 했으면 정신적인 흥분이 육체적인 피로를 상쇄했을 지도 모르지만 지고 말았으니까.

TWA에 패배한 CLC의 주장, 핫숏의 상태는 말할 기력도 없어보인다.

그런 핫숏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동정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게다가,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잖아."

"뭐, 그렇기는 하죠."

긍정적인 마인드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핫숏은 충격적일 수 있는 패배를 벌써 털어낸 듯 했다.

누구나 실패는 하는 법이고 언제까지 꽁해 있어서야 아니되는 노릇이다.

그 말이 맞지만서도, 언제나 밝은 어투의 핫숏이 침울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약간은 아쉽게도 됐다.

하지만 얼굴이 조금 그늘져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침울하진 않아도 조금 정도는 답답한 모양.

나는 무거운 듯 보이는 핫숏의 어깨를 마저 털어주기 위해.

그리고 본론을 꺼내기 이전에 분위기를 조금 환기시키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응? 뭐가?"

조금은 생뚱맞은 소리.

핫숏이 의아한 얼굴로 되물어온다.

나는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 마음을 먹은 후 입을 열었다.

"이제는 제가 있잖아요. 핫숏, 다음 대회부터는 쉬어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하! 그러고 보니 요즘 솔랭에서 잘 나간다는 소리는 들은 바가 있지, 에러갓!"

내가 종종 자뻑을 하긴 해도 다 타이밍이 있는 법인데.

난리법석도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고, 살짝 쪽팔린다.

핫숏이 유쾌하게 웃어넘겨 주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잠깐 핫숏과 잡담을 하다 드디어 본론을 꺼낼 시기.

이야기를 먼저 물어온 건 핫숏 쪽이었다.

"맞다, 맞다. 정신이 없어서 지나쳐 버렸는데.. 같이 온 일행이 있다고 했지. 혹시 그 걸프렌드?"

어느새 평소의 컨디션을 회복한 핫숏이 능글맞은 표정으로 캐묻는다.

언제 어느 때인진 몰라도 내가 관람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봐버린 걸까.

혹시 그 걸프렌드냐니, 무언가 아는 눈치다.

어차피 핫숏을 만나게 하기 위해 끌고 온 마당인지라 비밀은 아니지만서도 괜히 부끄러워졌다.

"여친은 아니고.. 그냥 친구에요, 친구."

"후후, 원래 다 그렇게 말하는 법이지. 그렇게 시작하는 거기도 하고."

핫숏이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만나보면 알겠지만 그럴 녀석이 아니라니까 이 사람아.

설명을 어떻게 해도 곡해될 상황이었기에 나는 서둘러 통로 뒤 쪽에 대기하고 있던 녀석에게 신호를 줬다.

고개를 빼꼼 내민 예은이 눈치를 살피다 천천히 다가오더니 내 옆에 서서 정말 정상스럽게 인사를 했다.

"안녕.. 하세요?"

혹시 돌발스러운 행동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안 어울릴 정도로 예의바른 인사.

예은이 한 손으로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수줍은 듯한 얼굴로 핫숏을 바라봤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까지.

내가 알고 있는 예은과의 괴리감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핫숏의 반응까지 더해지자 머리를 벽에 꽝꽝 부딪히고 싶을 정도.

"호오! 반가워요, 반가워. CLC의 주장을 맞고 있는 핫숏디디입니다. 올마스터, 아니 시현씨의 여자친구분 되시나요?"

발음이 어렵다고 한국이름은 못 부르겠다고 했던 핫숏인데 갑자기 내 본명을 언급하며 예의를 차린다.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분명히 한 번 설명을 마쳤을 텐데.

여자친구냐는 둥 얼토당토한 물음을 던져오는 핫숏에게 나는 차마 태클을 걸지 못했다.

그나마 예은이라도 평소의 대응이었다면 끼어들 틈이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

오히려 예은의 대답은 한술 더 떠 가관이었다.

"시현씨와는 아직 친구 사이에요. 그래도 절친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아직은이라, 아직이란 소리는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긴데. 이야~! 우리 CLC의 기대주께선 여러 방면으로 능력이 탁월하시단 말이야?"

예은과 대화를 하던 핫숏이 나를 바라 보며 눈꺼풀을 찡그린다.

이 사태를 만든 예은은 부끄럽다는 듯 뺨을 붉히고 다소곳하다.

'우엑….'

하마터면 쏠릴 뻔했다.

내가 언제부터 너한테 대접받으며 살았다고 시현씨라니.

일단 핫숏의 팬을 자처하는 입장이니 내숭은 칠 수 있지만, 아직이란 소리는 왜 내뱉은 건지 통 이해가 안 간다.

더 이상의 사태를 용납했다간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낼 것만 같았기에, 나는 메슥꺼리는 배를 부여잡고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둘 다 나 놀리는 거면 작작하시고오......... 일단 이 녀석이 핫숏 팬이라고 해서 데려 왔는데. 인사 마쳤으면 그만 갈까?"

평소같았으면 그냥 확 잡아서 끌고 갔겠지만 소름끼치도록 완벽한 내숭을 떨고 있는 예은을 상대로 시도하기가 두렵다.

언제나 그러하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똥같은 녀석.

이번만큼은 어떻게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성스러운 예은이라니, 어디서 본 적이 있어야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법이지.

하지만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나를 골탕먹였다고 슬슬 그만두겠지, 생각한 건 나뿐이었다.

"미안.. 내가 시현을 부끄럽게 만들었지?"

"에이, 올마스터 그러는 거 아니지. 이쁜 여친, 아니 여친될 사람에게 너무 막 대하면 안돼. 솔직히 부럽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 아닌 거 알잖아?"

알고 있으니까 문제다.

불편한 눈치라도 보여줬으면 예은도 적당한 선에서 그만뒀을 텐데.

핫숏이 워낙 사람좋다 보니 저걸 그냥 곧이 곧대로 다 속아주고 있다.

아니, 예은의 연기가 수준급이라는 이유도 있지만서도 진실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선 그냥 확 다 뒤집어 엎고 싶을 노릇.

'그냥 쟤 때리고 지옥가면 염라대왕이 알아서 정상참작해 주지 않을까?'

이래 봬도 나름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저 녀석은 항상 내 안에 잠재된 폭력성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발악을 한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쉼호흡을 크게 쉰 나는 예은의 손을 움켜잡았다.

절로 찌푸려지는 이마를 가까스로 참으며 핫숏에게 나중에 다시 연락을 하겠다, 인사를 건넨 나는 핫숏의 배웅을 받으며 통로 밖을 나섰다.

내 반응과 분위기를 읽고 어떤 상황인지 대략 짐작을 한 듯한 핫숏이 얼굴에 장난스런 미소를 띄우며 통로 밖을 나서는 순간.

조명이 밝아짐과 함께 핫숏의 얼굴이 별안간 티가 날 정도로 굳어졌다.

굳어진 표정은 순간이었고 금방 풀기는 했다만 난 그 변화를 똑똑히 보았다.

대체 무슨 연유로 언제나 장난끼가 넘치는 핫숏의 얼굴이 진지해졌을까.

어째서인지 핫숏의 시선은 내 눈동자가 아닌 이마를 향하고 있었다.

예상 외의 사태때문에 내가 잠깐 잊고 있었던 이야기.

핫숏 쪽에서 먼저 꺼내오고 말았다.

"그 이마…. 꿰멘 상처지?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CLC 주장의 입장에서 꼭 듣고 싶은데 말이야."

이마에 세 바늘 얕게 꿰멘 흉터.

핫숏이 아직 실밥을 빼려면 시일이 꽤 남은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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