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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방꾼
이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은 가끔 보면 현실적이다.
분명 중립적이여야 할 게임내 음성이 사람들의 멘탈을 파괴하곤 한다.
─올마스터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절망을 불러 일으키는 음성.
심지어 이 음성은 팀원 전체에게 전달되기에 더욱 파급이 크다.
풀리츠크랭커[0/2/4]-아, 미드차이 조졌네 진짜. 봇라인전 이기면 꼭 딴 라인이 터지더라.
말화이트[1/1/1]-탑도 한타 조합 생각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근데 미드 탓할 것도 아님. 상대가 상대인데.
탈리반 3세[2/0/1]-적이 올마스터잖아요. 끠즈 한타 별로 안 좋은 걸로 아니까 멘탈 잡고 한타 가보죠.
보통 이 정도로 라인전을 털리면 한 소리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팀원들이 너무 친절하다.
오히려 그 친절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도진기였다.
물론 나름대로 변명할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별 거지같은 챔프를 꺼내 오다니….'
도진기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멘탈을 부여잡으며 가까스로 게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실낱 같은 멘탈이 이어질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팀원들의 말마따나 끠즈는 한타가 그다지 좋지가 않다.
자신도 분명 그렇게 알고 있다.
안 쓰이는 챔피언이 괜히 쓰이지 않는 게 아닌 법이니까.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카지트 또한 평가가 썩 좋은 챔피언은 아니지만서도 믿는 바가 있었다.
'카지트는 11레벨을 찍으면 달라진다.'
끠즈와 같다고 생각하면 섭하다.
카지트는 두 번째 진화 직후부터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챔피언.
성장기대치를 생각하면 라인전에서의 손해를 충분히 메꿀 수 있다.
도진기는 북미서버 카지트 장인의 플레이를 회상했다.
그 장인은 11레벨 전까지는 한타를 회피했다.
그리고 날개진화한 이후에 적극적으로 한타를 주도했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
날개진화에 달린 킬어시 리셋때문이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킬이나 어시스턴트를 먹으면 날개뛰기의 쿨타임이 초기화되는 특성이 카지트로 하여금 한타를 지배하게 만들어준다.
'르풀랑도 나쁘진 않지만.. 카지트에 비하면 발 끝도 못 따라와.'
도진기는 기동성이 탁월한 챔피언을 좋아한다.
자신의 피지컬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선, 그리고 실력차이에서 기인한 변수를 만들기엔 재빠른 챔피언이 좋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전장을 날아다니는 카지트는 그야말로 자유의 상징.
그토록 원하던 스타일의 챔피언이었다.
그 카지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기에 카지트 장인의 플레이를 몇 번이나 되돌려 보며 분석했다.
자신의 손에 꼭 맞는 칼이 되도록 다듬고 다듬었다.
비록 이번 판에서 말렸다고 한들, 한타에 가면 분명 자신이 활약할 여지가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이었다.
─적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소환자의 전장에 울린 외마디 괴음.
인내하고 인내하던 도진기의 각오를 허무하게 무너뜨릴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
그나마 괴음에서 끝나지 않고 바론을 먹은 타이밍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건 서포터의 희생덕분.
적팀 다수가 장기간 안 보이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풀리츠크랭커가 목숨을 걸고 바론에 와드를 박았다.
하지만 시야를 밝히고 채 2초가 되기 전에 바론을 먹혀버렸다는 게 문제.
사실 따지고 보면 와드를 박지 않은 게 서포터의 실수는 아니었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올마스터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풀리츠크랭커는 와드를 박은 대가로 악어밥이 되었다.
재롱잔치로 바론벽을 넘은 끠즈에게 반항도 못하고 끔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기에 와드를 박을 시늉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풀리츠크랭커[0/3/4]-으아아아아아아!!!!! 데미지 미친 거 아냐? 뭐 이리 키워놨어…. 욕 나온다 진짜.
탈리반 3세[2/0/1]-ㅠ.ㅠ 저도 가고 싶었는데 저럴까봐 못 갔음.. 제가 갔다가 죽으면 바론 먹힐까봐.. 근데 이미 먹혔네ㅋ
골 때려도 너무 골 때리는 상황.
저 악어밥의 사거리는 왜 이리 긴지.
그리고 둔화의 지속시간이 어쩜 그리 오래 가는지.
게다가 데미지도 웬만큼 세지가 않다.
잠깐 부쉬체크하러 갔다가 멀리서 던져오는 악어밥을 맞으면 그대로 0.1초컷.
그렇다고 저렇게 시야 낚시를 해대는 끠즈를 뭉쳐서 잡을 수도 없었다.
말화이트[1/1/1]-끠즈 재롱잔치인가? 저거 이동하면서 회피까지 하는 거에요?
이즈레알[2/1/1]-아마도..? 그런 듯 하더이다.
저 깔짝거리는 재롱잔치는 뭐 저리 판정이 좋은지.
한 번은 말화이트가 궁을 박고 다구리를 치려고 했는데 끠즈가 얄밉게도 재롱잔치를 사용해 궁극기를 피해버렸다.
제법 거리를 좁히고 궁극기를 썼건만, 말화이트 입장에선 어이가 빠질 노릇.
결코 실수해 놓고 징징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블러디체리의 핏물화나 마이의 알파 슬래쉬같은 무적 판정의 스킬들은 찰나나마 선딜레이가 존재한다.
입롤로는 가능한 것 같아도 막상 해보면 속도가 빠른 스킬들을 피하기 힘든 게 그러한 까닭.
그런데 끠즈의 재롱잔치는 판정이 좋아도 너무 좋다.
선딜레이 따위없이 즉발로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대로 한타도 못 붙어보고 지게 생겼구나.'
이러한 최악의 상황이 도출된 이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도진기는 백치가 아니었다.
바로 올마스터의 신출귀몰한 운영 때문에.
올마스터를 잡기 위해 칼을 갈아온 도진기였지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옛날엔 이 정도 수준까진 아니었어.'
도진기는 올마스터와는 이미 붙어본 경력이 있었다.
더욱이 한 번의 패배를 겪은 이후로는 아싸리 리플레이까지 돌려 보며 플레이를 분석했다.
그 덕에 그가 어떤 플레이스타일을 가졌는지 결론까지 내리는데 성공했다.
'단순히 시기적절한 챔프 운용만이 장점인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선수의 색을 묻는다면 카운터픽.
라인전의 승리를 바탕으로 게임을 그린다.
물론 단순한 꿀빨러가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충분한 실력이 있음은 인정하는 바.
하지만 결코 운영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도진기는 초중반 게임이 불리하게 흘러갔음에도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더욱이 솔로랭크는 대회가 아니라는 생각.
만약 이번 판에서 패배를 한다고 해도 다음 판에서 카운터픽을 못 치게 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판에서 올마스터가 보여준 모습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도진기는 실력이 부쩍 늘은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끠즈라는 챔피언이 가지고 있는 한타의 단점.
올마스터는 이를 운영을 통해 가볍게 극복했다.
확실히 저런 식으로 시야를 잡아먹고 암살을 해대는 잘 큰 끠즈를 막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라인전에서 킬을 내주지 않았다면 휘둘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나간 일을 따져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
설사 비등비등하게 갔다고 해도 다른 식으로 대응했을지 모른다.
적어도 이번 판에서 충분한 데이터는 얻지 못했다.
'.......다음 판에서 보자.'
아직 완전한 패배를 인정한 건 아니었다.
비슷한 실력의 유저들끼리도 라인전 단계에서의 스노우볼 때문에 현저한 차이로 패배하는 경우가 흔하게 있으니까.
다름 아닌 그랜드 마스터티어에서의 일상이다.
그도 그럴 게 그랜드 마스터라 함은 누구 하나 빼어나지 않은 유저가 없는 점수대다.
게임의 패는 실력차보다는 라인전 단계에서의 실수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도진기가 쌓아왔던 솔랭이력과, 올마스터에 대한 갈증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로 포기하기엔 한참은 일렀다.
그리고 당장 떠오르는 해법도 있었다.
어째서 이번 판을 지게 되었는지 도진기는 결론지었다.
'저 끠즈라는 챔피언이.. 안 쓰이는 건 맞지만 의외의 부분에서 카운터를 먹어버렸군.'
게임내내 생각을 해서 내려진 결론은 하나.
애초부터 카지트로 끠즈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킬의 구조의 상성이라고 할까.
마그마와 불이 완전한 상하관계에 있는 것처럼 카지트로는 끠즈를 맞상대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LCL에서 꺼낸 픽만 한두세 개가 아니었을 텐데, 대체 챔피언을 몇 개나 굴리는 거야?'
정말 기묘할 정도로 챔프폭이 넓은 올마스터.
어쩌면 올마스터는 카지트를 보고 정확히 끠즈를 후픽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을 이렇게 밀어붙일 수 없었으리라.
현실이 어떻든 간에 적어도 도진기 안에서는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아군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바론버프때문에 2차포탑은 내줘야 했다.
하지만 억제포탑만큼은 쉬이 내줄 수 없다.
그렇기에 억제포탑을 끼고 철벽수비를 이루고 있었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적팀의 주요 딜러인 끠즈가 악어밥을 던지며 대놓고 달려들었다.
<헤엄칠 시간이네!>
궁극기를 맞은 것은 하필이면 원딜러 이즈레알.
물론 그렇기에 몸소 끠즈가 달려든 걸 수도 있겠지만 성급한 판단이다.
이즈레알에겐 판정이 사기에 가까운 비전점프가 있다.
설사 둔화가 걸렸다 해도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어야 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올마스터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확실히 이즈레알은 비전을 사용해 끠즈의 죽창을 피했다.
이는 킬어시 리셋을 위해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도진기도 똑똑히 보았던 사실이다.
그런데 궁극기를 맞은 이즈레알에게 끠즈가 점멸 죽창을 꽂아 넣더니 그대로 사망.
분명 죽창이 닿기 직전에 피했음에도 말이다.
이즈레알[2/1/1]-분명 비전 썼는데????
지켜보던 자신도, 당사자인 이즈레알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따질 시간이 없다.
억제포탑 안쪽까지 점멸로 침입온 빌어먹을 끠즈를 고이 보내줄성 싶을까.
쿠! 창!
먼저 들어가는 건 탈리반 3세의 깃창.
끠즈는 당연하다는 듯 재롱잔치를 사용해 회피했다.
단순한 회피기가 아닌 광역 딜링의 효과를 가진 재롱잔치.
부자베인까지 더해진 묵직한 한 방이 탈리반의 체력을 뜯어낸다.
발화까지 걸리자 탱커고 나발이고 죽기 직전이다.
<버거킹!>
위험신호를 느낀 탈리반은 묫자리라도 깔아야겠다는 심정에서 궁극기를 사용했다.
3.5초간 지속되는 장벽이 투기장을 만든다.
문제는 이 투기장이 억제포탑 바로 옆에 생성돼 있다는 사실.
별 다른 효과없이 가두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끠즈가 조냐만 쓰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띠이이잉..!
하지만 이 정도를 예상하지 못할 도진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도진기가 탈리반을 도와주지 않고 놔둔데는 당연 이유가 있었으니까.
끠즈가 조냐의 물시계를 올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두 개의 생존기가 빠진 후에야 도진기는 뛰어들 각을 쟀다.
쿠화악!
도진기는 끠즈의 조냐가 풀리자마자 날아올랐다.
11레벨을 넘어 진화를 마친 날개뛰기로 힘것 도약한다.
고독 상태인 끠즈에게 갈고리를 내려찍으며 발화까지 사용하면 제법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으리라.
그런데 멍청한 아군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촤아앗!
어느새 쿨타임이 돌아왔는지 아까 한 번 이즈레알을 찔렀던 죽창이 탈리반을 찔렀다.
그것 뿐이면 다행일까.
끠즈는 그대로 미끄러져 탈리반이 세운 장벽을 통과해 억제포탑을 빠져나갔다.
누가 봐도 죽을 수밖에 없던 상황.
뒤늦게 끠즈가 살아 돌아가고 있는 사실을 파악한 풀리츠크랭커가 점멸까지 사용해 그랩을 던졌다.
그런데 그걸 또 재롱잔치로 피해내는 광경을 보면서도 도진기는 끠즈를 살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있나.'
순간 욱하고 욕이 나올 뻔했다.
비슷한 무적 판정의 생존기가 있는 챔피언.
블러디체리 또한 핏물화와 조냐의 물시계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면 상당한 어그로를 끌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못 잡을 정도까진 아니다.
근데 저 끠즈는 그냥 거지같다.
그리고 그런 끠즈를 키운 게 자신이란 사실 또한 거지같았다.
'이런 거지같은…. 정말 거지같다는 말로 밖에 표현을 못하겠네.'
거지같은 챔피언에게 거지같이 져버려서 기분이 거지같다.
빈약한 어휘사용 같아도 이 말 외에는 자신의 기분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게임의 승패는 억제탑을 끼고 있었음에도 강제로 정해졌다.
이즈레알[2/2/1]-저걸 대체 어떻게 잡아야 함? 포탑 끼고 있는데 생으로 들어와서 나랑 탈리반잡고 빠져나가네ㅋㅋㅋㅋㅋㅋㅋㅋ
탈리반 3세[2/1/1]-잭트가 잘 커도 저것보단 거지같진 않은데... 그냥 다들 수고하셨고 다음 큐에서 웃으면서 봐요. 카지트님은 가능하면 한 큐 쉬어 주시면 고맙겠고..
그나마 위안 거리가 있다면 거지같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자신 뿐이 아니라는 걸까.
무력하게 넥서스가 깨지는 것을 보며 도진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올마스터에 대한 재평가.
그리고 그를 훼방하기 위해선 자신 혼자서는 부족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
떠올렸지만 분한 마음의 도진기는 한 판으로는 인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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