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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방꾼
카지트를 플레이했던 유저를 벌써 두 번이나 만났다.
그것도 같은 미드라인에서 상대했다.
결과적으로 두 판 다 무난하게 승리한 건 다행이었지만 아무래도 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격같단 말이지.'
마스터 중반 점수대쯤 되면 같은 유저를 연속해서 만나는 일이 다반사인 건 맞다.
매 큐가 최소 5분을 넘는 극천상계에선 큐를 돌리는 사람의 숫자가 한정돼 있고,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한 경우에는 하루웬종일 승리와 패배를 주고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하지만 우연을 빙자한다 해도 내 눈을 벗어날 수는 없다.
'실력이 여기 구간 유저가 아니야.'
같이 게임을 했던 유저들은 대부분 알아채지 못했을 터다.
미묘한 무빙차이 라던지.
순간적인 판단력, 혹은 재치라던지.
자신이 말린 상황임에도 제 할 일을 찾아서 한다던지 같은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부분 말이다.
킬을 따고 못 따고 KDA를 벗어난 이런 기본기는 현지인으로선 알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마스터티어를 무시하는 소리는 아니다.
마스터정도 되면 게임보는 눈이 날카로운 게 사실이니까.
단순히 KDA만 가지고 실력을 판가름할 점수대는 아닌 것 또한 맞는 소리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어도 현지인은 현지인.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수준인 자신들끼리 서로를 판가름하기엔 KDA만큼 확실한 잣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나한테 연패를 한 상대 미드라이너 카지트가 현지인이 아님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적팀의 사정을 아냐고 묻는다면 설명은 간단하다.
나한테 겁나 죽었으니 KDA가 닳고 닳았다.
'솔직히 첫 번째와 두 번째 판은 챔피언 상성 덕에 조금 날로 이긴 덕이 있긴 했어.'
첫 번째 판에선 끠즈로 솔킬을 몇 번이나 따냈다.
이것은 단순히 실력차이라기 보다는 상대가 끠즈를 잘 모르기 때문도 분명히 있었다.
만약 카지트로 궁극기 진화를 했다면 제법 사리는 게 가능했을 테니.
카지트의 궁극기, 아공간 암습에 붙어 있는 데미지 감소 효과는 알고 있는 나라도 짜증이 난다.
아니면 아싸리 사리면서 파밍만 했어도 덜 죽었을 것이다.
'이래서 수박 겉핥기로 아는 지식은 쓸모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만.'
상대가 끠즈의 스킬을 아예 모르진 않았을 터다.
아는 게 곧 힘이라고, 상위권 유저들은 모든 챔프들을 적어도 한 번씩 플레이 해보며 스킬 구조를 익히니까.
하지만 단순히 스킬 구조를 안다고 그 챔프를 파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주류 챔프의 장인들이 잡는 기묘한 킬각.
직접 그 비주류 챔프를 해보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 킬각을 잡는 건지 알기 힘들 정도로 뜬금없다.
그렇다고 절대 오버벨런스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로드 오브 로드는 RPG게임이 아니니까 말이다.
매판, 매판이 1레벨부터 동등하게 시작하는 롤이니만큼 특출나게 오버스펙인 챔피언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도토리 키재기 까진 아니고 중간중간 큼지막한 밤톨이 섞여있는 정도.
그렇다 해도 아예 막 참외나 수박 외관부터 다른 게 끼어있진 않다.
예를 들어 볼까.
다소 어이가 없을 수 있는 비주류 챔피언들의 솔킬각.
1렙킹 귤선장이 또라이같은 딜교환으로 억지 킬각을 잡는다던지.
이전에 플레이 했던 탑세코처럼 속임수 박스로 정글몹을 먹고 선2렙을 찍는다던지.
어처구니없는 킬각들이지만 해당 비주류 챔피언을 해보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끠즈가 어떤 식으로 킬각을 잡는지, 딜은 어느 정도 나오는지 아예 몰랐다.
때문에 내비치는 허점은 싱거운 죽음으로 이어졌다.
죽어가면서 제법 깨닫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역시 말린 상황에서 펼칠 수 있는 플레이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융통성은 제법 있었어.'
만약 두 번째 판도 끠즈 대 카지트의 구도가 나왔다면 또다시 유린당했을 것이다.
아무리 한 번 상대를 해봤다고 해도 내가 모든 것을 보여준 건 아니니까.
게다가 기본 실력도 당연히 내가 위.
똑같은 패배가 반복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상대는 두 번째 판에서 마이에 이어 끠즈까지 밴했다.
'두 번째 판에선 1픽이 아니었으니 아군에게 부탁을 했으려나..'
어느 쪽이든 간에 내가 상대 1픽에게 감정을 싫은 건 아니니 별로 상관은 없다.
양학 당하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발버둥 정도야 대인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줘야지.
그렇게 두 번째 판에선 마이와 끠즈가 밴됐고 나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이미 상정을 해놓은 상황이니만큼 딱히 곤란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두 번째판에서 내가 꺼낸 챔피언은 이전부터 꾸준히 사용하던 산다라.
산다라도 끠즈 못지 않게 카지트를 잘 잡는다.
오히려 라인전만 따진다면 탈주각이 나올 정도.
근접챔프인 카지트는 기본적으로 원거리 챔피언들의 견제에 노출된다.
물론 2렙에 힘의 영약을 먹고 노리는 킬각은 무서울 수준이지만, 안타깝게도 산다라에겐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산다라의 E스킬.
검은 파동은 스턴과 더불어 접근하는 적을 밀어내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카지트는 산다라에게 절대 접근할 수 없다.
그런데 산다라의 라인전은 익히 알려진 대로 강력하기 짝이 없다.
미니언 하나 먹을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 끝없는 고통의 라인전.
심지어 두 번째 판에선 팀운조차 나에게 웃어줘 정말 쉽게 오픈을 받아냈다.
만약 저격이라 손쳐도 이것으로 끝이 날 거라 나는 확신했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지옥을 맛봤을 테니까.
하지만 상대는 상상이 상으로 끈기가 있어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작정했군.'
오늘의 네 번째 게임.
그리고 이 녀석과는 세 번째 만남이다.
이번에는 카지트가 아니라 르풀랑을 픽했기에 다소 알아채는 게 늦었을 뿐.
로딩창에서 보이는 르풀랑의 아이디는 앞서 두 번이나 만났던 유저였다.
점수를 잃는 게 무섭지 않는 건가.
아니면 바보같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걸까.
어느 쪽인진 몰라도 나를 의도적으로 저격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다.
보통 저 정도로 쳐발리면 멘탈이 산산이 으깨져 랭크게임에서 한동안 손을 놓아버리니까.
그럼에도 숨통이 붙어있다는 사실은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다.
'포기하지 않으면. 포기할 때까지 짓밟아 준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러는지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상대는 르풀랑 쪽이 더 자신이 있을 터다.
역순이었다면 굳이 세 번째 저격을 감행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정면으로 상대해 부숴주기로 했다.
고인 물은 썩고 마는 법.
굳이 물러설 필요는 없다.
도전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준다.
─미니언이 출발하였습니다.
이번 판은 꽤나 만만치가 않다.
상대가 잡은 르풀랑이라는 챔프는 라인전 능력이 탁월하다.
그렇다고 내가 미드랄라나 산다라같은 카운터 픽을 가져간 것도 아니다.
이번 게임에서 내가 꺼낸 챔피언은 전전판에도 했었던 끠즈.
끠즈 대 르풀랑전은 한 마디로 손싸움이다.
어느 쪽이 이기냐고 묻는다면 잘하는 쪽이 이긴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끠즈라는 챔프를 잘 모르는 상대가 이를 알고 있을 확률은 낮겠지만.
세 번째 도전인데다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챔피언을 꺼내온 것이니만큼 이번 판이 마지막이 되리라.
미드라인에 미니언들이 도착함과 동시에 상대가 그토록원하던 진검승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르풀랑과의 라인전이 시작됐다.
.
.
.
* * *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만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당연 어른들이 만든 우스갯소리지만 그럼에도 타임끝은 자신의 방송 컨셉을 착실하게 지킨다.
초딩틱한 이미지에 걸맞게 새벽방송은 한 적이 없는 바른생활 어린이인 타임끝.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바른 생활 어린이가 오늘 갑자기 탈선을 했다.
그런데 의아한 건 한 마디 해줘야 하는 시청자들이 모르는 척.
오늘 만큼은 착한 탈선을 인정해줬다.
-갑자기 왜 새벽에 방송 켰나 했는데 이유가 있었구먼.
-우정파괴 도방에 1따봉 드립니다ㅋㅋㅋㅋㅋ
-ㄴㄴ 어제 말했는데 허락 받았다더라. 이제 도방아님.
-타임끝이 새벽방송 키니까 현재 시청자수 1위 먹네ㅋㅋ
BJ라는 직업이 하루이틀 한철 장사가 아니니만큼, 몸 삭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인기BJ들은 새벽방송을 지양한다.
즉, 경쟁자가 없다.
더군다나 갑작스레 방송을 킨 타임끝은 꿀잼 컨텐츠까지 들고 왔다.
안 그래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타임끝의 방송이 현재 파프리카TV 시청인원 1위를 먹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타임끝이 들고 온 컨텐츠라 함은 이전에도 한 차례 했던 올마스터의 관전방송.
현재 파프리카에서 올마스터의 관전방송을 할 수 있게 된 건 타임끝과 인간조아라 뿐이었다.
물론 다른BJ들도 하려면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법적이라기 보단 도의적인 부분일까.
타임끝과 인간조아라는 올마스터에게 직접 허락을 받았다고 방송을 통해 언급했다.
하지만 다른 BJ들은 애초에 올마스터와 연락조차 주고 받을 수 없으니 발만 동동.
그렇다고 무작정 관전을 하면 시청자들이 허락은 받고 하냐고 지탄을 해댄다.
시청자를 모으려고 하는 컨텐츠때문에 마이너스 이미지가 심어져 버리면 본말전도.
이러한 사정으로 올마스터 관전방송은 타임끝과 인간조아라의 독점 컨텐츠가 되었다.
"오오!! 죽창 찌르기로 피해버렸어..! 이거 솔킬각 나오는 거 인정?"
아직 6레벨도 찍지 못한 초반 라인전.
올마스터가 플레이하는 끠즈가 르풀랑과 맞붙었다.
르풀랑은 자주 보이는 챔피언이지만 끠즈는 그렇지가 않다.
과연 미드라인전의 강자로 통용되는 르풀랑을 끠즈가 이길 수 있을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승자가 정해졌다.
퍼엉!
르풀랑의 패시브가 터지며 진짜와 가짜,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이를 파악하는 것은 발화가 걸려있지 않은 이상 쉽지가 않다.
낮은 티어대면 몰라도 고수준의 르풀랑은 분신까지 자연스럽게 컨트롤하니까.
게다가 올마스터는 이전의 딜교환으로 발화를 써버린 상황.
구분을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도 올마스터의 선택엔 망설임이 없었다.
"형들도 알겠지만 끠즈가 죽창으로 찌르면 표식이 뜨거든!"
발화에나 있는 치유감소.
W스킬 파워죽창을 발동한 끠즈의 평타엔 자동으로 묻어나온다.
덕분에 굳이 발화가 없어도 르풀랑의 분신을 찾아내는 건 간단했다.
하지만 체력상태가 말이 아닌 건 끠즈 또한 마찬가지.
둘의 생사를 가른 건 일찍 발화까지 걸어 딜교환을 한 끠즈의 판단덕분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채팅창을 오갔다.
"크으..! 신의 한수가 돼버린 하이그나이트!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하이그나이트는 굳이 킬각이 아님에도 발화를 사용하는 행위.
앞선 딜교환에서 올마스터는 쿨하게 발화를 써버렸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이유.
당시에는 오히려 단순한 클릭미스, 혹은 딜계산 실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해석이 나왔다.
잃은 체력에 비례하는 끠즈의 출혈데미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적 챔피언의 체력이 반절이하로 떨어지면 데미지를 증폭시켜주는 특성.
스킬과 특성의 상호작용이 승리를 낳았다는 해석이 말이다.
사실 이렇게 채팅창의 반응이 터져 나올 정도로 상황은 긴박하지 않았다.
르풀랑은 점멸을 쓴데 반해 끠즈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아니, 아슬아슬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점멸을 아끼기까지 한 올마스터의 딜계산 능력을 높이 쳐줘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 사실을 눈치챌만큼 수준 높은 시청자들은 없었지만서도.
"점멸도 안 쓰고 잡아버리는 올마형 클라스! 나도 오랜만에 끠즈 한 번 해봐야겠다. 초딩끝 끠즈도 올마형 못지 않다는 거 증명갈게요."
점멸의 사용유무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 모를 타임끝이 아니었지만, 굳이 설명충이 되어 이야기하는 건 피했다.
자신의 방송컨셉이 초딩인만큼 시청자들에게 굳이 잘난 척을 하지 않는 게 먹어준다는 판단.
그러한 사정때문에 타임끝은 종종 얕보일 때도 있었다.
-니가 하는 건 AD끠즈잖아. AD계수 하나도 없는 챔프로 공템 올리는 트롤끝 ㅉㅉ
-AD끠즈 북미서버 장인꺼 따라한 거 아냐?
-그랜드 마스터 BJ한테 입롤하시는 분 티어가..?
끠즈라는 챔프가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만큼 AD로 가야할지, AP로 가야할지조차 제대로 결정이 나지 않은 시즌2다.
나름대로 BJ로서 내공이 쌓인 타임끝은 빙긋 웃으며, 따로 강퇴같은 초강수를 두는 일없이 채팅창을 중재했다.
"올마형 게임 끝나고 AD끠즈, AP끠즈 전격분석 어때요, 형들? 아 근데 그러면 자는 시간 늦어지게 되는데.. 내일 방송 늦어도 뭐라 하기 있기 없기?"
어그로도 적당히 포용하며 방송 컨텐츠로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진정한 인기BJ로서 자립할 수 있다.
라고 타임끝은 올마스터에게 들었던 조언을 떠올리며 기분이 나쁠 수도 있던 상황을 프로방송인답게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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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분들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