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27화 (227/803)

227====================

훼방꾼

게임의 상황은 심각하다 못해 끝장이 났다.

바론을 먹고 물밀듯 쳐들어오는 적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미 진 게임이다.

서렌을 동의하지 않았을 뿐, 실질적으로는 손을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트리플 킬!

적은 전설적입니다..!

도진기는 게이밍 의자에 기댄 채 푸욱 한숨을 쉬었다.

라인전도 라인전이지만 중반 타이밍의 용한타.

그 이후로 게임은 완전히 돌이킬 수 없어졌다.

승산이 없는 걸 알면서도 그나마 움직인 이유가 있다면 그저,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게 까닭일까.

마지막이 될 한타에서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던 르풀랑은 이미 죽어버린지 오래.

이렇게 의자에 기대 잠깐 눈을 붙이면 적팀이 넥서스를 밀어줄 것이다.

그것으로 고통은 끝난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아…. 정말 힘들었어.'

터져나오는 한숨과 함께 속마음을 내비친다.

하지만 게임이 아무리 고됐어도 이를 갈던 올마스터한테 게임을 졌다고 약한 소리를 할 도진기가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아쉬운 소리를 내뱉을 쏘냐.

힘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피로감 때문이었다.

도진기는 오늘의 저격을 위해 이틀 밤낮을 기다렸다.

그 사이에 잠을 안 잔 건 아니었지만, 올마스터가 언제 어느 때 랭크 게임을 돌릴지 몰라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을 리가 있나.

게다가 올마스터가 게임을 돌리는 주기가 들쑥날쑥하다 보니 강제로 밤낮 또한 바뀌어야 했다.

그렇게 피로에 찌든 상황에서 올마스터를 드디어 저격해냈다는 달성감.

목표를 달성하고 풀려버린 긴장은 피로를 몰고 왔고 이는 집중력을 저하시켰다.

무거워진 눈꺼풀이 게임내내 도진기를 괴롭혔다.

이것이 도진기의 입장에서 나름의 변명이었다.

'제길, 올마스터 자식이 폐인처럼만 안 굴었어도.'

도진기는 짜증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물론 밤낮이 바뀌는 것은 골수 게이머들에게 으레 있는 일이다.

도진기 자신 또한 한두 번 경험해본 일은 아니었다.

게임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경험은 누구나 하는 일이고 게이머들에겐 더욱 자주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렇다 손쳐도.

매일 게임하는 시간이라도 최소한 비슷한 시기에 맞췄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올마스터는 들쑥날쑥한 시간대에 마음대로 게임을 해댔다.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지.'

더욱이 도진기의 입장에서는 느긋할 수도 없었다.

시간은 촉박하고 올마스터는 꾸준히 올라간다.

자신이 맡은 바 임무인 저격을 해내려면 시간을 소비해서라도 올마스터의 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변명을 정리하자면 첫 번째,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라인전을 붙었다.

두 번째, 올마스터는 뜬금없는 챔피언을 꺼내기까지 해서 대응하기가 곤란했다.

굳이 따져 보자면 꽤나 그럴 듯한 핑계인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3연패 씩이나 해버린 마당에 더 이상 말을 늘어놓기도 구차할 뿐더러, 더 이상의 저격은 불가능해 당장은 명예회복도 이룰 수 없다.

올마스터는 3연승, 자신은 3연패를 해버린 마당.

실질적인 점수차이가 100점 이상이다.

네 번째 저격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도차형은 이렇게 될 걸 알고 도슈까지 끌어들인 걸까.'

피곤에 쪄들어 잠에 들기 직전, 도진기는 도차가 단톡방에서 했던 이야기를 회상했다.

올마스터를 다시 상대한다는 흥분감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당시에도 얼핏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았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도차가 원망스럽게 느껴지지고 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솔로랭크에 복귀한지 얼마 안되는 올마스터의 기량을 정확히 파악해낸 도차의 선견지명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역시 도차형의 판단은 정확해.'

도진기가 알고 있는 도차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에 무게감이 묻었다.

무엇 하나를 하더라도 결코 쉬이 행동하지 않는 게 도차였다.

그런 도차가 올마스터를 간접적으로나마 높이 평가했다.

당연 확신이 있었기에 내린 판단이었을 테고 결국 그 판단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올마스터의 실력은 자신이 알고 있던 바 이상으로 더욱 늘었으니까.

도진기는 오히려 오늘의 패배를 계기로 도차를 경애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나도 만족할 때가 아니다.'

불과 두 달 전의 자신이었다면 생각도 하지 못했을 발언에 도진기는 순간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기고만장 오만했으니까.

사실 당시에는 그럴 만도 했다.

로드 오브 로드를 시작한지 채 1년이 안됐었으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반년 내에 도차는 물론 프로게이머 판에서 손에 꼽힐 수 있으리라고, 과거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실은 냉혹했지만.'

그랜드 마스터 상위권과 최상위권의 차이.

심지어 최상위권에서조차 나뉘어지는 실력격차.

올라갈 길이 너무도 멀었다는 것을 산 정상 끄트머리에 닿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은 만렙을 찍고 나서야 시작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상위권까지가 겨우 튜토리얼에 불과했다.

바로 현역 프로들의 기준에선.

'그리고..... 프로들이 현역이 된 후 솔랭 점수가 낮아지는 이유도 알게 됐지.'

프로게이머라고 해도 솔로랭크 점수가 마냥 높은 건 아니다.

오히려 그랜드 마스터에조차 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과거 도진기는 그런 프로게이머들을 대놓고 깔봤다.

아마추어인 자신보다 덜떨어지는 인간들.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퇴물들이라 비웃었다.

물론 사람이라는 게 그리 쉽게 변하지 않듯.

아직까지도 실력이 처지는 프로에 대한 경시가 있는 도진기였지만 많이 달라졌다.

LCL에서 올마스터와의 만남을 계기로 놀라우리만큼 늘어난 실력.

그 깨달음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어떤 프로가 거품인지, 어떤 프로가 실력을 숨기고 있는지.

몇몇 프로들과 친분이 생기게 된 이후로 사정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조금 자기비하가 생기고 말았지만.'

흑역사가 생긴 꼴이긴 해도 도진기가 있는 그랜드 마스터 상위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점수대다.

아마추어였던 유저가 바로 다음 날 프로가 돼도 이상하지 않은 실질적인 프로지망생들.

그렇기에 현역 프로들도 이전부터 도진기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도진기의 성격이 모난데다 오만했던 탓에 관계가 뒤틀렸었을 뿐이지,

올마스터에게 패배한 이후로, 까칠했던 성격이 조금은 둥그스름해지면서 일부 프로들과 친분을 가질 수 있게 됐고 그 덕에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저러.. 올라가기 힘든 이유가 많다고 하던데.'

정말 실력에 여유가 차고 넘치는 몇몇 괴물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프로들에게서 솔로랭크는 어디까지나 시험의 장.

프로팀 대 프로팀 단위로 진행되는 비공개 게임, 스크림 경기에서 전력을 쏟아붓고 하는 휴식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은 과장이 있긴 해도 대충 느낌은 그러하다.

게다가 어떤 프로들은 큐잡히는 시간이 아까워 일부러 랭크를 낮게 유지하기도 한단다.

본캐랑 부캐를 따로 구별하면 좋겠지만, 1군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이들이 아닌 이상 솔로랭크할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고.

한 마디로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 까지는 아니더라도 식견이 좁았던 건 사실이었다.

물론 그랜드 마스터에서 하루이틀 굴러먹은 게 아니니만큼 원래도 대략적이나마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정보의 신뢰성.

어디서 카더라 통신을 들은 것과 직접 본인에게서 들은 것은 천지차이였다.

전혀 모르고 있던 이야기들까지 알게 되자 프로들에 대한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사고방식의 변화는 프로가 되고 싶다는 욕구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그러고 보면 대리에 손을 뗀지도 꽤 됐던가….'

라이벌 격인 도슈는 아직까지도 대리수입에 목을 메지만 도진기는 깔끔하게 정리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던 수입이 끊어진 건 아쉬운 노릇이었지만, 그만큼 솔랭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이는 실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올마스터에게 패배한 이후로 도진기의 실력이 부쩍 늘게 된데는 그러한 사정도 밑바탕돼 있었다.

'올해 내로 꼭 도차형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도진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도차와 함께 프로게임단을 꾸리고 싶었다.

최근에 들어 도진기는 미드 뿐만 아니라 다른 라인으로도 발을 넓히고 있었으니까.

만약 도차형만 OK한다면 받아줄 게임단, 혹은 자신들을 밀어줄 스폰서는 널리고 널렸다.

실제로 파프리카BJ 중에 그것을 대놓고 노리고 있는 자신들을 후원해주려 하는 이도 존재했다.

문제가 되는 건 도차가 프로 쪽으로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고 있는데다 대리게임단은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

대리게임단의 수익이 쏠쏠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 대리게임에 대해서 게임사가 공식적인 입장발표를 한다는 소문을 도진기는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건 꽤 된 일이었지만 최근에 와선 공공연한 소문이다.

어쩌면 대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계정 정지에 취할 수 있다나.

가능성에서 현실로 굳어지고 있는 와중이다.

솔직히 계정 정지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디 하나 다시 키워 랭크를 높이는 거야 아주 어려운 일도 아니니.

하지만 그렇게 되면 프로를 지향할 수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계정 정지를 당했다는 건 해당 게임의 범죄 유저에 해당한다는 이야기.

프로게이머를 하는데 지장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노릇이다.

때문에라도 도진기는 이번 세기말 1,2위 쟁탈전에서 도차를 강하게 밀어주고 싶었다.

가진 자 일수록 행동이 무거워지는 법이니까.

암만 프로 생각이 없는 도차라지만 명성을 얻고 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올마스터 훼방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도진기는 다짐했다.

'그 도차형이 껄끄럽다고 말했을 정도의 사람이다.'

이전에 올마스터의 실력을 어떻게 평가하냐, 도차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도차는 단순하게 한 마디, 껄끄럽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저 모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골똘히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단 한 번도 상대한 적이 없는 올마스터에 대해 모른다, 혹은 별 것 없다도 아닌 껄끄럽다라.

하다 못해 잘한다고만 했어도 그러려니 흘려넘길 수 있었으리라.

잘한다는 것도 결국 상대의 실력을 대략 파악하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니까.

껄끄럽다는 말은 실력의 깊이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도차에게 있어 올마스터는 동수로 생각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도진기는 최선의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올마스터의 저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다소 체면을 구겨도 괜찮겠지.

녀석한테라면 조금 져주는 셈쳐도 괜찮을 거라 여기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도진기는 조금 찡그린 표정으로 누군가를 향해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

.

.

* * *

마스터티어 400점대까지는 과연 금방이었다.

잘나디 잘난 내 실력 탓이 당연 크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사정도 있다.

상대팀들이 조금만 불리해도 게임을 포기하고 대충해댄다.

그에 반해 아군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잘 참아준다.

흔히 말하는 유명인 버프.

내 이름값이 알려진 한국 서버이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시즌이 끝나가는 세기말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마스터티어 상위권에 도달한 이제부터는 꼭 그래준다는 보장이 없다.

어째서?

오히려 세기말이기에 더더욱 득달같다.

마스터티어 상위권쯤 되면 연승을 통해 그랜드 마스터를 노려볼 수 있으니 말이다.

'뭐,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고서야 힘들겠지만.'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열흘 정도만 작정하고 게임을 돌려볼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랭크게임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부쩍 많아지는 점수대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쉽게 쉽게 올라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부터는 끈덕지게 발목을 잡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를 최대한 빨리 뚫기 위해선 한 가지.

'노력, 그리고 노력하는 수밖에.'

꿀챔프를 해서 빠르게 올라간다.

같은 지름길을 찾기엔 지금까지 해온 챔프들도 충분히 캐리력있는 꿀챔프다.

굳이 숨겨 두었던 카드를 꺼낸다고 해서 승률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부족한 건 그저 노력.

한 판이라도 더 악착같이 달려야 한다.

'그런데…. 어제 그 녀석의 정체는 과연 누구였을까.'

어제는 세 판이나 연속으로 저격을 했던 상대가 있었다.

당연 짓뭉개 줬고 그 이후로 저격의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굳이 부캐를 파서 저격을 했다는 얘기는 이보다 상위점수대에 자신의 본계정도 있다는 말이니까.

과연 어떤 녀석의 부캐일까.

플레이 방식이 어딘가 낯익은 듯하기도 했다.

뭐, 느낌은 느낌일 뿐 정확히 누구냐고 묻는다면 명확히 대답할 수 없는 게 사실.

하지만 다시 해당 유저를 상대해볼 기회가 온다면 분명 떠올릴 수 있을 터다.

그 낯짝이 궁금해졌기 때문일까.

지루했던 게임에 조금은 활력이 일었다.

============================ 작품 후기 ============================

귀찮으실 텐데도 잊지 않고 추천눌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신 분들 항상 고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