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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듀오
사시사철 단 200명 밖에 들 수 없는 로드 오브 로드 최고의 티어인 그랜드 마스터.
그 그랜드 마스터를 한 번 찍고 내려오는 게 아니라 유지가 가능하다는 소리는 반증한다.
해당 플레이어는 탄탄한 기본기가 밑받침되고 있다고 말이다.
만약 반년 이상 그랜드 마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프로 스카웃 제의를 최소 한 번은 받아 봤으리라.
마지막 하나를 빼놓고 전부 타임끝에게 해당되는 소리다.
최근에는 그랜드마스터의 중위권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타임끝이지만, 이는 결코 실력의 퇴화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BJ를 시작하게 된 여파라는 게 물론 있긴 해도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타임끝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
흔히 로드 오브 로드를 하는 사람은 두 타입으로 갈린다고 한다.
게임을 머리로 하는 타입과 감각으로 하는 타입.
그 중에서도 타임끝은 꽤나 신기한 케이스다.
두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으되 규격이 맞지 않는 퍼즐조각처럼 어긋나 있다.
'난 하고 싶은 챔피언만 하고 싶어.'
올마스터와의 듀오, 그 첫 번째 판.
패패상태에서 시작돼버린 긴장스러운 첫 번째 게임의 로딩창에서 타임끝은 중얼거렸다.
이번 게임의 중요도와 즐겜유저로 볼 수 없는 타임끝의 티어를 생각한다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말이다.
그랜드 마스터에서 팀원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챔피언만 하겠다니.
꿀챔프만 골라서 해도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완전 떼쟁이가 따로 없다.
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타임끝이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플레이 스타일과 맞물려있기 때문이었다.
미포정글, 탑콩머스, 원딜AP고르키.
여기에 LCL 이후로 올마스터에게 영향을 받아 하게 된 파랑애씨까지.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트롤픽이다.
타임끝은 이러한 트롤픽으로 무려 그랜드 마스터를 1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만약 다른 이에게 이런 허섭스레기같은 챔프폭으로 그랜드 마스터를 유지하라 한다면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으리라.
최근 1,2위를 다툰다는 주전파와 도차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다.
때문에라도 하나의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마련이다.
꿀챔프만 골라서 한다면 로드 오브 로드 탑을 먹어버리는 게 아니냐.
당연한 말이지만 타임끝이라고 몰라서 꿀챔을 안 하는 게 아니다.
로드 오브 로드는 티어가 높을 수록 꿀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 메타에 맞는 유행들이 가장 먼저 쏟아져 나오는 곳도,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당연 고티어대부터다.
마스터도 아닌 그랜드 마스터가 과연 현메타의 꿀챔을 모를 수 있을까?
말해서야 입만 아프다.
'안 맞는 걸 어떡하라고?'
아무리 꿀맛같은 음식이라도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면 남길 수 있다.
안 그래도 라인이 다섯 가지로 갈려지는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본인의 초딩스런 성격까지 더해져 밑반찬을, 아니 꿀챔프를 무의식적으로 거르게 되었다.
때문에 타임끝은 자신의 전력을 몰랐다.
애초에 빡겜을 하는 자신이라니, 상상한 적조차 없다.
자연스레 포기하고 됐다.
마치 운명처럼 올마스터를 만나기 전까진.
'그래도 역시 부족했지만….'
로드 오브 로드 챌린저스 리그라는 무대에서 타임끝의 실력은 몰라보게 상승했다.
특히나 대회게임에서도 자신의 실력이 먹힌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진 근본적인 단점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이는 단순 챔프폭만의 문제가 아니다.
먼저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에서 말도 안되는 남들은 따라할 수도 없는 기상천외한 픽을 구사할 수 있을까?
타임끝의 피지컬이 꽤나 훌륭한 덕도 있겠지만 사고구조가 특이하기 때문이 크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나마 그랜드 마스터 정도되니까, 그리고 원래부터 저런 녀석이니까 하란 대로 냅두는 정도지만 조금만 밑에 티어로 가면 한 소리 듣는다.
'팀원들이 받쳐주면 최상의 시너지를 낳을 수 있었을 텐데.. 늘 아쉬웠어.'
예를 들어 원딜AP고르키.
트롤같겠지만 자신은 결코 아무때나 픽하지 않는다.
아군 조합을 보고 AP가 부족할 때 픽을 하면 아주 좋다.
하지만 주문력 아이템을 갔다는 건 원딜 특유의 지속딜이 떨어진다는 의미.
원딜이라는 포지션이긴 해도 한타구도에선 미드라이너와 비슷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 팀원들이 AP고르키를 일반원딜이라 착각해, 원하지 않는 한타구도를 그릴 때가 생기곤 했다.
탑콩머스.
의병대와 텔포의 말도 안되는 시너지로 필킬에 가까운 로밍을 성공시킬 수 있다.
더군다나 로밍 직후 신속한 라인복귀가 가능하다
그러나 선템으로 기동력의 신발과 의병대를 올리게 되면 라인전이 당연 약해지기 마련.
그 약한 라인전을 빠른 라인복귀 속도로 커버할 수는 있지만 정글러가 개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 정글러가 아니라 아군 정글러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탑콩머스를 할 때 아군은 절대 탑라인에 갱킹을 와서는 안된다.
탑라인에서 격전이 벌어지면 의병대를 올린 탓에 라인전이 약한 콩머스는 손해보게 된다.
'자기들이 안 맞춰주다 망해놓고 즐겜을 한다고 쏘아대면 어이가 없지.'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재밌게 게임을 즐기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이렇듯 트롤같은 챔프와 플레이 방식에도 섬세한 계산이 녹아있다.
결국 이러한 특이한 플레이 방식때문에 굳이 이상한 챔프폭을 제외하더라도 프로무대엔 맞지 않았지만 말이다.
실력이 어마어마하게 특출나면 모를까.
굳이 자신 하나를 조명시키면서까지 게임단을 구색할 곳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솔랭에서의 2인 듀오라면 다르다.
'올마형이라면 전력으로 부딪혀 줄 거다.'
자신의 특이한 판단을 이해해줄 수 있는 이.
더 나아가 받쳐줄 수 있는 사람은 올마스터밖에 없었다.
타임끝이 BJ라는 직업을 선택한데는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준 올마스터에 대한 동경심 또한 존재했다.
물론 자신과 다르게 발넓은 챔프폭과 더불어 수준높은 판단력.
그 실력이 대회무대에서 통한다는 게 여실히 증명되어 올마스터는 탑프로게이머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이기에 병행할 수 없는 것도 생긴다.
타임끝은 올마스터가 지켰던 BJ의 자리를 이어받기로 마음먹으며, 자신이 느끼기엔 언제나 거대한 존재인 올마스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날을 꿈꿨다.
그 시기는 생각보다 이르게 다가왔다.
'....빚은 더욱 쌓여버렸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 마련이라 하던가.
타임끝이 잘되가는 걸 보고 은근슬쩍 시기와 질투를 던지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그 중에는 심지어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까지 있었다.
방송으로 내색하지는 않아도 어린 타임끝은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그러나 올마스터는 달랐다.
오히려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대체 자신이 어떤 BJ를 목표로 해야할 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 한 번.
그리고 관전 방송을 독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준 것도 다름아닌 올마스터였다.
심지어 곧 진행하게 될 듀오조차 자신을 생각해준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 기회에 아주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아야지.'
LCL에서야 다른 팀원들도 있어 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게임이니만큼 아군에게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 초입의 솔랭에서야 아군은 들러리.
어차피 자신과 올마스터가 만들어갈 게임의 수준에 따라올 이들이 아니다.
아군 뿐만 아니라 적팀 또한 마찬가지다.
단 둘이서 게임의 판을 짜고 승리까지 연결시킬 수 있으리라.
다소 억지스럽긴 해도 결과만큼은 확실하게 뽑아낼 자신이 타임끝에게는 있었다.
이를 게임을 통해 증명해나간다.
.
.
.
* * *
패패승승승.
말이야 바른 말이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아름답다고는 해도 쟁취하는 것은 당연 그 이상으로 어렵다.
'그래도 해봐야겠지.'
자신이 있냐, 없냐를 묻는다면 있다.
혼자였다면 솔직히 운이 나빠 한 판 정도 져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듀오가 있다면 승산이 올라간다.
더군다나 듀오도 제법 믿을 만한 사람이다.
<형, 내 목소리도 들려?>
보이스채팅으로 전해져 오는 타임끝의 음성.
나는 타임끝과 듀오를 해서 패패상태로 승격전에 도전하다.
단순히 저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참았다가 돌리는 편이 편하겠지만.
'그래서야 도망가는 꼴이 되니까.'
적들을 기고만장 하게 해줄 뿐이다.
한 번 물러서면 밑도 끝도 없이 반복될 뿐이다.
더욱이 내 게임을 관전하는 수많은 시청자들.
그 때문에라도 나는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꼬리내린 개가 될 수는 없다.
'참 귀찮게 만드는구만.'
시간이 썩어나는지, 아니면 나한테 원한이 그토록 깊은 건지.
쌍으로 저격을 해댄 녀석들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챔피언을 하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랭과 듀오랭은 당연 다르다.
굳이 5:5의 팀랭크까지 가지 않더라도 차이가 난다.
서로의 시너지에 의해 솔랭에서는 애매했던 픽이 폭발적인 캐리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전에 나를 저격했던 독나타스 듀오.
내가 그 듀오를 비교적 간단하게 허물어 뜨릴 수 있었던 건 정글과 원딜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랭크에서의 2인 듀오가 시너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라인 또한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원딜과 서폿.
그리고 지금 내가 하려 하는 미드와 정글처럼.
정글과 원딜이라는 동떨어진 라인끼리는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틈을 파고들기에도 쉽다.
막말로 원딜만 어떻게든 죽이면 정글러는 단순한 탱커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원딜과 서폿은 다르다.
서포터들은 그 포지션의 이름에 걸맞게 원딜을 서폿팅하는데 최적화돼 있다.
기본적인 스킬구조부터가 원딜과의 시너지를 염두한다.
또한 미드와 정글.
정글이 판을 짜고 미드가 뒷받침한다.
미드라이너가 자신의 기량을 백분 쏟아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는 게 정글러의 역할이다.
게임내내 가장 레벨이 높을 수밖에 없는 미드라이너를 말이다.
충분한 성장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원딜러와 달리 초반부터 스노우볼을 굴리는 게 가능하다.
로밍이라던지 카정이라던지 함께 움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듀오는 라인부터 시너지를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마침 나와 타임끝은 미드와 정글.
서로 간에 시너지가 썩 괜찮다.
물론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순히 라인만 맞출 뿐이라면 솔랭에서 우연히 만난 것과 무엇이 다를까.
뭐, 호흡이 맞는 것은 둘째 치고 그 전에 반드시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조합.'
전체적인 조합이 아닌 듀오, 두 사람이 픽하는 챔프의 상승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타임끝이 정글로 픽한 챔피언은 설인의 형상을 한 두두.
어느새 연습을 했는지는 몰라도 기괴한 플레이를 특기로 삼는 타임끝과 잘 맞아 떨어진다.
'두두가 그리 좋은 평가를 받는 챔피언은 아니지.'
이전에 LCL에서 <달려라 두두킹>팀의 정글러가 사용하긴 했지만 솔직히 솔랭에서는 애매한 게 사실이다.
정글몹만 얌체같이 뺏어먹는 카정에 특화돼 있는 두두의 스킬셋은 적팀도 적팀이지만, 아군의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프다.
멋모르고 적정글에 들어갔다가 으앙쥬금.
커버를 오지 않은 아군을 탓하기 시작하면 팀의 내분으로 번지기 일쑤다.
아니, 무난하게 한타에 들어가도 문제다.
이 두두라는 챔피언은 탱커형 정글러주제에 하드CC기가 없다.
가진 거라곤 달랑 둔화 스킬 2개 뿐.
그렇다고 딜이 세냐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탱커형 챔프들 사이에서조차 두두는 솜방망이 취급받는다.
정말 애매하기 짝이 없는 챔피언.
'어디까지나 솔랭에서 했을 때 말이지만.'
하지만 미드, 그것도 나와 듀오를 한다면 어떨까.
상대도 아군도 예상할 수 없는 기묘한 판을 그려내는 재능이 있는 타임끝.
그리고 그 타임끝의 플레이를 알아챌 수 있는 나.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두와 시너지있는 미드챔피언이라…. 정말 곤란한 녀석이야.'
보통 사람이었다면 맞춰 줄 수 없다.
괜히 타임끝과 같이 게임을 하는 그랜드 마스터 유저들의 입에서 불평불만이 새어나오는 게 아닌 것.
그나마 귀엽게 봐줄 수 있는 타임끝인지라 불평불만에서 끝나는 거지, 만약 도슈같은 놈이 그런 짓을 했다면 얄짤없이 트롤각이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타임끝임에도 나에게 요구했다.
요구를 받았으면 응당 호응을 해줘야겠지.
내가 두두와 최상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 준비한 챔피언은 한 쌍의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악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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