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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카운트다운
로드 오브 로드의 팬들이라면 기대하고 고대할 수밖에 없는 연례행사.
바야흐로 롤드컵도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본선의 8강에서 반절이 패배의 쓴 잔을 마셨고, 오늘 치뤄지는 4강에서 또 반절이 짐을 싸게 될 터다.
─결승은 프나틱 대 얼밤 가겠네
A조 프나틱 진출이야 당연한 거고, B조 진출자 분분할 텐데 솔직히 요즘도 한국 상승세라 갈만함.
└네 다음 김치맨
└김치 개객기해봐!
└ㅋㅋ광분한 거 보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닌데.
4강 진출팀은 정말 롤드컵이란 이름에 걸맞게 단 하나도 겹치는 부분없이 전세계 각지에서 모였다.
A조의 포나틱은 유럽.
마찬가지로 A조의 TWA는 대만.
B조의 얼밤은 한국.
마찬가지로 B조의 모스코5는 러시아.
정작 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의 팀들이 전부 탈락한 건 아쉬운 노릇.
그래서인지 현지의 반응은 조금 싸늘해졌지만 전세계적으로 보자면 롤드컵은 아직 화끈하다.
북미의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 래딧 또한 현지 반응의 영향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팬부심 너무 부리지 말고 순수하게 롤드컵을 즐기자는 분위기.
현재 래딧에서는 A조의 승자는 포나틱을 밀고 있으며, B조의 승자는 대세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게 얼밤이나 모스코5나 어느 쪽이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전력을 갖췄으니까.
붙어봐야 알 거라는 의견들이 대세를 지배하는 가운데.
정작 이변은 모두가 예상치도 못했던 부분에서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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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CLC가 8강에서 떨어진 이후로 경기장을 데려가 달라는 명분이 없어져서 일까.
아니면 그 해당팀의 주장과 대판 싸우셔서 일까.
나는 진행되는 롤드컵 경기를 안락한 방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정정하자면 마음을 안락하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이와 함께 시청하고 있는 와중이다.
"머리 좀 치워봐. 안 보이잖아?"
모니터의 맞은 편.
침대에 엎드린 채 고개를 빼꼼 든 예은이 나를 타박해온다.
내가 의자에 앉아있는 탓에 모니터 화면을 가리고 있다는 소리겠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 소리 내뱉었지만 대답이 가관이다.
"정 보고 싶으면 직접 의자를 끌고 와서 보던가?"
"보다가 재미없으면 잘 건데."
정말 어련도 하시다.
그래도 CLC가 탈락한 이유로 완전히 관심을 끈 줄 알았는데 롤드컵의 결과가 조금은 궁금한 모양
주말마다 내 방을 침실마냥 쓰는 녀석이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어쩌면 지난 번에 핫숏과 척을 진 이후로 응원하는 팀을 바꾼 걸지도 모르겠지만.
'뭐, 핫숏은 딱히 별 생각 없어보이지만 말이지.'
그 이후로도 종종 핫숏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 물어봤지만, 당시의 사건에대해 핫숏은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그 여성팬분이 너무 무서우니 가능하면 도망갈 수 있는 자리에서만 대면을 하게 해달란다.
핫숏답다면 핫숏다운 우스꽝스러운 반응일까.
정말 응원팀을 바꾼 건지는 몰라도 예은은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하면서 나름대로 흥미있게 롤드컵을 관전하고 있다.
볼 거면 좀 폰으로 보던가.
왜 굳이 내 컴퓨터에 신세를 지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예은이 경기의 내용에 관심이 가는 것도 이해가 간다.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의 4강 A조 경기는 팽팽하고 진행되고 있다.
현재 경기의 스코어는 1:1.
포나틱이 첫 세트를 가져갔고 TWA가 두 번째 세트.
마지막 세트에서 결승전 진출자가 판가름 나게 된다.
'역시 일까..?'
경기의 결과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TWA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만 아직은 모른다.
이전에 CLC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니.
다른 팀도 아니고 유럽의 강자 포나틱이니만큼 마지막 세트의 결과는 기대 속에서 지켜볼 만하다.
스코어와 마찬가지로 경기의 내용도 팽팽.
양 팀은 특별한 변수없이 무난한 라인전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경기의 중요도가 중요도인지라 도박적인 수는 지양하는 듯 했다.
물론 아무런 관전 포인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주목해서 봐야 하는 점은 이거지.'
대회 경기와 솔랭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
차후 몇 년씩이나 지속되게 될 라인스왑 메타는 이번 롤드컵으로서 분기점이 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지막 세트 에서 라인스왑이 걸렸듯 말이다.
종종 심리전의 결과에 따라 아무런 라인스왑이 없거나, 역으로 봇과 탑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지만 마지막 세트는 그러하지 않았다.
현재 TWA의 봇듀오는 봇라인을 압박하고 있는데 반해, 포나틱의 봇듀오는 탑라인을 털고 있다.
본래 봇에 있어야 하는 포나팁의 봇듀오가 탑에 갔다는 말.
이 말인즉, 포나틱 쪽에서 라인스왑을 걸었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포나틱의 입장에선 라인전을 피하고 싶었으려나.'
포나틱의 봇듀오는 배인과 두두.
TWA는 고르키와 쏘냐다.
확실히 배인과 두두는 무난하게 중반 타이밍까지 갈 수만 있어도 강력한 조합이다.
안 그래도 성장기대치가 높은 배인이 두두의 버프를 받으면 날아다닐 정도니까.
하지만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높은 성장기대치의 대가로 배인과 두두는 약한 라인전이 요구된다.
그러한 약점을 포나틱은 라인스왑으로 극복하려는 모양.
역사와 전통의 포나틱이라는 이명이 어울리는 훌륭한 판단이었다.
반면에 TWA가 픽한 고르키와 쏘냐의 조합.
라인전은 무척이나 세지만 딱 중반까지만 강력하다.
후반이 돼버리면 유통기한이라는 문제때문에 똑같이 성장한 다른 챔프들에 비해 아쉬운감이 있다.
경기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포나틱 쪽에 웃어주고 있다.
만약 TWA가 포나틱의 라인스왑을 예상해 같이 탑라인에 섰다면 포나틱은 제대로 말렸을 터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연륜과 경험의 차이란 걸까.
결과적으로 TWA는 포나틱의 라인스왑을 받아치지 못했고,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포나틱으로 게임이 기울게 된다.
'허나 과연 그렇게 끝이 날까.'
잔잔했던 호수에 돌이 던져져 파문이 일어나듯.
그리고 그 돌로 인해 개구리가 맞아 죽듯.
변화가 일어아는 건 한순간이었다.
<버거킹!>
TWA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궁극기, 대변동으로 광전사를 가뒀다.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광전사라 할 지라도 탈출구가 없다.
얼마 전, 나도 헤일로 상대한 적이 있지만 광전사의 궁극기는 모든 CC기를 무시한다.
때문에 어지간한 갱킹은 통하지 않지만 하나, 아킬레스건이 존재하기 때문.
공교롭게도 탈리반 3세의 궁극기가 바로 그 아킬레스건, 장벽생성이다.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챔피언들만이 가진 독특한 CC기인 장벽생성은 글자 그대로 지형지물이다.
단순한 CC기가 아닌 벽과 같은 개념이기에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불가능하다.
대신 이동기로 쉽게 지나칠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그 약점마저 TWA쪽으로 웃어주고 있다.
파바바박!
고르키가 자신의 생존기인 폭탄부스터를 활용해 확! 치고 나갔다.
폭탄부스터는 쿨타임이 긴 대신에 이동거리가 하도 길어, 적과 자신의 거리를 한순간에 좁힐 수 있다.
물론 이즈레알의 앞비전과 마찬가지로 자살행위가 될 수 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라인스왑으로 인해 봇라인에 가게 된 포나틱의 탑라이너.
광전사는 안 그래도 고르키의 견제에 야금야금 체력이 빠진 상태다.
그런데 탈리반에게 얻어맞게 되고 쏘냐마저 허겁지겁 뛰어온다.
아무리 초반이 강력한 광전사일 지라도 다구리엔 장사없는 법이다.
─퍼스트 블러드!
게임 시간 8분이 넘은 시간대.
솔랭에서는 의아할 정도로 늦게 터져 나오는 퍼블이겠지만 대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서로 안정적인 게임을 지향한다는 까닭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스노우볼.
어느 한 쪽이 킬을 먹기 시작하면 눈덩이가 막을 수 없게 굴러간다.
때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문제지만 이미 퍼블은 터졌다.
"헤에, 이러면 용까지 나가겠는 걸?"
"넌…. 재밌을만한 일에만 움직이는 집강아지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예은이 내 옆에서 치근덕거린다.
경기가 흥미롭게 진행되자 그제서야 가까이서 볼 마음이 생긴 모양.
원래 제멋대로인 녀석인지라 이렇게 될 거란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의자는 갖고 오라고.."
"내가 그 의자에 앉고, 니가 비키면 되잖아?"
방주인을 몰아내려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방식.
감기에 걸렸을 때 호되게 갈궜어야 했다.
그래도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자 투덜투덜 움직이는 녀석.
이러니저러니 말은 함부로 해도 선은 지킨다.
'확실히 이건 좀 크지.'
예은의 말은 사실이다.
덧붙이자면 퍼블이 봇라인에서 일어났기에 여파가 크다.
만약 TWA의 탑라이너, 말화이트가 죽었다면 단순한 퍼블에서 끝이 났을 거다.
기껏해야 배인의 성장가속도가 붙는 정도.
하지만 이렇게 봇라인에 구멍이 숭숭 생기게 되면 치명적이다.
─레드팀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봇라인은 용과 가깝다.
때문에 빈틈이 생기면 자연스레 용이 나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야 초반이 강력한 광전사의 견제.
더불어 포나틱의 정글러 리심이 꾸준하게 체크한 탓에 TWA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렇게 광전사 죽어버리면 가릴 게 없다.
1차 포탑이 무너졌음은 물론 용까지.
퍼블까지 포함하면 글로벌 골드차이는 2천이 넘는다.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이 정도의 격차는 쉬이 볼 수 없다.
─블루팀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그나마 리심이 판단을 빠르게 바꿔 탑을 압박한 덕에 포나틱도 포탑을 하나 챙길 수 있었다.
조금은 따라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스노우볼은 끝나지 않았다.
중반 타이밍까지 강력하기 그지없는 고르키의 성장에 박차가 가해졌으니 말이다.
뻥!
뻥!
뻐엉!
봇라인의 1차 포탑을 파괴했다는 소리는 더 이상 라인전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는 말.
미드라인에 합류한 고르키가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 방, 한 방 던지는 고르키의 미사일은 강력하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유효하다.
'마법사 챔피언은 체력관리가 안되니까 말이야.'
포나틱의 미드라이너 르풀랑.
상대가 섣불리 용을 손대지 못하도록 지금껏 억제책이 되어줬다.
라인스왑으로 인해 한 명이 비어버린 봇라인의 공백을 라인전이 강력한 르풀랑과 광전사가 메꾸고 있었다.
라인스왑부터 시작해 탑과 미드의 밴픽까지.
포나틱이라는 팀이 괜히 역사와 전통의 명문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하지만 정교하게 구축한 조합이라 그런지 하나의 빈틈이 생기자 틈이 쩍쩍 갈라졌다.
광전사가 행한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게임의 승패가 TWA쪽으로 급격하게 넘어가고 있다.
신흥팀에 불과한 TWA가 역사와 전통의 포나틱을 무너뜨리려 한다.
"흐음~? 우리 CLC를 이기더니 TWA도 아주 허당은 아니었네?"
CLC가 언제부터 네거였는지는 몰라도.
그 CLC의 주장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게 너라는 걸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예은의 말마따나 TWA는 폭발력을 가진 팀이다.
이변이라고는 하지만 실력에 기반돼 있다.
포나틱이 틈을 내준 건 사실이여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 또한 팀의 역량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꿈도 꿀 수 없는 일.
기량이 떨어지는 팀이었다면 물에 물탄듯 넘어갈 수 있던 퍼블의 이점을 활용해 서서히 우세를 점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몰라.'
나 또한 이미 마음이 동한 게 사실이지만 포나틱의 대응은 만만치 않다.
미드 1차포탑을 내준 대신에 배인과 두두는 착실히 성장했다.
배인이 괜히 하드캐리형 원딜러가 아닌만큼.
그리고 시즌2가 괜히 원딜 오브 로드라고 불리는 게 아닌만큼 한타에 가면 또 모른다.
"내가 보기엔 이미 TWA가 이긴 거 같은데? 아니, 이겼으면 좋겠다."
"....너 은근히 TWA 응원하네."
자신이 응원하던 팀을 꺾은 팀을 응원한다.
스포츠계에서 흔히 있는 경우라지만 조금 이상하다.
내가 아는 예은, 아니 리뮤는 약자를 보면 비웃으면서 잘근잘근 밟아주는 녀석인 걸로 아는데.
사람을 잘못 본 걸까.
그래도 좋은 쪽의 오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역시 아니었다.
"역사가 있는 강팀이 나락으로 떨어지다니, 오싹오싹 하지 않아?"
"아..., 그래."
역시 내가 사람보는 눈이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뭐, 저 녀석의 독특한 취향이야 그렇다 치고.
소소한 잡담을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TWA 대 포나틱의 경기는 부단히 진행됐다.
그 결과는 예은의 응원 덕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TWA의 쪽으로 굳혀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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