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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카운트다운
시곗바늘이 열두 시에 가까워지는 늦은 밤.
타임끝은 졸린 눈을 비비며 꿋꿋이 방송을 해내고 있다.
그래야만 할 정도로 지금 진행되는 게임은 가치가 있다.
-올마스터 끠들스톡도 잘하네.
-나 올마스터 골수팬인데 방송 초기에 끠들 한 적 있음ㅋㅋ 난 봤지롱!
-응, 안 물어봤어~
올마스터가 새로이 꺼낸 챔피언.
피지컬적인 문제든, 운영방식의 문제든 따라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언제나 일찍 잠자리에 드는 타임끝이기에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지는 것 또한 사실.
정신을 흐릿해지고 꾸벅꾸벅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렇게 정신줄을 살짝 놓은 순간 일어난 변화.
찬물로 하는 세수마냥 정신을 번쩍 깨울만한 올마스터의 갱킹이 미드에 떨어졌다.
까악! 까악! 까아악!
기괴한 소리와 함께 수많은 까마귀 떼가 끠들스톡의 주위에서 솟아난다.
궁극기인 황천의 까마귀 떼가 발동됐을 때의 진풍경.
노리는 대상은 당연 파사딘이다.
아무리 우월한 생존기를 자랑하는 파사딘일 지라도 벗어나기 힘든 갱킹이었다.
황천의 까마귀 떼는 사용시 공간에서 공간을 도약한다.
1.5초간의 집중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점멸의 두배나 되는 거리를 한 순간에 좁힐 수 있다.
안 그래도 엎어져서 코닿을 거리인 유령이 있는 벽 너머.
심지어 자신의 정글쪽에서 나타나니 파사딘은 깜짝 놀라 당황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럼에도 역시는 역시라는 걸까.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파사딘은 초인적인 반응속도로 궁극기를 사용하는데 성공했다.
포탑까지 피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한 판정으로 걸려버린 끠들스톡의 공포.
스킬레벨이 높아져 토가 나올 지경으로 지속시간이 길어진 공포가 파사딘의 운명을 결정했다.
챠랑!
파방!
기가 막힌 갱호응.
날조로 접근한 르풀랑이 두 개의 표식과 함께 사슬을 던진다.
Q스킬, 침묵의 표식부터 선마한 르풀랑의 순간누킹은 상상을 불허한다.
심지어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의 표식.
체력수정을 올린 파사딘임에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미드만 오지게 파네.. 도차한테 원한있나ㅋㅋㅋ
-그러니까ㅋㅋ 걍 도차만 죽인다니까.
-도차도 좀 사리지 저걸 당해주네.
상황이 조금만 여유로웠다면 피했을 수 있는 갱킹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예리한 감을 앞세워 상대의 플레이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불리한 상황에 둘 수 있는 수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르풀랑과 파사딘의 초반 라인전 상성.
CS가 조금 딸리더라도 동스코어였다면 갱각을 내주지 않았을 수 있다.
문제는 초반에 내준 1킬의 스노우볼.
라인주도권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한계의 문턱이 파사딘을 옭아묶었다.
"아함~.. 미드라인은 올마형팀이 유리하네. 형들, 근데 이거 아직 모른다?"
기지개와 함께 하품을 내뱉으면서도 방송을 진행하는 타임끝.
타임끝이 암만 올마스터와 친분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인 사리분별은 한다.
BJ로서 편파적인 발언을 해도 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는 법이니까.
특히나 지금은 단순히 올마스터만이 주목받는 게임이 아니라 주전파와 도차 또한 함께 한다.
까마득하게 높은 게임의 수준.
막말이 아니라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솔랭게임에서 가장 높은 점수대다.
올마스터 하나의 행동만으로 어떻게 판가름날 게임이 아니다.
그렇기에 게임의 상황은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해설자의 입장에서 이를 관측하는 것은 당연 쉽지가 않다.
불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겠지만.
하도 예측불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플레이만 골라서 하는 타임끝이다 보니 판을 읽는 능력 또한 일품이었다.
"레드팀이 한타가 너무 좋아. 이걸 블루팀에서 뚫으려면 포탑을 빨리 철거해야 할 텐데…."
한타의 구색만 따졌을 때 도차가 속한 레드팀이 블루팀보다 우월하다.
물론 그렇다고 조합이 좋으니 게임을 이긴다.
그런 누구나 알고 있는 소리를 쓸데없이 짚고 넘어가자는 게 아니었다.
솔랭이든 대회게임이든 간에 꼭 조합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상황에 맞는 운영방식.
블루팀의 경우 르풀랑도 그렇고 끠들스톡그렇고 암살에 특화돼 있다.
이 장점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한타조합을 무너뜨리는 것 또한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블루팀은 시야를 장악해야 한다.
암살이라 함은 시야를 장악했을 때야 말로 그 위험성도 가능성도 증폭되는 법이니.
그러한 블루팀의 사정을 레드팀은 잘 꿰뚫고 있었다.
"파사딘이 한타에서 킬줏어먹기 워낙 좋은 챔프라.. 그리고 탑도 꽤 잘 커서 시간 지날수록 레드팀이 할만해 질 거 같아."
아무리 두 번 죽었다고 해도 파사딘은 파사딘이다.
그 본질이 AP챔피언의 카운터.
2코어, 3코어가 나올수록 말릴 수가 없어진다.
더더욱이나 시간을 끌기에도 레드팀의 조합은 완성도가 높다.
플레이 방식 또한 리심과 쏘냐를 필두로 자신들 진영쪽의 시야를 장악하며 안정적이다.
철벽같은 수비.
그 대가로 용을 내주긴 했지만 오브젝트 하나정도야 아주 큰 차이가 아니다.
다음 용이 젠될 때쯤엔 레드팀 또한 성세가 다듬어질 테고 충분히 한타를 붙어 볼 만하리라.
-초딩끝아 그래서 툭 까놓고 누가 이길 거 같음?
-그걸 알면 점집을 차리겠지ㅋㅋㅋ
-아니, 그랜드 마스터가 그것도 몰라?
현재 두 팀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한 마디로 모순이다.
꿰뚫는 창, 뚫리지 않는 방패.
부딪힌다면 과연 어느 쪽이 이길까.
이 대답은 어렵게 생각하면 평생을 고민해도 해답을 내놓기 힘들 정도로 어렵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니 이리도 간단할 수가 없었다.
-레드팀엔 도차 한 명 뿐이고, 블루팀엔 주전파랑 올마스터 있으니 블루팀이 이기지 않을까?
-두 명이니까 한 명을 이긴다고?ㅋㅋ 그럼 다른 팀원들은 넋놓고 있냐?
-크~! 고건 몰랐네ㅋㅋㅋㅋㅋㅋ
-인생 겁나 편하게도 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마냥 부정하기도 힘들다.
그 간단한 논리를 부정하기 위해선 너무나도 큰 수고가 드니까!
귀찮아서라도 드립은 드립으로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그렇게 진행되는 게임.
승리의 여신이 어느 쪽으로 웃어줄지.
과연 한 시청자의 바보같은 논리가 들어맞을지.
어차피 지켜보면 알 수 있는, 시간이 해결해줄 내용이다.
.
.
.
* * *
'조합이라.'
스코어는 2:1.
그것도 도차를 두 번이나 말렸다.
하지만 승기를 굳혔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네네톤님이 지원을 요청!
네네톤님이 지원을 요청!
내가 미드를 파는 사이, 적팀의 정글러 리심은 탑라인의 다이브에 성공했다.
1킬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킬을 먹은 적팀의 탑라이너가 문제.
블러디체리는 하드캐리형 탑솔러로 정평이 나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 판에서 주전파와 도차의 싸움이 가장 중요했다.
가장 중요한 라인을 따지자면 이견없이 미드다.
그렇기에 미드를 팠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냈다.
하지만 다른 라인이 들러리에 지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현재 적팀의 조합.
리심과 쏘냐가 두 개의 와드돌로 시야를 장악한다.
파사딘과 블러디체리라는 두 개의 AP누커가 광역딜을 책임진다.
원딜러인 테러스티나는 과연 화룡점정이다.
팀랭이라면 완벽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솔랭에서는 이보다 괜찮은 조합이 드물다.
한 명, 한명이 하드캐리형 챔피언.
파사딘은 못 컸다고 하지만 블러디체리의 성장도는 발군.
하드캐리형 원딜러인 테러스티나 또한 밀리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그랜드 마스터 유저들은 모두가 훌륭한 승객임과 동시에 운전사다.
상황만 갖춰지면 누구나 자연스레 캐리해낸다.
비단 도차가 아니더라도 나머지 적팀들 또한 글자 그대로 천외천의 이들이다.
이대로 한타구도가 갖춰진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특히 블러디체리의 광역딜이 쏟아진 후 파사딘과 테러스티나가 정리하는 그림이 나온다면 치명적.
그대로 게임을 그르칠 수 있다.
'분기점은 다음 용, 까지인가.'
적팀이 한타를 노린다면.
우리는 한타가 성립되기 전에 하나 더 일을 내야 한다.
아슬아슬 맞춰지고 있는 균형에 금을 그어야만 한다.
노릴만한 것은 순서가 정해져 있다.
탑이나 봇라인에 갱킹을 가는 것.
그리고 킬을 따내는 것.
말로는 너무나도 쉽다.
그렇기에 적팀의 입장에서도 예측이 쉽다.
'얌전히 당해줄 턱이 있나.'
당연하다.
적팀의 목적은 시간을 끄는 것.
다소의 피해를 감수해도 될 정도로 조합완성도가 훌륭한 적팀이다.
낮은 점수대마냥 손발이 안 맞아어서 허둥대지 않는다.
그에 비해 아군은 네네톤과 애씨.
나쁘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지나치게 무난하다.
똑같이 성장해서야 썩 좋을 게 없다.
'...골치 아픈데.'
만약 리심이 그 본래의 특성에 걸맞게 이곳저곳 갱킹을 쑤시고 다녔다면 오히려 편했을 거다.
어떻게 역갱 한 번만 터친다면 그대로 게임을 터트릴 수 있으니.
아니, 굳이 역갱이 아니더라도 리심이 없는 라인을 털어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리심이 움직이지를 않으니 나라고 해도 갱킹을 가기가 망설여진다.
모르긴 몰라도 와드와 눈치로 내가 갱킹을 갈 라인만을 따라다니고 있을 터.
그러한 수고를 계속 하라면 못할 짓이겠지만 용타이밍까지만 버티면 된다.
리심은 내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터다.
'답은.. 탑라인도 봇라인도 아니다.'
꼭 내가 움직이는 것만이 해답일까.
발상의 전환은 여느 때나 필요한 법.
잠복근무를 한다.
미리미리 움직여 덫을 파놓는다.
알고도 빠질만한 달콤한 덫을 말이다.
'노리는 시간은 용이 젠되기 2분 전.'
숲에 있는 야생동물들.
야생동물들의 감은 뛰어나다.
특히나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길목은 아예 가지를 않고 안전하다고 판명된 길만을 다닌다.
때문에 사냥꾼은 그러한 습성을 역으로 이용한다.
늘 다니던 길.
습관적으로 움직이고 마는 길에서 눈에 띄지 않는 구역.
그러면서도 밟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달콤한 먹이로 유혹한다.
'바로 이곳이다.'
한타가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시야를 먹고 싶은 곳이 어딜까.
지금까지 리심과 쏘냐가 단 한 번도 빼트리지 않고 와드를 박은 곳.
바로 용앞이란 사실에 이견이 붙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용앞이 아닌 용 안쪽.
동그란 벽으로 둘러쌓인 용이 젠되는 안쪽 진형은 깊숙이 파고들어 와드를 박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야 용앞에 와드를 박는것으로 만족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조금은 불리한, 다가올 한타에서 사활을 건 적팀이기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이쿠!
이쿠!
용 젠시간이 2분을 조금 더 남긴 상황.
적팀의 정글러 리심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봇라인 쪽에 있다.
당장 지금도 아군 서포터가 깔아놓은 와드를 지우며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곧 파고들 터다.
약간의 위험부담.
물론 있겠지만 리심이라는 챔피언은 유틸성이 높으니까.
기동력의 신발까지 사버리면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한타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용 안쪽의 시야를 확보하려는 판단.
와드의 지속시간이 3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훌륭한 타이밍이다.
너무나도 훌륭한 판단이기에 예측이 손쉬웠다.
게임 내내 안정적으로 한타를 바라보며 맡은 바 임무를 해나갔던 리심.
부단했던 시야장악의 습관이 스스로의 목을 조인다.
'3초, 2초, 1초.'
와드를 박고 바로 빠지려 하는 순간을 정확히 노린다.
예측해서 발동하는 황천의 까마귀 떼.
더욱이 스킬레벨이 5레벨에 도달하여 3초나 지속되는 공포가 리심을 꼼짝없이 붙든다.
까악! 까악! 까아악!
딜러 한 명을 녹이기엔 차고 넘치는 폭딜이다.
끠들스톡의 궁극기를 풀로 맞으면 믹서기처럼 갈려나간다.
하지만 적팀의 정글러 리심은 명실상부한 탱커.
내 공격을 한 타이밍 버텨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것을 모를 내가 아니다.
챠랑!
뿜어져 나가는 한 줄기 사슬과 표식.
이동기인 날조를 연이어 사용해 미드에서 달려온 르풀랑이 리심을 마무리한다.
공포가 벌어낸 3초의 시간.
그리고 까마귀바람으로 입을 막은 1.5초의 시간.
합쳐서 총 4초 남짓한 시간동안 리심이 와드방로도 점멸도 못 쓰게 붙들어 매었다.
주전파라면 단 한 번의 핑으로 내 노림수를 훌륭히 호응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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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솔로랭크 챕터는 내일로 마무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