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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카운트다운
리심이 죽고 주전파가 킬을 먹었다.
내 노림수가 정확히 들어맞았기 때문.
치명적인 실수였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확실히 용한타에는 큰 지장이 없지.'
그도 그럴 게 용한타까지 2분이나 남았다.
만약 30초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죽어버렸다면 쉽게 용을 가져갈 수 있었을 터.
하지만 2분이란 시간을 부활을 하고 재정비를 하기에 차고 넘친다.
그렇기에 의미가 있기도 하다.
'내 궁극기 쿨타임도 아슬아슬 돌아올 테고 말이야.'
낚시를 성공시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템의 완성.
아무래도 나는 아직이지만 르풀랑은 가능했다.
죽음의 불타는 손길.
침묵의 표식을 선마스터하는 르풀랑에게 있어 죽불손의 유무는 크나크다.
암살은 물론, 한타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비교할 수 없게 늘어난다.
그리고 두 번째는….
.
.
.
* * *
5:5용한타의 대치 국면.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대치에서 사막의 오아시스가 돼주는 것은 다름아닌 르풀랑이었다.
주전파의 르풀랑이 틈만 나면 들어가 상대를 갉아먹는다.
챠랑!
침묵의 표식과 함께 쏘아지는 한 줄기 사슬.
블러디체리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본체인 르풀랑은 사라지고 기나긴 금색줄만이 남았다.
날조로 진입한 르풀랑이 사슬을 맞히고 사라졌을 때의 시각적 효과.
파앙!
르풀랑이 던졌던 표식이 터지며 블러디체리의 체력이 한움큼 뜯겨나간다.
치명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포킹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골치가 아프다.
계속해서 허용하다간 어떻게 한타에도 못 들어가고 용을 내줘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레드팀에서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할 거 같지? 물론 거는 게 쉽지 많은 않겠지만!"
타임끝의 해설도 물론 옳지만 한 가지 더.
해법은 두 가지 존재한다.
타임끝의 말마따나 타이밍을 잘 잡아 이니시를 걸거나.
견제를 하러 오는 르풀랑을 역으로 잡아먹거나.
어느 쪽이나 쉽지가 않다.
그도 그럴 게 주전파의 르풀랑이다.
상대의 호흡을 끊어치는 견제는 그야말로 일품.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데미지를 꾸준하게 누적시킨다.
-아 그냥 좀 확 걸어봐라.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네.
-ㄹㅇ 대치 저거 왜 하는지 모르겠음. 우리 브론즈에선 걍 미드 모이면 알아서 치고 박는데.
-네 다음 브론즈;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답답하지 않은 게 아니다.
홧김에 들어가기엔 걸리는 게 있기 때문이다.
블루팀의 정글러 끠들스톡.
타겟팅으로 걸어버리는 하드CC기를 혼자 맞았다간 끽소리도 못하고 순살치킨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르풀랑의 포킹을 허용할 수는 없다.
그나마 앞라인이 맞아서 다행이지 혹여 뒷라인에게 풀콤보가 들어간다면?
끽 소리도 못하고 양념치킨이 돼버린다.
그러나 기회는 언제나 불현듯 찾아오는 법.
리심의 음파가 적중함을 계기로 레드팀의 총공세가 시작됐다.
슈우웅..!
슬금슬금 음파만 던지던 리심이 드디어 진입한다.
블러디체리 또한 유령화를 키고 빠른 속도로 달려나간다.
한 명이면 모르되 두 명이다.
아테나의 신발을 구입해 CC기에 대한 강제력을 낮추기까지 했다.
더욱이 리심이 차낸 대상 또한 심상치가 않다.
이곳이 괜히 그랜드 마스터 최상위권.
솔로랭크의 최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이라도 하듯 리심의 움직임은 물흐르는 듯하다.
분명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음에도 허용하고 말았다.
이쿠우!!
음파로 날아가 와드방로.
노리는 것이 서포터인 한나인 척 훼이크를 치다가 갑작스레 점멸을 사용한다.
리심이 블루팀의 원딜러 애씨의 엉덩이를 세차게 까버렸다.
부왁!
곧바로 점멸을 써 도망간다고 해도 죽은 목숨이다.
레드팀의 미드와 원딜, 파사딘과 테러스티나가 득달같이 달려든다.
다친 사냥감을 노리는 하이애나마냥 앞점프까지 해버리며 놓치지 않는다.
촤아앙!
더군다나 이미 진입에 성공해버린 블러디체리.
애씨가 죽는다면 테러스티나가 킬리셋 효과가 있는 점프를 과시해 지옥끝까지 추격이 가능하다.
한타를 완전히 굳힐 요량으로 뿌리는 블러디체리의 붉은 감염이 블루팀의 앞라인에 들러붙는다.
이대로라면 레드팀이 완승을 해버리는 분위기.
하지만 정작 블루팀의 두 에이스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조급함은 실수를 만든다는 사실.
이니시각이 보이자마자 황금히 들어온 적팀에게 여실히 보여준다.
귀하신 몸을 아직 행차하지 않은데는 이러한 까닭이 있었다.
"잠깐, 어!?"
타임끝이 화들짝 놀라버린 이유.
그리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이유.
그럴 수밖에 없다.
말을 내뱉고 끝내기 전에 이미 일은 벌어진 후일 테니까.
대체, 어느 타이밍에?
관전을 하고 있던 타임끝조차 눈치를 채기 못했을 정도로 중간단계가 없다.
눈을 감고 다시 떠보니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이외에 알맞는 비유가 없으리라.
쩌엉!
전사하기 직전의 애씨가 날린 궁극기.
크리스탈 얼음화살이 테러스티나를 얼렸다.
코앞에서 날려봤자 고작 1초 스턴에 불과하다지만 그 1초면 충분한 상황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그러했다.
까악! 까악! 까아악!
어디서 어떻게 출현했는지.
어느 타이밍에 궁극기를 준비했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한 가지 확실 한 건 이미 끠들스톡은 궁극기를 활용해 파고들었다는 것.
그리고 끠들스톡의 주위를 떠도는 불길한 까마귀 떼들이 믹서기마냥 주위의 적들을 갈아버릴 거라는 사실이다.
애씨를 따내기 위해 앞점프를 한 테러스티나는 믹서기에 그대로 노출됐다.
테러스티나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크리스탈 얼음화살의 스턴에 의해 옴짝달싹 못한다.
꾸엑! 꺅! 꺅! 꺅!
끠들스톡이 테러스티나에게 침묵이 담긴 까마귀를 던지며 파사딘에게는 공포를 건다.
미드와 원딜러 두 명을 동시에 갈아버린다.
그러나 이상적인 역이니시라고 하기엔 문제가 있다.
끠들스톡은 조냐를 완성시키지 못했다.
타라랑~♬!
아군을 지키기 위해 뒷라인에 남아있던 쏘냐의 궁극기가 끠들스톡을 덮친다.
더불어 걸리는 발화까지.
침묵에 걸린 테러스티나라지만 물몸에 지나지 않은 끠들스톡 하나 정리하는 건 여반장.
애씨의 궁극기에서 풀려나자마자 테러스티나의 총구가 불타오른다.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탄환이 끠들스톡의 허수아비같은 몸을 녹여버린다.
하지만 그 희생, 놀라운 역이니시가 헛되지 않았을까.
챠랑!
앞서 보았던 익숙한 광경.
한 줄기 금빛사슬이 파사딘을 옭아맨다.
그리고 두 개의 표식이 떨어지기 전에 먼저 덮쳐지는 청염.
죽불손의 액티브가 불쏘시개 되어 더욱 큰 불길을 만들어낸다.
르풀랑이 공포에 걸린 파사딘을 삽시간에 찢어발겼다.
─주전파님이 학살 중입니다!
파사딘이 죽긴 했지만 끠들스톡 또한 테러스티나에게 마무리 당했다.
그렇다고 믹서기에 갈렸던 테러스티나의 몸이 온전하다는 소린 아니었다.
화르륵..!
기껏 와서 악수도 하지 않고 가면 섭섭할까.
이미 끠들스톡이 궁극기를 풀딜로 맞았던 테러스티나.
르풀랑이 남기고 간 발화가 내리는 사형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더블 킬!
주전파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
.
.
* * *
정글러에게 있어 가장 보람있는 순간은 언제일까.
갱킹을 성공시켰을 때.
역갱을 성공시켰을 때.
물론 있겠지만 자신이 키워낸 아군이 킬을 쓸어담을 때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정글러가 긍정하리라.
그 쓸어담는 판 또한 자신이 기획했다면 더더욱이다.
'..두 번째는 바로 사각이지.'
끠들스톡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궁극기를 쓸 수 있는 위치다.
상대가 꼼꼼히 시야장악을 할수록 끠들스톡이 활약할 여지가 줄어든다.
그런데 시야장악을 하던 리심을 한 번 끊어냈으니 적팀은 소극적으로 될 수밖에.
이번 한타의 중요도를 감안한다면 적팀의 입장에서 더 이상의 무리수를 둘 수 없었다.
아니, 평소라면 당연히 확인했을 시야마저 전부 체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흥분.
한타각을 제대로 열었다고 착각하여 좁아진 시야가 일을 그르친다.
필연과 방심이 더해져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나는 이미 죽어서 우물에 있지만 한타의 결과는 아군 쪽에 웃어준다.
원딜러와 미드라이너.
가장 중요한 두 딜러를 잡아냈으니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물론 나도 죽고 애씨도 죽어 대승이라고 보기엔 힘들지만 결과가 말하고 있다.
적군의 앞라인, 블러디체리와 리심은 네네톤을 뚫어내지 못한다.
아무리 성장을 잘 못한 네네톤이라 할 지라도 기본이 탱커.
한나의 실드까지 받자 라인전에서의 패배가 거짓말처럼 블러디체리를 유린한다.
결정적으로.
파앙!
생존기인 핏물화가 빠진 블러디체리를 농락하는 르풀랑.
침묵의 표식을 던지고 날조로 돌진해 내려찍자 반항조차 못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적팀의 캐리를 책임지던 세 명의 딜러진이 죽고 남은 것은 리심과 쏘냐뿐.
챠랑!
르풀랑과 리심을 연결하는 금빛 사슬이 의미하는 바는 뚜렷하다.
애씨를 배달하느냐 궁극기와 점멸을 모두 사용해버린 리심은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다.
헐레벌떡 도망가고 있는 쏘냐에겐 눈길조차 줄 가치가 없다는 듯 아군이 두 번째 용을 챙겼다.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아무리 적팀이 한타가 좋은 조합이라도 성장차이엔 장사가 없다.
결정적으로 코어아이템 차이.
블러디체리라는 챔피언은 과연 한타가 탁월하지만 조냐가 나오지 않는다면 과감한 이니시가 불가능하다.
방금 전 블러디체리가 조냐가 있었다면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블러디체리와 마찬가지로 조냐가 코어템인 나는 방금 전 한타 덕에 조냐의 물시계가 완성됐다.
티링!
조냐의 물시계와 함께 구입하는 건 신발의 절감 업그레이드.
의병대가 우물귀환시 회복속도와 이동속도 순간상승의 효과가 있다면, 절감은 점멸과 유령화의 스펠 쿨타임을 줄여준다.
그것도 무려 25% 씩이나.
점멸을 하나의 스킬로서 활용하는 끠들스톡은 빠르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제부터 이니시는 쭉 내가 당담할 테니 말이야.'
끠들스톡의 조냐이니시는 엄청나게 강력하다.
궁극기인 황천의 까마귀 떼로 적진영을 무너뜨리며 위험하다고 판단할 때 조냐로 시간을 번다.
끠들스톡을 어떻게 하기 위해 달라붙은 적팀은 믹서기마냥 갈려짐은 물론이다.
이를 더욱 더 강력하게 해주는 것은 다름아닌 점멸.
상대의 진영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듬은 물론이고 원하는 상대에 공포를 걸 수 있다.
이 공포라는 CC기의 지속시간은 무려 3초다.
아테나의 신발을 구입했다고 해도 2초에 가까운 시간동안 상대를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끠들스톡이 선진입해 아비규환이 된 적팀의 진영.
심홍의 완드와 비슷하게 인근 적들의 마법저항력을 깎는 끠들스톡의 패시브까지 있다.
르풀랑이 파고들어 활약하기에 손쉬운 구도를 그려준다.
이러한 르풀랑과 끠들스톡의 상승효과는 하나뿐이 아니다.
암살자인 르풀랑과 하드 이니시에이터인 끠들스톡.
꼭 알맞는 톱니바퀴처럼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끠들스톡이 르풀랑이 활약할 판을 만들어준다면 르풀랑은 그 사전작업을 도와준다.
끠들스톡의 궁극기는 말화이트와 달리 즉발이 아니니까.
1.5초간의 정신집중이 필요한데 이 와중에 방해를 받거나 적이 도망가면 말짱도루묵이 된다.
그렇기에 반드시 적팀의 허를 찔러 깜짝 이니시를 해야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울까.
하지만 르풀랑이 있다면 가능하다.
어디 잘못 들어갔다간 잘 큰 르풀랑에게 순간 암살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무서워서라도 와드를 박는 곳이 제한되기 마련이다.
지금의 상황이 으레 그랬다.
─올마스터님이 2차 포탑으로 가고 있음을 알림.
차근차근 핑크와드를 깔며 전진한다.
적팀은 불안해서라도 다시 와드를 깔고 싶을 테지만 그러지를 못한다.
자칫 틈을 내주면 죽불손을 동반한 르풀랑의 풀콤보를 맞고 그대로 사망.
르풀랑의 위치가 파악되고 나서야 발걸음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한 망설임은 나에게 기회를 준다.
까악! 까악! 까아악!
끠들스톡의 궁극기가 2차포탑을 끼고 있는 적팀을 향해 그대로 떨어진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가.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그 반대다.
점멸까지 쓰며 깊숙이 파고든 내 끠들스톡 주위를 떠다니는 까마귀 떼가 적팀을 물어뜯는다.
조냐의 물시계가 갖춰져 높아진 주문력에 스치기만 해도 체력바가 갈려나간다.
그렇게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위험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조냐.
약속이나 한듯 주전파의 르풀랑이 파고든다.
파아앙!
파아앙!
아무리 딜탱의 역할을 겸하는 준탱커 블러디체리라곤 해도 잘 큰 르풀랑의 손속은 인정사정이 없다.
죽불손과 함께 꽂힌 두 개의 표식이 삽시간에 터지자 글자 그대로 산화한다.
공포에 걸린 블러디체리는 자랑하는 생존기인 핏물화조차 쓸 수 없었다.
'억제탑은 무리겠지만 이 정도면 꽤나 넘어왔지.'
앞선 한타에서 한 번 데여버린 테러스티나와 파사딘은 억제포탑까지 도망간지 오래다.
때문에 블러디체리밖에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나도 궁극기를 사용해버렸으니 2차 포탑에서 만족하는 게 적당할 터.
하지만 어째서일까.
조금씩 승기를 굳혀 나가려 했건만 적팀의 반응은 상정 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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