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51화 (25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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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윈터시즌

다가온 11월의 첫 번째 토요일.

얼밤 대 TWA의 결승전이 드디어 치뤄진다.

상당히 재미진, 그리고 주목해서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오늘이 시즌2의 마지막 대회라는 사실.

지난 목요일을 기점으로 로드 오브 로드의 시즌2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롤드컵의 결승은 이전의 패치내역을 그대로 따라간다.

온라인도 대회도 아니고 오프라인으로 치뤄지는 공식 대회.

그것도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컵이라 불리는 국제규모의 대회다.

도중에 갑자기 패치내역이 바껴서야 가당키나 할까.

'뭐, 당연한 소리겠지만은.'

나는 그 시즌2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롤드컵 결승전을 관전하러 왔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붕 떠있기 때문일까.

진행되는 첫 번째 세트의 내용보다는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잡담들에 귀가 갔다.

"요즘 시즌 바뀌고 신발 시작은 아무도 안 하지."

"새까만 양날도끼 미스터 포텐이 여기에 나왔으면 펜타킬인데!"

"라알드리의 호통도 괜찮아져서 포킹챔프들도 썩 좋아졌어."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된 초반이라 주목해서 볼만한 게 없기 때문일까.

딱히 라인스왑도 걸리지 않아 무난무난한 분위기가 맞지만서도.

그래도 평소라면 대회 분위기에 들떠서 순수하게 경기를 기다리거나 해설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 터다.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쑥덕쑥덕 대회 내용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는 까닭이 있었다.

'후후, 이야기가 많을 만도 하지.'

시즌3 유저의 입장에서 시즌2를 바라본다.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니만큼 재미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게 가능한 마지막 대회가 이번 롤드컵이니 들뜨는 것도 당연한 이치.

'정확히는 프리시즌이지만 말이야.'

지금으로부터 불과 이틀 전, 근 1년에 걸쳤던 시즌2가 끝이 났다.

로드 오브로드가 장시간에 걸친 패치 끝에 프리시즌을 맞이했다.

다음 시즌에서 불안정한 부분을 미리 잡기 위해 있는 게 프리시즌.

프리시즌은 배치고사라던지 랭크라던지 여러가지 혼잡한 일선을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휴식기간이다.

말이 프리시즌이지 게임내용은 시즌3이긴 하지만 어쨌건 쉰다는 게 중요하다.

지난 2주 정도 부단히 달려왔던 나에겐 더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결과는.. 그럭저럭, 이지만….'

이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아쉬운 결과.

생각을 해두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착잡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보고 있는 결승경기에도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너무 힘이 빠져있던 것도 사실.

같이 온 경기를 관람하러 온 이가 불만을 표하셨다.

"너까지 뚱한 표정 짓고 있으면 우리가 싸우기라도 한 거 같잖아, 인상 안 펴?"

"...알고는 있구나."

기분전환 겸 오게 된 롤드컵 결승전 관람.

하지만 아무리 혼밥을 자연스레 해내는 나라도 관전을 혼자 오긴 뭣하다.

한국도 아니고 생판 현지 사람들은 뿐이니까.

그래서 일단 예은을 불렀고 응답도 해줬다.

썩 내키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일단 와줬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 예은이 짓던 표정을 그대로 짓고 있으니 그게 또 불만이신 모양.

"와달래서 와줬으니까 맞기 전에 인상 펴라?"

"협박을 하면 보통 인상이 구겨진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렇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은의 말마따나 인상을 구기고 있는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말을 흐렸다.

"그렇기는 한데.."

"누가 보면 망하기라도 한 줄 알겠다? 누구는 평생 준우승만 한 사람도 있는데."

어처구니 없는 드립이긴 해도 그 말대로다.

결과론이기는 해도 LCL에서도 준우승.

이번 세기말에서도 2위를 달성했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솔직히 하루이틀만 더 있었어도 1위가 가능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와 후회해서 될 것도 아니고, 애초에 충분한 결과기도 하지만서도.'

뒤늦게 시작해서 2위라니.

그 전부터 2위 자리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던 도차에게는 더더욱 아쉬운 일일 것이다.

내가 이러고 있어서야 아니될 노릇.

알고 있음에도 뚱한 마음이 떨쳐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인상 안 피면 1초에 두 대씩 적립한다."

"폈어, 폈어. 폈으니까 꼬집지 말라고!"

한국 가전제품은 맞아야 낫는다고 하던가.

가전제품이 아님에도 맞으니까 조금 낫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나를 달래주니까 조금은 풀리게 된 것도 사실이다.

문뜩 생기는 걱정.

이 녀석, 어디가서 사람 때리다 한 번 일내지 않을까?

"법학과에서 사람을 때리는 게 위법이라고는 가르치지 않던?"

"너말고는 아무도 안 때리거든?"

딱 잘라 이야기를 해도 말이지.

설령 나를 제외한 이들에게 폭행을 가하지 않았다 해도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범죄다.

조금 알아주셨으면 싶다.

'많이 들해진 것도 사실이고 기특하긴 하지만.'

지금은 일단 경기나 즐겁게 관람해볼까.

솔직히 결과를 알고 보는 것이니만큼 그다지 긴장이 되진 않다.

마치 절름발이가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된 후에 보는 미스테리 영화같은 느낌.

평소였다면 영 김이 빠지는 노릇이겠지만 그렇기에 지금은 별 감흥없이 쭈욱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

.

.

* * *

경기의 결과는 역시나 였을까.

첫 번째 세트를 얼밤이 가져갔지만 두 번째 세트로 TWA가 따라잡았다.

박빙의 승부같아 보여도 다음 두 세트를 TWA가 연이어 가져가며 우승을 확정지으리라.

얼밤 대 TWA의 결승전은 그렇게 끝이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게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다음 세트가 시작되기 전 잠깐의 휴식시간.

씹을 거리로 팝콘이라도 하나 사오려던 찰나에 예은이 내 옷소매를 붙들었다.

자기 것도 사오라고 뻔뻔스레 내뱉을 생각이겠지.

너무나도 자연스런 흐름이었기에 안 말해도 사온다고 대답을 해주려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만 나가자."

"..뭐? 경기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뜬금없이 대회장을 나가자니.

차후 경기가 일방적으로 끝나리라는 건 오직 나만이 아는 사실이다.

혹시 게임이 재미없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서도.

그럴 전조도 없었을 뿐더러 이해가 가지 않는 흐름이다.

하지만 의아했던 것도 잠시, 예은의 입에서 튀어나온 다음 말에 나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니 겁나 지루해보이거든? 억지로 있지 말고 딴데 가자고."

"...아, 그래…."

예은의 말마따나 경기에 별로 관심이 가지를 않는다.

경기의 승패를 알고 있음과는 별개로 재미가 없다.

쭉 경기를 지켜 볼수록 드는 생각이 답도 없었다.

'내가 서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결승전치고 맥 빠지는 흐름.

한국이 진다는 사실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플레이 하나하나가 무언가 아쉽다.

차라리 외국 대 외국의 경기였으면 별 생각 안 하고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대한민국 축구를 보다 보면 누구나 떠올리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조금 다르기도 했다.

'내가 저 자리에 섰다면.'

단순히 답답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저 자리에 섰다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도 있거니와 그만한 기량도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현실의 나는 지난 2주일을 불태운 결과를 아쉽게 매듭진 꼴불견이다.

더욱이 아쉬운 마음을 채 떨쳐내지도 못한 못난이.

이런 생각하다가 또 꼬집혀버릴까, 눈치를 살피며 인상관리를 하려던 찰나.

예은이 해오는 행동은 언제나의 손찌검이 아니었다.

"열심히 했잖아?"

"...뭐 그랬지만."

예은이 눈 뜬 장님이 아니고.

내가 딱히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잉벤등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기에 주먹밥을 만들어준 거기도 했다.

그런 기특한 짓.

안 어울리니까 3일 전에 미리 예고를 해줘야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예은에게 위로 받을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어쨌건.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마음씀씀이가 썩 나쁜 녀석만은 아닌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 갈까?"

"어디로?"

나는 예은의 손을 잡고 경기장을 나섰다.

굳이 손을 잡을 필요야 없겠지만 지금은 경기가 끝나고 휴식시간이라 사람의 왕래가 많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손을 잡고 밖에 나가자 그제서야 떠오른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 말이다.

"갈비? 꼼장어?"

"술은?"

"마시지!"

대회 관람하러 와서 경기장에서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마시는 거밖에 없지.

잠깐 업무에 집중하느냐 끊고 있었던 술.

마음껏 마시며 아쉬웠던 결과를 달래기로 마음먹었다.

.

.

.

* * *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남자의 생각은 굳건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올마스터….'

세기말 솔랭의 결과.

2위도 아니고 3위라니.

그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고 도차는 하루이틀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밤을 새우면서까지 한 것.

울분을 토한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기분전환을 한 것도 아니다.

미처 떨쳐내지 못한 여운이 몸을 움직이듯 오로지 솔랭, 또 솔랭이었다.

시즌2가 종료되고 시즌3의 배치고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라고 할 수 있는 프리시즌.

남들은 다 쉬고 있는 프리시즌에 게임에 매진한다는 게 우스울 수도 있다.

패자가 뒤늦게라도 1위를 찍어보기 위한 발악이라 보일 수도 있다.

그러한 남들의 시선따위 게의치 않고 오로지 솔로랭크에 올인했다.

딱 여섯 시간.

반나절의 절반이 채 되지 않아 도차는 1위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주전파도, 올마스터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그 둘의 빈 자리가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1위를 찍었음에도 도차는 꼬박 하루를 더 매진했다.

마치 이기지 못해 걸신이라도 들린듯.

누가 보면 도차가 아니라고 생각할만큼 아무런 의미없는 솔로랭크를 해댔다.

'이상할 테지..'

남들이 생각하기에 게임을 돈으로 밖에 보지 않는 자신이 부질없는 프리시즌의 솔랭에 몰두하다니.

어처구니도 없을 뿐더러 자기 자신이 봐도 자신같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해버린 게 사실이고 의미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았다.

도차는 확실하게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난 역시 잘한다.'

누군가 결과를 보고 폄하할 수도 있다.

더욱이 결과가 안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로 모든 것을 증명하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 결과가 안 좋으니 사고구조가 다른 쪽으로 곡해됐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리라.

하지만 도차는 자신이 얻은 결론에 대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대리게임을 시작했던 이유가 정확히 뭐 였더라..'

변명할 여지 없이 돈을 벌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잘하고 싶다는 욕망, 남들의 위에 서고 싶다는 욕심.

있는 한 의미없이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으리라.

도차는 자기 자신의 성격과 행동원리를 역추적한 끝에 찾아낼 수 있었다.

자신이 대리게임을 시작했던 이유가 퍼즐조각처럼 맞춰졌다.

어느 순간 쌓이고 쌓이는 돈에.

돈에, 돈에, 돈에.

오직 돈만을 생각하며 게임을 한 게 사실이지만.

그 전에는 분명 다른 생각을 품고 대리게임에 혹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었다.

'맞아, 지루했었지.'

도차 스스로가 그랜드 마스터가 잘한다고 느꼈던 것은 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잘한다고 느끼는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순간 지루해졌다.

상대의 플레이가 너무나도 진부했다.

알고 있다고 모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그저 상황이 받쳐주지 않았을 뿐.

동등한 상황이라면 자신이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자 게임에 대한 흥미도 덩달아 떨어졌다.

도차는 게임을 재미로 한 적이 없었다.

정정하자면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것은 오직 남을 추월할 때뿐.

더는 추월할 이가 없어지자 솔로랭크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

마음이 한가해지자 딴 생각이 솟아났다.

그것이 대리게임을 시작하게 된 동기이자 원유였다.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주전파, 그리고 올마스터같은 이들을 더욱 일찍 만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대리게임같은 당장의 현금이 아닌 먼 미래.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하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의 이미지.

들리는 소문으로는 시즌3부터는 대리게임을 금지시킨다고 하던가.

게임사가 제재의 1순위로 자신을 꼽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얼핏 들었다.

이제와서 후회한다고 한들 업질러진 비커.

하지만 과연 끝일까?

도차는 자신이 아끼는 동생 도진기가 한 말을 떠올렸다.

<형, 지금이라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오히려 빠른 시기라는 말.

딱히 책에 있는 명언따위 새겨듣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한 번정도는 믿어도 되지 않을까.

도차 스스로가 다시 한 번 새로이 서고 싶었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나는 다시 태어난다.'

지금까지의 도차는 죽고 사라졌다.

앞으로도 도차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리라.

가끔 자기 자신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도차였지만 이것 하나는 정말 좋았다.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는데 망설임이 없다는 사실.

그렇게 시즌2의 세기말을 장식한 남자.

주전파, 올마스터와 함께 했던 누군가.

그리고 프리시즌이 되자 다시금 1위를 되찾았던 도차의 계정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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