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55화 (25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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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윈터시즌

발달한 도심지야 그럴 일이 없다지만 외곽 지역.

혹은 여행지의 식당에 가면 정말 개들이 많다.

이곳 필리핀에서는 아주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렇게 많은 개들에게 줄 사료값이 장난이 아닐 텐데 어떻게 식당에서 키울까.

사실 이 개들을 키는 데는 사료값이 전혀 들지 않는다.

왜? 먹이를 주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까.

"핫숏, 그렇게나 기대했던 해산물들이 개입으로만 들어가면 어떡해?"

"그만 약 올리라고.. 인간적으로 맛대가리 없잖아 이거."

짜고 비리고 물기 많고.

이 세박자를 고루 갖춘 해산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으리라.

차라리 생으로 먹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기생충때문인지 반드시 굽거나 삶아서만 나온다.

그런데 이곳 음식점들 조리 수준이 너무 낮다.

"제길, 이 새우들. 내가 집에 싸들고 가서 굵은 소금에 후추만 뿌려 구워도 이것보단 나을 거야."

"자자, 투덜대지 말고 얼른 먹으라고. 니가 시킨 거잖아?"

얄밉게 이죽대며 자신이 시킨 고기요리를 먹는 트리플리프트.

일단 한 번 자신을 말렸던 것도 사실이기에 핫숏은 더 따질 수도 없었다.

그냥 확 음식들을 남기고 가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 맛대가리 없는 해산물들도 꾸역꾸역 먹어주는 개들 때문에 억지로나마 새우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옳지, 잘 먹는다."

매정하기 짝이 없게 자기 밥만 얌체처럼 먹고 있는 트리플리프트와 달리 새우를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

식당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심지어 발치까지 파고드는 누렁이들에게 새우를 까주던 핫숏은 이야기를 돌리기로 했다.

적어도 이 새우들의 껍질을 몽땅 까서 누렁이들에게 줄 때까지는 트리플리프트의 식사를 방해해야 했으니까.

"원딜러로서 말이야, 로크도그 어떻게 생각해?"

"하? 평가에 도움을 준 건 맞지만 결정을 한 건 너라고. 이제 와서 불안해?"

현실적인 문제로 프로게임단에서 신입 하나를 잘 키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한 번에 두 명이라니.

자칫 무리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솔직히 이번 영입에 있어서 트리플리프트는 반대의 입장이었다.

"아니, 순수하게 말이야 순수하게. 네 평가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서."

"뭐.. 그런 거라면야. 내 평가는 이전과 똑같아. 기량은 좋지. 하지만 멘탈은 안 좋아. 까놀고 말해 도박수지."

로크도그의 기량을 생각해본다면 조금은 해볼 만한 도박수인 것도 사실.

하지만 나중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트리플리프트는 뒷말을 아꼈다.

더해서 그 멘탈이란 부분이 로드 오브 로드에서 심각히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니까.

"갤럭시 크래프트가 아니라고.. 확실한 목줄이 없으면 제 기량의 반도 발휘하지 못할 걸? 아니, 팀의 발목이나 붙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트리플리프트의 말마따나 1:1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갤럭시 크래프트에선 사정이 그나마 나았다.

1:1이라는 점때문에 멘탈이 안 좋아도 감독의 기량에 따라 충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니까.

컨디션이 난조일 땐 출전을 안 시키고, 멘탈이 흔들릴 수 있는 전략에 대한 대비책을 충분히 내리고.

개인리그에서야 그럴 수 없겠지만 팀리그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는 달랐다.

5:5의 AOS게임장르인 로드 오브 로드.

다수 대 다수의 팀게임에서 한 명의 실수가 팀원들의 발목을 잡고 만다.

설사 초중반에 잘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게임시간이 흘러 후반 타이밍에 원딜러가 한 번 던져버리면 공든 탑 와르르르 무너지는 꼬라지를 볼 수 있다.

전형적인 바론 먹히고 억제탑나가는 흐름이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특히나 게임내내 높은 집중도가 요구되는 원딜러에겐 더더욱이다.

높은 딜링능력에 반비례해 종잇장같은 몸.

성장을 잘했다고 해도 한 순간 방심에 갈갈이 찢겨나가기 십상이다.

하다 못해 미드라이너처럼 스킬쿨이라도 한 번 돌리고 죽으면 다행이지.

지속딜이라는 까다로운 컨셉을 가진 원딜러이기에 높은 집중도는 필수 불가결이다.

그렇게 중요한 집중도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멘탈.

한 번, 한 번의 한타를 호랑이 굴에 들어간 나무꾼의 기분으로 임해야 하는 원딜러가 멘탈이 나가버리면 어떻게 될까?

새끼 호랑이를 잡아오긴 커녕 살아나가는 것조차 힘들다.

원딜러라면 반드시 가지게 되는 이 불편사항에 대해 트리플리프트는 누구보다 잘 알고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원딜러인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

그러한 자신조차 컨디션 난조로 게임 말아먹는 일이 종종 있을 정도인데 멘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 이상으로 캐리하는 경우가 많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당연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근본적으로 멘탈을 뜯어고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뭐, 성장의 여지가 없다고는 부정 안 하마."

"그렇지?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니까. 너도 그랬고 말이야."

트리플리프트는 혀를 차면서도 핫숏의 말을 내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름아닌 자신이 핫숏디디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었으니까.

CLC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원딜은 부포지션에 불과했다.

그런데 핫숏이 원딜러로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더니 결국 대성해 버렸다.

선견지명에 가까운 핫숏의 눈썰미는 CLC를 북미 최고의 팀으로 발돋움 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아니, 그가 없었더라면 CLC는 지금만한 성세를 이루지 못했으리라.

옳고 또 옳은 소리였다.

'이런 남자가 말이야.'

언제나 허풍을 입에 달고 살며 허황된 소리를 늘여놓는 남자.

자신과 말을 섞으면서도 새우껍질을 부단히 까고 있는 핫숏디디.

어느 쪽이 주인지 모를 정도로 누렁이 먹이주기에 여념이 없어보이는 그를 보며, 트리플리프트는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 * *

어제부로 드디어 CLC에 뿌리내리게 됐다.

딱 하루밖에 지내지 않고서 평가하는 것도 뭣한 일이지만 확실히 나쁘지 않다.

시설도 좋고 사람들도 두 명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괜찮고 불만사항은 아직까지 없다.

단 하나를 빼놓고.

'너무 한가하네.'

한 마디로 할 게 없다.

프릭이나 리를 만나 이야기라도 섞어볼까 했지만 그 둘도 나름대로 바쁜 모양.

그도 그럴 게 숙소에 남아있을 뿐이지 공식적으로 휴가인만큼 여기저기 볼 일이 많으리라.

내 사정만 생각할 수 없기에 나도 따로 무언가를 하기로 했다.

'근데 막상 할 일을 찾으려고 해도 말이지..'

쇠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정말 딱히 일거리가 없다.

차라리 아군과 한 번 호흡이라도 맞춰봤다면 생각해볼 만한 게 있었을 텐데.

시기가 애매해도 너무 애매하다.

'아니, 굳이 일쪽으로 방향을 한정시킬 필요야.'

앞으로 며칠만 지나면 돈주고도 못 살 황금같은 휴식시간.

순수하게 사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골똘히 생각해보니 할만한 일도 남아있었다.

'보답까지야.. 아니겠지만.'

주먹밥의 보답이라고 하기엔 우스운 노릇일수도 있겠지만.

일평생 누구한테 이로운 일 할 것 같지 않아보이는 녀석이 신경을 써줬다.

개과천선까지는 아니겠지만 꽤나 긍정적인 변화은 당연하리라.

그러한 변화.

조금 축하해줘도 되지 않을까.

해주는 편이 약간이나마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나를 위해서도, 언젠가 녀석이 법조계에 섰을 때 고통받게 될 선인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박앤..뭐시기 같은데 들어가서 돈되는 의뢰만 골라서 하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빼박캔트다.

상대를 아주 물고 뜯고 놔주지를 않겠지.

표독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녀석이니까.

그런 녀석 하나 개화시키는 셈이면 내 시간과 돈을 다소 사용해도 아깝지는 않을 터다.

지난 롤드컵 결승전의 관람이 끝나고 삼일쯤 지났던가.

그때는 내 억지로 만난데다 그나마 갔던 롤드컵에서도 돌아나왔다.

그 후에야 재밌게 놀았지만서도 내 기분전환에 어울려 준 건 사실이다.

오늘은 녀석이 시간이 있다면 조금 맞춰주는 식으로 나가도 괜찮으리라.

.

.

.

* * *

이러니저러니 속 썩이는 부분은 있어도 만나자고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거절한 적은 없다.

공부니 뭐니 해도 생각보다 한가한 시간이 많은 모양.

그럴 만도 하지만 말이다.

'그 성격에 친구가 있으면 오히려 신기방기 하겠지.

미국을 한정하자면 나도 썩 나은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예은은 조금 심각하다.

지 말마따나 나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면모가 적다고 쳐줘도 그 이외의 부분.

쌀쌀맞은 성격이나 타협이 불가능한 성격이나.

정상적인 궤도에서 한참은 벗어나 있다.

'이제 슬슬인가.'

굳이 택시를 탈 필요가 없어져 잡생각을 하며 터벅터벅.

CLC 숙소가 위치한 빌딩이 도시중심가에 있어서 실질적인 거리도, 치안적으로도 걸어가도 괜찮게 됐다.

예은과 늘 만나던 중간지점에 말이다.

'오늘 뭘 먹을까.'

이른 저녁 시간대.

일반적으로는 배가 고플라면 남은 시간대임에도 걱정이 없다.

나는 그렇다 쳐도 예은은 엄청나게 잘 먹을 테니까.

그렇게 실없이 메뉴를 고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던 와중.

육안으로 어렴풋하게 보이게 된 약속장소에서 무언가 말썽이 있어보였다.

큰 일은 아니고 홍대라던지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일.

남자 한 명이 여자 한명을 꼬신다.

흔히 말하는 작업을 건다.

시시껄렁하긴 해도 젊은 남자라면 관심이 없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것은 여성 쪽에서도 마찬가지.

서로가 안 맞는 경우는 없어도 아예 관심 자체가 없는 경우는 별로 없다.

지금 보이고 있는 경우도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흐름이리라.

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조금 많이, 아니 심각하게 달랐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거리가 거리인지라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대략적인 장면은 보였다.

여자가 남자의 싸대기를 힘껏 때렸다.

그것도 풀스윙으로 목 돌아가리만큼 후려쳤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위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 정도로 깔끔한 한 수였던 걸까.

아니면 집적대던 남자가 된통 당한 게 그렇게나 속시원했던 걸까.

어떤 상황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 쳐도 거절의 의사를 너무 지나치게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현장의 상황에서 봤을 땐 여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나에게 불똥이 튈 일도 없겠고.

저 재밌어 보이는 장면을 지근거리에서 구경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이 광경을 예은도 같이 봤으면 아주 배꼽이 떨어져라 웃어댔을 텐데.

상황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구경할 속셈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싸대기를 날린 여성의 외관이 내가 알던 이와 상당히 비슷했으니까.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잡아도 제대로 잡아버렸다.

방금 전 사람의 싸대기를 힘껏 갈겼다고는 보이지 않으리만큼 차가운 표정의 여자.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결코 말을 걸지 않았을 여성에게 나는 용기를 내어 입을 떼었다.

못 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너.. 괜찮냐?"

세상이 넓다한들 풀스윙을 그렇게 자연스레 날릴 수 있는 여자가 따로 있을까.

다름아닌 예은이 맞았다.

예은은 뺨따귀를 날렸던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힘껏 노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예은의 모습을 확인하고 헐레벌떡 도착한 내가 고개를 돌아보기 직전.

이미 발걸음을 떼고 전속력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한국인같았다.

같은 나라사람들끼리 외지에서 왜 소란을 떤 걸까.

'신경을.. 제대로 거슬린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 예은의 과민반응이 있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조금 기울어지고 있긴 하지만 티를 내서는 안된다.

복잡미묘한 상황에서 탓하듯 말하는 건 해서는 안될 짓이니.

조금 달래주다 상황을 천천히 들어보는 게 순서다.

하지만 그 본인이 입을 떼지 않자 영 불편한 자리.

사단이 일단락 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구경거리가 남아있지 않을까 지켜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신경쓰인다.

마치 '싸대기를 맞을 다음 타자가 너세요?' 라고 물어보는 것만 같다.

마음같아서는 확 끌고 가고 싶지만 괜시리 자극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다행히도 예은이 평정심을 찾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첫 마디로 나온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2할."

차갑게 들썩인 예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는 뜬금없었다.

2할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나로서는,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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