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64화 (264/803)

264====================

윈터시즌의 서막

탑라인에서의 퍼스트 블러드, 승전보가 거짓말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의 흐름은 마진 수비대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어쩔 수가 없다.

마진 수비대의 미드와 정글은 만만치가 않으니.

<미드는 일단 버티고 있어요. 근데 정글 오면 또 모르겠는데….>

삼선 블루의 미드라이너 키나키나의 말.

말 줄임표가 길어지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미드라인의 상황이 영 신통치가 않았기 때문.

상대 팀인 마진 수비대의 미드라이너 훈, 그리고 정글러인 모카차의 듀오는 익히 정평이 나있다.

아마추어로서 솔로랭크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기피의 대상.

아군으로서는 제발, 적군으로서는 시X.

프로를 지망하게 된 몇 달 전부터는 솔로랭크에서 뜸해졌다지만 당시에는 꽤나 유명했다.

그런 그들이 프로무대에 올라오다니.

그 둘이라면 프로무대에서도 먹힐 거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추측.

과연이랄까 들어맞았다.

<정글도 사정이 시원찮아.. 미드가 밀리니까 저도 할 게 없어져서..>

<봇은 그래도 버틸 만은 하거든요? 마지막까지 힘내보죠.>

팀내에서 오가는 대화의 흐름은 암울하다.

본선 수준이라는 상대, 마진 수비대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 삼선 블루는 본선에 올라간다 쳐도 큰 활약이 불가능하다.

대화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은연 중에 그 사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아.. 완전히 지는 분위긴데….'

삼선 블루의 최연장자인 씨지맥은 덕담이라도 한 마디 던지고 싶었지만 말할 게 없다.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필요없는 말이 지어내서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탑라이너인 씨지맥으로선 대화에 참여할 건덕지를 찾기 힘들었다.

탑이라는 라인은 그들만의 리그.

심각히 밀리거나 의문의 로밍을 허락하지 않는 한 딱히 이야기를 꺼낼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밀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기고 있는데.

이 와중에 씨지맥이 '나 잘하고 있음ㅋ' 이라 말해봤자 무엇 하겠는가 놀리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탑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혼자서 이변을 창조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솔킬을 따낸다.'

아군의 정글러도, 적팀의 정글러도 탑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적 정글 모카차의 예스틸러스가 얼굴을 두어 번 비춘 정도.

씨지맥의 말카림이 탑라인에서 주도권을 잡은 이후로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어차피 와도 못 잡으니까 말이지.'

최근 탑라인에서 새로이 득세를 하고 있는 AP챔피언들이 있다.

라알드리의 호통이란 아이템 상향 덕을 제대로 받은 전기쥐와 파이어뱃.

그 중 하나인 전기쥐는 견제도 견제지만 스턴이 정말로 까다롭다.

조건만 맞는다면 연속 스턴.

탱커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챔프지만 말카림이라면 역관광이 가능하다

'아테나의 신발이 나왔다..!'

초반에 CS를 덜 먹더라도 어떻게든 버텨서 6레벨 킬각을 노렸다.

씨지맥의 노림수는 제대로 적중했고 덕분에 아테나의 신발을 빠르게 맞출 수 있었다.

일반 탱커들에겐 딜로스 아이템에 지나지 않은 아테나의 신발을 굳이 선택했다.

아테나의 신발은 강인함이라는 CC기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대신에 다른 신발들보다 비싸다.

때문에 늦게 맞추는 아이템이지만 씨지맥은 처음부터 샀다.

이동속도와 공격력이 비례하는 패시브와의 시너지를 믿었기 때문.

그리고 재빠르기 그지없는 전기쥐의 목덜미를 잡아채기 위함이다.

쿠워어어어어!

씨지맥은 궁극기의 쿨타임이 차자마자 망설임없이 뛰어들었다.

멸망의 질주가 아닌 궁극기인 그림자의 습격으로.

그렇다고 상대를 얕본 건 아니다.

이미 같은 방식에 한 번 데여본 적이 있는 전기쥐는 곧바로 반항해왔다.

괜히 프로무대에 올만한 자질이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걸까.

말카림이 당도하는 고작 찰나의 시간에 표창과 궁극기를 동시에 사용해냈다.

하지만 말카림은 무시해버린다.

그림자의 습격은 돌진 도중 자신을 얽매여 오는 모든 CC기를 떨쳐낸다.

전기쥐가 애써서 걸은 스턴 또한 당연히 효과가 없다.

데미지야 고대로 들어오겠지만.

'상관이 없다!'

씨지맥은 이미 Q스킬, 언월도 돌리기를 2스택 쌓아놨다.

그 효과는 1스택마다 쿨타임이 1초 감소.

본디 4초의 스킬 쿨타임을 가진 언월도 돌리기는 이제 2초에 불과하다.

2초마다 휘몰아치는 언월도가.

아테나의 신발에 의한 이동속도의 차이가.

전기쥐를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오오! 탑 솔킬 터졌네. 만호형 나이스샷!>

<탑만 믿고 갈게요. 근데 합류하기 전에 아랫라인 조금 위험할 거 같은데.>

<아, 죄송. 저 점멸 빠졌어요.>

씨지맥이 전기쥐를 참교육하는 사이.

또다시 갱킹의 위험에 노출된 미드라인은 점멸이 빠졌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되면 다음 갱킹에 필킬.

시간이 흐를수록 좋을 게 없다.

더군다나 봇라인 또한 버티고 있을 뿐 아슬아슬하다.

이 위기의 순간에 아군을 구할 수 있는 자는.

티링!

씨지맥이 아테나의 신발 다음으로 선택한 아이템은 탐욕의 둔기.

본디 광채의 칼부터 올리는 씨지맥이었지만 아이템트리가 달라졌다.

얼마 전 있었던 시즌3 패치와 함께 삼종신기의 하위템인 탐욕의 둔기가 세부적으로 바꼈다.

1/4의 확률로 둔화를 걸던 애매한 효과가 평타 가격시 2초간 이동속도 상승으로.

말카림의 패시브와 시너지가 터진다.

콰라락!

이제는 무서워서 접근도 못하게 된 전기쥐를 무시하고 씨지맥은 라인을 밀었다.

언월도를 돌려 주위의 적에게 광역피해를 주는 Q스킬로 미니언을 깔끔하게 푸쉬.

그리고 멸망의 질주를 사용해 빠르게 대쉬한다.

목표는 다름아닌 쌍둥이 골렘.

'성장한다.'

조금 뜬금없을 수 있다.

하지만 씨지맥은 이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어차피 탑라이너가 어설프게 내려가봐야 도움이 안된다.

그럴 바에야 혼자 행동한다.

자신만의 운영방식을 고착화시킨다.

씨지맥은 이곳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에서 해낼 자신이 있었다.

콰라락!

라인을 푸쉬하고 정글몹을 빼먹고를 반복한다.

이 단순한 행위가 게임에 조금씩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빼먹었다는 정글몹은 다름아닌 적팀의 것이니까.

적 정글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이나 씨지맥의 성장엔 가속도가 붙는다.

띠리리리링~!

어느새 삼종신기의 두 번째 하위템, 광채의 칼까지 나온 씨지맥의 말카림.

스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기쥐는 방어아이템을 두 개나 올렸다.

추격자의 손목 보호대과 어쌔신의 신발.

하지만 씨지맥은 애초부터 무리하게 킬각을 노릴 생각이 없었다.

파악!

멸망의 질주로 빠르게 달려나가 적팀의 정글을 또 빼먹는다.

그렇게 몇 번이나 정글몹을 빼먹자 탑의 레벨차이는 벌써 2레벨.

현재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 모든 선수들 중에서 씨지맥은 가장 레벨이 높다.

하지만 모난 돌은 정 맞는 법.

적팀에게 있어 씨지맥은 제거의 대상이 돼버렸다.

아무리 탑이 그들만의 리그라 할 지라도 한 번은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니까.

적팀의 정글러 모카차의 예스틸러스가 그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쿵! 쿵! 쿵! 쿵! 쿵!

예스틸러스의 입장에서도 말카림이 자신의 정글에서 날뛰는 걸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

때문에 점멸까지 사용해서 때려박는 궁극기.

자칫 무리수 같겠지만 정확한 판단이다.

'도망갈 수는 없다.'

적 정글몹을 빼먹는데 맛이 들린 씨지맥은 적진영 안까지 너무 파고들었다.

궁극기를 사용해 빼는 방법도 있겠지만 하필 적 미드라이너가 미아상태다.

<만호형, 코리아나 간다! 나도 같이 백업가고 싶은데 쫓아가다간 죽을 수도 있어서..>

동선을 보아하니 어느 쪽으로 도망가도 적 미드의 입김이 닿고 만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맞서 싸우는 게 맞다는 판단.

하지만 자신을 노리는 두 적이라고 만만한 게 아니었다.

콰아앙!

예스틸러스의 궁극기가 터지며 씨지맥의 말카림을 옭아맨다.

닿는데에 시간이 걸린다고는 해도 타겟팅 스킬.

그렇게 잠깐만 붙들어내면 예스틸러스의 CC기 콤보에 노출되고 만다.

쿠웅!

줄이 달려있는 닻을 던져 상대를 끌어내고 그 닻을 크게 들어 내려찍는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예스틸러스의 평타는 속박 효과가 있다.

가히 CC기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예스틸러스다운 스킬셋.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기쥐까지 궁극기를 사용하며 쫓아온다.

치지지지직!!

전기쥐의 궁극기, 백만볼트가 터지며 씨지맥을 감전시킨다.

앞으로 조금 후 3스택이 쌓이면 정확히 스턴.

그 찰나의 순간에 씨지맥은 키보드를 연타했다.

쿠워어어어어!

그림자의 습격이 전기쥐와 예스틸러스를 동시에 덮친다.

돌진 중에 모든 CC기를 무시하는 효과로 전기쥐의 스턴을 무효화한다.

그 뿐이면 다행일까.

흡수하는 원혼 또한 발동시켰다.

말카림의 W스킬, 흡수하는 원혼은 주변 적이 받은 피해의 2할만큼 체력을 회복시킨다.

그림자의 습격과 언월도 돌리기의 광역피해가 전기쥐와 예스틸러스를 갈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갈아버린 분의 2할만큼 말카림은 체력을 쭉쭉 빨아낸다.

꾸득!

삼종신기의 하위템 중 가장 중요한 두 개가 완성된 씨지맥의 말카림.

발화를 걸고 다시 한 번 언월도를 휘두르자 전기쥐는 그 생명을 다한다.

하다못해 킬교환이라도 됐으면 적팀의 입장에서도 해볼 만한 장사였겠지만.

'예스틸러스까지 따낼 수 있다.'

전기쥐가 자신에게 발화를 남기고 갔지만 너무 늦었다.

쓸 거였으면 처음부터 박아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흡수하는 원혼의 체력회복 효과가 반토막 났을 테니까.

씨지맥의 말카림은 이미 흡수하는 원혼으로 체력을 엄청나게 채워낸 후였다.

띠리리리링~!

멸망의 질주에 진작에 발동시킨 유령화까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씨지맥은 예스틸러스의 뒤를 잡았다.

물론 잊지 않는다.

쾅! 쾅! 쾅!

땅을 내려쳐 그 여파로 주위의 적을 둔화시키는 예스틸러스의 E스킬.

돌진하는 척하다가 잠깐 뒤로 빼 피해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질주한다.

─더블 킬!

삼선 CGVMAXIM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씨지맥이 처음 퍼블을 땄을 땐 방음부스 너머로 미약한 진동이 울렸다.

경기를 보는 관중들이 그만큼이나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는 증거.

하지만 이번에 느껴지는 건 다름아닌 정적이다.

심지어 같이 게임을 진행하는 씨지맥의 아군들조차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다.

<이거…, 설마?>

계속해서 벌어지던 미드차이.

잘 풀리던 탑에까지 여파를 끼쳐 죄책감에 시달리던 삼선 블루의 미드라이너.

키나키나의 입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이윽고 울려온다.

구오오오오오오!

오프게임넷에서 특별히 제조한 차폐막이 경기장과 선수석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방음부스이기에 들려서는 느껴져서는 안되는 환호음.

단순히 미동이 아니라 뚜렷하게 느껴진다.

스타디움이 펄펄 끓어댄다.

<진짜로 해보자..>

<그래, 아직 포기하긴 일러.>

<형! 형이 오더해줘. 우리를 이끌어줘!>

여기서 말하는 형이란 당연 팀의 최연장자.

김만호, 씨지맥을 가리킨다는 사실에 이견이 붙을 수 있을까.

씨지맥의 입장에서 봤을 때 팀내에는 까마득하게 어린 동생들도 있다.

그들은 똑같은 입장으로 팀에 들어오자 나이가 많은 형을 못내 무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기해 씨지맥은 팀의 명실상부한 리더.

팀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어야 할 탑라이너가 메인을 맡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탑중심의 팀이 탄생해버렸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심장은 두근대지만 머리는 고요하다.

당장의 결과가 좋았어도 꽉 잡고 있는 고삐를 늦출 수야 없다.

씨지맥은 대답하기 보다 먼저 탑라인의 1차포탑을 파괴했다.

그래야만 캐리를 할 수 있는 발판.

야생마가 미쳐 날뛸 수 있다.

무겁게 다물고 있던 씨지맥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그래, 애들아! 나만 믿고 따라와. 명진이는 일단 탑에 와드부터 박아주고.."

권력이 생겼으면 자신을 위해 조금은 써도 되지 않겠는가.

정말 어지간하면 와드를 사지 않는 씨지맥이 정글러에게 와드를 요청하자 긴장돼 있던 분위기가 완화된다.

권력남용이 아니냐면서 들어오는 태클.

씨지맥으로서도 이제 탑에 연연할 시간은 지났다.

"나 삼종신기 완성됐거든? 지금 바로 봇에 달려갈 테니까 명진이도 와바. 이거 싸우면 무조건 이겨!"

설사 싸워주지 않아도 다이브를 해낸다.

다이브를 피하면 타워를 부수고 용을 먹는다.

들러리에 불과해야 단 한명의 탑솔러.

씨지맥에 의해 게임의 판도가 뒤바뀌기 직전이었다.

============================ 작품 후기 ============================

귀찮으실 텐데도 잊지 않고 눌러 주시는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고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