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65화 (26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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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시즌의 서막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탑솔러가 캐리한다.

잘 크면 좋고 못 커도 그만인 계륵같은 탑라이너가 전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것도 이곳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롤챔스에서 말이다.

<오오오! 말카림이 또 달립니다!>

삼국지의 관우가 로드 오브 로드에서 환생했다.

말카림이 돌진해 쏘아져 나가면 한 명의 적이 말발굽 아래에 짓밟히고 만다.

글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는 씨지맥의 말카림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봇라인에 로밍을 가면 봇이 터지고.

미드에 로밍을 가면 미드가 터진다.

알고 있어도, 두 눈 똑똑히 보고 있어도 막을 수가 없다.

아니, 막을 수단이 없다.

말화이트처럼 막무가내로 들어가.

노텀처럼 무자비하게 물어뜯는다.

그런데 나무카이처럼 단단하다.

하나하나는 언급된 챔피언들보다 못할 지라도 그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게 중요하다.

만능캐와 잡캐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던가.

적어도 이번 경기에서의 말카림은 만능캐 쪽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강제이니시를.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해도 삼종신기의 막대한 데미지로.

포탑을 끼고 있어도 맞으면서 다이브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몰고 오는 사신이다.

그리고 그 사신이 주관하는 심판대.

용한타가 열리자 관중석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용한타에서 열 명의 선수들이 치고 박는 가운데 과연 돋보인다.

말카림이 적팀의 진영에 대놓고 달려나가 성과를 만들어낸다.

쿠워어어어어!

마진 수비대의 코리아나가 엄청난 성장을 해냈다고 했던가.

그 속도가 최고조에 달한 멸망의 질주가 코리아나에게 들이박혔다.

씨지맥의 말카림이 쏟아져 들어오는 CC기를 떨쳐내며 끝끝내 잡아뜯는다.

적진의 한가운데에서 적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콰라락!

코리아나를 잡아내긴 했지만 지나치게 파고 들어버린 대가일까.

마진 수비대의 줜이 말카림이 도망가지 못하게 바짓가랑이를 붙든다.

하지만 삼선 블루 또한 놀고 있지 않는다.

<이마시야!>

한줄기 주포가 적팀의 진영을 꿰뚫는다.

말카림이 발동시킨 흡수하는 원혼의 효과.

주위의 적이 받은 피해의 2할만큼 체력을 회복한다.

삼선 블루팀의 미드라이너, 럭키가 쏘아낸 궁극기가 말카림의 체력을 회복시킨다.

그 잠깐의 회복이 기회를 만들어낸다.

투욱!

게임내내 고통받던 아모모의 점멸 붕대.

붕대의 판정은 맞히는 게 녹록하지 않지만 적팀은 과녁에 불과하다.

말카림이 적팀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준 덕분.

슬픈 좀비의 재앙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데미지의 2할만큼 말카림의 체력이 회복된다.

콰라락!

아무리 궁극기가 없어도 삼종신기가 나온 말카림이다.

자신을 구속하던 CC기의 효과가 끝나자 인정사정이 없다.

가로 막는 모든 것.

베어낸다.

<미쳐 날뛰는 한 마리의 적토마를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서렌이 터져도 이상하지가 않아요!>

<기가 막힙니다!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제 롤챔스 해설 역사상 이만큼 캐리력이 있던 탑라이너는 본 적이 없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들뜨기엔 아직 이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선전에 불과하니까.

경기의 수준이 본선에 준한다고 하는 마진 수비대 대 삼선 블루의 경기.

조금은 설레발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고조된 흥분만큼은 진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다.

과아아아아아아아!!

소름이 돋는다.

특별 차폐막까지 설치된 방음부스 너머로도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다.

관중이 한 뜻으로 모여 외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게임이든 누구나 한 명은 캐리를 한다.

이번 경기에서 씨지맥의 말카림 플레이가 이와 같은 주목도를 받을 가치가 있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뒤에 숨은 사정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가능하다.

지금껏 로드 오브 로드에서 무시받고 천대받던 탑라이너.

탑신병자라 불리며 캐리와는 거리가 멀던 탑솔러의 대란이다.

굳이 탑라이너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이라도 탑을 서본 자라면 온몸에 전율이 퍼지리라.

씨지맥이 플레이하는 말카림을 중심으로 삼선 블루가 뭉친다.

라인전 단계에서의 패색이 거짓말처럼 몰아붙인다.

마진 수비대라는 두터운 성벽이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다.

.

.

.

* * *

달칵!

나는 보고 있던 인터넷 화면의 새창.

한국 롤챔스 예선전의 녹화방송을 꺼버렸다.

경기의 내용이 실망스러워서가 아니다.

친한 지인이 패배를 해버려서도 아니다.

보고만 있기엔 내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가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았다.

'제법, 이잖아..?'

삼선 블루가 마진 수비대를 잡아냈다.

그것도 탑을 제외한 전라인이 밀리는 게임에서 탑이 강제로 캐리를 해버렸다.

물론 아주 큰 차이로 밀리고 있지는 않았기에 어떻게 한타로 비벼볼 여지가 없던 건 아니지만.

'씨지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지.'

애초에 기세부터가 확연하게 꺾였었다.

사그라졌던 불길.

다시 한 번 부싯돌을 켠 건 다름아닌 씨지맥이다.

씨지맥의 말카림.

'내가 몇 마디 해주기는 했지만.'

이전에 술취해서 한 소리 내뱉은 건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최근에 전화가 몇 번 왔다.

롤챔스에 참가하게 된 게 어지간히 불안했던 모양.

그럴 땐 지인이 차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풀리기 마련이다.

상담이라기보단 그저 고민을 들어준다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 말카림에 대해 약간의 이야기가 오갔지만서도 당연 큰 부분은 짚어준 적이 없다.

더욱이 짚어줬다고 할 지라도 도움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로드 오브 로드가 배워서 해결되는 게임이라면 메타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가 그렇게나 나오겠는가.

설령 내 몇 마디가 조언이 됐다고 할 지라도 이룬 것은 씨지맥 본인이다.

'잘난 척 떠들어 놓고 정작 내가 이루지 못한다면 체면이 서지 않겠지.'

나 또한 최근에 변화가 있었다.

정확히는 이루려고 했던 목표.

팀과 잘 섞이지를 못하고 있던 로크도그가 마침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그 계기는 팀에서의 포지션 배분이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에 더해 이해자로서 물어본 적이 있다.

이전 팀이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이 무엇이냐.

로크도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원딜이란 포지션, 너무 수동적인 거 아니냐고.

사실 이는 원딜이란 포지션의 한계상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어느 프로게임단이든, 하다 못해 솔랭에서도 원딜러는 수동적이다.

현실로 따지면 이동하는 포대와 비슷한 느낌인 게 원딜러다.

그리고 CLC에서 또한 당연 마찬가지.

원딜러의 숙명과도 같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로크도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맞춤 운영.

솔직히 나 혼자라면 힘들 뻔했다.

생각 이상으로 불만도 많았고 원하는 바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온다.

'일단은 견학부터 오고 싶다고 했었지.'

사안이 사안인만큼 몇 번이고 심사숙고 한다 해도 과하지 않다.

특히나 이곳 CLC의 숙소가 제법 시설이 좋다고는 하지만 본질은 기숙사 생활이나 다를 바가 없다.

아는 사람이라곤 나 하나밖에 없는데 불안해야 정상이다.

'고난이 생기면 고난을 때려패서 헤쳐 나갈 녀석이긴 해도.'

배려라는 건 필요한 법이다.

설령 살쾡이가 아니라 호랑이라 할 지라도.

권유를 한 사람이 나이기때문에 책임감을 느낀다.

정 마음에 안 든다면 붙잡진 않겠지만.

'가능하다면 꼭.'

같이 해나가고 싶다.

단순한 예감에 지나지 않지만서도 왠지 될 것만 같다.

예은과 함께라면 앞으로 두 번의 우승.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다.

'하하, 내가 언제부터 감을 믿었다고.'

그럼에도 그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곧 있으면 예은이 도착한다.

시계를 보아하니 앞으로 10분 이내다.

'성격은 변변찮아도 시간관념은 철저한 녀석이니.'

가끔 보면 기특하게도 먼저 도착해 있을 때도 있다.

정말 성격외 부분에서는 딱히 트집잡을 게 없는데 어쩌다 그렇게 삐뚤어 졌을까.

그만큼 신이 공평하다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녀석이다.

헛생각을 하면서 나는 방에서 몰래 나가 1층을 향했다.

아무래도 정말 사안이 사안이다.

나중에 밝혀질 일이라고는 하지만 오해의 여지가 생기면 곤란하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입 가벼운 프릭에게라도 들키면 더더욱 곤란하다.

때문에 나는 조심조심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그렇게 1층까지 도착하자.

"늦어."

만나기로 약속했던 빌딩 1층의 한 구석에서 예은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와준 건 정말 고맙지만서도.

이렇게 되면 6층 계단에서 내려왔다가 바로 다시 올라가게 생겼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던가?"

신경써 주는 척 속마음을 내비쳐도 말이지.

미안하지만 그건 각하다.

혹시라도 지체했다간 팀원들의 눈에 뗬다간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꼭 계단으로 올라가야 해?"

"내 방 냉장고에 맛있는 거 많으니까 잠깐만 참아."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망설여지는 모양.

이 6층이란 높이가 적당히 애매하게 운동이 되는 높이다.

아파트가 아니라 빌딩인지라 한 층, 한 층의 높이가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밥순이는 역시 밥으로.

먹을 걸로 꼬드기자 투덜투덜 하면서도 나보다 빨리 올라간다.

그렇게 도착한 6층.

비상계단의 문을 여는 순간이 조금 조마조마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별 일없이, 내 방으로 무사 안착할 수 있었다.

"뭐…, 생각보다 꾸리꾸리하진 않네. 살고 있는 놈은 그렇다 치고."

굳이 뒷말을 붙일 필요성이 있을까도 싶지만 어쨌건.

예은과의 이야기를 담판지을 순간이 왔다.

과연 어떤 대답을 준비해 왔는지.

긴장이 안된다면 거짓말이다.

'아무리 예은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말이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욕심이 난다.

어떻게든 이번 롤챔스, 그리고 LCF까지 우승을 차지하고 싶으니까.

예은의 동참 유무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부디 예은이 좋은 대답을 들려주기를.

겉과 속이 다른 나라는 인간은 정말 최악이다.

난 이리도 욕심쟁이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해줄까.."

언제나의 영 언짢아 보이는 표정이 더욱 심각하다.

예은의 이마에 얕게 잡힌 주름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장장 5분이나 나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한 마디 꺼낼까도 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예은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내가 먼저 꺼내오지 않는 게 불만인 모양.

"너 완전 바보지?"

"아니, 갑자기 왜 또?"

갑자기 왜 또 기분이 상하셨을까.

뜬금없이 독설을 내뱉어온다.

들은 순간은 영문이 없었지만 예은이 손등을 어깨 높이까지 올려오자 그제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녀석의 말마따나 정말 내가 바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장장 5분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

어련히 알아채라는 신호였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손톱이.. 짧아졌네.'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찡그리고 있던 표정이 아니었다.

얘가 뭐, 기분 나빠보이는 게 하루이틀인가.

꽤나 적응한 나머지 어느 정도 살필 수 있게 됐는데 오히려 그 점이 맹점으로 작용했다.

장시간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면 긴 손톱이 불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게이머들은 대부분 손톱이 짧다.

굳이 남자, 여자 따질 것 없이 필요에 의해 깎는다.

그런데 예은이 손톱을 깎았다.

그것도 꽤나 바싹.

여성들은 네일샵 같은데도 자주 다닐 정도로 손톱모양에 관심이 많을 텐데 보기 드문 경우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은 또한 손톱이 꽤나 뾰족했다.

기억을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아직까지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으니까.'

내 팔목이 새겨진 '넉 사' 자.

그날 PC방에서의 기억을 까먹었다면 바보천치다.

예은이 나한테 바보라고 한 이유가 이제서야 납득이 간다.

'바보, 맞구만.'

조금 뒤늦었지만 의미를 알았다.

예은의 대답.

확실히 받았다.

"치근덕거리지마 멍청아! 딱히 너 때문에 허락해준 거 아니라고..!"

"고맙다. 정말 고맙다."

어깨 높이까지 올린 손등을 두 손으로 꼭 감싸안자 반항을 해온다.

그래도 딱히 밀쳐낼 생각까진 없는 듯.

억세기만 하던 여느 때와 달리 조금은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언제나처럼 까칠하기 매한가지인 예은의 얼굴도 아주 조금은 풀어진 것만 같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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