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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66화 (26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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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시즌의 서막

시간이 흘러 그날이 왔다.

예은을 우리 CLC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날이.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 된 그날에 나는 할 말이 조금 많아졌다.

팀원들에게 해야 할 설명이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

"내 예전 파트너이자 CLC에 새로 입단하게 된 레베카야. 자~ 박수!"

"야, 레베카는.."

내 옆에선 예은이 쭈뼛쭈뼛 말려오지만 나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처음 L.A에서 예은을 만났을 때의 기억은 둘째 치고 늘 달고 다녔으니까.

호텔 제복에 레베카라는 명찰을 말이다.

그저 사실을 밝혔을 뿐인데 예은이 옆구리를 쿡쿡 찔러온다.

하지만 언제나와 달리 날카롭지가 않다.

심지어 어조까지 가시가 보일랑 말랑 사근사근하다.

CLC의 일원들이 전부 모인 자리이니만큼 조금은 내숭을 떨어야 할 테다.

"안녕하세요. 레베카보단 가능하면 예은 쪽으로 불러주세요. 한국 이름 쪽이 편해서.. 잘, 부탁드려요..?"

핫숏과 만났을 때는 그렇게나 가면을 잘 쓰더니.

울그락불그락 얼굴 빛이 나빠 보이는 게 조금만 방심하면 가면이 벗겨질 수도 있겠다.

그것도 나름대로 기대요소지만 일단 메인은 따로 있다.

인사치레의 박수가 끝나고 질문의 시간이 도래했다.

"뭐야, 농담인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로?"

"난 또 애인인 데려온 줄 알았지. 아, 둘 다인가?"

남자들끼리 모이게 되면 원래 좀 장난기가 심한 감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옆에 있는 애가 폭발하면 난 말릴 자신없는데.

눈치껏 알아서 도화선을 적당히 건드려줬으면 좋겠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를 않는다.

이건 또 이거대로 재미가 있지만.

"휘유~! 사겨라! 사겨라!"

"아하, 그래서 어디까지 갔는데?"

프릭과 라이로가 거세게 몰아붙인다.

이 사람들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되겠지만 일단은 즐기자.

자기 무덤을 자신이 알아서 파겠다는데 말리지야 않겠다.

'그래도 슬슬 적당히 할 때지.'

예은의 반응이 심상찮다.

차라리 확 화를 내면 좋았을 텐데.

남자들의 짓궂은 질문들에 예은은 미소로 화답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해심이 깊어 보이는 저 미소 뒤에 숨은 흉신나찰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소름이 돋는다.

나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꽤나 높은 확률로 오해하고 있을 팀원들을 위해 설명을 개시했다.

최소 두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단.. 서프라이즈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입니다. 정식으로 CLC에 들어온 게 맞아요."

혹시 몰라 두 번 확답을 박는다.

그도 그럴 게 솔직히 갸우뚱한 상황이다.

여성 프로게이머라니.

전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선입견 또한 두텁다.

더군다나 이곳은 그 이름 높은 CLC다.

프로게이머 판에 여성이 참가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전례가 없는데는 이유가 있는 법.

여성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쪽이 아니니까.

예은의 실력은 프로세계에서도 충분히 먹힌다.

하지만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

그럼에도 나는 망설임없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실력적인 부분은 제가 다 걸고 보증합니다."

방금 전까지의 장난스러웠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얼어붙는다.

남자들의 세계.

겉으로 보이지 않는 진중함이 내포돼 있다.

실력이 없다면 언제 나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한 프로들의 세계로 나서는 첫 관문.

우선 팀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예은의 입장에서는 기분 영 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니까.

'제발 부탁이니 그전까지 폭발하지만 말아줘..'

샤방샤방 웃고 있는 예은의 얼굴이 너무나도 무섭다.

평소의 언짢은 표정이 너무나도 그립다.

그리고 이는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있지만 석연치 않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증명이 필요하다.

"일단 한 게임 해보자. 리는 알고 있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잖아?"

"..한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속담이지. 일반교양이야."

나나 리한테나 일반교양이지 미국인들은 당연히 모른다.

그 속뜻에 대해 리가 나지막한 어조로 팀원들에게 설명한다.

딱히 잘난 척이 아니라 순수한 궁금증.

우리가 서양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처럼 미국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확실히 한 게임 해보는 편이 낫겠지..?"

"아가씨가 프로에서 먹힐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봐보자구."

취식실에서 연습실로 자리를 이동한다.

겉으로 다들 티를 내지는 않고 있지만 분위기는 숙연하다.

지금껏 내가 쌓아올린 신뢰가 없었다면 누구 하나 박차고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겠지.

자신들이 고생해서 왔고 유지하고 있는 자리에 얼토당토한 실력으로 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와 친분이 있고 없고를 별개로 예은의 실력을 냉철히 평가할 테다.

코치인 라이로를 포함한 팀 전원이 연습실에 모였다.

단 한 명을 빼놓고.

언제나의 일이기에 놀랍지는 않지만.

"로크도그는 아직이야? 어지간하면 나와주지. 이 샤이한 녀석."

"곧 변화가 있을 것 같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자고."

프릭의 물음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로크도그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이다.

굳이 포지션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본인 자체가 수줍음을 많이 탄다.

방 안에서 나오는 일이 잘 없다.

그렇다고 연습게임을 참가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온라인 회선을 통해서 이어져 있다.

그저 얼굴을 보기가 힘들 뿐.

'시간문제지.'

너무 오래 걸려서야 본말전도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이전에 지금의 상황부터 해결해야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여섯명인데..? 혹시 예비멤버라거나?"

헤일커드의 의문을 듣고 나서야 알아챈 팀원들 몇몇.

로크도그가 방 안에 있었던 데다 여성 프로게이머라는 갑작스러운 상황.

지금껏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로크도그를 포함한 여기에 모인 이는 여섯 명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팀은 다섯.

5:5 팀플레이 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에서 머릿수가 하나 많다.

그러나 어디에서나 예외는 있는 법.

결코 무작정 예은을 꼬드긴 게 아니다.

나의 장점을 내세우기 위해선 식스맨이 필요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식스맨과는 방향성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런 셈이기도 하지만 조금 달라. 다들 내 한국 아이디 기억하지?"

헤일커드를 포함한 팀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온다.

올마스터라니, 가히 광오한 아이디니까.

첫 대면, 스크림에서의 임팩트까지 생각하면 기억하지 못할 수가 없다.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설명이기에 간단하다.

"내가 여러 포지션을 할 수 있게 되면 전략의 폭이 수배는 넓어질 거야."

솔직히 말해 조금 답답했다.

팀의 구색이 갖춰진 후로는 팀랭크 뿐만 아니라 타프로팀들과의 스크림 경기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경기에서도 나는 미드를 해야 했다.

나 말고 달리 미드를 맡아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예은이 온다면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포지션을 교체하는 게 가능하다.

나 정도는 아니지만 예은도 봇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라인을 할 줄 안다.

그것도 수준급으로.

"정말로..?"

"정말, 정말로. 근데 포인트가 어긋난 기분인데.."

프릭이 의문은 당연하다.

한 사람이 세 포지션을 구사하는 건 흔한 경우가 아니니까.

그런데 그 의아한 부분은 포지션 폭이 넓다는 쪽이 아니었다.

"당연히 서포턴 줄 알았는데..?"

"아니, 쟤.. 서포터 절대 못할 걸?"

예은 성격에 서포터라니.

원딜러가 실수를 조금만 하면 머리털을 죄다 뽑아버릴 녀석이다.

더군다나 성향도 맞지가 않다.

그럼에도 오해가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는 흐름.

여성유저들은 대부분 서포터를 선호한다.

RPG게임에서 힐러를 많이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단순한 선입견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미드나 원딜을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정적.

있다고 해도 럭키나 아링, 헤이클린같은 여성챔피언을 위주로 한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고 예외가 이 녀석이다.

'그 징그러운 카지트를 귀엽다고 할 정도니.'

안타까운 취향의 소유자.

지금 내 옆에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딱히 취향이 아니더라도 챔피언을 가리지 않는다.

실력 또한 일품이다.

"일단 몇 판 가볍게 돌려보자고? 순서를 바꿔서 말이야."

첫 판에는 예은을 정글로.

두 번째 판에는 탑으로.

세 번째 판에서는 미드로, 그리고 내가 다른 라인으로.

내가 무엇을 그려내려 하는지 게임을 통해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

.

.

* * *

요 며칠 간의 환상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이전 팀에서의 불화는 어쩌면 지금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을 정도다.

불과 수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던 남자가 책상에 머리를 짓이겼다.

콰앙!

옆방에 사람이 있었다면 깜짝 놀랄 정도의 진동음

왼쪽 뺨의 시퍼런 멍이 가라앉은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남자의 이마에는 비슷한 크기의 혹이 또 생겨버렸다.

남자가 자신을 자학한 이유는 무엇일까.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남자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중얼거린 내용은 남자가 한 행동과 들어맞지를 않았다.

'나는.. 행복하다.'

질투로 머리가 이상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하지만 남자가 느낀 감정은 분노도 시샘도 아니었다.

하나의 안도감.

남자는, 로크도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는데. 참, 운명이란 가혹하네.'

지금껏 단 한 명도 자신을 이해해준 이가 없었다.

인간으로서도, 게이머로서도.,

자신의 실력에 관심을 갖고 접근한 이들은 많았지만 어느샌가 벌어져버렸다.

다시금 사이를 좁힐 수 없을만큼 남남이 되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인생의 단 한 번이 될지 모를 기회가 왔다.

어찌저찌 인연이 닿는 사람들을 만나 프로게이머를 꿈꿀 수 있었다.

팀의 성적 또한 나쁘지 않게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한 건 자신 뿐이었다.

얼마 전 롤드컵에서 우승했던 얼밤이라는 팀.

사실 그 팀의 원딜러는 자신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내쫓고 다른 원딜러를 받아 현재 잘 나가고 있다.

그 충격에 로크도그는 한동안 폐인처럼 지냈다.

믿고 지내던 이들에게 배신당했다.

결과물을 빼앗겼다.

다시는 누구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자신의 마음에 파고든 두 사람.

하나는 첫 사랑.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쩌면 인생의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의 사랑을..'

며칠 전, 친구가 방에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래서야 안되는 걸 알지만서도 순수하게 장난기와 호기심이 일었다.

벽에 귀를 대고 엿들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방은 친구인 시현의 옆이었으니까.

'그녀.. 같았지.'

엿들은 목소리는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비슷했다.

그래도 단순한 우연이겠지

목소리정도야 비슷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오늘을 기해 혹시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신입이 올 거라는 소리는 시현의 입을 통해 들었다.

방 밖으로 두문불출 나가지 않고 있는 로크도그였지만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시현을 제외하더라도 다른 팀원들.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으니까.

오늘을 계기로 같이 어울려 보자는 시현의 말에 혹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기에 정말 큰 마음을 먹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몰래.

막상 가서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 비상계단으로 올라가 엿보았다.

그런데 그 신입이란 사람이.

'그녀라니.'

로크도그는 지체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잡지 못하게 빠르게 방으로 도망갔다.

방 안으로 도망간다고 상황은 바뀌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수분을 고민했다.

이대로 연습이고 뭐고 생까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자.

로크도그는 순간 안 좋을 생각을 한 뻔했다.

하지만 그래서야 안됐다.

'친구를.. 실망시킬 수 없다.'

사실 로크도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란 사실을.

그렇기에 얼밤 내에서도 불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시현은 그러한 사정이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을 신경써줬다.

별 볼 일 없는 자신과 가까워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이 게이머로서도 이상이 맞았다.

그런 시현에게 로크도그는 늘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여자 문제로.

더군다나 첫 눈에 반했다는 얼토당토한 이유로 멀어져서야 쓸까.

정답이 정해져 있는 바보같은 고민이라는 걸 암에도 로크도그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머리를 한 번 식히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로크도그는 책상에 머리를 내리찍었다.

머리를 짓이기고 나서야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응원..해주자.'

친구인 동시에 이해자.

시현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행복하다.

그 이상의 행복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자신의 욕심때문에 친구의 행복을 뺏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결론을 짓자 다른 생각이 들어왔다.

'그런데.. 팀원으로 들어온다는 게 진짜인가..?'

방금 전까지 머리가 회까닥 돌아있었기에 생각하지 못했다.

로크도그는 로드 오브 로드를 꽤나 오랫동안 해왔지만 단 한 번도 수준급 여성게이머를 본 적이 없다.

그런 자신이 모르는 여성게이머라니.

순수하게 흥미가 동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을지 의문 또한 든다.

그렇게 아리송한 기분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연습게임.

로크도그는 단 두 판만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를 엄청나게 오해하고 있었구나.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친구를 응원하기로 마음 먹은 자신의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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