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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시즌의 서막
<내가 살아있는 한, 전부 죽는다!>
패기가 넘치는 네네톤의 선택음은 때때로 플레이어 또한 광폭하게 만든다.
어쩌면 픽을 하기 전부터 살짝 돌아있던 걸 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일단 게임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
"죽여! 저 새끼 죽여!"
"저기, 말 좀 곱게.."
나는 차마 뒷말을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슬며시 살펴본 예은의 얼굴이 반쯤 광기에 절어있다.
내숭이고 나발이고 가릴 게 없으신 모양인데 이제 와서 내가 한 소리 한다고 들으실까.
포기하고 게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군 탑라이너 네네톤.
예은이 플레이하는 네네톤이 탑라인에서 미쳐 날뛰고 있다.
그리고 날뛰는 네네톤을 프릭의 아모모가 벌벌 떨면서 보조하고 있다.
부와아아앙!
아모모가 충성스럽게도 점멸까지 써가며 적팀의 탑라이너, 그리고 정글러까지 묵어버린다.
포탑을 끼고 있는 2:2인지라 당연 조심스러워야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군 탑솔러께서 까라는데 까야지 별 수 있나.
그 문제의 탑솔러, 네네톤이 전광석화처럼 호응한다.
꾸드득!
점멸과 동시에 들어가는 스턴.
네네톤의 W스킬, 참혹한 난도질이 파이어뱃의 목줄을 물어뜯는다.
연이어 터지는 티아매트와 발화, 마무리로 들어가는 천참만륙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혹하고 완벽한 콤보다.
이걸 과연 누가 여성게이머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아군이 당했습니다.
아모모의 희생으로 네네톤이 더블 킬을 먹는데 성공했다.
내가 보기에도 실수가 조금 엿보이지만 그래도 내색은 하지 말아야지.
예은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팀의 정글러 프릭을 쪼아댔다.
"적당히 맞고 빼야지. 머리 안 돌아가!..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할게요.."
그 철딱서니 없는 프릭이 저렇게 저자세로 빌빌 기는 건 처음 본다.
딱히 예은을 편들어주는 건 아니지만 이 녀석이 항상 이러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안 좋았다.
'꽤나... 빡쳤나 보네.'
네네톤을 선픽박았을 때 조금은 생각하고 있어야 했던 결과.
최근 픽률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파이어뱃이 후픽으로 박혔다.
파이어뱃은 그 이름따나 화염방사를 주특기로 삼는 챔피언이다.
뜨거운 불로 지져대는 화염견제는 그야말로 일방적.
갱킹에 약한 대신 라인전 강캐로 이름이 높다.
특히나 네네톤의 카운터픽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렇다고 아예 못해 먹을 정도는 아니다.
특히나 예은의 실력이 상대보다 뛰어났던만큼 라인전의 흐름은 할 만했다.
하지만 그 할만했다는 게 문제.
아예 털리기라도 했으면 입도 뻥끗 못했을 텐데.
숨통이 트여 있으니 짜증으로 연결된 모양이다.
자신보다 실력이 딸리는 상대가 상성빨로 반반을 가고 있다.
예은은 그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던 듯 게임시작 5분이 안되어 가면이 벗겨졌다.
그리고 프릭에게 막말을 쏘아내며 닥치고 탑 오라고 강제했다.
그 후로 두 번, 파이어뱃을 따내서 화가 좀 풀리는가 싶더니.
킬을 맛보자 피를 흠뻑 마신 광전사처럼 머리가 회까닥 돌아가지고 날뛰고 있다.
감히 니따위가 날 불로 지져?
같은 느낌으로 지옥을 맛 보여주고 계신다.
'캐리는.. 니 알아서 하세요.'
그리고 게임이 끝난 후의 상황도 니 알아서 하세요.
나는 모든 것을 달관하고 내려놓았다.
첫인상은 제대로 모가 나긴 했지만 어쩌면 그 편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어설프게 얕보이는 것보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휘어잡는 편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미쳐 날뛰는 네네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두 번째 게임.
간만에 운전사가 아닌 승객으로서 버스를 타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부디 그 혈기.
잊지 않고 롤챔스에서도 활약해 주셨으면 한다.
.
.
.
*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약칭 롤챔스.
얼마 전 한국에서 열린 롤챔스 예선전의 여파로 인해 잉벤은 난리가 났다.
바로 그 올마스터!
때문이 아니라 이번엔 다른 선수다.
하지만 올마스터와 관계가 없단 소리는 하지 않았다.
─씨지맥.. 졸라 멋있다….
LCL에서는 그냥저냥 눈에 안 띄는 평범한 탑솔러 같았는데..
예선전 게임에서 정말 반해버렸다.
같은 탑솔러로서 존경심이 진짜 확 끓어 넘치는 게..
앞으로 난 씨지맥 빠돌이 한다.
└난 LCL에서도 좋게 봤는데. 잘하지 않았음?
└LCL에서도 말카림, 우콩으로 활약 괜찮았지. 근데 아군이 올마스터ㅈㅈ요
└아군이 올마스터ㅋㅋㅋㅋㅋ 뒤늦게라도 빛봐서 다행이다.
└삼선 블루는 대박났어. 신인 발굴 제대로 로또 맞았다.
씨지맥 관련해서 올라온 글 하나만 봐도 사이즈가 나온다.
그 정도로 예선전에서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단순히 캐리력만 봐도 군계일학.
더더욱이 다른 라인이 아닌 탑솔러라는 부분이 그를 일약스타로 떠오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탑이 원래 캐리력이 있던 라인이던가?
난 탑으로 막 솔킬 세 번씩 따고 로밍가도 캐리가 안되던데.
솔랭도 아니고 대회에서 저렇게 캐리하는 게 가능하나?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 씨지맥이 넘사벽인 거지?
└그거 대답 정해져 있는 거 같은데.. 둘 다요.
└님도 못하는데 씨지맥이 잘하기도 함.
└딜미터기 터지겠다ㅋㅋㅋ 근데 씨지맥이 한 말카림이라는 챔프 덕도 있지 않을까?
선수가 잘한 게 아니라 챔프빨이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카림이라는 챔프 덕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씨지맥은 마진 수비대를 제외한 다른 팀들과의 경기에선 스무스한 챔피언들을 꺼냈었다.
콜라곰이라든지 싱나드라든지.
주류는 아니지만 무난무난한 탱커류 챔피언들로 딱 1인분만 했다.
어째서 였을까?
─말카림 나중에 꺼낸 이유는 간단하지.
원래 비장의 카드는 아껴두는 거 인정?
마진 수비대 격파용으로 묵혀뒀던 거 인정?
추측 지리고요~ 지렸다고 생각하면 추천ㄱㄱ
└응 똑같은 말 대회 당일에도 열댓 번은 올라옴
└평소에 생각 좀 하고 사세요..
└틀린 말은 아닌데.. 비장의 카드를 벌써부터 꺼내야 했을까..?
그 비장의 카드, 말카림과 씨지맥의 눈부신 활약 덕에 삼선 블루는 예선전 1위로서 본선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1위로 올라갈 이유가 있었을까?
사실 한 번 져서 2위나 3위가 됐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다.
고작 예선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비장의 카드를 소비했다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막말로 코치가 있기나 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멍청한 행위다.
─삼선 블루 2군이라고 신경 안 써주나보네.
삼선 겁나 실망이다ㅉㅉ 인재보는 눈이 없네.
정신머리 있으면 지금이라도 씨지맥은 레드 쪽으로 빼줘라.
└맞말 ㅇㅈ합니다.
└그럼 나머지 선수들은 어쩌고? 작성자 진짜 못됐네.
└인성하고는.. 근데 안타깝긴 하다. 예선전에서 쓸 카드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한 가지 확실한 것.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그 본선무대에서 씨지맥은 저격의 대상이다.
본선에서 삼선 블루를 상대하게 될 팀들은 분명 말카림부터 죽일 것이다.
말카림은 비주류 챔프.
뺏어오는 것보단 밴을 먹여 변수를 미연에 차단하는 게 옳다.
그렇게 되면 삼선 블루로선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어쩌면 예선전에서 잡아낸 마진 수비대보다 안 좋은 성적으로 본선을 끝마칠 지도 모른다.
만약 그러한 결과가 나버린다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었을까..?
2군, 2군 해도 마진 수비대나 삼선 블루는 꽤 잘나가는 선수들 많잖아.
한두 푼으로 스카웃한 게 아니니 전략이 또 있지 않을까..?
씨지맥말고도 주목할만한 에이스 분명 있어 보이는데..
└그러게. 상대팀이 씨지맥을 저격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라인이 사니까.
└크~! 전략적인 분석은 화제글로 가버렷!
└그렇다고 씨지맥을 버림패로 활용하는 건 좀..
└그래도 혹시…. 설마지만 말카림에 준하는 카드가 또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을 살다보면 설마라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듣는다.
그런데 그 설마라는 놈은 사람을 참 잘 잡는다.
마지막 댓글을 단 사람의 말마따나 어쩌면 말카림에 준하는 카드를 보여 줄지도 모른다.
혹은 그 이상의 카드를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아직은 희망적인 관측에 불과한 일이었다.
.
.
.
* * *
예은이 대판 난리를 치신 연습게임.
연습게임의 결과는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겼다.
딱히 우리팀원들이 예은의 실력에 대해 떨떠름한 점이 남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주전 멤버로 뛸 기량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받았다.
없던 문제가 생겨버렸다는 게 문제지.
"하아…."
내 침대에 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한숨을 내뱉어 오는 처자.
낯빛이 파리해진 예은이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꼼짝을 안 한다.
이제 좀 자기 방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예은 누님, 슬슬 댁으로 좀 돌아가시죠?"
"차라리 죽여줘.."
강렬한 카리스마가 만들어버린 잔혹사.
네네톤으로 학살을 자행한 게임이 끝난 이후로 예은에겐 누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굳이 따지면 호칭쪽이겠지만 이 경우 별명에 가깝다.
예은은 팀내에서도 연령이 어린 축에 속하니까 말이다.
"뭐, 괜찮잖아. 얕보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니 성격에 언젠가 한 번은 일냈을 텐데."
"윽..! 부정은, 안하겠지만 그래도오…."
예은이 조금은 불쌍해진 얼굴로 주저리주저리 아쉬움을 토로해온다.
첫 인상이 완전히 구겨졌다면서.
이대로 여기에 있다간 흑역사만 덧씌워질 거라는 둥.
옆에서 듣고 있어주는 것도 꽤나 고역이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언젠가 이 꼴이 날 줄 알았다.
아무리 두텁게 얼굴을 가려도 가면은 가면, 벗겨지기 마련이니까.
물론 이렇게나 빨리 본색을 드러낼 거라곤 예상 못했지만!
"솔직히 탑하다 보면 누구나 가아끔 회까닥 하는 거 맞지?"
"그래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여자입에서 모자이크 처리할 말이 쏟아져 나온다고는 잘 상상하지 않는다.
현실이 어쨌든 적어도 남자들은 만국공통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환상을 보기 좋게 깨트려 주셨으니 누님하셔야지 별 수 있나.
일단은 멘탈을 위해서 추가타는 넣지 않았지만 언제쯤 회복을 하실까.
예은이 내 방에 와서 공기를 무겁에 늘어뜨린지 10분이 지났다.
이대로 딱 20분만 지켜봐 주다가 여섯 시 정각에 내쫓아야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기운을 차리는데는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깊게 생각하는 건 그만두기로 하신 듯.
방금 전까지의 침울한 표정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평소의 예은이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로 돌아오자마자 역시나 식욕 또한 되찾으신 듯했다.
"그런데 여기, 밥은 어디서 먹어?"
"2층에 있는 공용 식당. 하지만 거기 가면 만날 텐데?"
현재 시각은 여섯 시가 되기 조금 전이다.
더군다나 팀단위의 연습이 끝난지 오래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다음 흐름은 식사.
식당에 내려가면 높은 확률로 CLC의 팀원들을 마주치게 될 테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예은이 또다시 한숨을 푹 쉬어온다.
그러게 평소부터 분노조절 좀 연습하고 살지.
소 잃고 외양간 고쳐서야 어디 쓸까.
그래도 한 번 정도야 어리광을 들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하면 팀원들끼리 같이 먹는 게 좋은데.. 오늘만이다?"
"제발, 부탁 좀 할게.."
사실 이 녀석 사정이 아니더라도 나가서 먹을 생각이었다.
일단 오늘은 조금 거리를 두는 게 서로서로 좋아 보이니까.
선량한 우리 팀원들이 식사하다 무서운 누님 만나서 체하기라도 하면 책임질 건가?
팀이니만큼 친목도모가 최우선이라곤 해도 내가 CLC내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만큼 천천히 가도 될 듯하다.
약간의 사고가 동반되긴 했지만 어쨌든.
오늘로서 드디어 예은이 CLC에 합류하게 되었다.
예은의 합류는 첫 등장의 임팩트만큼이나 의미가 크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의 가짓수.
그야말로 무궁무진해졌다.
올마스터라는 넉 자가 단순한 간판도.
더욱이 과장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증명을 다가오는 윈터시즌의 롤챔스에서 해내기 이전에.
'실전에서 써먹어 봐야겠지.'
까놓고 말해 지금까지의 연습은 조금 지지부진했다.
게을렀다는 것도, 성과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지만 썩 눈에 차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바캉스를 떠난 핫숏이 돌아오기 전에 결판을 낸다.
CLC 2군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 작품 후기 ============================
프로게이머 소설에 왜 현실 프로게이머 혹은 인물의 이름로 유추가 가능한 등장인물이 나오냐.
여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독자님들이 계십니다.
혹은 쓰는 게 양심이 없다고까지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이미 99.9%의 프로게이머 소설에서는 차용이 된 부분입니다..
이는 본 작품도 마찬가지에요.
결정적으로 현실의 인물을 소설내에서 써도 돼요.
이름을 똑같이 쓰거나, 해당 인물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지 않는 한 허용이 됩니다.
허용이 되기 때문에 상당수 작품에서 사용한 거에요.
굳이 프로게이머 소설이 아니더라도 현대판타지 소설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부디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오해가 생겼을 때 작가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요.
의도와 달리 곡해하여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무섭습니다.
어떻게 해명을 하려고 해도 더욱 더 오해가 깊어지면 어떡할까 두려워요.
그 분들께서 부디 다른 프로게이머 소설들을 한 번 봐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다른데 안 가셔도 조아라 노블에 근 400편짜리 AOS 소설 포함해서 몇 개 있습니다..
만약 보셨다면 오해가 생길 수 없는 부분이에요..
10화 이전에 달리는 오해 댓글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며 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최신화까지 봐주시는 독자님들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저는 정말 상처를 입습니다.
그러한 댓글들이 달리면 저도 힘들지만 작품 즐기시는 독자님들 보시기에도 불편해요.
굳이 이야기를 꺼내도 유익한 방향으로 진행할 수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안 달렸으면 좋겠어요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