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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시즌의 서막
"..지금 뭐라고? 제정신이야?"
팀독나타스의 원딜러.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싼티나는 고개를 갸우뚱, 아니 멱살을 틀어잡았다.
팀의 주장, 루베리의 멱살을.
"우리 원딜러님 요즘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니..?"
"내가 진짜 주장만 아니면 확!"
싼티나가 화를 낼 만도 하다.
최근 팀독나타스가 치뤘던 대회.
로드 오브 로드 월드 챔피언 컵, 약칭 롤드컵에서 독나타스는 본선에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전부는 아니여도 상당 부분이 주장 녀석 때문.
더욱이 얄미운 건 정작 루베리는 대회에서 잘 했다는 거다.
"우리가 너 때문에 얼마나 연습 시간을 뺏겼는지 기억 나지..?"
"하하, 잘 알고 있지. 몇 번이나 사죄했잖아? 미안해, 정말."
너스레를 떠는 루베리를 보며 싼티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있을까.
롤드컵 예선전의 전날에 루베리는 무슨 Unknown Error를 찾아보겠다며 대회장을 들쑤시고 다녔다.
덕분에 독나타스는 팀단위의 연습을 반나절이나 공쳐야 했다.
심지어 그 결과는.
"결국 아무것도 안 나왔지?"
"아무것도는 아닌데.. 일단은 좀 놔줘?"
질기딘 질긴 악연의 친구이자 팀의 주장, 루베리의 멱살을 놓으며 싼티나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물론 멱살을 잡는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시늉이다.
어지간히 친해도 해서는 안될 행위인 것도 맞지만 그만큼이나 상황이 상황이다.
한 마디 내뱉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렸다.
아무리 지난 롤드컵에서 사고를 쳤다고 한들 주장이다.
능력 또한 없다고 하긴 뭣하다.
멱살까지 잡을만큼의 앙금이 싼티나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또 사고를 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CLC 2군과는 왜 스크림을 잡은 거야? 안 그래도 이번 롤챔스에서 팀이미지 복구하기 뭐 빠지게 생겼는데. 심각성을 알아, 몰라?"
CLC의 1군도 아니고 2군이라니.
2군팀의 스크림 상대나 해줄 정도로 현재 독나타스의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그런데 팀의 주장이 막무가내로 스크림 경기를 잡아왔다.
이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싼티나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잠깐,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이번 윈터시즌엔 CLC의 2군이 나간다고..?"
"그렇다고 팀의 수준이 변하는 건 아니잖아? 당장 취소해."
CLC 1군은 이번 롤드컵까지 꽤나 오랫동안 현역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쌓이고 쌓인 피로.
조금 긴 휴가를 가지겠다며 윈터시즌을 한 타임 휴식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대회인 LCF는 뛰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간에 이번 롤챔스 윈터시즌은 CLC 2군이 대신 참가하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결국은 2군이다.
스크림을 빼라는 싼티나의 말은 옳고 또 옳다.
"아니.. 체면이 있지."
"여기서 체면 한 번 구겨져 볼래?"
싼티나의 협박조에 루베리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절대 안 해.
차마 입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루베리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번에 2군이 반쯤 갈아 엎어졌다 하더라고. 한 번 정도야 시간 할애해볼 만하지 않아?"
"아니, 전혀."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싼티나.
루베리는 비굴할 정도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로 할 말이 산더미 같지만 서도, 싼티나를 포함한 팀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가 맞았으니까.
더욱이 한 번 잡은 스크림을 취소하는 건 크나큰 결례였다.
"야, 솔직히 Unknown Error도 있다는데.. 좀 하자?"
"하자? 맞자? 맞을래? 하아.. 됐다. 니가 말린다고 들을 놈도 아니고."
루베리가 계속해서 뻐팅기자 싼티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설득을 당했다기보단 포기했다.
자신의 주장이 Unknown Error를 얼마나 집착하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이전 롤드컵때처럼 사고를 치기 전에 허락해주자고 싼티나는 마음을 내렸다.
.
.
.
* * *
'스크림이라….'
한국의 아마추어 대회, LCL을 준비할 때도 엄청나게 해댔다.
당연한 소리지만 연습생 생활을 할 때도 온갖 팀들과 맞붙어봤다.
하지만 이번 스크림은 의미가 다르다.
'독나타스니까.'
독나타스는 인기도 실질적인 실력도 북미에서 세 손가락에 들 정도다.
솔직히 말해 첫 번째나 두 번째 손가락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세 번째다.
전세계적으로 따져도 기량이 높은 팀.
'조금 더 연습을 하고 신청할 걸 그랬나.'
후회가 이는 부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
더군다나 스크림을 신청한 사람도 나다.
'이용할 건 이용해 먹어야지.'
독나타스의 주장, 루베리가 나한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는 눈치를 채고 말고의 이야기가 아니다.
게임상에서 친구추가를 걸어 이야기를 나눴을 때 대놓고 던져왔다.
만약 CLC를 나갈 일이 생기면, 혹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자신들 팀으로 오지 않겠느냐.
일단은 완전한 부정의 의사를 내비치진 못했다.
독나타스와 스크림을 잡아야 하니까 말이다.
'언제까지나 하위팀들을 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스크림에서 독나타스를 상대로 좋은 실력을 뽐내면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만약 잘 나가는 팀과 한 번 연습경기를 잡고 싶다.
그 뿐이라면 왜 굳이 아쉬운 상황을 만들었겠는가.
1군은 1군과 연습하고.
2군은 2군과 연습한다.
예외의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왜? 팀의 질이 다르니까.
1군이 2군을 상대한다.
2군이야 배울 게 많겠지만 1군은 까놓고 말해 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이길 텐데.
떼돈을 받지 않고서야 하지 않는다.
롤챔스 대비기간처럼 눈코뜰새없이 바쁠 때는 돈이 있어도 연습팀을 구하기 힘들다.
때문에 2군은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너희와 게임할 자격이 된다.
이 자격요건만 만족한다면 호기심이 일어서라도 하게 돼있다.
스크림은 롤챔스의 축소판이기도 하기 때문.
당연한 소리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닐 뿐이지 프로팀 대 프로팀이 맞부딪히는 자리니까.
어느 팀이 어느 팀을 이겼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소문 다 퍼진다.
실제로 대회의 해설진들이 어느 팀이 최근 강세다, 혹은 약세가 예상된다.
이야기를 꺼낼 때 스크림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해설진들은 의외로 발이 넓어서 다 알고 있다.
어쨌거나 우리가 독나타스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이는 증명한다.
2군이라고는 하지만 1군 못지 않은 기량을 갖추고 있다고.
스크림을 할 가치가 있는 팀이라고 말이다.
'딱히 독나타스에 들어간다 확답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냥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려 했다.
숙고를 해보겠다, 여건이 되면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성의가 없는 인사치레.
그런데 루베리가 만족해버렸다.
<생각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을 해주라고.>
내 입장에서야 좋은 상황이지만 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걸까.
생각 이상으로 그는 나라는 사람을 좋게 보는 듯한 인상이 들었다.
'어쩌면 그걸 노린 걸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당장의 일부터 생각하자.
독나타스와 스크림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이 사실을 코치인 라이로에게 전하자 신기방기.
대체 어떻게 잡았냐고.
자신 또한 수소문을 해봤지만 힘들었는데.
나는 솔직하게 토로하기로 했다.
'어차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을 테니까..'
어설프게 숨기는 것은 하지 안 하니만 못하다.
이야기를 꺼내두는 편이 낫다.
어차피 프로게이머판에서 이적 이야기는 흔한 편이니까.
나의 말에 라이로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계약기간이야 충분 남아있는데다.
만약 정말로 옮기고 싶었다면 애초에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으리라.
더욱이 그간의 합숙생활로 꽤나 친숙해졌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앞으로 이틀인가.'
하지만 스크림 날짜를 당장 잡는 것은 힘들었다.
그쪽도 당연 스케줄이 있으니까.
이 정도도 꽤나 당겨준 거라고 한다.
이 이틀간에 연습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기량부분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지도 감을 잡았지만 한 가지.
팀원들 간의 호흡의 미세조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심전심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봐야 앞으로 조금이다.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척척 이루어져 나가고 있다.
이틀이면 그럭저럭 만족할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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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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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은 다가오고 있는 윈터시즌의 롤챔스로 인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럴 만도 하다.
시즌3, 정확히는 프리시즌을 들어 로드 오브 로드의 유저 수가 급증했기 때문.
새로이 시작한 유저들에게 있어 윈터시즌의 롤챔스가 첫 대회다.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후우…. 걱정이네.'
기대를 받는 만큼이나 선수들의 어깨 또한 무거울 수밖에 없다.
기존에 활약하던 선수들은 더더욱이 그렇겠지만 신인들도 마찬가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꿰차고 있는 씨지맥으로서는 걱정이 천근만근이다.
'팀의 기세때문이라도 필요했던 일이야.'
예선전에서의 하드캐리.
비단 그 마진 수비대를 꺾어 팀의 위용을 드높이기 위함이 아니었다.
로드 오브 로드는 팀게임.
팀의 기세 또한 중요하다.
최근에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은 다음 게임에서도 자신들 기량 이상을 발휘하기 편하다.
이는 군대로 따지면 사기와도 비슷하다.
역사적인 전투에서 숫자가 더 많음에도 사기에서 밀려 패배했다.
라는 내용은 책을 보다 보면 심심찮게 나오지 않는가.
팀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 또한 팀의 사기가 앞으로 진행될 대회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예선전에서 짓밟혀 버리면 본선무대에서 과연 할 맛이 날까.
그렇기에 씨지맥은 말카림을 꺼냈다.
자신의 비장의 카드.
그 중 하나인 말카림을 부분적으로 소비했다.
'진짜는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다.'
팀내 감독과 코치진들과도 이야기가 오간 부분.
더욱이 씨지맥은 그런 지인들에게조차 비밀로 한 카드들이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실력의 3할은 감추어야 한다라.'
씨지맥은 최근에도 올마스터에게 상담을 받곤 한다.
그 올마스터와 통화를 했을 때 장난조로 오고 간 이야기가 바로 그 3할이다.
현재 프로게임단에서 몸을 맡기고 있는 씨지맥에게는 더없이 와닿았다.
이곳 프로의 세계는 그만큼이나 냉정하니까.
스크림 경기에서 대활약한 선수들이, 음지에서 주목받던 이들이 양지인 대회에 나가 꺾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대공포증이라던지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
자신들이 가진 특유의 색이 미연에 분석당했기 때문이 크다.
심지어 이는 아는 사람들조차 완전히 믿어서는 안된다.
올마스터는 씨지맥에게 그리 말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야.'
처음 들었을 땐 설마했다.
설마 같은 팀 내에서 그렇고 그런 일이 생길까.
하지만 정말이었다.
특히나 자신들 2군 선수들에겐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1군 선수들이 더욱 좋은 성적을 내게 만들기 위해.
2군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공공연한 헛소문이라 치부했던 일이지만 프로의 세계에 속하게 되자 알게 모르게 들려온다.
그 말을 단순히 인터넷 게시판에서 봤을 때와, 아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는 느낌이 전혀 다른 법이었다.
자신이 속한 삼선 블루는 2군이 아니라 형제팀.
그렇다 하더라도 맏이인 레드팀에 비해 손색이 있다.
실질적인 팀내에서의 대우도 은근하게 차이가 느껴진다.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더더욱이 비장의 카드를 다수 보유한 씨지맥으로선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이었다.
올마스터의 조언은 하나하나가 살이 되고 피가 됐다.
'이제 곧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을 수는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연습을 해야 하니까.
아무리 좋은 카드라 할 지라도 팀원들의 호응이 전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제 기량을 백분 발휘하기 힘들다.
연습 게임에서 내비쳐야 한다.
'전부가 아닌 일부만.'
이를 테면 말카림.
자신이 예선전에서 보여준 말카림은 전부가 아니다.
말카림이라는 챔프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았다.
씨지맥이 올마스터에게 배운 가장 큰 가르침 중 하나.
바로 챔프별로 달라지는 운용법에 있었다.
말카림같은 경우 체력관리가 용이하고 기동성이 좋다는 장점을 활용해 정글을 빼먹었다.
그 빼먹은 정글몹은 레벨링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보면 적정글을 말리는데다 자신이 미쳐 날뛸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그리고 말카림뿐만 아니라 다른 챔프들도 비슷한 운용법이 있다는 사실.
'나 혼자서도 충분 깨우칠 수 있었어.'
옛말에 신동은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친다고 했나.
씨지맥은 자신이 그 정도로 기량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배워낸다.
배웠던 운용법을 달리해 다른 챔피언들에게 접목시켰다.
다가오고 있는 한국의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롤챔스의 본선에 진출하게 된 씨지맥은 각오를 다잡았다.
자신을 위해서도, 자신에게 도움을 준 올마스터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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