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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75화 (27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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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눈은 L.A보다 빠르다

사실 프로의 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대회무대의 축소판이라 부를 수 있는 스크림.

스크림에서는 제한적인 카드를 꺼내고 대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숨기고 상대의 대처는 미진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이른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당장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냉혹한 세계.

프로의 길에서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어느 누가 훗날을 기약할까.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씨지맥은 참으로 축복받았다.

'정말로 기연이었어.'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조차 든다.

올마스터를 만난 것.

그를 믿었던 것.

LCL에 가자고 그를 꼬드겼던 것.

어느 하나의 단추라도 잘못 꿰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으리라.

씨지맥으로선 매일매일이 감사한 하루였다.

이윽고 첫 번째 열매를 수확할 날이 왔다.

'드디어 보여줄 날이 왔다.'

말카림을 어째서 사용했냐고.

씨지맥은 잉벤을 포함한 몇몇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보았다.

화살의 방향은 코치진을 향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그 비난글들을 보고 씨지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는 게 포인트.

'이 석장의 카드가 나를 상징하게 되리라.'

조금, 아니 상당히 오글거리는 중얼거림.

하지만 씨지맥으로서는 석장의 카드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곧 그리 될 거란 자신 또한 있었다.

씨지맥은 아직 치르지도 않은 결승전을 기대하고 있을 정도였다.

대회게임을 보다 보면 가끔 모든 밴카드를 사용해 선수 한 명을 견제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는 그만큼이나 해당 선수를 경계한다는 것을 의미.

그 선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씨지맥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장의 카드.

세 장의 카드를 활용해 결승전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당연 적팀은 자신을 주목할 것이다.

상대팀과 관중들.

심지어 한국의 모든 로드 오브 로드 팬들이 자신만을 바라본다.

가히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적어도 이미 씨지맥의 망상 속에선 우승을 열댓 번은 마쳤다.

"맥아, 너만 믿는다."

삼선 블루의 코치, 이백의 목소리가 씨지맥의 귀에 들렸다.

그리고 어깨를 주물러주는 듯한 통각 또한 느껴졌다.

그만큼이나 현재 삼선 블루에서 씨지맥은 기대받고 있다.

달콤한 망상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서라도 씨지맥은 잠에서 깨야 했다.

감고 있던 눈을 뜬 씨지맥의 눈앞에 펼쳐진 건 경기장.

그것도 대회 무대의 선수석 내부였다.

정신을 맑게 일깨운 씨지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코치님 너무 긴장하셨네."

"우리맥아~! 믿는다. 정말로."

지난 예선전 이후로 씨지맥은 삼선 블루의 주장이 되었다.

그 전부터 원래 주장의 역할이긴 했지만 거의 간판 수준.

단순히 나이로 매겨진 지위였다.

아무래도 반쯤은 오합지졸에 불과한 신생팀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지.'

현재 삼선 블루는 자신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

탑캐리 메타를 선도하는 그 중심적인 팀.

씨지맥이 가장 플레이하기 편한 팀으로 변모되었다.

이전보다 훨씬 안정감있고 막강해졌음은 물론이다.

"맥아 다른 건 원하지도 않는다. 제발 한 판만 따보자.."

"코치님.. 그건 너무 시작부터 김빼는 얘기 같은데요.."

재수없는 이야기부터 꺼내서야 될 일도 안되는 법인데.

코치라는 사람이 참 철딱서니가 없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불안의 목소리는 나올 만도 했다.

현재 치뤄지고 있는 롤챔스의 본선.

총 열두 개의 팀은 네 개의 조로 갈라섰다.

A조부터 D조까지.

그런데 삼선 블루는 조금 뽑기운이 안 좋았다.

"우리가 속한 B조에 속한 상대들 전부 강팀들인 거 알지..? 탈락만 면하자 탈락만."

"알고 있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십쇼."

삼선 블루가 속한 B조.

B조에는 무려 불밤과 가짜에어 독수리가 포함돼 있다.

두 팀은 지난 시즌부터 활약한 명실상부 한국 롤챔스의 강팀이다.

불밤은 설명이 필요없는 우승후보.

극후반 운영을 장기로 삼는 가짜에어 독수리 또한 그에 준한다.

자신들 삼선 블루까지 포함해 세 개의 팀이 속한 B조에선 한 팀만이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두 팀은 8강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대진표만 딱 보면 탈락할 사이즈.

탈락하게 되면 강등전으로 떨어짐은 물론, 그 강등전조차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팀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

코치가 불안에 떠는 것도 이해는 가는 일이지만.

'절대 지지 않는다.'

우승을 목표로 하는 자신이다.

그런데 고작 본선 첫 경기에서 패배해서 쓸까.

더욱이 첫 번째 경기 상대인 불밤을 어떻게 잡을지는 이미 구상을 마쳐 놨다.

팀내에서 수십차례 연습을 거듭했다.

하지만 현실로 옮기지 못해서야 허접한 망상으로 끝날 뿐이다.

곧 시작되는 롤챔스 본선무대의 첫 게임.

씨지맥은 각오를 다잡고 경기에 임했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솔로랭크에서야 지겹도록 들은 목소리다.

롤챔스 무대에서는 이번으로 다섯 번째.

예선전에서 네 번을 들었고 본선에서는 이제 처음이었다.

"애들아, 나만 믿고 전부 따라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먹서먹했던 삼선 블루의 팀원들.

이제는 씨지맥이라는 믿음직한 주장 아래 하나로 모였다.

신생팀이라곤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기상.

윈터시즌의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는 불밤과 격돌한다.

.

.

.

* * *

<강빈 해설은 이번 두 팀의 경기를 어떻게 예상하고 있나요?>

전범준 캐스터의 물음에 강빈 해설위원은 순간 얼타버렸다.

그도 그럴 게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오는 흔하지가 않으니까.

익살스러운 장난이라는 게 강빈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아.. 예, 아무래도 저는 탑라인이 이번 게임의 열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오, 강빈 해설은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요?>

사실 전범준 캐스터가 이러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관중들이 딱히 주목해서 볼 게 없을 때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야 하니까.

해설자를 쪼아대는 짬처린 정말로 늘상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김은준 해설자만 쪼아댄다.

굳이 전범준 캐스터의 속마음까지 가지 않더라도 김은준 해설자가 강빈 해설자보다 고평가를 받으니 당연한 노릇.

이는 롤 커뮤니티 사이트들에만 가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강빈 또 얼어붙음ㅋㅋㅋ

조냐잼ㅋㅋ

└강빈 또 얼탔냐?

└너무 까지마라ㅋㅋㅋ 얼탈 수도 있지.

└근데 해설자가 저러는 건 문제가 있어.

로드 오브 로드에 존재하는 주문력 아이템 조냐의 물시계.

그 효과는 2.5초 동안 챔피언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지만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 황금 동상으로 만든다.

롤챔스 해설을 보다 보면 강빈이 종종 말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범준 캐스터와 김은준 해설자만 떠들고 강빈은 멍 때리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강빈이 조냐의 물시계를 사용했다.

그렇게 폄하하며 종종 비웃음의 대상으로 만들곤 했다.

<삼선 블루에서 씨지맥 선수가 주목받는 것도 맞지만 불밤 또한 탑이 뒤지지가 않잖아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됩니다.>

<아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달리 준비해오신 건..?>

전범준 캐스터가 오늘 김은준 대신 강빈을 쪼아대는 그러한 뒷사정도 있었다.

언제까지나 강조냐라며 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뭐라도 한 마디 계속해서 내뱉어야, 그리고 내뱉을 수 있어야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겠냐 하는 걱정에서 비롯됐다.

짬처리도 덤하면 좋고 말이다.

<아, 그러니까.. 제가 보기엔 씨지맥 선수가 무언가 특이한 챔프를 준비해오지 않았을까.. 하는데요?>

<혹시 알고 계신 바가 있으신지요?>

답답해지는 대화의 흐름.

하지만 마른 걸레를 짜내고 물방울이 떨어질까.

강조냐를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해설이 영 익숙하지 않은 강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을 원하다니.

이렇게 능력 이상의 일을 바라다 보면 간혹 실수가 생긴다.

떠올린 말이 여과없이 입에서 내뱉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으레 그러했다.

<에, 최근에 출시된 거미여왕같은 챔피언도 나올 법할까 싶은데요.>

<거미여왕! 바로 얼마 전에 출시된 신챔프죠. 정말 재밌는 부분을 짚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쓰는 선수가 있었던가요?>

거미여왕은 출시된지 채 열흘이 안된 신규 챔피언이다.

그런만큼 제대로 분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왔던 챔피언들과는 상이한 스킬구조.

그나마 비슷한 챔프가 미달리지만, 거미여왕은 미달리와 운용법이 전혀 달랐다.

현재 시점에서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아무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솔랭에서조차 보기 드문 거미여왕이 롤챔스에서 나오다니.

아무리 세상에 설마가 존재한다지만 틀림없다.

강빈 해설은 당황한 나머지 실수를 저질렀다.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 있기만 하던 김은준 해설이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 거미여왕은 프로 탑라이너들 중에서는 사용하는 선수가.. 뭐, 씨지맥 선수라면 또 모르는 것도 사실이죠.>

적당한 디스와 적당한 맞장구.

강빈의 발언을 커버함과 동시에 대비책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기대감을 부풀려 놓으면 수습이 안되니까 말이다.

김은준 해설의 말에 강빈은 무어라 말을 이으려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타이밍이 맞물렸다.

<바로 지금 양 팀의 밴픽! 시작됩니다.>

익숙하디 익숙한 롤챔스의 밴픽음.

각 팀에 다섯 명.

총 열 명의 선수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밴픽만으로 승부가 정해진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치열하다.

불밤이 대놓고 밴카드를 하나 소비하자 전범준 캐스터 큰 목소리로 호응했다.

<말카림~~!! 밴됐습니다. 씨지맥 선수 시작부터 불안불안 한데요..!>

지난 예선전에서 크게 활약했던 씨지맥의 말카림.

다시 한 번 대회무대에서 보고 싶은 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올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예정된 수순이다.

씨지맥이 무서워서라기 보단 예상치 못한 변수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

강팀인 불밤의 입장에선 그냥 평범하게 맞붙기만 해도 이길 거란 자신이 있다.

그리고 이는 솔로랭크에서 유명한 장인 유저들이 대회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애초에 변수가 될 카드를 밴하고 시작하면 문제될 게 없어지니까.

시작부터 삼선 블루에서 가장 자신있을 카드가 이렇게 봉인이 됐다.

이로써 불밤의 승리확률은 이견이 없을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그만큼 관중석의 분위기는 식게 되었다.

승부가 정해진 경기라니, 이걸 시간내서 볼 가치가 있을까.

해설진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떠벌떠벌 떠들었다.

<이렇게 되면 이전에 보여줬던 콜라곰이라던지, 나오지 않을까요?>

<김은준 해설 말씀이 일반적인 선택이죠. 근데 강빈해설 말마따나 거미여왕도 나와도 재밌을 거 같습니다. 허허!>

어디까지나 그냥 하는 소리다.

있을 수 없는 경우라 할 지라도 시청자들 입장에선 흥미가 이는 이야기니까.

이야기를 꺼냈던 강빈 해설이 무안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다.

설마 거미여왕이 나올 리도 없고, 한 마디 꺼내는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을 터.

그런데 그 설마라는 것.

가끔 가다 사람을 잡는다고 한다.

더욱이 씨지맥은 올마스터만큼은 아니여도 비주류 챔피언의 장인.

그렇고 그런 챔피언들만 선택할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설마..?>

김은준 해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직 픽을 박은 건 아니라지만 씨지맥이 거미여왕을 택했다.

해설 소리가 설마 선수들이 있는 부스까지 들리지는 않았을 테고.

혹시 팬서비스 차원이 아닐까 순간 생각했지만.

<거미여왕! 픽 박혔어요! 오늘은 강빈 해설이 갓빈이 되는 날 같습니다!>

전범준 캐스터는 흥해버리는 관중석의 환호에 발맞춰 소리를 내질렀다.

그동안 무시받던 직장동료.

강빈이 한 건 해냈으니만큼 띄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직까지 입을 벌리고 있는 김은준 해설로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기를 끌기 위해 너무 막 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과연 어떻게 사용할지, 아니면 혹시 탑이 아니라 서폿이나 정글로 스왑을 하는 건 아닌지 정말 기대가 되는 노릇입니다.>

김은준 해설의 말마따나 아직까지는 모른다.

탑이 아니라 정글이나 서폿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다.

아직 그 쓰임새가 제대로 판명나지 않은 거미여왕이기 때문.

뭐, 어디로 가더라도 재미는 찰지겠기에 관중석의 분위기는 들떠있었다.

<시작합니다! B조 첫 세트 삼선 블루 대 불밤. 경기~~~!! 보시죠!!!>

라인스왑은 없었다.

예정대로 인지는 몰라도 씨지맥이 거미여왕을 플레이한다.

신규 챔피언을 픽하는 모험.

단순한 호기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변을  낳을지.

경기에 들어가지 않고서야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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