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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눈은 L.A보다 빠르다
현재진행형의 전설과 과거완료형의 전설.
삼선 블루와 불밤을 일컫는 단어다.
전설을 이루고 있는 팀과 이뤘던 팀이 결승전에서 맞붙게 됐다.
─삼선 블루 지금 기세가 미쳤어.
아니 어떻게 마진 공격대를 2대 떡으로 잡지?
심지어 결승전 상대인 불밤은 12강에서 한 번 잡았었음;
롤챔스에서 영화 찍고 있네ㄷㄷ
└딱 롤드컵에서 TWA가 결승전갔을 때의 스토리다.
└TWA는 결국 우승했잖아? 스포오지네;
└맞아 아직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보기엔 힘들어..
삼선 블루는 준결승전에서 마진 공격대를 잡았다.
그것도 2: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
하지만 순수하게 실력차로 이겼다고 보기엔 뭣하다.
특이한 플레이와 꿀챔프.
1렙부터 오버파밍을 해대는 또라이같은 싱나드와 애꾸사자 덕이 크다.
만약 그 두 챔피언의 의외성이 없었다면 과연 삼선 블루가 이길 수 있었을까.
─내가 보기에 결승전은 3대 떡 확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밤이 이김.
삼선 블루가 지금까지 꿀챔 잘 써서 올라오긴 했는데 그것도 이제 끝이야.
이미 분석 다 끝났고 뭘 꺼내도 카운터 다 맞는다.
특히 말카림은 절대 못 꺼냄ㅅㄱ
└칼같은 분석 ㅇㅈ합니다.
└말카림은 솔직히 카운터 챔이 너무 많지.
└인정은 하겠는데.. 님은 왜 불밤 개객기를 못함?
└개, 개객…. 그래 나 불밤빠다!
말카림부터 시작해 애꾸사자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챔프를 네 가지 사용한 건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결승전에 도달하기까지 너무 많은 카드를 소모했다.
더 이상 보여줄 카드가 과연 있을까.
대부분의 팬들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결승전 기대가 안 되는 건 아닌데..
결국 불밤이 이길 수밖에 없는 건 맞지.
3전 2선승제도 아니고 5전 3선승제야.
변수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불밤 사랑해요!
└얘 불밤충이긴 한데 하는 말은 거의 맞말이네
└그러고 보니 5전 3선승제구나. 확실히..
└인정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불밤충아.
└네 다음 결승 못 온 얼밤충~
만약, 정말로 만에 하나 씨지맥이 다른 카드를 준비했다고 한들.
설령 그 카드를 소비해 한 판을 따냈다고 한들.
그러한 가정을 셈쳐도 불밤은 만만하지 않은 상대다.
12강의 조별 리그 때와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을 터다.
그래도 지금까지 삼선 블루가 해온 게 있는데.
그리고 씨지맥이 지금껏 얼마나 재밌는 경기를 보여줬는데.
경기의 승패는 둘째 치고 순수하게 기대가 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적어도 치킨각이 나오는 수준까지는 재미가 있음이 틀림없다.
한국의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윈터시즌.
마지막 마무리가 되는 결승전까지 남은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
.
.
* * *
이제 내일이면 대회가 열린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윈터시즌.
북미의 롤챔스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한국과는 달리 예선전없이 바로 본선 조별 리그가 치뤄진다.
당연 기대와 흥분이 동시에 이는 일이지만 자신이 있다.
나 뿐만이 아니라 함께 하는 팀원들.
특히 예은이 아주 믿음직하게 성장했으니까.
'정말 포기하면 어쩔까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잘 따라와줘서 다행이야.'
오늘도 연습시간을 마치고 내 방에서 꼬치꼬치한 코칭을 받은 예은.
최근에는 아예 모든 걸 내려놓았는지 달관한 표정으로 묵묵하다.
우리가 여정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연습을 아껴서야 안된다는 것을 본인도 인지한 듯하다.
나는 내 옆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예은을 향해 자상한 어조로 물었다.
"컨디션은 괜찮아?"
"...그럭저럭."
대답은 대충 받아쳐 오지만 빈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이 녀석은 건강이 꽤나 튼실하다.
조금 까놓고 말하자면 막 굴렸는데.
젊어서 그런지 체력이 좋다.
'요즘 들어 성격도 아주 약간은 둥글둥글 해졌고, 아주 기특해.'
가끔씩 때리거나 긁기는 하지만 큰 군소리 없이 따라줬다.
근 한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힘들었을 텐데도 정말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 보담이라 하기에는 뭣하지만 대회가 끝나면 스트레스 풀이에 어울려줘야겠다.
조금 억지를 부려와도 이해를 해주고 말이다.
'제자를 둔 느낌이 됐단 말이지.'
제자의 성장을 바라보는 스승의 심정이 이러할까.
이제는 딱히 지적해줄 부분도 크게 없어 예은 스스로 알아가는 게 더 클 지경이다.
게임실력도, 인성적인 부분도 부쩍 성장한 예은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훈훈하다.
그렇게 잠깐 스승의 마음에 푹 빠져 있는 사이에 어느새 예은의 게임이 마무리됐다.
"야, 둔감탱이. 이리 가까이 와바."
무슨 일일까?
나에게 무언가 볼 일이 있는듯 예은이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든다.
의자를 당겨 다가가자 살며시 손을 내뻗어 이마를 덮는다.
"살짝 열 있는 거 같네. 내 컨디션 왈가왈부하기 전에 너부터 신경.쓰라고."
나지막하게 내뱉은 예은은 이마에서 손을 뗐다.
나도 감기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수준인데 잘도 눈치챘다.
'환절기가 이래서 가끔가다 골치가 아파.'
나를 걱정하는 건지, 옮을까봐 조심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괜찮다.
그저 어젯밤에 이불을 얕게 덮고 잤을 뿐이다.
11월 말, 최근 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졌다.
언제나 따듯하기만 하던 로스앤젤레스다 보니 조금 실수한 감이 있다.
"멍청아, 주장이 아프면 오더에 문제가 생기잖아. 그러니까.. 내일까지 책임지고 나아, 알겠어?"
기합으로 감기가 나면 오죽 좋겠냐만은.
걱정해주는 거라면 마음은 고맙게 받겠다.
"이제 너도 돌아가서 쉬어. 감기 옮는 것도 감기 옮는 거지만, 내일 경기를 위해서라도 오늘은 잠을 푹 자둬야지."
"윽, 딱히 감기 신경쓰는 거 아니거든?"
어쨌든 간에, 어쨌든 간에 말이다.
이 녀석도 피곤한 눈치기도 하고, 나도 감기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눈이 감긴다.
그렇게 예은을 배웅해주고 방문을 닫기 직전.
무어라 할 말이 남았는지 예은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
"그.. 보니까 씨지맥은 결승전까지 갔더라? 혹시 그것도 네가 도와준 거야?"
눈이 반쯤 감긴 노곤노곤한 표정.
꼭 대답을 듣고 싶은 모양인지 막무가내 문지방에 발을 끼어넣는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대답해주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글쎄, 확실한 건 씨지맥의 실력이 있었기에 결승전까지 갈 수 있었다는 거지."
"부정은 안 하는 구나?"
예은이 눈꼬리를 올리며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노려 본다고 없는 이야기가 생기는 건 아닌데 말이ㅣㅈ.
솔직히 말하자면 그저 맞장구를 쳐줬을 뿐이다.
씨지맥 쪽에서 나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서 조언을 구했고, 나는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나쁘지 않은 생각같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상대가 되준 것 뿐이다.
'뭐, 씨지맥 입장에선 달리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씨지맥을 제자처럼 가르쳤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오해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할애한 사람은 너밖에 없다.
"그럼.. 됐어."
꼬치꼬치 캐묻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뒤끝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가끔 흉폭하긴 해도 뒤끝 있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방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예은이 아직 발을 빼지 않고 있었다.
"..할 말 더 남았어?"
"그냥.. 그래서 네가 보기엔 씨지맥은 우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나에게서 반쯤 고개를 돌린 예은이 쭈볏쭈뼛 이야기를 잇는다.
무언가 급히 화제를 돌린 듯한 기분이 들지만 기분탓이겠지.
당연한 소리지만 내 의견이라고 한들 단순한 추측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굳이 묻는다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오직 한 가지.
"나는 씨지맥이라면 충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해줬음에도 예은의 표정이 무언가 언짢다.
의심스럽다는 듯 되물어온다.
"혹시 뭐.. 꿀챔같은 걸 가르쳐 줬다거나?"
아직 조금은 의심이 남아있는 듯한 눈초리다.
하지만 단언컨데, 정말 단언컨데 그런 적이 없다.
내가 뭐 술먹고 헛소리를 내뱉지 않았던 이상 그런 적은 없었다.
나는 순수하게 씨지맥의 승리를 예상하고, 응원할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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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윈터시즌.
한국 롤챔스의 결승전이 치뤄지는 시간은 오후 두 시 부터다.
그리고 현재 시각은 오후 네 시.
이미 결승전은 세 번의 경기를 치뤘다.
<관중석의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저희 해설진들도 가슴이 콩닥콩닥해요!>
<그럴 수밖에요. 이번 네 번째 세트가 상당히 중요하거든요~?>
세 번의 경기가 치뤄졌지만 결승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말인즉, 어느 한쪽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지지는 않았다는 소리.
경기의 스코어는 당연하게도 1:2다.
<삼선 블루가 이번 세트에서 패배하게되면 그대로 불밤의 승리가 결정지어 집니다.>
<그렇게 된다면 참 아쉬운 노릇입니다. 삼선 블루에서는 준비해온 카드를 제대로 쓰진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현재까지 진행된 총 세 번의 게임.
씨지맥이 주력으로 삼는 챔프들이 전부 밴됐다.
그나마 삼선 블루가 첫 번째 세트를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은 거미여왕이 살았던 덕분.
경기의 내용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삼선 블루가 가져갔다.
하지만 시작만 좋았을 뿐.
두 번째 세트와 세 번재 세트를 연이어 내주며 불밤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이번에도 말카림만 살았거든요. 불밤에서 준비해온 챔피언, 확실하게 말카림의 카운터입니다.>
<전전판에도 완전 속수무책 당했습니다. 캐리와 트롤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솔랭의 법칙이 이곳 롤챔스의 결승전에서도 증명이 됬어요, 하하.>
씨지맥은 명실상부 캐리형 탑솔러.
하지만 솔랭에선 캐리와 트롤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솔킬을 딴다는 건, 캐리를 한다는 건 그만큼이나 리스크가 있는 행위이기 때문.
두 번째 세트에서 불밤은 거미여왕, 애꾸사자, 싱나드 세 챔패인얼 밴해버렸다.
씨지맥은 자신하던 말카림을 잡았지만 대패.
불밤이 준비해온 네네톤에게 무참히 발려버렸다.
때문에 씨지맥은 세 번째 세트에서 무난한 콜라곰을 뽑았고 라인전 또한 무난하게 진행했다.
그리고 게임도 무난하게 패배했다.
이번 네 번재 세트 또한 그렇게 진행된다면.
<아, 불밤 쪽에서 또 씨지맥 선수를 견제하네요. 그만큼이나 씨지맥 선수의 기량을 인정한다는 소리겠죠.>
<그렇습니다. 다양한 챔프폭과, 씨지맥 선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략들. 이러한 불밤의 대응도 결코 과민반응이 아닙니다.>
훌륭한 챔프폭과 전략.
씨지맥 선수는 과연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그러면 뭣하는가.
씨지맥을 완전히 틀어막자 삼선 블루는 불밤에게 쪽도 못 쓰고 있다.
경기력 자체가 눈에 띄게 불안하진 않지만 말 그대로 무난하게 진다.
불밤쪽에서 딱히 유별난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은 양팀의 실력 격차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결국 말카림을 선택하든, 다른 챔피언을 선택하든 이번 네 번째 세트도 비슷한 양상을 띌 수밖에 없게 되리라.
중계진들은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껏 결승전을 관람한 이들 중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이는 없다.
<역시 말카림 가나요! 방법이 없죠. 운이 따라주는 수밖에.>
<예, 제가 보기에도 탑라인의 가능성에 걸어보는 편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상성이라고 한들 백이면 백 이긴다고 보긴 힘드니까.
그럼에도 중계진은 긍정적인 결과를 정말로 기대하진 않고 있다.
그 만큼이나 네네톤과 말카림의 상성차이는 현저하다.
라인전 능력치가 뛰어난 대신 성장기대치가 낮은 네네톤.
그리고 성장기대치가 무척이나 높은 말카림.
정글 개입이라도 있지 않는 한 네네톤이 말카림에게 지는 일은 없다.
솔랭이라면 바래볼 만도 하겠지만 이곳은 대회무대, 그것도 결승전이다.
더군다나 불밤 선수들의 평균 기량이 삼선 블루보다 높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더 따질 것도 없이 이미 두 번째 세트에서 판가름이 났다.
오히려 불밤 쪽 정글러가 거게세 몰아붙이며 다이브를 해댔다.
말카림은 어떻게 버텨봤지만 결과는 승패가 말해준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윈터시즌 결승전 네 번째 세트! 경기~~~!! 시작합니다!!>
불안 속에서 시작하는 네 번째 세트.
어쩌면 결승전 마지막 세트가 될 수 있는 경기다.
그런 중요한 경기를 치루고 있는 삼선 블루의 부스 안.
어째서일까?
씨지맥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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